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유치환
동쪽 먼 심해선(深海線)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금수(錦繡)로 굽이쳐 내리던
장백(長白)의 멧부리 방울 튀어.
애달픈 국토의 막내
너의 호젓한 모습이 되었으리니,
창망(蒼茫)한 물굽이에
금시에 지워질 듯 근심스레 떠 있기에
동해 쪽빛 바람에
항시 사념의 머리 곱게 씻기우고,
지나새나 뭍으로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에
쉴새없이 출렁이는 풍랑 따라
밀리어 오는 듯도 하건만,
멀리 조국의 사직(社稷)의
어지러운 소식이 들려 올 적마다,
어린 마음 미칠 수 없음이
아아, 이렇게도 간절함이여!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한국 대표 명시 1, 빛샘]===
○ 멧부리: 산의 봉우리나 등성이의 가장 높은 꼭대기 산봉우리
○ 호젓한: 무서운 느낌이 들만큼 쓸쓸한. 홋홋하고 외로운.
○ 창망: 넓고 멀어서 아득함.
○ 사직: 한 왕조의 기초. 여기서는 한 왕조의 주권 내지는 나라를 가리킴
-------------------------------------------------
유치환(柳致環)
출생: 1908년 7월 14일
대한제국 경상남도 거제군 둔덕면 방하리[1][2]
사망: 1967년 2월 13일 (향년 58세)
대한민국 부산직할시 동구 수정동[3]
본관: 진주 류씨
학력: 동래고등보통학교 (졸업)
연희전문학교 (문과 / 중퇴)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 3기)
가족: 아버지 유준수, 배우자 권재순
아호: 청마(靑馬)
유치환은 1908년 7월 14일 경상남도 거제군 둔덕면 방하리에서 한의사였던 아버지 유준수(柳焌秀)와 어머니 밀양 박씨 박순석(朴珣碩)의 딸 사이의 5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2살 때 충무로 이주하여 유년기를 보냈다.
통영공립보통학교(현 통영초등학교) 4학년을 수료하고 일본 토요야마(豊山)중학교에 유학하였다. 1926년 귀국하여 동래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하여 졸업하였다.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다가 중퇴했고, 시를 쓰면서 한때 사진관을 경영하기도 했다. 1931년 '문예 월간'에 첫 시인 '정적'을 발표하면서 등단했고, 그 뒤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중 1937년(29세) 부산의 화신지사를 그만두고 통영으로 귀향했다. 통영에서 향교 재단이 운영하던 통영협성상업학교의 교사가 되었다. 이 시절 유치환은 발행, 편집인이 되어 같은 해 7월 1일 부산 초량에서 동인지 『생리(生理)』를 창간하며 1939년 첫 번째 시집인 '청마시초'를 발간했다. 1940년 교사를 사임하고 만주로 피신했다가 해방 후 귀국하여 다시 교육계에 투신, 충무/부산/경주 등 지방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하였으며 훗날 안의중학교 교장을 시작으로 경주고등학교장, 경주여자고등학교장, 경남여자고등학교장, 대구여자고등학교장, 부산남여자상업고등학교(현 부산영상예술고등학교)장까지 역임했다.
<나무위키>에서 발췌
------------------------------------------
섬!
왠지 외로움, 그리움, 쓸쓸함, 고요함을 생각하게 합니다.
유년시절에 선생님의 아코디언 반주에 불렀던 '섬집아기'는
깊은 산골짜기에 살던 저에게는 섬이란 그저 상상으로만 그리던 것이었습니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엄마와 아기의 평화스런 모습에 마음마저 차분해지는 이 동요는
지금도 가끔 불러봅니다.
울릉도는 업무로 여러차례 방문하였습니다.
해안선의 길이는 64Km, 성인봉의 높이는 984m로 섬 전체가 화산체이므로 해안은 대부분 절벽입니다.
울릉도의 도동항의 땅값이 명동보다 비싸다는 현지인의 이야기가 있었으나 진실여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경치가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업무가 아닌 관광으로 다시 가 보고 싶은 섬,
울릉도 입니다.
=적토마 올림=
섬집아기 - 서목, HD Lyrics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