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입장이었다
무대의 불이 켜지고 조용한 상태에서 양쪽 문으로 일제히 오케단원들이 악기를 들고 등장
그리고 악장이 등장해서 튜닝을 하고나면
이제 지휘자가 등장
난 이런 시작이 좋다
미리 오케단원들이 무대에 착석하여 이런저런 소리로 연습을 하다가 어물쩡끝내고 공연시작~ 하는 것 보다
뭔가 일사불란한 등장과 시작이 공연의 몰입을 높여준다
루체른 심포니의 등장은 바로 내가 좋아하는 등장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지휘였다
지휘자 잔데를링은 첫곡 폴로네이즈를 뜸 안들이고 바로 시작한다
온몸을 쓰되 잔망스러운 몸짓, 손짓 하나없이 포디엄을 꽉 채우고
오케단원을 손아귀에 다 움켜잡은 양 멱살잡고 끌고가듯 완벽한 리드의 지휘다
바로 내가 좋아하는 지휘였다
차이콥스키 <예브게니 오네긴> 중 폴로네이즈
금관부터 빵빵터지는 시작은 튜닝할 때 부터 그 소리가 짐작되더니 여지없다
오늘 금관은 후방을 확실히 받쳐주었다
그러더니 꿈틀거리는 고음현소리에 귀가 살짝 놀랐다
오케의 중심인 고음현 소리가 리치하면서 역동적인데
독일악단 + 프랑스 악단의 장점을 합쳐놓은 소리다
그리고 막강한 배경음 저음현을 더하고
박자와 음량을 동시에 쥐락펴락하는 잔데를링의 손 안에서
폴로네이즈는 춤곡이상의 효과를 내었다 관객도 같이 날아오르는 느낌
더없이 좋은 오프닝곡이었고 루체른 심포니의 소리가 어떤지를 단박에 알게 해 주었다
엘가 첼로 협주곡
저 깊은 단전부터 긁어모아 토해내는 듯한 비통함으로 시작
아주 조심스럼게 서서히 함부로 하지않고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뱉어내는 첼로 현의 슬픔이
무대 위로 서서히 솟아올라 2층 객석의 내 눈물과 만났다
엘가 첼협의 도입부를 연주하는 한재민의 정서는 그저 비통함이 아닌
그 모든 비극의 과정을 목격한 관찰자의 증언같았다
슬프고 아프되 그렇다고 함부로 소리도 못지르는 억압된 비애를
현에 꾹꾹 눌러담아 산화시켜준다
독주자와 오케의 합이 무척 어려운 고난도 스케일과 박자 콘트롤이
잔데를링의 손끝에서는 꿈틀거리는 생물인 듯
첼로의 심오한 밑바닥 추락을 지켜주다가 다시 텐션강한 고무줄을 끌어올리 듯
잡아끌어 제자리에 오케와 함께 전열시키는 그의 박자와 음량의 리드는
기가 막히게 자동적이고 직관적이며 그래서 관객에게는 반사되듯 흡수된다
한재민의 엘가 첼협이 진보했다
음원에서보다 훨씬 감각적이고 성숙해진 해석이 느껴진다
오늘은 빨간 양말도 안신었다
정복에 보우타이를 한 한재민 첼리스트는 표정도 깊이감이 더해지고
연주 후 각 수석과 악수를 건네는 모습에서는 대가의 스멜이 난다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이토록 뜨거운 시벨리우스 교향곡이라니...................
여태까지 내가 들었던 시밸리우스 교향곡 2번이 차디찬 북구의 에너지 폭발이었다면
오늘 루체른 심포니의 시벨리우스는 남국의 에로티시즘 가득한 열정적이고 뜨거운 시벨리우스였다
1악장부터 잔데를링의 확실한 강박 약박 빠른박 느린박의 요리와
크레센도 디크레센도의 줄다리기가 너무 극명해서 이런 1악장을 듣게 될 줄이야
그동안 들었던 1악장이 해동한 물고기였다면 오늘 들은 1악장은 그야말로 생물이다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1악장부터 몸이 꿈틀대고 뜨거워질 수 있다니.....
그러다 2악장은 저음현의 낮은 피치카토 위에 존재를 드러내는 바순
무슨 바순소리가 이럲게 주장이 확실하고 귀에 바로 스며드는가
2악장 내내 목관, 금관이 받쳐주고 현악 합주가 가세할 때마다 느껴지는
명과 암, 북구와 남국, 차디찬 이성과 끓어오르는 열정의 대비가
지휘자 잔데를링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준다
그는 수륙양용, 카멜레온이구나
3악장 스케르쪼의 스피디한 용쟁호투는 이제 예견이 될 정도였다
잔데를링이라면 박자를 확실히 뺐다가 확실히 이완시키겠구나 였는데
역시 기대이상의 숨막히는 3악장이 전개된다
스피디한 고음현, 저음현의 대립각이 진행되는 와중에
솟아오르는 오보에의 서정적인 선율을 들을 때쯤 되면 이제
나 역시 무대 위 한켠에 올라앉은 듯 하다
대체 루체른 심포니 오보이스트는 무엇을 먹기에 이런 소리를 내는가
내 바로 앞에서 들려주는 소리인 듯 명징하고 단단한 사운드에 제대로 홀릭하고있는데
아 리치한 현악합주로 청각을 완전히 덮는 주제선율에 또 울컥 모먼트가 작동한다
4악장으로 넘어가는 그 숭고하리만큼 아름답고 장엄한 총주에서는
가슴을 활짝 열고 세상을 안고싶은 심정이 들었다
이제 다시 더 빵빵해진 금관을 뒷배삼고 영리하고 도전적인 목관을 앞세우고
고음현, 저음현이 양날개가 되어 진군하니
피날레는 승리의 합창이었다
정말 놀라운 잔데를링의 지휘를 목도하게 된 것은
음계와 박자가 다른 오케의 두 파트를 전혀 이질감없이 각 파트의 목적지로 이끄는 솜씨에
그리고 작곡가가 의도한 이상의 효과를 실현해내는 그의 능력이었다
상반기에 들었던 유럽악단 쾰른, 모짜르테움, 뮌헨 중
오늘 루체른 심포니의 소리가 가장 가슴에 와닿았다
그건 지휘자가 잔데를링이었기 때문일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