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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명 (김 춘일 언님 증언)
1994.11.13.김 춘일 언니
디모데후서 1장 9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거룩한 일을 맡기려고 우리를 선택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그럴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다만 이 세상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과 은혜에 따라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이시려는 이 계획은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서 우리에게 알려졌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복음을 이방인들에게도 선포하고 가르치려고 나를 사도로 택하셨습니다. 12절입니다. 내가 여기 감옥에 갇혀서 고난을 당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고난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믿고 의지하는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잘 알고 있으며 또 그분이 내가 바친 모든 것을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안전하게 지켜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신 믿음과 사랑으로 내가 가르쳐준 진리의 말씀을 실천하시오. 그대의 그 놀라운 능력은 그대 속에 계신 성령께서 주신 것이니 소중하게 보존하시오. 13절까지 봤습니다.
오늘 제 당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드릴 말씀도 없고 해서 제가 작년 12월 달에 수레기 어머니 전기를 썼거든요. 쓰고 싶은 마음을 주셔서 그래서 이번 당번에는 수레기 어머니 전기, 이렇게 제가 수레기 어머니를 본 그 소감, 수레기 어머니를 내가 본 수레기 어머니는 이런 어머니였다. 또 이런 말씀을, 이 공님한테서 듣고 전해 주셨다. 그런 거 믿고 살아 나오신 거 또 돌아가시기 전에 당신은 어떻게 죽을 것을 미리 예고 하셨지요? 나는 이렇게 죽을 것이다. 이런 것을 말씀하신 그대로 가셨거든요. 그런 것을 다른 분들도 많이 들으셨겠지만 제 나름대로 기록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일은 수레기 어머니 전기나 가서 예배시간에 같이 읽어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랬는데 김 선생님이 지난주에 주일날 도암 오셔서 서울 다녀오라고 그래서 월요일 날 나와 가지고 남원에서 자고 화요일 날 장로님 윤 선생 또 금남언니 사연 양 저 다섯이서 서울로 해서 계명산 까지 다녀서 그저께 남원에 돌아와서 저물어서 남원에서 자고 어제 나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3일 많이 걸리면 4일 걸릴 것으로 알고 집에 도암 들어갔다가 오늘 아침에 나오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성경도 안 갖고 나왔습니다. 이것도 여기 있는 성경입니다. 맨손으로 그냥 아무것도 필기노트만 하나 가방에다 담고 나왔어요. 그래서 아무 준비가 없는 상태지요. 예배 당번이라 해서 특별히 준비한 것은 항상 없었지만 그래서 오늘은 이 시간에 서울 다녀온 보고 좀 드리고 여기 말씀 조금 생각 할까 합니다.
이번에 서울 가게 된 갔다 오라는 내용은 인도에서 수양하시는 분들 명상 ‘요가 명상회’라고 그분들이 서울을 오시게 되니까 인도분들 이지요. 거기 함 선생님의 초청장이 왔어요. 저하고 금남언니하고 사연 양하고 장로님하고 그러니까 가서 대접으로 초청장까지 보냈으니까 인사로 거기 참석하고 그 모임에 참석하고 계명산 이 혜옥 씨 어머니가 지금 얼마 못살게 그렇게 병중으로 계시니까 김 선생님은 가서 뵈어야 될 텐데 몸이 안 좋으셔서 장거리 여행하기가 어려운 형편이니까 대신 다녀오라고 그래서 다녀왔습니다. 이번에 화요일 날 저녁 모임 갖고 수요일 날 아침에 그분들이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떠나기 전에 일곱 시 반에 떠났는데 다섯 시 반에 모임이 마지막 모임이 갖게 된다고 해서 그 모임 또 잠깐 참석하고 계명산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면 그 인도에서 오신 그분들은 무슨 분들인가? 그것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 하겠어요. 1937년이에요. 제 나이로 해서는 일곱 살 때 그때 이 공님보다 조금 나중사람 이지요. 나이는 비슷할지 모르겠어요. 그때 인도에서 보석상 금반지 금 은 그런 보석 파는 아저씨가 계셨답니다. 그런데 그분이 60살 되었을 때 환갑 되었을 때에 꿈을 꾸었는데 천국을 보는 꿈을 꾸고 이 세상을 보는 꿈을 꾸고 또 지옥을 보는 꿈을 꾸었답니다.
그런데 그 꿈 내용도 있겠지만 그렇게만 들었어요. 그런데 그 꿈이 하도 이상해서 여러 선생님들을 찾아가서 내가 이러이러한 꿈을 꾸었소. 해석 좀 해주시오. 해도 누가 시원한 답변을 안 해줬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네가 직접 그 생활을 하도록 해라. 그렇게 계시를 받았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뜻이 있어서 보석상을 싹 치워버리고 모아놓은 굉장히 큰 부자였어요. 그 돈으로 학교를 지었답니다. 조그마한 학교를 지어서 거기다 어떤 학생들을 모집했나하면 그 인도에는 상중하 사람들이 제일 부자사람 중간사람 제일 가난한사람 그렇게 세층으로 나눠져 있답니다. 옛날에는 우리나라도 상놈 양반으로 나눠져 있듯이 그런데 부자사람들은 굉장히 부자인데 가난한 사람들은 아주 말로 할 수 없이 가난하답니다. 지금도 이 관광객들이 가서 기차에서나 비행기에서 내리면 거지 떼들이 아주 수백 명씩 깡통을 들고 따라 다닌다고 그런 말 들었어요. 지금도 그렇게 가난한 사람은 아주 가난하대요. 이 아저씨가 제일 가난한 사람들 제일 비참한 사람들 가운데서 또 남존여비의 사상이 강해 남자만 이렇게 높이고 여자는 아주 종처럼 비참하게 그런 나라에요.
그러니까 제일 불쌍한 여자들 여학생들 학교도 못 다니지요. 아주 가난하니까 그런 여 나무 살씩 먹은 제일 가난한 종살이하는 거기에서 여학생들을 열다섯 살이나 먹은 여아들을 소집을 했어요. 그래가지고 거기서 가르쳤어요. 명상을 주로 한 것이지요. 요가 명상 나자요가 라고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명상 그 말이에요. 나자 요가 그 말은 그래서 조그마한 학교를 짓고 불쌍한 여아들을 모아서 교육을 시켰답니다. 14년을 하고나니까 재산이 딱 바닥이 나버렸어요. 다 떨어져 버렸어요. 돈은 벌어들이지는 않고 소비만 하니까, 그래서 돈이 딱 떨어졌는데 참 하나님께서 부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가지고 후원을 해줘요. 그래서 지금 94년이니까 상당한 역사가 지났지요? 몇 십 년 한 육십년 그렇게 지났는데 60년 되었겠군요. 그런데 그 학교가 자꾸 커져가지고 지금은 수백 명이 되어가지고 70나라 70개국으로 전도를 나가서 지금 전도를 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김 원장님도 몇 년 전에 3년 전에 다녀오시고 그랬는데 그 생활에 걱정은 없답니다.
무슨 채소 하나도 가꾸지 않는대요. 돈 많은 부자들이 다 후원을 해주니까 이 사람들은 오직 자기들이 기도하고 외국에서 오는 손님들 맞이하고 대접하고 그렇게 생활하지. 이 생산하는데 농사를 짓는 다든지 어떻게 해서 생활비 조달을 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안 보낸답니다. 그렇게 그 인도 나라에 부자들이 또 그렇게 참 축복받은 나라지요. 그렇게 해서 생활들을 하는데 78세 된 할머니가 이번에 오셨어요. 다디장켄 이라고, 그 할머니 이름은 다디장켄 이에요. 그런데 40살로 보이는 자매들 두 분이 오고, 세분이 인도에서 오셨는데 그 할아버지 밑에서 그 어른 밑에서 그분은 몇 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한 23년 전에 돌아가셨대요. 그 어른 밑에서 직접 교육받은 사람들 중에 지금 세 사람 남았는데 그 세 사람 중에 한 명 이에요. 이번에 오신 다디장켄이 할머니가 그분이 오시는데 세계 국제적으로 이분이 신비가로 손꼽는 분이랍니다. 그래서 국제 신비가의 아마 총장이라고 하는 것 같아요. 이 다디장켄이, 그래서 참 어떻게 생긴 분인가 기대를 가지고 저도 갔었지요.
그런데 저녁 모임은 서울 무슨 신라호텔 뒤쪽에 큰 강당 사람들이 한 이백 명 남짓 모였는데 각계각층 사람들이 다 모였어요. 수녀들도 몇 명 왔고 외국 사람들이 많이 왔습디다. 얼굴이 거뭇거뭇한 사람들이 많이 온 것이 인도사람, 한국에 와서 있는 인도사람들도 많이 온 것 같아요. 그런데 시간이 7시 반 퇴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 시간을 잡았는가 봐요. 7시 반이 되니까 나오시더만요. 그런데 그 사우디 사람들이나 그쪽 사람들 옷이 비슷하지요? 하얗게, 하얗게 내복같이 여기는 내복같이 딱 붙은 옷인데 위에다 천을 둘둘 말아 입는 옷들이지요. 그런데 아주 하얀 눈같이 하얀 옷을 둘둘 말아 가지고 그 할머니는 키가 작달 막 하더만요. 두 자매는 키가 후리후리하니 큰데 머리들을 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 우리 언니들, 다 머리를 땋았지요? 지금도 간혹 보면 머리를 딴 사람들이 더러 보이는데 그 젊은 자매들은 새카만 머리들을 엉덩이에 닿게 머리를 땋았어요. 그 할머니도 머리를 땋아 내렸대요. 댕기 같은 것은 없고 그냥 곁에서 안 봤으니까 잘 모르는데 그 할머니도 반백이나 저 만큼 희었는데 등허리만큼 땋아서 찾더만요.
그런데 그 할머니를 인제 모시고 나오는데 그 명상을 수십 년간 해서 그런지 동상 같은 느낌이 제가 본 느낌으로는 동상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이렇게 와서 의자에 앞에 가서 앉아계시는데 조금도 모습이나 흐트러진 게 없어요. 아주 딱딱한 동상처럼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그 자매들도 아주 모습들이 어디를 본다든지 두리번거린다든지 그런 모습이 없고 산부처 같은 그런 모습이라고 제가 느꼈습니다. 그래서 강론이 시작되기 전에 3분 명상시간을 갖고 강론이 시작되었어요. 그런데 그 할머니는 인도말로 말씀을 하시고 또 따라온 같이 온 자매는 영어로 통역을 하고 또 그 함 선생 우리 한국 함 선생은 우리나라 말로 통역을 하고 그렇게 인제 인도 말 영어 한국 이렇게 세 입을 통해서 우리가 귀로 전달해 듣지요. 그런데 한 시간 강론을 하는데 20 분밖에 못들은 셈이지요. 인도말로 하고 영어로 하고 또 한국말로 하고 그러니까 나중에 시간 끝나고 질문하고 싶은 사람 하라고 한 서너 사람이 나와서 질문을 하더만요. 질문을 해도 한국말로 하니까 한국 사람이 영어로 하고 또 그 자매가 할머니한테 인도말로 하고 그럼 인도말로하고 영어로 하고 한국말로하고 그러니까 아주 시간이 재미있는 시간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저녁에 들은 말씀과 새벽에 들은 말씀을 제 나름대로 정리를 해봤어요. 제대로 이 시간에 기억이 되려는지 모르겠어요.
인간의 본질은 평화입니다. 그 말씀을 제일먼저 하십디다. 인간의 본질은 평화입니다. 그래서 인류들이 다 평화를 원한다고 다 평화를 원하는데 평화가 평화를 찾기 위해서 평화를 얻기 위해서 바른길로 가야하는데 다 거꾸로 가고 있다고 평화를 등지고 가면서 평화 평화를 원한다. 그 말씀을 맨 처음에 하시더만요. 그리고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나본 체험이 있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을 만난 위대한 지도자들을 모시고 배우십시오. 피곤한 사람이 졸고 하품하는 사람들이 있었던가? 이 귀한 시간에 하품하고 졸면 낙오자가 됩니다.
그리고 나중 하신 말씀은 제가 제 나름대로 정리를 해봤어요. 추리들을 하십시오. 넓은 끝없는 해양, 그러니까 바닷가지요. 넓은 바닷가에서 이 세상 살아가는 것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이 세상은 넒은 바닷가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음미하면서 음미라는 것은 새김질 이지요. 밀려오는 파도는 희로애락 살아가면서 풍파지요. 여러 가지 시험, 넓은 바닷가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음미하면서 세상 지식인 돌밭에서 바닷가에 돌이 많이 깔려 있지요? 세상 지식이 많은 돌이 깔려있는 돌밭에서 하늘의 지식인 진주를 고르는 백조가 되십시오. 그렇게 제가 정리를 해봤어요. 두 번째 들은 말씀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넓은 바닷가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음미하면서 세상 지식이 많이 깔려있는 돌밭에서 그러니까 돌은 세상 지식이다. 그러면 세상 지식인 많은 돌이 깔려있는 돌밭에서 하늘의 지식인 진주를 고르는 백조가 되십시오. 그러면 새 중에서 백조가 아주 고결하지요? 그분들의 그 모습이 백조처럼 보입디다.
제가 본 견해로서는 그리고 인제 그 기념으로 요만큼씩 한 과자 한 개씩을 그 할머니가 일일이 줘요. 그 할머니가 주셨는데 아침에 함 선생님 집에서 조그마한 모임을 가졌는데 이렇게 그 할머니가 과자 바구니를 갖다놓고 한 사람씩 한사람씩 눈을 맞대고 주시는데 할머니가 얼굴이 새까매가지고 적으신데 늙으셨지요? 눈이 쏙 들어가 가지고 얼른 볼 때 돌아가신 곡성 김 장로님 인상 비슷하게 생기셨어요. 그래서 인제 저희들도 다 가서 과자를 한 조각씩 받아먹었지요. 장로님은 인제 갈 줄도 모르고 앉아계시니까 윤 선생님이 모시고 가시더만요. 그런데 다른 사람 줄때는 그 말씀을 안 하셨는데 장로님을 주면서는 ‘오옴산띠’ 그러고 떡을 주세요. ‘오옴산띠’ 장로님 한 테만 그 말씀 하세요. ‘오옴’이라는 것은 아멘이라는 뜻이고 ‘산띠’는 평화를 빕니다. 평화를 축복합니다. 장로님한테만 그 말씀 하세요. ‘오옴산띠’ 장로님은 귀가 잡수셔서 그 소리도 못 들으셨대요. 그래서 나중에 장로님 하고만 그 통하셨는가봅니다. 장로님한테 주시면서 ‘오옴산띠’ 그러시데요. 나는 못 들었어.
그게 뭔 말인지 모른다고, 그래서 그분들의 생활이 첫째 순결, 첫째는 순결을 지켜야 되고, 둘째는 음식, 순결한 생활을 하는데 음식은 멸치꼬랑지도 물론이고 중들의 식생활과 같으시더라고요. 고춧가루 파 마늘 양파까지 일절 안 쓴답니다. 자극성 있는 음식을 안 먹고 또 부엌에서 밥해주는 식모들은 제일 믿음이 높은 사람들이 밥을 해야 된답니다. 아무라도 불평하고 감사 없이 밥해주는 밥에는 혼이 빠져있대요. 그래서 아주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주 정성으로 밥을 해야 그 밥을 먹는 사람들이 평안함을 얻는 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순결 생활은 우리하고 같은데 내 자신이 혈기도 나고 참 이렇게 사람이 못된 것은 참 음식을 조심해야 되는 것인가 보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하고 거리감이 있지요? 어떻게 어렸을 때부터 고기 같은 것 안 먹고 깨끗하게 살기 때문에 사람들 옆을 지나가면 저사람 무슨 고기 먹었다는 게 옆에서 다 풍긴 답니다. 그 사람들 코에는 그리고 또 한 가지 기억되는 말씀은 순결 순결을 지켜야 순결생활을 해야 영혼에 평화를 얻고 영혼의 평화를 얻은 순결생활로서 얻어진 평화로서 이웃을 사랑할 때 그 영혼도 나도 평화로워 집니다.
순결에서 얻지 못한 평화가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그런 말씀도 하셨고요. 이 시간에 다 기억을 할 수 없고요. 그분들 보고 온 보고는 그렇게 기억이 됩니다. 넓은 바닷가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음미하면서 세상지식인 돌밭에서 하늘의 지식인 진주를 고르는 백조가 되십시오. 사람의 본질은 평화인데 다 사람들이 평화를 갈구하고 원하면서도 반대방향으로 가면서 평화 평화를 부르짖는다고 내 안으로 내향 내 안으로 들어가서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야 평안하다. 밖에서는 영원한 평안함을 찾을 수 없다. 그러기위해서 명상을 깊이 해야 된다. 그렇게 기억 되었습니다.그리고 그날 화요일 날 저녁은 김 원장님 댁에 가서 잤고 과천에 가서 자고 새벽에 거기 참석하고 정순언니 집에 가서 점심 먹고 오후에 계명산에 들어갔어요. 그래서 이틀저녁 자고 금요일 날 그저께 내려왔습니다. 혜옥씨 어머니는 물만 잡수시고 계시는 형편이에요. 미음도 못 잡수시고 그래서 몸이 절반이나 줄어지신 상태인데 아직도 정신은 참 좋으시고 아직도 이렇게 살림을 간섭도 하시고 계시는데 한말로 말하면 다 준비를 하시고 계시는 것으로 봐졌습니다.
당신은 당신 같은 몸에는 수의도 새 천으로 만들 수 없어서 헌 홑청, 헌 이불홑청 옛날에 쓰던 거 깨끗이 빨아서 수의까지 다 만들어 놓으시고 공순 언니는 새 천으로 해놨다고 그러데요. 그리고 거기 소 마구간 뒤에 산 거기다가 장지도 당신 묻을 장소도 거기다 다 마련해 놓으시고 너무 많이 살았다고 이 선생님 세상 뜬지가 30년 되었는데 동갑이시거든요. 지금 83세, 이 선생님은 53세에 가셨으니까 30년 더 살았는데 이 나이 되도록 이렇게 까지 오래 살줄 몰랐는데 많이 살았다. 장로님 모시고 같이 예배드리면서 장로님이 먼저 자복을 하시더만요. 구원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인데 내가 그 동안에 여기 다니면서 잘하니 잘못하니 간섭을 하신 것에 대해서 잘못했다고 그러니까 혜옥씨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시면서 장로님 잘못한 것 하나도 없다고 다 당신 잘못 뿐이라고 당신 같은 못된 인간을 동광원에서 봐준 것에 대해서 너무나 감사하고 감사뿐이라고 너무나 감사하고 기가 막 힐 정도로 감사함뿐이라고 말씀을 못하시면서 그렇게 눈물로 통회를 하시고 감사뿐이라고 말씀을 하셨고 당신 살아 믿고 나온 이야기를 잠깐 하시더만요.
참 이 길을 가는 친구가 한 사람도 없었는데 복희씨 어머니를 만나서 이 말씀을 들을 때 손뼉을 치고 즐거워했다. 그날부터 저녁만 되면 이 몸을 묶었다고 이 몸을 꽁꽁 묶어가지고 남자 한번을 웃는 얼굴로 남자 한번만 쳐다보면 큰일 나니까 남자를 볼 때 생전 한번 웃지를 못했다고 그렇게 싸워서 십년간 남편과 한집에서 싸우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 길로 인도해 주셔서 너무나 그 동안에 은혜만 많이 받고 살아왔다고 그렇게 좋은 말씀 하시고 또 그 어머니 좋아하는 찬송 저희들이 부르고 손뼉을 치며 막 기쁘다고 하시고 참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 여행은 뭔지 모르게 마음에 흐뭇함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또 오시려는지 몰라도 공순 언니가 혼자는 살기 싫고 또 몸 형편도 안 좋고 그래서 설 쇠고는 집 팔아버리고 남쪽으로 내려오시겠다고 광주로 오게 될지 남원으로 오게 될지 정하지는 않았어도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움직여 주셔서 내려오시도록 마음을 정했다고 하십디다. 도 순금언니가 바빠서 못 참석 했다고 내려가시는 길에 꼭 집에 좀 들려달라고 신신부탁을 해서 오면서 그저께 순금언니 집에 오전에 들려서 예배드리고 점심 거기서 얻어먹고 장로님 모시고 다니니까 대접은 많이 받았지요. (끊김)
감옥에 갇혀있는 사도바울이 쓰신 편지지요? 내가 12절입니다. 내가 여기 감옥에 갇혀서 고난을 당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구약 율법으로는 구원을 못 얻고 너희가 너희 손으로 십자가에 유대인들의 손에 달려 죽었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다. 그 복음을 전함으로서 지금 갇혀있다. 그 뜻 이지요? 내가 여기 감옥에 갇혀서 고난을 당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고난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믿고 의지하는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잘 알고 있으며 여기에서 또 우리가 조금 생각해 볼 말씀이지요. 내가 믿고 의지하는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잘 알고 있으며 그 인도에서 오신 다디 그 할머니가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만나본 적이 있습니까? 거기는 아버지라고 그러더만요. ‘바바, 바바, 바바지’라고 그래요. 우리로 말하면 하나님 아버지지요. 여러분들은 아버지를 만나 본 일이 있습니까? 아버지를 만나본 경험이 있는 위대한 스승님들을 모십시오. 그렇게 말씀 하셨어요. 그런데 그 음성이 할머니의 음성도 맑고 부드럽고 그 젊은 자매 음성도 우리나라 여자 아나운서 음성에다 비할 수가 없어요. 어떻게 그렇게 곱고 아름답고 맑고, 맑고, 아주 부드러운지 그냥 입에 딱 맞는 음식처럼 귀에 뜻은 참 못 알아 들어도 그렇게 말씀이 음성들이 부드럽습디다.
사도바울 선생님은 당신이 믿고 의지하는 그분 하나님 아버지 또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바로알고 있다. 잘 알고 있다. 잘 알고 있다. 그러면 내가 믿는 그분을 내가 잘 알고 있다. 그럼 어디 말씀이 떠오르는 말씀이 있지요? 어디 말씀이 연상 됩니까? 요한복음으로 가면? 요한복음에서 이 말씀과 연결되는 말씀이 많이 있지요? 그러나 요한복음 17장 3절 영생은 무엇인가? 무엇이 구원이라고요? 거기 답변이 나오지요? ‘유일하신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을 알고 또 그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그랬어요. 그럼 우리가 구원 얻기 위해서 예수 믿습니다. 오늘도 하늘나라 갈라고 구원 얻으려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이렇게 와서 예배드리는 것이지요. 그럼 백년간 수십 년간 날마다 예배를 드린다고 하더라도 아버지 모르면 구원과는 상관없습니다. 예배드린 사람이지, 구원 얻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지요. 아버지를 바로알고 그 다디 할머니처럼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나본 기억이 있습니까? 아버지를 압니까? 알아야 면장을 하지요? 만나봐야 알지요. 그 구원은 무엇인가? 영생은 무엇인가? 아버지 아는 것이다. 봐야 알지요. 알고 믿고, 믿고 알고, 그 아버지가 보내신 예수님을 바로 아는 것이 영생이고 구원이다. 아버지 만나본일 없고 예수님 만나본일 없으면 미완성이에요. 아직 그것은 구원이 못됩니다.
바로 알아야지요. 여기 사도바울 선생님은 ‘내가 믿고 의지하는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잘 알고 있으며’ 현대어 성경입니다. ‘또 그분이 내가 바친 모든 것을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안전하게 지켜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확신, 내가 바친 모든 것 사도바울 선생이 바친 모든 것 사도바울 선생이 바치신 모든 것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지켜주실 것을 확신 한다. 여기 이 말씀 가운데서 여기를 보는 가운데 사도바울 선생이 무엇을 바쳤겠느냐? 바친 모든 것 그랬으면 무엇을 바쳤겠냐? 제일 처음에 바친 것 무엇 바쳤을까? 내가 바친 모든 것을 그랬지요. 내가 바친 모든 것 무엇을 바쳤을까요? 무엇 바쳤다고 생각 됩니까? 제일 처음에 무엇을 바쳤을 까요? 또 예수님은 무엇을 바치기를 원하실까요? 누가 대답해 보십시다. 한사람만 말하는 것 좋은 것 아니니까 사도바울 선생이 무엇을 바쳤을까요? 첫째 사도바울 선생님이 무슨 괴수라 했어요? 예, 죄인 중에 괴수라 했어요. 그러면 그리 했는지 안했는지 몰라도 지금 우리 느낌에 죄인 중에 괴수라. 그 말은 죄가 제일 많이 있다. 그 말 아니에요. 그러면 제일 첫 번에 바친 것 중에 죄를 바쳤을 것 같아요. 죄, 사도바울 선생이 죄를 바쳤어. 첫째 그러면 사도바울 선생이 장가도 안가고 예수를 잘 믿었는데 어째 죄인일까? 무엇에 죄 되었을 까요? 왜 죄인 중에 괴수라고 했을 까요? 물론 그것이 죄지요? 그것이 죄에요.
요한복음 1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죄라고 하시는 건 하나라고 했어요. 지난번에도 제가 말한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보시는 죄는 무엇 하나라고 했지요. 불신, 예수를 안 믿는 거 예수를 안 믿는 것만 죄라고 봐요. 모든 죄의 가지는 안 믿는데서 생깁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않는 것이 죄의 뿌리에요. 하나님의 사랑을 안 믿고 율법만 죽어라고 지켰지요. 율법으로는 흠이 없다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죄인이에요. 아주 흠도 점도 없이 충성스럽게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 잡아 옥에 가두는데 가담을 했었지요? 그러면 그것이 죄에요 율법에 충성한 것이 죄에요. 그래서 죄인 중에 괴수가 되었어요. 율법에 철저히 충성했기 때문에 죄인 중에 괴수가 되었어요. 예수를 거역하는 역적이 된 것이지요. 그래서 그 불신 하나님을 몰라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을 몰랐기 때문에 죄인이 된 그 죄 먼저 바쳤겠지요? 그리고 여러 가지 구체적인 내용은 나와 있지 않지만 갈라디아서에 보면 성령의 열매와 그 마귀의 열매 다 나와 있지요? 여러 가지 죄를 바쳤다고 생각되어 집니다. 그리고 도 그 외에 무엇을 바쳤을까요? 몸을 바쳤지요. 전체를 바쳤지요. 그러면 시간 또 순결 모든 것 자기 하고 싶은 거 전부 자기 뜻 그 다 우리가 셀 수가 없지요? 전부를 바쳤지요? 나는 사는 것이나 죽는 것이나 다 하나님의 뜻이다.
자 여기서 우리 한번 생각해 봅시다. 3절입니다. 여기서 답변이 조금 나오겠습니다. 감사와 격려, 디모데여 나는 그대의 일로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밤낮으로 늘 그대를 생각하면서 풍성한 복을 내려 주시기를 나는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며 또 나의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 내 삶에 유일한 목적입니다. 우리가 다른 장로님한테서도 들은 말씀이지요? 3절 말씀, 사도바울 선생님의 삶의 목적이 무엇이라고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 사도바울 선생님의 삶의 목적이에요. 전부에요. 사나 죽으나 전부 삶의 목적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뿐이에요. 그래서 갇혀도 갇혀서 고난을 당하는 것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면 좋습니다. 배가 고파도 배가 불러도 멸시천대를 당해도 십자가에 못을 박혀 죽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이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일이라면 나는 기쁘다. 그것이지요. 그러니까 전부 바친 것이지요. 전부 바쳤어. 개역이나 공동번역으로는 내가 맡은 것 그렇게 되어있어요. 내가 맡은 것을 지켜 주실 것을 확신한다. 그런데 여기는 바친 것이다. 그랬습니다. 그분이 내가 바친 모든 것을 다시 오실 그날까지 안전하게 지켜주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조금만 더 생각해 볼 말씀은 하나님께서 나는 무엇을 바치기를 원하시겠는가? 그것을 우리가 이 시간에 조금 생각해 보십시다. 사도바울 선생님은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 몰라도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하셨으니까 죄를 많이 바치셨고 삶의 유일한 목적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자는 것이 목적이니까 전체를 바쳤겠지요? 모든 것 다 몸까지 생명까지 코에 붙은 생명까지 다 바쳤지요? 기쁨도 슬픔도 고통도 아픔도 병도 다 바쳤겠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무엇을 바치기를 지금 하나님은 원하시겠는가? 그것을 좀 생각해 보자는 것이에요. 나는 무엇을 바치기를 원하시겠습니까? 나는 내가,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바치기를 원하시겠어요? 지금 어디 몇 사람 대답해 보십시다. 저런 짜잔 한 소리를 한다. 그러지 마시고 나만 저만의 시간이 아니지 않습니까? 무엇을 바치기를 원하실까요? 죄를? 그렇지, 첫째는 죄를 바치기를 원하시겠지요? 그래요. 노래도 좋고 뭐 선물도 좋고 좋은 옷을 해드리는 것도 좋고 하지만 죄 죄를 바치기를 제일 원하세요. 십자가에 돌아가신 목적이 죄 갖고 오라고 십자가에 돌아가시지 않았어요? 의인을 위하여 십자가 지셨습니까?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 지셨지요? 우리가 죄를 먼저 가서 예수님께 바쳐요. 내 죄를 찾아서, 그러면 그 다음에 또 바칠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제는 다 갖다 바쳐야지요? 어렸을 때 지은 죄까지, 다 찾아서,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고 했어요. 이 선생님께서도 그냥 도레미타불 그러지 말고 죄를 낱낱이 찾아서 바쳐야 된다. 죄를 찾아내야 된다. 죄를 낱낱이 찾아서 바쳐요. 그러면 죄를 찾아서 바치면 은혜를 주시지요. 평화를 주시고,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아버지하고 화목이 이루어져서 아버지가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금방 알게 되어요. 아 무엇을 바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들의 모든 것을 다 바치게 되지요. 그러면 사도바울 선생님처럼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예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것은 죄를 찾아서 바치는 것인데 죄는 놔두고 아무리 다른 것 바쳐 봐도 예수님 기뻐하실까요? 죄 두고 다른 것 바치면 예수님 기뻐하실까요? 기뻐 안 하셔요. 죄를 다 깨끗이 내 속에 들어있는 모든 죄를 뿌리까지 파서 바쳐야 제일 기뻐하십니다. 그래 저도 생각해 봤어요. 나는 무엇을 바쳐야 할까? 진도에서 살적에 전답이 많아가지고 아주 피곤했어요. 다른 사람들을 나눠줘도 조금만 가지고 한다고 해도 피곤했어요. 새벽이면 그 마을에서 몇 분이 새벽예배에 새벽마다 오시거든요. 그래서 제가 종을 치는데 어떤 때는 교인들이 먼저 오면 종을 쳐요. 그러면 누웠다가 종소리 듣고 일어나서 성경 찬송 가지고 눈을 감고 눈이 안 떠지니까 피곤해서 문을 열고 나가면서 아이고 아버지 나 무엇 바칠 것 없소? 이 피곤이나 받으시오. 그러고 예배드리러 많이 다녔습니다.
그게 잘 바친 것인지 못 바친 것인지 몰라도 아이고 나 이 피곤이나 바칠 것 밖에 없소. 이 피곤이나 좀 받으시오. 욕심나게 일을 많이 하니까 피곤하지요. 욕심이지요. 내가 이렇게 피곤하게 일하고 살라고 동광원에 안 왔는데 이렇게 피곤하게 일을 하고 살게 되었을까? 전부를 바쳐야 될 줄 압니다. 첫째 저는 참 음란죄의 뿌리 되는 음란, 교만 거짓 또 탐식, 좋은 것 먹고 많이 먹으려고 하는 것 거짓 세어보니까 지금 다 또 잊어버려. 생각이 안 나네요. 노트에다 적어놨는데 열 가지도 넘어요. 내 속에 모든 죄악 말로 할 수가 없지요. 멸시천대 안 받고 영광 받으려고 하는 거 누가 나 잘한다고 하면 좋고 잘못한다 하면 싫고 모두 이런 거 세상적인 욕심 찌들어 있어요. 이것을 낱낱이 예수님께 바쳐야 되요. 사람에게 가지고 가서는 해결이 안 됩니다. 예수님께 바칠 때 예수님이 받으시고 은총으로 바꿔 주세요. 그래서 마음에 평화와 기쁨 감사가 넘치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지난번에 집에서 참 무엇을 여기를 읽어가는 가운데 내가 바친 모든 것 내가 바친 모든 것을 그날까지 지켜주실 것을 확신한다. 사도바울 선생님은 무엇을 바쳤을까? 나는 무엇을 바치는 것을 예수님이 기뻐하실까? 그런 생각을 하루아침 해봤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그때 그날 아침에 생각한 것을 같이 나눴습니다.
이 시간에 기억되는 한 가지 떠오르는 생각이 있는데 그 인도에 타고르라는 시인이 있으시지요? 성시인 이라고 하지요 인도에서 인도 나라는 어찌 되었는지 영성으로 높은 나라이지요? 높은 나라인데 석가님도 부처님이지요? 부처님도 인도에서 나신 분이고 유명한 간디 그런 성인 또 썬다싱 기독교인이지요? 썬다싱은 어찌되었든지 인도에서 큰 인물들이 많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타고르라는 시인의 라빈도라 타고르라는 시인의 시도 있지요? 그런데 그분의 말 가운데 이런 말씀이 있어요. 저지난번에 제가 한번 말씀 드린 것 같습니다. 그 짦은 시 인데요. ‘임은 나를 영원케 하셨으니 이것은 임의 기쁨이었습니다.’ 참, 그 시 좋아요. 아침에 제 자랑 같습니다만 아침에 새벽에 눈뜹니다. 여덟시에 자면 세시에 일어나고 아홉시에 자면 네 시에 일어나요. 일곱 시간을 언제나 한숨에 잡니다. 특별한 일만 없으면 저는 이 땅위에 잠자러 오고 밥 먹으러 온 것 같아요. 나이가 많아지면 밥맛이 떨어진다는데 지금 이렇게 백세가 되었는데도 밥맛이 여전해요. 그것도 은총인가 모르겠습니다. 일곱 시간을 한 시간에 자요. 일곱 시간을 한숨에 자고나면 몸도 가볍고 개운하게 일어나 지거든요. 그럼 막 눈떠지면 오늘도 살려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 유 선생님 말씀 가운데 오늘은 무엇이냐? 오 느- 을삽니다. 오늘도 살려주심을 감사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생명 얻는 회개를 주십시오. 그리고 임은 나를 영원케 하셨으니 이것은 임의 기쁨입니다. 그 시를 한번 외워요. 참 잊어버리지 않도록 외우지요. 임은 나를 영원케 하셨으니 이것은 임의 기쁨이었습니다. 영원한 생명 구원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구원이지요. 예수와 같이 죽고 예수와 같이 사는 거 그럼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에는 아직도 거리가 멀지요. 그러나 그 말씀이 좋아요. 그러면 임은 나를 영원케 하셨으니 나는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같이 살도록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시켜 주셨는데 이것은 누구의 기쁨이라고요? 내 기쁨이라기보다도 임의 기쁨이다. 임은 나를 영원케 하셨으니 이것은 임의 기쁨 이었습니다. 참 그 몇 번을 외우고 또 생각을 해도 가슴이 따뜻해져요. 그 시만 외우면 다시 말씀 드리는데 아침에 새벽에 눈이 떠지면 못할 때는 그때는 또 자요. 그때는 쓸데없는 꿈이 꿔져요. 우에 잠을 자지요. 게을러가지고 오늘도 살려주심을 감사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생명 얻는 회개를 주십시오. 영원한 생명이 항상 그리워요. 그리고는 임은 나를 영원케 하셨으니 이것은 임의 기쁨 이었습니다. 내가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 받는 것 아버지를 알아본다. 그 말이 되겠지요? 어린애기를 낳은 어머니들은 아실 거예요. 애기 낳아서 포동포동 커갈 때 엄마의 얼굴을 알아보고 엄마, 엄마 그러면 굉장히 행복할거 같아요.
엄마들이 그 시간이 행복 할 겁니다. 그래서 그 엄마소리 듣는 소리가 보통으로 들을 수가 없어요. 밤에 잠 못 자고 젖 줘야 되고 애기를 기르는 엄마들 말 들어보면 어디 애기를 떼어놓고 어디를 갔는데 다른 애기들 울음소리가 나도 자기애기 울음소리로 들린대요. 꼭 우리아기가 우는 것 같다. 그리고 젖이 이렇게 불어가지고 우리아기가 얼마나 젖이 먹고 싶을까? 그리고 젖을 문지르고 그러더구만요. 젖은 피가 아니에요. 피 엄마의 피에요. 붉은 피를 하얗게 만들어서 내주는 것이지요. 내 피를 빨리는 것이지요. 애기 낳는 것도 내 생명을 나눠주는 것이고 그래서 분신이지요. 분신, 내 몸의 한 지체에요. 자녀라는 건 그런데 내 피를 빨리고 안 빨아 먹는 것이 좋을까요? 애기가 아파가지고 젖을 안 먹으면 엄마가 걱정해요. 건강해 가지고 젖을 잘 빨아먹는 것이 엄마의 행복이지요. 그런데 그 애기가 몇 개월쯤 해서 엄마를 알아보고 엄마, 엄마 하면 얼마나 그 엄마가 기쁘고 행복할까? 그런데 우리가 아버지를 알아보고 참 아버지의 얼굴을 희미하게라도 알아보고 아버지, 아버지 그러고 부르면 그것이 아버지의 기쁨이라는 것이에요. 그것이 아버지의 기쁨이에요. 임은 나를 영원케 하셨으니 아버지를 알아보도록 영의 눈을 띄어주셔야 아버지를 알아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버지를 알아보고 아버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아버지 하면 아버지가 그렇게 기뻐하신다는 거예요. 라빈도라 타고르 시를 깨달은 신앙의 절정이지요. 신앙의 고백이지요. 그 시인의 그 타고르의 그 신앙을 제가 빌려서 신앙 고백을 제가 빌려서 감히 참 자격도 없지만 읊어보는 것이에요. ‘임은 나를 영원케 하셨으니 이것은 임의 기쁨 이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 받고 싶은 애절함 간절함입니다. 사실은 그것이 제 소원의 전부에요. 그래서 지금 제 교만한 마음이지요. 말씀을 들어도요. 생명에 관한 말씀 죽음과 삶에 대한 그런 말씀 아니고는 별로 귀에 들어오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번에 다디 할머니한테서도 여러분은 아버지를 만나본 기억이 있습니까? 참 마음에 와서 닿아요. 저 할머니는 아버지를 만난 체험을 갖은 지도자를 모시십시오. 이 귀한 시간에 하품을 하거나 졸면 낙오자가 됩니다. 말씀 그만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유일한 목적 사도바울 선생의 생에 유일한 목적이 기쁘게 해드리자는 것 그럼 타고르 그 시인은 그 생에 목적을 분명히 잡은 것이지요. 아버지를 알아보는 것이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 받는 것이 아버지의 최대의 기쁨이라는 것 감사합니다. 어서 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