젤린스키는 그의 책 <모르고 사는 즐거움>에서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 것,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
22%는 사소한 고민, 4%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 4%는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결국 걱정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라는 의미다
본래부터 근심이나 걱정이 실체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만들어 놓고 거기에 빠져 공연히 근심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오늘 하루에 고도를 1,400m 올릴 것을 두려워했지만 그냥 걱정하지 않고 출발하기로 했다
'걱정하지 말라'는 뜻의 네팔어....'찐따 너거루느스'를 주문처럼 뇌까리며 출발하였다
파이로 (1,800m)-툴로 샤브루 (2,500m)-두르사강 (2,700m)-포프랑 단다 (3,210m)-신곰파 (3,250m) 1박
오늘은 랑탕 코스를 벗어나 고사인쿤드와 헬람부 방향으로 접어든다
또 다시 출발이다
자연과 인간 그리고 현실과 이상이 공존하는 곳, 히말라야...
그곳엔 아무에게도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길이 있다
우리들은 오늘도 힘찬 화이팅을 외치며 툴루샤브루를 향해 파이로를 출발한다
이곳 삼거리는 샤브루베시, 랑탕계곡, 고사인쿤다로 길이 갈리는 곳이다
지금부터 고도를 급격히 높이며 올라가야하기 때문에 각오를 단단히 하였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히말라야 관광 상품의 하나다.
설산 봉우리를 점하는 ‘등정’이 아닌, 히말라야의 산길을 도보로 여행한다는 의미인 ‘입산’의 개념이다.
트레킹은 그 과정을 즐기며 소소한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다.
숨을 헐떡이며 올라간 고갯마루에 작은 가게가 있어서 콜라와 환타를 한 병씩 마시며 쉬었다
히말라야의 거친 바람을 견디어오신 아주머니의 얼굴에 미소가 넘쳐난다
흔히 히말라야에 펼쳐진 하얀 산을 영혼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
그만큼 맑고 순수하다는 뜻이다.
이 순수의 세계와 마주하고 나면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을 느낀다.
소설가 박범신도 눈부시게 빛나는 산들과 마주한 후 한동안 히말라야에 푹 빠져 살았다.
여행업계에 따르면 해마다 3만여 명의 한국인이 네팔 히말라야로 트레킹을 떠난다.
전 세계에서 연간 20만 명이 네팔 히말라야로 트레킹을 오는 것에 비추면 엄청난 숫자다.
툴루샤브루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계곡을 가로지르는 현수교를 건너야 한다
이 현수교는 상당히 길었는데, 중간중간 망가져 있어어서 여간 조심스럽지 않게 건넜다
길을 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외경(畏敬)이다.
숭배할 만한 성스러운 세계에 대한 찬양과 존경을 마음에 담아야 한다.
다행히 히말라야에는 성(聖)이 남아 있다.
이곳은 오지 중의 오지이며 접근하기 어려운 깊숙한 자리로, 접근하면 할수록 외경심을 갖도록 만든다
현수교를 건너 조금 올라갔더니 마을 초입의 롯지 마당에서 옷감을 짜는 여인이 있었다
티벳 문양을 넣은 장식물을 짜고 있었는데 어찌나 정교한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소설가 박완서는 히말라야 원주민의 삶을 기웃거리는 것을 ‘모독’이라 표현하였다
우리의 관광 행위 자체가 이 순결한 완전 순환의 땅엔 모독이었다는 것이다
낯선 나라에선 그저 겸손하게 머물다 오기를. 여행자는 그 땅의 간섭자나 선생이 아니라 흔적 없이 다녀가는 손님이어야한다고 말했다
나는 박완서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언행에 조심하였다
다랭이논
툴루샤브루는 전형적인 농촌마을로서 마을 전체가 다랭이논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제대로 농사지을 땅이 거의 없는 네팔에서는 까마득하게 높은 산꼭대기까지 개간을 해서 농사를 짓는다
감자나 옥수수 같은 곡식을 심어 자급자족하고 남은 것을 며칠씩 지고 장에 가서 필요한 생필품을 사가지고 온다
네팔은 세계에서 브라질 다음으로 두 번째로 물이 많은 나라다
저 꼭대기에도 먹을 물과 농사지을 물이 있고, 계곡의 급류를 이용해서 자체적으로 수력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해서 쓴다
툴로 샤브루 Thulo Syabru (2,500m)
'툴로’는 ‘위’라는 뜻으로 툴로 샤브루는 샤브루지역의 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법 규모가 크고 깔끔한 마을 툴로 샤브루에 도착했다.
학교와 사원까지 있고, 버스가 다니는 보기 드문 문화촌이다.
길 옆에 있는 집들은 롯지를 운영해서 풍족하지만 길을 벗어난 집들은 농사만 짓고 있는듯 했다
이곳 Ganesh Himal Hotel 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와이파이를 연결해서 가족에게 잠시 소식을 전했다
마을 근처에 있는 군인 초소에 신고를 하고, 고사인쿤드를 향한 본격적인 발걸음을 옮겼다
어쩌다 나타나는 마을은 그지없이 평화롭다.
똥으로 덧칠한 흰 벽도 보기 좋고, 집집마다 내건 오색 깃발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도 보기 좋다.
아무리 작은 마을도 불탑이 중심이 돼 있고, 고개마다 돌무더기와 오색 헝겊을 단 줄로 화려하게 장식을 하고 있다.
진언 ‘옴마니반메홈’이 새겨진 돌들도 흔하게 뒹굴고 있다.
경치가 아름답거나 위험한 곳에는 반드시 이렇게 성소가 마련되어 있다
작은 초르텐이 있고 룽다가 펄럭이는데 고개는 바람이 통과하는 구멍 노릇도 하는 것 같다.
흔들어댈 나무도, 사람의 집 문짝도, 전깃줄도 없는데 바람은 허공에서 외롭게 제 목소리를 낸다
트레커들은 이런 곳에서 땀을 닦고 쉬면서 아래로 펼쳐지는 경치를 감상한다
두르사강 Dursagang (2,700m)
구불구불 산길을 지그재그로 약 200여m 올라왔더니 두르사강이라는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손님도 없는 롯지에 혼자 앉아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이 쓸쓸해 보였다
이곳도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버려서 묵어있는 다랭이논이 많이 보였는데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집 마당에서 다정히 앉아있는 부부에게 다가가서 기념촬영을 부탁했더니 옆에 있는 장도를 집어든다
이곳 남자들에게 장도가 필수품이며 외출할 때도 옆구리에 차고 다닌다
나는 남자에게서 장도를 빌려서 오른손에 들고 포즈를 취했다
우리와는 사는 방식이나 문화가 다른 다양한 소수민족들로 이루어진 곳이므로 그들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
춥다 덥다 울지 않는다
배고프다 목마르다 조르지 않는다
못생겼다 가난하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난초를 꿈꾸지 않는다
벌 나비를 바라지 않는다
태어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사는 것을 버거워하지 않는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무도 탓하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주어진 것만으로 억척으로 산다
버려진 곳 태어난 곳에서 모질게 버틴다............................김종태 <잡초는> 부분
포프랑 단다 Foprang Danda (3,210m)
계속되는 오르막길을 헉헉대며 오르는 동안 이제 막 피어나는 신록들이 위안이 되어준다.
마지막 길목에는 '환상의 꽃길'이 기다리고 있다.
오솔길 양쪽으로 늘어선 꽃 핀 랄리구라스 나무들이 붉은 전등을 달아놓은 크리스마스트리 같다.
랄리구라스숲을 벗어난 산의 날맹이에 포프랑 단다라는 작은 롯지가 나타났다
사방이 탁 틔여서 전망이 매우 좋았고, 구름에 가리운 설산들의 모습이 환상적이었다
그대의 삶이
타인에 대한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할 때
아직 길을 떠나지 말라
그대의 존재가
이루지 못한 욕망의 진흙탕일 때
불면으로 잠 못 이루는
그대의 반이 사랑의 그믐일 때
아직 길을 떠나지 말라
쓰디쓴 기억에서 벗어나
까닭 없는 기쁨이 속에서 샘솟을 때
불평과 원망이 마른 풀처럼 잠들었을 때
신발 끈을 매고 길 떠날 준비를 하라.............................고진하 <상쾌한 뒤에 길을 떠나라> 부분
이후로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울창한 숲과 건지산처럼 부드러운 흙길이 이어졌다
랄리구라스와 천리향과 전나무가 어우러진 숲길을 걷는 트렉은 완전히 딴 세상 같았다
‘트렉’(Trek)의 어원은 아프리카 말인데, 19세기 초부터 영어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당시 남아프리카 식민 지배에 나선 네덜란드인들이 소달구지를 타고 고단하게 여행하던 전통에서 유래되었다
이것이 히말라야 산행의 고단함에 적용되어 ‘고된 도보여행’이라는 의미로 전환됐다.
그런 의미에서 히말라야 트레커의 원조는 설산을 가로질러 티베트와 인도를 넘나든 무역 대상들인 셈이다
한 세계를 품고 이곳까지 건너온 고단한 당신,
당신의 푸른 점 속으로 내가 걸어들어갑니다
푸른 점 속에 까마득한 시간을 날아
다시 하나의 푸른 별을 찾아낸
내 심장이 만년설 위에 얹힙니다
들어오세요 당신, 광대하고도 겨자씨 같은,
당신이 내 속으로 들어올 때 나, 시시로 사나워지는 것은
불붙은 뼈가 물소리를 내며
자꾸만 몸 밖으로 흘러나오려 하는 것은
푸른 별 깎아지른 벼랑 끝에서
당신과 내가 풀씨 하나로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김선우 <점> 부분
신곰파 Shin Gompa (3,250m)
오래된 사원이 있는 조용한 마을이다
‘신’은 old를 의미하고 ‘곰파’는 사원을 의미한다고 한다.
8부 능선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은 신곰파는 사원과 야크치즈 공장 그리고 4개의 로지가 트레커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이틀을 쉬어갈 계획이었지만 방이 없다고 해서 하루만 쉬기로 했다
신곰파라는 마을 이름은 마을 한가운데에 오래된 곰파가 있어서 붙여졌다
곰파는 낡을대로 낡아 있었고, 스님이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마을에서 관리하고 있는듯 했다
안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누군가가 켜놓은 촛불만이 깜빡거리고 있을뿐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오늘의 일정이 빨리 끝났기 때문에 롯지에서 여유를 즐기었다
네팔의 소주격인 락시를 마시는 것 또한 트레킹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안주라고 해봤자 육포 아니면 마른 오징어인데 결코 모자람이 없다
락시는 고량주 비슷한 향기가 나며 소주보다는 약간 돗수가 낮은 느낌이지만 은근히 취한다
20여일 동안 면도를 하지 않아서 이제는 덥수룩한 수염이 입 속으로 들어온다 ㅎㅎ
날씬이가 신곰파에서 2년 전에 만나서 사진을 찍었다는 어린이를 만났다
그 사이에 많이 성장해 있었고, 밑으로 여동생이 새로 생겼다
이곳은 출산율이 꽤 높아서 집집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서너명씩 돌아다닌다
이들은 한결같이 히말라야의 거친 바람에 얼굴이 그을려 있었고, 눈동자가 지극히 맑았다
첫댓글 이 아가들이 자라서 히말을 지키겠구나....
툴루샤브루에서 옷감을 짜는 여인을 만났습니다
다양한 무늬를 엮어내는 정교한 기술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가이드의 말을 듣고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그 여인이 나한테 성매매를 제안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네팔어로 대화했기 때문에 나는 알아듣지 못했던 거지요
깨끗하고 신성해야할 히말라야가 돈에 오염되어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