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야 단과대학규모의 대학도 총장을 두고 있어서 대학총장의 심리적 가치는 하향 평준화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만 해도 전라북도에는 국립대총장이 전북대총장 딱 한사람뿐이었기에 전라북도 공직자 중에서는 가장 높은 자리였다.
실제로 국립대학교 총장은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자리이다. 의전에 있어서의 예우나 급여는 장관에 준하는 것으로 처우하고 있다고 한다. 전직 장관이나 총리를 지냈던 분들이 마다하지 않는 자리임을 생각해보면 꽤 괜찮은 자리임에 틀림없다. 지금이야 민선 지방자치시대이니 단순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과거 관선시절 도지사를 비롯한 광역자치단체장들을 내무부장관이 임명했고 차관급의 예우를 했던 것을 보면 국립대총장은 최고위 공직자였음에 분명하다.
항간에 떠돌았던 얘기여서 진위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전북대 총장과 전라북도 도지사가 모두 관선이었던 시절의 의전 서열과 관련된 일화 한토막이 생각난다. A씨가 전북대총장에 부임해오자 전라북도 주요 기관장들이 환영연을 베풀기로 했다고 한다. 금의환향한 A총장은 기분 좋게 환영연장에 들어섰다. 그런데 환영연장의 가장 상석이 도지사에게 배정되어있었다. 이를 본 A총장은 화를 내고는 밥상을 뒤엎고 돌아왔다고 한다. 분이 풀리지 않은 A총장은 군인출신이었던 도지사를 윽박질러 관용차량 번호 ‘전북 1111’까지 빼앗았다고 전해진다.
전북대를 졸업한 나로서는 요즘 전북대총장 자리가 빚어내는 일들로 제법 우울하다. 전임총장은 임기를 불과 한 달 남짓 남겨두고 연구비횡령문제로 직위해제라는 전무후무한 최악의 조처를 당하면서 불명예 퇴진을 하더니, 교수를 비롯해서 교직원까지 참여해서 직선으로 선출된 신임 총장후보는 음주운전 전력과 재산 형성과정의 문제로 임명을 거부당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역대 전북대 총장은 참으로 훌륭한 분들도 있었고, 수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릴 만큼 우여곡절을 겪은 분도 있었다.
고건 전 총리의 부친으로 유명한 제2대 고형곤총장은 한국철학계의 큰 봉우리였다. 원래는 서양철학을 전공했으나 “하이데거도 동양사상을 배우는데 정작 우리 자신은 너무 모르고 있다”는 자괴심이 그를 불교철학으로 이끌어 선(禪)사상에 천착함으로써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3대 정인승총장은 한글학회가 만든 ‘큰사전’ 편찬 작업을 주도한 분으로 유명한데, 일제치하에서는 이른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붙잡혀 2년의 실형선고를 받고 함흥형무소에서 복역하다 광복으로 1945년 8월 17일 출옥한 한글학계의 거두였다.
제7대 심종섭총장은 서울대 농대학장을 거쳐 전북대 총장을 두 차례 역임한 후 대한민국 학술원 회장까지 지냈으니 학계의 원로 중 원로라 할만하다. 그러나 심종섭 총장은 전북대총장 중 처음으로 ‘어용총장’이라는 달갑지 않은 닉네임을 얻기도 했다. 특히 1980년 5월 학생들의 퇴진요구로 사표를 제출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해서 양면적 평가를 받고 있다.
제10대 김원섭총장은 퇴임 후 경원대총장을 역임하기도 해서 억세게 관운이 좋은 인물로 정평이 나있다. 전북대 재직 교수 어느 누구도 그가 총장으로 임명되리라고 예측하지 못했을 정도로 의외였기에 신군부와 관계가 입방에 오르내렸다.
87년 6월 항쟁이후 대통령 직선제가 쟁취되고, 대학총장 선출 역시 직선제가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덕분에 1990년 9월 임기가 시작되는 제11대 전북대총장은 교수들의 직접투표에 의한 선거를 통해 후보자가 선출되어 대통령의 임명을 받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재직교수들의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된 첫 번째 총장으로는 김수곤박사가 당선되었는데, 그는 전북대를 출신으로서도 처음 총장에 오른 인물이기도 했다.
제12대 장명수총장은 퇴임 후 우석대 총장을 역임하기도 했는데, ‘장조림총장’이라고 불릴 만큼 전공을 살려서 삭막했던 두 대학 캠퍼스의 조경에 심혈을 기울였고, 고희를 넘긴 현재도 전주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2년 제14대 총장으로 선출된 두재균총장은 40대의 나이 때문에 주목을 받으면서 취임해서 왕성한 대내외 활동을 펼쳤으나 뜻밖의 암초에 걸려 직위해제를 당함으로써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내년이면 전북대 개교 60주년이다. 전북대 총장 선임문제를 정부와 전북대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로운 해법을 찾아서 연이어 터진 불명예를 딛고 지역사회로부터 ‘자랑스러운 우리 대학’으로 다시 한 번 곧추서길 기대해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