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창신동집 마루에서. 박수근 선생과 아내 김복순 여사, 그리고 막내 인애. [사진 박수근미술관]
양구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가까웠다. 인제, 원통과 함께 강원도의 대표적인 오지로 거론되던 것은 그야말로 옛날 얘기였다. 지난주 12일 오전 10시 서울 서소문에서 자동차로 출발해 2시간이 좀 지났을 뿐인데 벌써 양구에 도착해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서울-춘천 간 고속도로 개통과 새로 뚫은 터널들은 서울과 양구의 거리를 반나절 생활권으로 급접시켰다. 알고 보면 새로운 것이 곳곳에 널려있다. 음식도 그렇다. 이번 여행을 하기 전엔 막국수하면 으레 춘천만 떠올랐었는데 양구 가서 맛을 보니 양구 막국수가 일품이었다. 곰취나물, 시레기청, 오골계와 돼지고기 구이에 밥 짓는 쌀까지 양구의 음식 자랑은 끝이 없다.
양구를 다시 보게 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박수근미술관(명예관장 박인숙, 관장 서동순)이다. 양구군립(양구순수 전창범) 미술관이란 점은 특기할 만하다. 양구는 박수근(1914~65) 화백이 태어난 곳이다. 깊은 산 속에 자리 잡은 분지형 마을인 양구는 강원도에서도 작은 군에 속하지만 박수근으로 인해 거대한 문화의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 박수근미술관이 그 중심에 놓여 있다. 한 예술가의 힘이 어느정도인지를 실감하게 한다.
지금은 ‘국민 화가’로 불리는 박수근이지만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라는 사실이 놀랍다. 박수근의 아내 김복순이 남긴 『아내의 일기』에 따르면, 박수근은 다섯 살부터 일곱 살까지 서당에 다녔고 1921년에 양구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다. 그런데 박수근이 보통학교에 입학하던 그 해, 부친이 투자한 광산 사업이 실패한 데다 홍수로 전답 농사가 떠내려가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유복하던 어린 시절과 달리 가난에 허덕이는 날이 시작되었고, 졸업할 때까지 형편이 나아지지 않아 결국 중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박수근이 훗날 쓴 친필 이력서의 학력 난은 “보통학교 졸업, 이후 독학”으로 되어 있다. 당시도 서양미술을 한다 하면 일본 유학은 다녀와야 이름을 내놓을 수 있는 시대였다.
초등학교 시절 박수근이 가장 좋아한 과목이 미술이었다. 1963년 8월 잡지 ‘학원’과의 인터뷰에서 박수근은 이런 말을 남겼다. “보통학교엘 입학했는데 미술 시간이 어찌도 좋았는지 몰라요. 제일 처음 선생님께서 크레용 그림을 보여 주실 때 즐거웠던 마음은 지금껏 잊히지 않아요.” 그리고 12살이 되던 해 19세기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의 ‘만종(晩鐘)’을 처음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아 “저도 이 다음에 커서 밀레와 같은 화가가 되게 해 주옵소서”하고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박수근미술관이 2015년 펴낸 『새로 보는 박수근:박수근 100장면』에 따르면 박수근의 밀레를 닮겠다는 기도는 마치 운명처럼 전개됐다. 밀레도 어려서 뛰어난 그림의 재능을 보였지만, 바르비종에서 ‘만종’을 그릴 무렵에 지금 같은 명성은 상상할 수도 없는 가난에 시달렸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서 간판과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박수근미술관 엄선미 학예연구실장은 “밀레와 박수근 두 천재 화가의 예술 세계는 닮았다. 농가의 일상 풍경과 가난하고 소박한 서민들의 초상을 따뜻하고 정겹게 표현함으로써 보는 이들에게 초연함과 감동을 선사한다”고 했다.
박수근미술관에는 실제 박수근이 생전에 밀레의 작품 인쇄물들을 스크립해 놓고 공부했던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누런 갱지에 정성껏 오려붙인 밀레의 그림들은 요즘의 화려한 화집들과는 외면상으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해보일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의 국민화가를 낳은 ‘독학 자료’라는 점에서 눈을 비비고 다시 보지 않을 수 없다. 엄선미 실장은 “밀레의 그림 중에서 ‘육아’라는 그림을 여러 장 스크랩해 놓은 걸로 보아 이 작품을 각별히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박수근은 밀레와 비교할 수 없는 독창성을 발휘하는데 한국의 바위산에서 볼 수 있는 마애불을 연상시키는 박수근만의 표현 방식을 창출해낸다.
“보통학교 졸업, 이후 독학”이라고 밝힌 박수근. 그의 당당함 앞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매일 오는 신문과 일본에서 수입된 미술잡지는 가장 큰 정보원이었다고 한다. 매일 신문 기사를 스크랩하고 미술 용어를 노트에 꼼꼼히 정리하던 박수근. 대단한 스펙을 나열하지 않았지만 그는 평생 혼자 공부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마침내 그 스스로 산맥이 되었다. 독학이란 정규학교와 무관하다. 정규 학력이 보증하지 못하는 실력은 독학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독학이란 자기가 좋아서 하는 공부다. 누가 시켜서 하면 그렇게 즐겁게 하지 못한다. 시켜서 억지로 하는 공부와 다르다. 누구나 조금씩이라도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어떤 성취를 이뤄내려고 한다면 독학 하지 않고 할 수 있던가?
뭔가를 꾸준히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은 독학에서 나온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남을 의식하지 않고 해낼 수 있는가 없는가가 범인과 초인의 차이라고 생각된다. 그 점을 박수근은 오늘 우리에게 새롭게 일깨워 준다. 지금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박수근로 265-15에 위치한 박수근미술관으로 가면 독학자 박수근의 위대한 힘을 느껴볼 수 있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는 박수근 50주기 특별전 ‘국민화가 박수근’ 전시와 연계해서 감상하면 더욱 좋겠다.
중앙일보 배영대 문화부장 balance@joongang.co.kr
첫댓글 예,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_()_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부처님감사합니다
성취하시어 이루어지이다 관세음보살 (♡♡♡)
무슨 일이든 어떤 성취를 이뤄내려고 한다면 독학하지 않고 할 수 있던가?.....의존적 학습에 젖어있는 자신를 돌아봅니다... 감사합니다, 아미타불_()_
처음 알게 된 박수근 화가의 작품이 따듯하게 마음을 녹여줍니다.
감사합니다 . 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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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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