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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17-21
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을 향해서 마귀를 이길 수 있는 최고의 전략을 알려주신 내용입니다.
우리는 주의 계시보다는 내 중심적인 욕심에 속아서 내 생각을 가지고 어둠과 악에게 이겨보려고 합니다. 이럴 경우 가장 쉽게 떠오르는 생각은 세상적인 힘으로 원수들과 악을 이겨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즉, 원수를 이기고 악을 이기려면 더 많은 돈과 권력이 필요하고, 또한 인기와 기선을 잡아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전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악에게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공의를 행하고 선을 베푸는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우리는 여기서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하는 주체는 각 개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즉,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권고와 명령은 각 성도를 위한 것이지 공동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공동체를 위해서는 공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경우는 악을 대하는 방법에 있어서 오늘 본문과 다릅니다. 누군가가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경우는 교회는 권징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개혁교회는 참 교회의 표징에 있어서 세 가지를 두었습니다.
첫째는, 오직 성경에 근거하여 참된 복음을 전하는가?
둘째는, 진실한 마음과 바른 신앙 고백 가운데 세례와 성찬을 집행하는가?
그리고 셋째는, 권징입니다. 권징은 주로 이단 세력에 대한 것이며, 그릇된 가르침을 의도적으로 퍼뜨리는 자를 향한 것입니다. 교회는 그릇된 이단 교훈에 대해 곧바로 권징함으로 이단 사상을 끊어내야 합니다.
이런 가정을 해 보기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신천지 신자들이 들어와서 교회에서 자리를 잡으려고 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몰래 들어온 신천지 사람들은 한 동안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교회 몰래 따로 만나 성경 공부를 하도록 할 것입니다. 이때 교회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경찰을 불러야 합니까? 변호사를 선임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방법으로 권징을 해서 출교시키면 됩니다. 그러면 주 하나님께서 거룩한 교회의 공적인 공포에 따라 반드시 역사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모든 이단 사설에 대해 신속하게 권징을 실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이단에 의해 갈가리 찢어져서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사실 주변 여러 곳에서 이단들에 의해 무너진 교회가 한 두 교회가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눈물로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행 20:29-30).
또한 어떤 사악한 사람이 공동체에 누룩의 죄를 퍼뜨릴 경우 역시 권징을 해야 합니다. 그러한 경우가 고린도전서 5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
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고전 5:1-3)
그러면서 바울은 권징을 해야 할 죄악들을 반복적으로 나열합니다. 권징의 대상이 되는 죄악들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도 더러운 죄악으로서 반드시 교회는 그러한 죄가 드러날 때 권징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세상이 보기에 부패한 집단으로 여겨지게 됩니다.
[
11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12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고전 5:11-12)
반드시 교회가 이러한 자들을 판단하라는 말씀입니다.
[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전 6:9-10)
여기서 보면 권징의 대상 중에 동성연애자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동성애를 죄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우리는 거룩한 교회가 아닌 거짓 교회입니다” 라고 선포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사기꾼과 비방하는 자도 들어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죄악이 드러날 경우 권징할 것을 명합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교회 분열을 일삼는 자들을 멀리하라고 당부합니다.
[
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18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롬 16:17-18)
여기서 “그들에게서 떠나라” 할 때 ‘떠나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에크클리노)인데, “얼굴을 돌리라. 멀리하라. 피하라. 차단하라. 막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교회를 분열시키는 자들을 향해 얼굴을 돌리라는 뜻입니다. 함께 대화하지 말며, 눈을 마주치지 말고, 가능한 멀리하라는 뜻입니다. 심지어 원어의 뜻에는 “shun” 또는 “stop”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즉, “차단하라, 막으라”는 뜻입니다. 이 뜻은 공동체의 입장에서는 출교를 뜻하며 개인적으로는 교제를 차단하고 그와의 관계를 끊으라는 뜻입니다.
이와 동일한 단어가 베드로전서 3장 11절에 쓰이고 있습니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즉, “악을 끊고, 악을 차단하고” 선을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한편, 교회가 권징을 행할 때는 반드시 마태복음 18장의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를 거룩하게 지키도록 하기 위한 가장 거룩한 수단이 오히려 교회 내에서 권력을 잡은 자들의 복수의 몽둥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마 18:15-17)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이라는 명목 하에 악한 자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하지 않기 바랍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보다 자신을 더 착하게 보이려는 사람은 사랑에 대해 철저하게 그릇된 인본주의 사고를 갖고 있든지, 혹은 자기 의를 쌓는 사람이든지, 혹은 영적으로 매우 교만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로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이며, 그렇게 순종하는 자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의 죄를 권징해야 하는 때는 죄가 노출된 때를 말합니다. 즉, 노출된 죄에 대해 치리하는 것이지, 그 사람의 모든 숨은 죄를 추궁해서 치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숨어서 짓는 죄악에 대해 한 동안 오래 참으십니다. 하나님은 주께서 참으시는 중에 그 사람이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만일 회개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죄악을 바다에 던짐 같이 멀리 던지시고 완전하게 잊으십니다. 하지만 끝까지 완고하게 죄를 지으며 되풀이 할 경우 하나님은 그 사람의 반복된 죄악을 들춰내십니다. 즉, 하나님은 각 개인과 공동체의 거룩함을 위해, 회개치 않고 죄를 고집하는 완고한 자들의 죄악을 마침내 온 세상에 노출시키는 것입니다. 이때 교회는 노출된 그 죄에 대해 신속하게 권징에 들어가야 교회의 거룩함과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보호하고 유지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어떤 사람의 악과 죄에 대해 다룰 때 성경은 이처럼 개인이 대하는 것과 공동체가 대하는 것을 다르게 알려줍니다. 그 이유는 공동체의 생명은 공의이고, 각 성도의 생명은 선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만일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고 공동체의 원수를 향해 선을 베푼다면 공동체의 지체들에게 큰 고통을 가져다 주면서 참된 친구들을 다 잃는 가장 어리석은 판단이 될 것입니다. 가령, 신천지 신자가 공동체 내에서 악을 행하고 있는데 열심히 선을 행한다면서 간까지 떼어서 도움을 준다면 이는 내가 속한 공동체를 멸망시키는 일에 협조한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공과 사를 제대로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튼 오늘 본문은 각 성도가 개인적으로 마귀를 이기는 비결을 알려줍니다. 그것은 반드시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믿음에 따른 성도의 삶을 12장에부터 다루기 시작합니다. 가장 먼저 바울은 성도들의 구체적인 현실 가운데 주의 뜻을 알아낼 수 있는 비결을 소개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1-2).
여기서 보면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 하는데, 그 첫째 조건은, 자신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의 그 많은 은혜와 능력이 우리 삶에 나타나는 비결은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더러움의 도구였으나 이제는 거룩한 하나님의 도구로 쓰여지길 바라며 우리의 몸을 주께 바치는 것입니다(롬 6:12-14). 이는 나의 인생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길 바라는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통해 내 자신을 하나님께 예배와 제사로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자신이 하나님께 바쳐질 때 하나님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면 우리의 삶은 자동으로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갖추어야 할 둘째 조건은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th/| avnakainw,sei tou/ noo.j)(테이 아타카이노세이 토우 누스)라고 해서 말씀에 의한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나의 지각, 즉 생각이 계속 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디도서 3장 5절은 같은 헬라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성경적인 사고 방식을 철저하게 갖게 될 때 그 성도는 매 현실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복음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신자의 뚜렷한 삶의 패턴 한 가지를 알려줍니다. 그것은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 실체인 악과 선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 부류는, 악한 사람에게 악으로 갚고, 선한 사람에게도 악으로 갚는 사람입니다.
누군가가 자기에게 악한 일을 하면, 수십 배의 악으로 갚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늘 원한과 앙심을 품고 사는 자들입니다. 남을 용서하는 것을 거절하고 반드시 보복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구약의 라멕과 같은 자들입니다. 그가 말합니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창 4:24).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전혀 없던 라멕은 화가 나는 일이 생기면 가인보다 훨씬 더 악한 죄를 짓겠다고 호언장담한 것입니다. 이러한 종류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준 대상에게까지 오히려 욕과 저주와 악으로 갚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이들을 악인이라 부릅니다. 악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배은망덕한 사람들입니다. 악으로 선을 갚는 사람들입니다. 양심이 화인 맞은 사람들입니다. 어두움의 자식들이요, 악에 속한 사람들이며, 사탄의 종들입니다.
둘째 부류는 악한 사람에게 악으로 갚고, 선한 사람에게는 선으로 갚는 사람입니다. 일반적으로 양심이 살아있고 부패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부류에 속합니다. 아마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두 번째 종류의 사람에 해당될 것입니다.
문제는 이 부류에 속한 사람들은, 악한 사람을 만날 때 반드시 악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악한 사람을 만나면 악으로 악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악을 행하면서 악한 사람이 됩니다. 주어진 양심으로 살아가되 하나님의 말씀 없이 오직 본성으로만 살아가는 일반 세상 사람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셋째 부류는 선한 사람에게 감사함으로 선을 갚고, 또한 나아가 자신에게 악을 행하는 자에게도 선으로 갚는 사람들입니다. 상대방은 나에게 해를 가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선으로 대하는 사람입니다. 즉, 선으로 악을 갚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선에 속하는 자들입니다.
이 부류에 속한 자들은 악을 7배, 그리고 더 나아가 7십 7배로 갚는 악인 라멕과는 정반대로 선으로 악을 일곱 번뿐만 아니라 칠십에 일흔 번이라도 계속 용서하며 선을 베푸는 자들입니다.
[
21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마 18:21-22)
주님의 이 명령을 온 마음을 다해 지키는 자들이 이 부류에 속한 자들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새 생명을 얻은 자들은 이미 신분적으로 셋째 부류로 변한 사람임을 선포합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빛의 자녀요, 그리스도께 속한 자로서 선에 속한 사람입니다.
“너희는 빛이요, 너희는 선한 백성이요,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진 성도라”(참조, 골1:12; 벧전 2:9; 고전 1:2).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세 째 부류의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곧, 선으로 선을 갚고 심지어 선으로 악을 갚도록 부름을 받은 자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한편, 사탄의 목적은 모든 사람을 첫째 부류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곧,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악으로 선을 갚고 악으로 악을 갚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사탄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악에게 속한 자들이 될 때 사탄의 졸개들이 되는 것입니다.
사탄이 보통 일반 사람을 자신의 졸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 과정을 보면, 사탄은 ‘악’이라는 영적 전염병을 계속 퍼뜨립니다. 그러면 어떻게 전염병을 퍼뜨립니까?
먼저 사탄은 악에 속한 자, 즉 첫째 부류에 속한 악인들을 시켜서 둘째 부류, 또는 심지어 셋째 부류에 속한 자들에게 악을 가하게 합니다. 그리고는 그 악을 당한 자의 마음을 유혹하여 또 다른 악을 행하게 합니다. 이 때 사탄의 졸개에게 악을 당한 사람이 사탄의 유혹에 빠져 악을 행하게 되면 그때 그는 악이라는 전염병에 오염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의 편에 서게 됩니다. 즉, 사탄의 또 다른 졸개가 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예로, 철수와 갑돌이라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철수가 갑돌이에 대해 거짓으로 비방했습니다. 갑돌이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갑돌이가 철수를 만나 화를 내며 욕을 했습니다. 이 일로 철수의 자존심이 상하여 미움과 원한이 생겼습니다. 어느 날, 철수는 갑돌이에게 큰 손해를 입힐 기회가 왔습니다. 그래서 보복을 했습니다. 그 후 철수와 갑돌이는 평생 원수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철수와 갑돌이 사이의 갈등 같지만 더 큰 문제는 철수와 갑돌이는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완악한 사람들이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철수와 갑돌이는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도 이제는 악을 행하는데 전문가들이 된 것입니다. 즉, 항상 비방하고 거짓말하는 사람이 되어 남을 흉보고 미워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은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탄에게 속아 넘어 가는 자들은 결국 사탄에게 속하여 악하여지고, 나중에는 라멕처럼 하나님을 무서워함도 없이 하나님을 조롱하며 한없는 악을 행하는 그런 습관적인 악인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사탄은 더욱 사람들을 악에 속하게 하여 자신의 종들로 만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속아 넘어오는 자들을 통하여 사회를 악으로 물들게 합니다. 이런 식으로 첫째 부류에 속한 자들이 사회에 창궐할 때 사회는 소돔과 고모라처럼 되는 것이며 나아가 선한 자들은 고통을 당하고 악한 자들이 권력을 잡고 자기들 맘대로 휘두르는 타락한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가 되면 하나님은 그들을 다 쓸어 버리거나 멸망시키심으로 죄악을 끊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사탄이 악이라는 전염병을 이 세상에 퍼뜨리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실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이 이 세상을 악으로 가득하게 만드는 것을 막기 위하여 세 가지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첫째는, 악인을 친히 죽이시는 것입니다. 생사 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악인을 죽이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을 죽이심으로 죄악의 확장을 끊으십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 중에 너무 심각한 죄를 짓는 자가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순결을 위하여 그를 죽이실 때가 있습니다. 신약의 예를 들면 사도행전 5장의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우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친히 악인을 죽이셔서 악을 끊으십니다.
둘째는, 사회 제도를 통하여 죄악을 끊으십니다. 사회적인 악을 막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법을 제정하셨습니다. 모세의 법은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갚는 원칙입니다. 그러나 이 법은 개인을 위한 법이 아니라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공의의 법입니다. 로마서 13장을 보면 사회의 악을 막기 위한 정부의 역할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3장 4절을 보면, 관원, 정부, 나라에게 하나님께서 칼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칼로 악을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은 칼과 총을 가지고 사회 속에 악이 퍼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합니다. 만일 칼을 가지고 있는 국가의 관원과 정부와 나라가 하나님께서 맡기신 그 일을 하지 못할 때는 공의를 이루어야 할 정부가 악인을 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한 양민을 죽이고, 악한 자들에게 포상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생길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회는 무법의 세계로 치닫고 악이 난무하며, 사회는 소돔과 고모라처럼 되어서, 폭력과 힘이 다스리는 악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나라가 되면 선한 자들이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사회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칼로 악을 다스리라고 세운 정부가 부패하지 않도록 기도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기도하는 자가 없다면 하나님께서는 아무 때라도 그 나라와 사회를 심판하여 쓸어버리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의 악을 차단하기 위한 셋째 방법은 믿는 자들 각자에게 주신 개인의 법입니다. 이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악을 차단하고 제거하는 방법입니다. 영적인 세계를 가장 잘 아시는 주님께서 악에게 승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알려 주셨는데, 그 방법은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17절)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9절)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21절)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17절, 19절, 21절은 전부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원어로 보면 “Never: (절대로)”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곧 “절대로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 복수하지 말라” 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선으로 악을 이기라 하실까요?
첫째, 19-20절을 보면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하실 일과 내가 할 일이 따로 있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하실 일을 내가 하는 것은 책임 영역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권한을 침범하는 무서운 죄를 짓는 것입니다. 본문은 보복하거나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합니다. 원수 갚는 일은 가장 공평하신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때에 주님의 방법으로 공의를 이루십니다.
만일 우리 자신이 직접 보복을 할 때는 하나님의 권한을 침범하는 것 일뿐만 아니라 사실 우리는 악에게 지는 것입니다. 나아가 보복을 하는 우리를 통하여 악이 끝없이 확장되게 되어 있습니다. 보복을 할 때는 잠깐 악을 갚으면서 쾌감을 느낄 수 있으나, 곧바로 불안에 빠지게 되며 더 나아가 악의 고리 사슬에 빠지게 됩니다. 그 후 우리는 하나님의 권한을 침범했기에 자신도 모르게 비참과 불행에 빠지더니 주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게 됩니다. 즉, 가장 소중한 것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 갚는 일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의 원수를 갚으실 때에야 참으로 공의로운 심판이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원수 앞에서 우리에게 상을 베푸실 것입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 23:5).
둘째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는 악으로 악을 이기고 싶어하는 욕구가 매우 강하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서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사탄은 악이라는 전염병을 사회나 공동체에 퍼뜨리기 위해 인간의 앙심을 가장 많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사탄의 이 전략을 자세히 아십니다. 즉, 악으로 악을 이기고 싶어하는 인간의 죄성을 이용하여 그들의 마음에 악을 전염시키고 죄를 짓게 함으로, 사회를 악으로 가득 차게 하는 것이 사탄의 책략임을 주께서 잘 아십니다. 따라서 우리 주님은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방법대로, 즉 선으로 악을 이길 때 그 자리에서 사탄의 어두운 계략은 빛에 의하여 탄로나고 사탄이 퍼뜨리려는 악의 전염병이 그 자리에서 끊어지게 됩니다. 악이 꼬리를 물고 퍼져야 하는데, 주님의 말씀대로 선으로 악을 대하는 자들에게 그 악의 고리가 끊어지고 더 이상 악이 전염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사탄이 패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악은 선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는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따라서 선으로 악을 대하는 자를 만나면 악은 그 자리에서 끊어집니다. 사탄이 도망갑니다. 그리고 악의 고리가 끊어지면서 선한 일들, 아름다운 일들이 회복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큰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선으로 악을 이기는 구체적인 실행을 위해 “악한 자가 네 오른 뺨을 치거든 왼편을 돌려대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38-48)고 명하신 것입니다. 이는 선으로 악을 이기게 하시는 주님의 구체적인 영적 작전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진리는 성경에 기록된 여러 사건 속에 잘 반영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윗을 봅시다. 다윗의 장인인 사울 왕은 악인입니다. 즉, 뭐든지 악으로 갚는 사람입니다. 반면, 다윗은 선에 속한 자로서 선으로 악을 갚는 사람입니다. 다윗에게는 여러 번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죽인다고 해서 아무도 뭐라고 말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미움에 빠져서 감정으로 처리하는 그러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기회가 날 때마다 매번 그 악한 사울에게 선을 행합니다. 그래서 악한 사울에게도 마침내 인정을 받게 됩니다. 사울이 말합니다.
“나는 악한 자이지만, 너는 선하며 나아가 반드시 하나님께 축복을 받을 자라.”(참조, 삼상 26:21, 25).
이는 다윗이 사울과의 영적인 전쟁에서 선으로 악을 이김으로 진정한 승리자가 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 (잠 20:22).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살전 5:15).
선으로 악을 이긴 또 다른 예는 스데반입니다. 스데반을 돌로 치는 사람들은 미움으로 사탄의 종이 된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가 되어 돌로 스데반을 쳐 죽이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기도합니다. 그들을 용서합니다. 그들을 사랑합니다. 선으로 악을 대합니다.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행 7:60).
만일 스데반이 악에게 졌다면 돌을 치는 자들을 향해 저주하였을 것입니다.
“이놈들. 이 저주 받을 놈들아. 지옥 불에나 들어가라.”
이렇게 저주하였다면 스데반은 영적으로 사탄에게 패배하는 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탄은 승리의 미소를 지었을 것입니다. 스데반이 악에게 졌다면 사도 바울의 회심도 불가능하였을 것이고, 스데반은 예수 그리스도의 엄청난 영광을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죽는 순간에 그는 미움과 저주로 인한 사탄의 종이 되었을 것입니다. 군중을 향한 증오와 미움에 속하면서 악에게 속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선으로 악을 이겼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악을 그 자리에서 차단하고 나아가 위대한 사도 바울의 회심을 불러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본인 스데반은 영원히 모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존귀한 이름을 얻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 공동체 내에서 미움과 다툼이 생기면 누가 제일 좋아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의 가정 불화를 누가 제일 좋아하겠습니까?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패배하면 마침내 불행하여지고 또한 비참하게 됩니다. 사탄은 미움이라는 악의 고리에 우리를 빠뜨려놓고는 제일 기뻐합니다. 우리는 누구를 즐겁게 하려고 미움과 질투와 앙심에 빠지는 것입니까?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질 때 우리만 비방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하신 우리 주님이 비방을 받는 것이요, 영광스러운 교회가 비방을 받는다는 사실을 왜 잊으십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전투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나아가 교회를 든든히 세우고, 개인적으로는 영적 승리의 기쁨과 축복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 승리를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은 그 방법을 상세하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17절을 보기 바랍니다.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고 합니다. 그 대신 정반대로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말합니다. 즉, 억울한 일, 악한 일을 당했을 때 도모하라는 뜻입니다. 악한 일을 당할 때 감정적인 반응을 하지 말고 선을 도모하라는 말씀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충동적이거나 감동적인 행동은 금물입니다. 그 대신 그리스도인들은 악한 일을 당하였을 때 잠시 뒤로 물러나 선을 도모해야 합니다. 성을 내거나 미움에 빠져서 보복을 하기보다는 가만히 앉아서 기도하고 생각하며 선한 계획을 짜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억울한 이 일을 당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실까를 생각하며 지혜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한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일단 시간이 걸리고 노력이 필요하며 간절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특히 본문에서 사용한 도모라는 용어 (프로노에오)는 군사 용어로서 작은 모형으로 실제 상황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전쟁 경험이 있는 자들이 모형을 만들어 가지고 치밀한 전쟁 작전을 짜는 그러한 의미입니다. 즉, 도모는 많은 정규적인 영적 훈련을 필요로 하는 단어입니다. 실제로 영적 전쟁에 있어서 작전을 잘못 짜면 지는 것입니다. 영적 싸움에는 항상 치밀한 계획과 기도와 점검이 필요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을 가만히 보십시오. 커다란 악은 결코 그냥 순간적으로 행하여지지 않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을 보면 얼마나 오랜 기간 악을 도모하는지 모릅니다.
특히 보복하는 사람들은 악한 일을 치밀하게 계획한 후에 수행합니다. 대부분의 살인이 철저한 계획 후에 진행됩니다. 미움에 빠지면 상대를 어떻게 하면 더 괴롭힐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작전을 계획하게 됩니다. 무서운 악 뒤에는 언제나 치밀한 궤휼이 있습니다. 사탄은 간계함과 궤휼의 전문가입니다. 성경은 악을 도모하는 사람을 악인이라고 부릅니다.
은행 강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악을 치르기 전에 얼마나 많은 도모를 하는지 압니까? 어린 아이를 유괴하는 악당은 몇 달 동안 어떤 어린 아이를 연구하고 그의 가정과 주변을 연구합니다. 또한 그 아이를 유괴할 경우 어떤 위험이 있으며 또한 얼마나 돈을 받아낼 수 있는지를 연구합니다. 치밀히 계산하고 또 생각하고 생각한 후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마찬가지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선으로 악을 이기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을 이룰 수 있을지를 계획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러한 도모 가운데 우리의 작전을 추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본문은 선으로 악을 이기기 위한 도모의 조건을 말합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의 도모 작전은 모든 사람이 볼 때에 선하다고 판단되는지 객관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수 있습니다. 즉, 안 믿는 사람들이 보아도, 심지어 악을 행한 그 사람이 보아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선한 작전을 도모해야 합니다.
부부 사이에서도 선을 도모해 보기 바랍니다. 억울한 일, 오해 등이 생길 때 주의 영광을 위해 도모하기 바랍니다. 공동체에서도 모든 사람 앞에서 언제나 선을 도모하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특히 영적 작전에 있어서 우리의 대장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최고의 영적 작전 지령을 내리십니다. 20절입니다. 그 작전은 원수의 필요를 채워 주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으로 악을 이기기 위해 반드시 적을 알아야 영적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데, 그들의 단점과 문제를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필요를 알아내는 것이 세상 군사 작전과 영적 작전의 다른 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이것이 선으로 악을 이기는 구체적인 영적 작전인 것입니다. 우수개 소리지만, 미운 놈 떡 한 개 더 주라는 속담은 선으로 악을 이기는 작전에 속할 수 있습니다.
제가 대전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 그 직장 내의 어떤 자매가 또 다른 자매와 매우 불편한 관계에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희 집에서 성경 연구를 마치고 그 자매가 기도 제목으로 다른 자매와의 미움과 갈등을 내놓았습니다. 그 자매 때문에 아침에 출근할 때부터 기분이 나빠서 하루 종일 힘들고 또한 이렇게 힘든 것이 벌써 6개월이 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기도하며 지혜를 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선을 도모했습니다. 그때 도모한 선은 진정으로 상대 자매와 주 안에서 사랑하며 잘 지내고 싶다는 것과, 이유가 무엇이든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용서하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편지를 진실로 쓰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 자매가 좋아할 만한 값진 선물을 준비하여 크리스마스 및 년 말 연시를 기념하여 우편으로 선물과 편지를 보내게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이 일을 하기를 머뭇거렸지만 선을 도모해야 한다는 말씀을 붙들고 기도한 후, 그 다음 날 도모한 그대로 실천하였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된 줄 아십니까? 선물을 받은 상대 자매 역시 연말년시가 지나기 전에 감사의 편지와 선물을 보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해부터는 서로 인사도 하며 사이 좋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두 자매의 직장 생활은 즐거운 삶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능력이 바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복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에게 원수가 생기면, 선으로 악을 이기기 위하여 ‘어떻게 하면, 저 원수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을까?’를 연구하고 조사하고 알아봐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그 원수가 분명히 도움이 필요할 때가 옵니다. 그때 돕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에게 이기고 주님의 편에 서기 원한다면 원수를 돕기 위하여 원수를 항상 연구하고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 자존심과 성질은 이러한 승리의 영적 작전을 못마땅하게 여길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자신을 죽이고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좌우에 날 선 검으로 사탄의 정곡을 찌르고 물리치게 되면서 복음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행하지 않고 내 성질대로 행한다면 악에게 져서 물고 먹으면서 피차 멸망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을 것입니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 5:15).
둘째는 주님께서 바울을 통해 다시 말씀하십니다.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절)
바울 당시에 숯불은 전쟁 용어였습니다. 전쟁 중에 기대치 않은 공격을 받는 것이 숯불입니다. 적군이 아군의 전쟁 작전을 모르고 성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중간 정도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숯불이 떨어집니다. 적군은 혼비백산하여 완전히 패배합니다. 즉, 숯불은 적군이 전혀 알지 못하는 아군의 군사 작전을 의미합니다.
영원히 사탄이 깨달을 수 없는 영적 전쟁의 최고 작전이 있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아시는 영적 비밀 작전이 있습니다. 그 비밀 작전은 선으로 악을 이기는 비밀이요, 원수에게까지 선을 베푸는 작전이 바로 예수님의 영적 승리의 최고 지령 작전입니다. 이 작전 속에서 사탄에게 잡혀 있던 자들이 선으로 악을 이기는 자에게 포로로 사로 잡혀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뜻이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악에 속한 자가 선에 속한 자를 만나서 부끄러움을 당하고 패배하게 될 때 회개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이때 선에 속한 자는 영적 승리를 얻을 뿐만 아니라 한 영혼을 악에서부터 선으로 구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영적 승리의 기쁨입니다. 그 기쁨은 그 어떤 승리보다 가장 값진 승리의 기쁨입니다. 이 기쁨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최고의 승리의 기쁨인 것입니다.
결론을 내립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역사와 우주에 있어서 선으로 악을 패배시킨 최고의 승리 사건입니다. 가장 무서운 미움으로 다가오는 사탄의 공격을, 그래서 악으로 예수님께 승리하길 원했던 사탄에게 우리 주님은 악으로 악을 갚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죽이는 저들을 위해 용서와 복을 빌므로, 선으로 악을 영원히 패배시킨 위대한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가 작전입니다. 또한 십자가를 통한 우리 주님의 부활은 오직 진정한 승리는 오직 선에 속할 때만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입니다.
십자가는 선으로 악을 이긴 사건이요, 사랑으로 미움을 이긴 사건입니다. 십자가 사건은 영원토록 사탄이 깨닫지 못한 영적인 작전으로서 하나님이 십자가로 사탄을 완전히 패배시키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영을 따라 언제나 십자가 사건처럼 선으로 악을 이기기 바랍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 정녕 마귀와 악의 세력에게 이기는 최고의 비결이요, 십자가의 핵심 정신인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결코 악에게 져서 악에 속한 비참한 인생들이 되지 마시고, 반드시 선으로 악을 이김으로 날마다 영적 전쟁에 승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에 이르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