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창조
성경 말씀: 창세기 1:1-8; 요한복음 1:1-18
요약
성경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서사합니다. 단순히 신이 세상을 창조하였다고 하면, 창조한 신의 권능을 사람이 상상하니 신화적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하면 하나님의 권능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부각되게 됩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라보아집니다. 성경에서 보는 창조 기술은 단계적입니다. 매 단계마다 그 부분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신 것을 보입니다. 즉 창조의 매 단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이루어집니다.
말씀으로 창조
성경 맨 처음에 나오는 창조의 기술은 언약의 시각으로 보아야 합니다. 언약의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합니다. 창조 기술은 하나님, 말씀, 그리고 세상이 엮여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하나님과 세상의 직설적인 내용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창조된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매개됩니다.
성경의 창조 기술은 일반적인 창조 신화 가운데 하나로 접근되지 말아야합니다. 혹은 지금 성행하는 일종의 과학적인 이론으로 여겨지지 말아야합니다. 우선 거기에 등장하는 하나님은 신화적인 신이 아닙니다. 신화적인 신은 막강한 힘을 구사하지만 말을 쓰지 않습니다. 신화의 신은 사람의 초자연적 힘의 상상으로 도입됩니다.
성경의 창조 기술이 보이는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언약의 기본 설정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이루어짐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짐은 하나님의 말씀의 우선성을 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우선성은 하나님의 약속에서 분명합니다. 창조의 기술도 그분 말씀의 우선성을 보임으로 언약의 내용으로 보아집니다. 창조도 하나님의 말씀의 이루어짐입니다.
창조 기술은 말씀의 하나님을 먼저 보입니다. 직접적으로 세상의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다루어지는 창조는 그냥 처음 생긴 것에 대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에 대해서입니다.
현대 과학이론은 세상에 사는 사람들에게 들려집니다. 창조이론은 그들이 사는 세상이 어떻게 생성되게 되었는지 설명합니다. 빅뱅이론이 그런 것입니다. 창조는 일어나는 현상으로 인과관계를 따라 설명됩니다. 원인과 결과가 구체적으로 엮임으로 설명이 됩니다.
그런데 성경의 창조 기술은 인과관계로 엮어지지 않습니다. 창조의 단계는 매번 말씀의 이루어짐으로 보입니다. 창조되는 것은 이전에 창조된 것으로부터 인과관계로 파생되지 않습니다. 매번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루십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현상과 현상을 엮어가는 것이 인과관계의 설명입니다. 그런데 매 현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이면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과관계로 엮어지는 것을 가로막습니다. 이렇게 창조 기술은 모든 현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아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으로부터 그분 백성에게 주어집니다. 사람의 말은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통용됩니다. 그 말로 세상에 사는 일을 기술하고 설명합니다.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는 말은 사람들이 세상의 변화를 따라 익힌 현상에 근거한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분 백성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언약의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이 창조되었다고 할 때 창조된 세상은 언약의 세상입니다. 언약의 세상은 언약의 백성에게 보이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창조 기술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닌 언약의 백성이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 시각을 갖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세상을 보게 합니다. 창조된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삶의 근거지입니다. 즉 창조로 볼 때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삶의 터전입니다.
창조의 지혜
창조 기술은 그 자체로 언약의 기술입니다. 성경이라는 총체적인 언약의 말에 내포됩니다. 서사, 율법, 지혜, 예언, 시편과 같이 창조 기술도 일종의 언약의 말입니다. 그러므로 창조 기술을 지금의 과학이론 같이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것은 언약이라는 틀에서 보아지지 과학이라는 틀에서 보아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의 기술은 다른 언약의 말과 같이 아울러 뜻이 묵상되어야 합니다. 신화나 과학으로 접근하는 것은 성경이라는 언약의 맥락을 벗어납니다. 성경에서 창조 기술이지 세상에서 창조 기술이 아닙니다. 창조 기술은 세상으로 읽어지지 않습니다. 창조 기술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접해집니다. 사실로 접해지지 않습니다. 즉 성경은 우선 말로 접해지지 사실로 접해지지 않습니다. 성경 구절을 읽으면서 사실을 머리에 그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사실인가 아닌가 하는 관점으로 접근되지 말아야 합니다.
창조의 기술도 말로 접해야지 사실로 접하지 말아야 합니다. 창조 기술은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접해져야 합니다. 즉 사실성에 구애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의식되어야 합니다. 사실이 아닌 사람의 말은 거짓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엔 그렇게 말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약속으로 이루어집니다. 세상에 있거나 있을 수 있는 것을 표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창조 기술도 잠언이나 시편 같이 우선 기술된 말로 접해져야 합니다. 그러면서 창조 말씀이 지닌 뜻이 묵상되어야 합니다. 출애굽이나 열왕기의 서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일어난 사실로부터 성경의 말이 생성되었다고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근거한 말이지 세상에 근거한 말이 아닙니다. 사람이 말에 대해선, 누구의 말이든, 그 뜻이 세상을 근거로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선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이 진행되는 대로 사람의 말은 참과 거짓이 가려지면서 정리되어집니다. 거짓인 말은 도태되어 더 이상 들려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발설된 것 자체로만 기억됩니다. 세상을 사는 사람은 변하는 세상에 적용되지 않은 말은 의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직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불변이거나 명시적으로 고정된다고 주장되지 않습니다.
창조 기술도 우선 사실성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는 것은 사실성을 따른 사람의 말을 읽는 것과 다릅니다. 그런 점에서 창조 기술도 과학이나 신화로 읽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도큐먼트 같은 영상으로 읽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창조 기술은 출애굽 서사와는 다른 하나님과 함께에 대해 들려줍니다. 즉 창조라는 시각으로 하나님께서 언약의 백성과 함께하심을 보여줍니다. 창조 기술로 바라보는 세상은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세상 삶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언약의 창조
하나님의 말씀의 터전은 언약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언약의 삶은 펼쳐집니다. 그러므로 창조 기술도 언약의 삶에 자리 잡아 뜻이 드러납니다. 세상은 창조된 뜻으로 언약의 삶에 의식됩니다. 그리고 그 뜻이 드러남으로 언약의 삶은 펼쳐집니다.
창조 기술은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의 기반에서 나오지 않음을 분명하게 합니다. 세상에 의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세상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창조됩니다. 언약에서 세상은 창조된 세상입니다. 자연적인 세상이 아닙니다.
창조 기술 자체는 말입니다. 그 말은 창조된 언약의 세상을 보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말은 세상에 있는 것으로 나온 존재론적 말입니다. 세상 사람은 세상에 있는 것을 의식하며 말로 그것을 표현합니다. 그렇지만 언약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세상을 봅니다. 창조 기술은 이것을 들려줍니다.
세상에 있는 것으로 세상 삶이 형성되니 있는 조건에 따라 삶이 갈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으로 언약의 삶은 있는 조건에 따라 갈라지지 않습니다. 세상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약의 말은 세상에 있는 것으로 그 타당성이 판단될 수 없습니다.
언약의 말은 세상을 이루니 세상으로부터 조건적이지 않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조건적이지 않음으로 파급적입니다. 파급적인 면을 창조 기술은 잘 보입니다. 우선 언약의 하나님은 지역적인 수호신이 아닌 창조주이십니다. 창조 기술은 이 점을 확언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다룸으로 언약의 말은 세상에 부분적이지 않습니다. 온 세상은 창조 기술로 언약의 말에 내포됩니다. 그러므로 언약의 말은 세상에서 지역적인 삶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언약의 삶은 온 세상에 파급됩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삶은 어느 지역에서든 지혜롭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과 가나안 땅으로 설정된 옛 언약의 삶은 지역성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은 종족적이고 가나안 땅은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을 포함하더라도 옛 언약은 지역적인 이동만 보입니다. 그러므로 창조 기술을 내포하지 않으면 구약은 지역성에 갇히게 됩니다.
나라가 망한 후 이스라엘 백성이 종살이로 끌려가 이방 지역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 경우 단지 가나안 지역성에 머문 언약의 말로 살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지닌 언약의 말은 온 세상을 포괄하여야 합니다. 즉 자신들이 지닌 언약의 내용은 어느 지역에서든 타당성을 보여야 합니다.
언약의 하나님이 온 세상을 창조한 분이시면, 언약의 백성은 그분의 언약의 말씀으로 어디서든 살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언약의 하나님이 창조주시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언약의 하나님이 창조주시라는 고백은 언약의 말로 구체적으로 기술됩니다. 이것이 창조 기술입니다.
언약의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으로 고백됩니다. 이 고백은 신약에서 언약의 하나님이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고백에 비추어집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 점에서 구약은 신약으로부터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은 구약으로부터 읽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사는 세상은 아버지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신 세상입니다.
아버지의 말씀으로 창조된 세상임으로
아버지의 말씀으로 살게 됩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창조된 세상을 사는 지혜입니다.
저희 생각이 아닌 아버지의 말씀으로 세상을 살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이 저희 세상 삶을 인도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