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 고구마
내가 심어 수확한 고구마에 붙힌 이름이다.
한여름 고구마를 심어보자는 아이들의 성화에 고구마를 심었지만 잘 될 거라는 보장도 없었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막상 수확을 해보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고구마의 크기가 내 머리통을 상회하는 엄청나게 무시무시해 수확하는데도 무지 힘이 들었다.
보통은 고구마 넝쿨을 걷어내고 호미로 고구마를 캐는데 고구마의 크기가 장난이 아니라 호미로는 감당이 안 돼 고구마 주위를 괭이나 곡괭이로 판 다음 흔들어 힘들게 캐야 하니 분명 장난이 아니고 고역이다.
시중에서 파는 고구마는 색깔과 모양이 선명하고 가름한 데 비해 우리 집 고구마는 장군의 근육처럼 도드라진 힘줄이 쫙 버티고 있어 내가 지은 이름이 장군 고구마다.
어릴 적부터 고구마 캐기를 한 두 번 해본 것이 아닌지라 고구마의 크기를 대충 짐작할 수 있는데 한 번도 상상할 수 없는 고구마의 크기에 완전히 압도당해 어리둥절하다.
집에 가져온 고구마를 삶는데도 문제가 심각하다.
이것을 담아 삶을 그릇은 당연히 없고 만약 이것을 통째로 삶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냄비에 넣고 불을 지핀다고 익을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그래서 네 조각 내지 여덟 조각으로 나누어 삶아야 하는데 이 거대한 장군 고구마를 조각내는데도 쉽게 칼로 자를 수 없어 망치와 칼을 사용하여 분리해야 하는 고충이 따른다.
커다란 찜솥에 겨우 하나를 넣어 삶아 먹어보니 맛은 정말 기가 찰 정도로 맛이 좋다.
삶은 고구마는 두 사람이 한꺼번에 절대로 먹을 수 없고 최소한 3일 동안 쉼 없이 먹어야 겨우 하나를 먹어 치울 수 있다.
수확해 온 고구마를 두 사람이 먹기에는 너무 양이 많다.
도시의 아파트에 많은 양의 고구마를 보관할 장소도 없을뿐더러 놓아두고 다 먹을 자신도 없어 아는 지인 6분에게 나누어주고도 아직도 많다.
너무 크고 많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식욕감퇴의 효과가 나타나 고구마를 삶아 먹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일단 삶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아내 혼자서는 전혀 손을 쓸 수가 없다.
그러니 당연히 내가 나서서 칼과 망치로 조각을 내어 줘야 하는데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아 둘이 앉으며 그걸 어떡하냐며 걱정하는 걱정거리로 전락했다.
한편으로 농부가 농사를 짓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풍성한 수확을 얻었을 때 그 기쁨 때문에 힘이 들지만 부지런하게 농사를 짓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농산물시장에서 5kg 한 상자 사다 먹을 때는 참 빨리도 없어지더니 머리통만 한 고구마를 작은 방구석에 한가득 채워두고 보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저걸 언제까지 다 먹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 고구마 자체가 싫어진다.
여러 개를 삶아 자신의 취향에 맞는 크기를 먹을 때 즐겁지 씻어 자르고 해봐야 오직 한 개만 찜통에 들어갈 수 있는 분량이니 쉬이 줄어들지도 않아 완전히 매력을 잃어버렸다.
수확한 고구마를 다 가져올 수 없어 아직도 시골 형님네 창고에는 남겨둔 고구마가 있다.
빨리 가져가라고 전갈이 왔지만 가지러 가고 싶은 마음이 도통 나지 않는다.
집에 있는 고구마를 언제까지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거니와 아는 지인도 거의 없어 나눌 수도 없고 그렇다고 버릴 수는 더더욱 없으니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아이들도 말한다.
내년부터는 절대로 고구마 심지 말자며 다짐을 한다.
우린 풍년이 항상 좋은 거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장군 고구마를 보면서 절대로 좋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흔히 말해 적당한 것이 좋은 것이다.
무엇이든 적당할 때 맛이 있고 가치가 급상승하지만 많아 처치가 곤란해지면 값어치는 폭락하는 이치를 증명하고 있으니 웃음이 난다.
만약에 빈터에 모두 고구마를 심었다면 어찌 될 뻔했냐며 서로를 보고 웃었지만, 천만다행이라고 위로하는 그 순간이 그래도 행복했다는 이야기다.
고구마 하나를 삶아 3일을 먹어야 하는 장군 고구마를 어떡하면 좋을지 요즘 참 시답지 않게 걱정이 앞서고 있으니 우습기도 하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고구마 좀 드릴까 하면서 덧붙이는 말이 시중에 파는 크기와는 견줄 수 없으니 흉보지 않겠다고 약속을 꼭 부탁드린다.
이게 무슨 고구마냐며 흉을 볼 것 같은 장군 고구마는 올해에 내가 손수 심고 키운 대단한 고구마임은 틀림이 없다.
궁금하지 않으세요?
장군 고구마 하지만 맛만큼은 어디에 내놓아도 훌륭하다.
걱정은 되지만 내 인생 70 평생 최대 크기의 역작임은 틀림이 없다.
장군 고구마의 위력은 대단하다.
손주녀석들한테 내년에도 고구마를 심자고 하면 절대로 안한다고 난리를 친다.
여러 가지로 위력이 대한 우리집 장군 고구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