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덕산(萬德山)은 만가지 덕(德)을 쌓아 만인에게 덕을 베푸는 산이다.
복(福)이 받는 것이라면 덕(德)은 베푸는 것이 마땅.
만덕산이라는 이름은 완주, 강진, 진안, 담양 등 유독 호남에 많이 보인다.
국수봉(國守峰 558.6)에도 여러 이름이 있다.
나라를 지킨다는 국수봉(國守峰)이 제일 많지만 언양에 있는 국수봉은 특이하게도 원수 수(讐)자를 쓴다.
모든 산이 임금이 있는 경주를 배알하듯 하는데, 국수봉만이 돌아보고 있어 괘심죄에 걸린 것.
호남정맥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월봉산(月峰山 453.5)도 전국에 걸쳐있는 흔한 이름 중의 하나.
봉우리에 달이 걸렸으니 그보다 운치있는 이름도 없을 듯하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월봉산 아래 유천리는 월봉(月峰) 고전천(高傳川)의 후손들이 근 400년을 세거해 온 고장이다.
월봉은 학봉(鶴峰) 고인후(高因厚)의 아들이고, 학봉은 의병장인 제봉(齊峯) 고경명(高敬命 1533~1592)선생의 아들이다.
월봉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임란 때 금산전투에서 함께 순절한 충신 가문이다.
그래서 따온 이름이 월봉산인가 되짚어 보았지만 닭이 먼전가, 계란이 먼전가 알길이 없었다.
수양산(首陽山)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주(周)나라 무왕이 은(殷)나라를 치려는 것을 말리다 듣지 않자 주나라 곡식 먹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고 살다 죽은 산이다.
황해도 해주 고죽국 수양산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러한 산이 담양에도 있으니 동명이산(同名離山)인 셈.
들머리가 있는 문학리는 옥천사가 글읽기 좋다하여 유생들이 모여들어 인재가 많이 배출되자 문학리(文學里)라고 부르게 되었다.
문재고개는 6.25 당시 광주 경찰서장이 빨치산에 의해 죽임을 당했던 곳.
두 산군을 가르는 897번 지방도의 입석리(立石里) ‘선돌고개’는 입석의 순 우리말 지명이다.
호남정맥은 진안 조약봉(주화산)에서 호남 내륙을 관통, 광양 백운산과 망덕산을 거쳐 광양만 외망포구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470 km의 산줄기.
거치는 산은 내장산, 추월산, 강천산, 무등산, 제암산, 조계산, 백운산 등 이름있는 산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코스: 문재~삼각점(267)~만덕산~전망바위~임도~수양산갈림~수양산(U턴)~ 선돌고개~국수봉~호남정맥갈림~월봉산~월동제~월봉마을쉼터(5시간)
<클릭하면 원본크기>
13km가 조금 넘는 길을 5시간 정도 걸은 셈.
고도표
<산길샘 앱>
'대덕면문학리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문학제 방향 250여m 문재(고도 약 200m)에 버스가 댔다. <담양군 대덕면 문학리 산92-1>
<클릭하면 원본크기> 방향을 무시한 안내판을 일별하고...
만덕산 안내를 확대하였다.
가파른 나무계단 오름이 끝나면...
이정표(만덕산 2km)가 세워져 있다.
밋밋한 등로에 이 무슨 시추에이션!
삼각점(267m)이 있는 지점이다.
산길은 잘 다듬어져 있지만...
난잡한 부착물들이 자연을 더럽히고 있다.
뜬금없는 산상 운동기구 또한 마찬가지. 지금이라도 당장 동네 마을어귀에다 이전해야만 할 것.
등로 우측으로 돌출된 바위 전망대에선...
우측 897번 지방도 건너 우리가 말발굽으로 돌아올 국수봉과 월봉산이 뻗어내리고 있다. 그 뒤로 불끈 솟은 산은 광주의 무등산국립공원.
가까이 우리가 타고 내릴 능선을 당겨보고, 너울거리는 호남정맥을 따라 뭉툭 솟은 무등산도 살펴본다.
월봉산 낮은 산자락이 내려앉은 들판과 마을은 유천리.
벤치가 있는 갈림길은 이제 호남정맥에 접속했다는 것. 엎어지면 코닿을 곳에 만덕산이 있어...
다가가니 정사각기둥 형식의 오석이 세워져 있다.
한 면에 '만덕산 할미봉'이라 새겨져 있고...
다른 면엔 '대덕면'이, 표석 아래의 밭침석 네 면엔 방향표식이 새겨져 있다.
만덕산 정상에서 멀리 조망을 누리다...
조금 당겨 보았다. 겹겹의 산주름 멀리 아까부터 보아온 무등산인 듯.
멀리 길게 이어진 하늘금을...
당겨 보았다. 그리곤 만덕산 10여m 아래로 내려가서...
이 바위가 할미바윈가?
할미바위에선 조망이 압권이다. 가까이 국수봉에서 월봉산 능선과 멀리 무등산.
더 우측으로 불태산과 병풍산. 가까이 운암리 운암저수지와 호남고속도로가 보인다.
운암저수지 좌측에 우리의 날머리가 있는 월봉마을과 동그마한 주산(舟山).
불태산과 병풍산을 살짝 당겨 보았더니 아주 그럴싸한 산세다.
<동영상> 클릭~
이제 호남정맥을 따른다.
무덤 우측으로 정맥은 흘러...
아까부터 보아온 불태산, 병풍산과...
우리가 타고 내려갈 월봉산과...
날머리 월봉마을의 동그마한 주산도 내려다 본다.
신선바위는 유명무실해졌고...
임도를 가리키는 이정표와...
호남정맥을 가리키는 이정표.
작은 봉우리에는 돌담이 쳐져있지만 용도불명하고...
무덤이 있는 곳에선 멀리 시야가 트인다. 동악산인가?
당겨 보았지만 긴가민가다.
임도를 만나면 다시 가로질러...
방화선인 듯 널따란 산길을 잇는다.
널따란 산길이 이어지더니...
우측으로 90도 꺾어지는 봉우리에 전선이 걸려있다.
453.6삼각점봉이다.
얼마지나지 않아 임도에 내려서면 우측 나즈막한 능선이 호남정맥 마루금으로...
임도에서 능선으로 올라서지만 나는 굳이 맥을 타는 맥꾼이 아니라서 그냥 임도를 걷기로 하였다.
마루금을 우측 어깨에 짊어지고 편안한 임도를 걷지만, ‘산행은 목적보다 과정이 중요한 것’이라는 보편적 진리에 고개를 끄덕인다.
임도걷기 10분이 채 되지않아 다시 임도로 내려서서(←) 좌측 산길(↖)로 갈아타는 지점에 닿는다.
마루금을 타고 내려오는 산길을 바라보다 빵꾸러미를 풀고 청주를 곁들인 식사를 하였다.
식사후 임도건너 산자락으로 올라붙은 뒤...
300여m 올라오면 갈림길이다. 이 지형지물도 없는 곳이 수양산을 다녀와야 하는 갈림길. 수양산으로 간 사람들이 벗어놓은 배낭이 보인다.
수양산 직전의 돌출된 바위에서 좌측 아래로 조그만 저수지 두 개(기재제, 용대제)가 보이고, 그 너머론 통명지맥의 꾀꼬리봉인 듯하다.
당겨보니 그 뒤로는 고리봉과 삿갓봉을 지나는 천황지맥..
호남정맥에서 살짝 벗어난 수양산에는 폐산불초소가 덩그러니 방치돼 있다. 산뜻하게 이발을 하듯 잡목을 일부 정비하면 빼어난 산세일 텐데...
뻐꾸기가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 키우게 하는 것처럼 나도 남의 시그널 뒷면에 「首陽山 593.8」이라 적은 뒤 서명을 하였다.
그런 뒤 되내려온 갈림길. 왕복 20여분이 걸렸다. (빨간 화살표로 올라와 수양산을 다녀온 뒤(왕복) 선돌고개(흰색화살표)로 내려가는 길.
임도에 내려선 뒤 입석마을을 향하면...
곧 2차선아스팔트도로인 897번 지방도.
아스팔트를 가로질러 마을길로 다시 오른다.
길 옆 비석에 가까이 다가가 「모암주선생낙현추모비」를 읽는다.
이파리 다 떨어진 보호수는 생사가 모호하고...
갈 길 바쁜 산꾼의 마음만 괜히 바빠진다.
우측으로 나즈막하게 내려앉은 연봉들을 타고가야 하는 것.
앞서간 사람들이 짖기고 간 것일까? 개떼들의 떼창이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개짓는 민가를 급히 벗어나 산자락으로 올라 붙으니...
갈색 낙엽들사이로 초록색 춘란이 드문드문 보인다. 호남의 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춘란 잎새.
잡목지대다. 요리조리 피하며 돌아가면 어느새 다시 산죽.
돌아보는 입석마을과 수양산.
시설물이 있는 국수봉에 올랐더니 오랫만에 다시 참여한 문종수 님이 먼저 와 계신다. 그는 나보다 연상으로, 느린 듯하나 언제나 앞서 계신다.
국수봉 삼각점.
「國守峰 558.6」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서자 잡초더미에 묻힌 '인동장씨' 무덤.
잡목 사이로 석주도 보이고...
다른 석물들과 함께「인동장씨세장천」비석이 세워져 있다.
단기 4243년이면 서기 1910년으로 바로 경술국치가 있던 해로 지금부터 109년을 거슬러 올라야 하는 것.
그 사이 이 집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방화선인 듯, 수렛길인 듯 널따란 마루금은 호남정맥이다. 호남의 氣가 탄탄대로 쭉쭉빵빵 뻗어가라는 뜻일까?
그러한 마루금이 한동안 이어지더니...
월봉산 갈림길 좌로 비스듬히 굽어지는 지점에서 우측 90도 이상(빨간 화살표)으로 꺾어 올라도 되지만 나는 뒤로 백하여...
우측 잡목 성가신날등으로 바로 붙었다.
그 작은 봉우리에 월봉산 0.9m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이 밑 널따란 호남정맥에다 세웠으면 더 찾기 쉬울 텐데...
그곳에서 빛바랜 표식기 하나를 만난다.
바로 백계남 선생의 표식기다.「2014/9/1 분기점, 468.」이라고 적혀있으니, 사람은 가고 없지만 당시 그의 가쁜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월봉산으로 가는 길은 상대적 수더분한 길.
마주보는 봉우리가 월봉산으로...
안부에선 상월정(0.3km) 갈림길 이정표가 서있다.
상월정(上月亭 전남 문화재자료)은 조선 세조 3년 김자수가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대자암터에 세운 정자로 용수리에 있다.
상월정 방향 나무계단으로 잘 닦여진 등로.
월봉산 오름길에도 나무 안전계단.
정상 부위엔 군용 참호가 있고...
氣를 찾아 뻗어나가는 호남정맥과...
지나온 마루금.
발아래 용운제와 용수리 용운동 마을.
휘이휘 유산노름을 하는 사이 월봉산 고스락에 오른다.
정상의 이정표.
정상에서 쉼을 하는 일행에게 카메라를 맡겼다.
<동영상> 클릭~
마을에서는 월봉산에서 두둥실 달뜨는 것을 보았겠지. 나는 월봉산에서 거꾸로 산하를 굽어본다.
아까부터 보아온 불태산과 병풍산을 당겼고...
우측으로 아까 우리가 올라온 만덕산을 건너다 본다. 아래는 대덕전원주택단지.
더 우측으로 한바퀴 돌아보니 우뚝한 수양산(?).
삼한사미 겨울날씨에 이만하면 시계양호.
용운제와 달뫼미술관이 있는 용운동.
달뫼미술관은 2006년 전남대 미술학과 신경호 전교수가 설립했으며, 이 미술관에는 고려인유물과 사진들을 상설전시하며 보관하고 있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에 따라 고려인들은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 과정에서 1만 명이 넘는 고려인들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고, 이런 아픈 모습들이 담긴 유물들을 고려인연구가 김병학 시인이 카자흐스탄에서
2만여점을 수집하여 고려인역사박물관이 건립될 때까지 달뫼미술관에 맡긴 것.
월봉산에선 가파른 철계단을 타고 내려선다. 계단이 없었다면 오르내림이 불가했을 것.
전라도 특유의 낮은 산자락 좌측은 창평면이고, 우측은 대덕면.
사진 중앙에 우리가 내려선 월동제와 월동마을이 보이고, 그 뒤에 일찍 내려간 일행들이 올랐다는 주산(舟山 224m). 어디에서 보아야 배를 닮았남?
우측 능선이 우리가 올라온 만덕산 능선.
멀리 당겨본 곳은 호남정맥 무이산 괘일산 설산 방향.
가파른 하산길엔 철계단 시설.
가파른 사면에 콘크리트를 버무려 놓은 듯한 역암(礫岩). 역암은 마이산이 대표적이다.
안전시설을 따라...
용운마을(달뫼미술관 0.9km)갈림길을 지나면...
곧 임도에 내려선다.
임도의 월봉산 1.0km, 솔뫼마을 2.1km, 월동마을 0.9km 이정표.
월동마을 방향.
솔뫼(운암리)마을 방향.
임도는 서서히 고도를 낮추며 휘돌아...
내려가다...
차량차단기에서 월동제를 만나면서 끝이난다.
월동지에 만덕산이 잠겼고, 월동마을이 잠겼다.
월동제(堤)를 걸어나와...
우리가 오른 만덕산과 우측 삼각모양의 월봉산을 한눈에 스캔해 본다.
월동마을 표석이 있는 삼거리에서 올려다 본 월봉산.
길가의 비석에 눈길이 머문다. 버스가 있는 쉼터까지 내려가면서 산꾼의 마음 내내 허허로웠다.
華甲(화갑)에 故鄕(고향)을 찾아서
浮萍身勢半平生(부평신세반평생)
故鄕(고향)길 접어드니
山川(산천)은 依舊(의구)한데
淳俗(순속)은 찾을 길 없네
夕陽(석양)노을 갈가마귀
反哺(반포)의 情(정) 부럽구나
先塋(선영) 앞에 엎드리니
눈시울만 젖을 뿐이네
一九八四年甲子八月五日 靜波 高在健(정파 고재건)』
* 華甲(화갑): 환갑, 浮萍身勢(부평신세): 부평초같이 떠도는 신세, 淳俗(순속):순후한 풍속, 反哺(반포): 어미에게 먹이를 되물어다주는 까마귀의 습성.
용수1리 월봉마을경로당을 지나...
우리 버스가 대있는 널따란 운동장. 마을 쉼터이지만 잔디가 깔려 빨리 차를 빼라고 한단다.
씻을 곳을 찾았으나 마땅한 곳이 없어 민가 담벼랑 밭어귀의 수도를 이용하였더니 그것도 빨리 하란다.
동쪽 월봉산과 남쪽 국수봉이 마치 봉황이 날개를 펼쳐 감싸고 있는 형국으로 월봉천과 운암천, 유천이 마을 아래에서 모인다하여 삼지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