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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 청동함은향완은실로 장식한 고려 最古 향로 |
전형적인 고려양식 국보75호
무늬 틈에 銀入絲 기술 탁월
원래 있던 곳은 창녕 용흥사
국보 75호 표충사 청동함은향완.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물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향(香)이다. 법당에 들어서면 항상 볼 수 있고 맡을 수 있는 향은 자신을 태워 주변을 정화함으로써 불자들에게 깨달음을 전하는 공양물이다. 오분향례(五分香禮)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향은 계정혜 삼학(三學)과 해탈, 해탈지견(解脫知見)을 상징하기도 한다.
육법공양 중 하나인 향이 중요한 만큼 향을 사르는 향로 또한 지나칠 수 없다. 향완.화완 등으로 불리는 향로는 꽃병, 정병과 함께 중요한 공양구로,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 전해졌다고 한다. 향로는 재료에 따라 토제.도제(陶製).금속제.석제.목제 등으로 구분된다.
경남 밀양 표충사 유물관에 소장돼 있는 국보 75호인 표충사 청동함은향완도 고려시대 때 조성된 것이다. 명문에 따르면 ‘대정(大定)17년 정유(丁酉)6월8일’이라고 기록돼 있어 고려 명종7(1177)년에 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현존하는 고려시대 향로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일본 호류지(法隆寺)에 있는 금산사(金山寺) 향로보다 1년이나 앞선 것이다.
높이 27.5㎝, 아가리 지름 26.1㎝ 크기의 청동함은향완은 전형적인 고려시대 향로의 양식을 띠고 있다. 주둥이 부분에 넓은 테두리를 둘러놓았으며, 몸체와 닿는 부분은 둥글게 돼 있다. 받침은 나팔모양인데 받침 둘레의 가장자리에 얕은 턱을 만들어 놓아 균형감을 줬다.
‘함은향완’의 익숙한 표현은 ‘은입사향로’이다. 특히 표충사 청동함은향완은 향완에 무늬를 새기고 그 틈에 은실을 박아서 장식한 은입사(銀入絲) 기술이 뛰어난 성보다. 주둥이를 둘러싼 넓은 테두리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있는 6개의 원 안에 범어로 ‘옴’자를 은입사하고, 사이사이에 구름무늬를 그려 넣었다. 몸체에도 은입사한 ‘옴’자가 쓰여 있으며, 하단에는 중판연화문(重辦蓮花文)으로 장엄했다. 또 받침과 몸통을 잇는 이음새는 구름, 용 등으로 장식했다.
주둥이의 테두리 뒷면을 보면 57자의 은입사로 된 명문(銘文)이 남아있는데, ‘대정 17년 6월8일 법계(法界)의 산 자와 죽은 자 모두 보리를 증명할 것을 발원하면서 청동함은향완 1부를 주조해 만들었다. 무게는 8근(斤)이다…’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받침 안쪽에 새겨진 글을 보면 원래 이 향완이 있었던 곳은 표충사가 아니라 창녕 용흥사였는데, 어떻게 해서 표충사로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이밖에도 표충사 유물관에서는 사명대사(1544~1619)와 관련된 여러 유물들을 볼 수 있다. 표충사와 사명스님의 인연은 임진왜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진왜란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무렵, 스님은 왜군의 재침을 막기 위해 표충사(당시 영정사)에 의승병훈련소를 설치해 운영했었다.
이후 1839년에 이르러 월파스님이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하기 위해 애쓴 서산휴정(1520 ~1604).기허영규(?~1592).사명유정스님을 모시고 있던 표충사당이 폐허가 된 것을 안타깝게 여겨, 스님의 위패와 영정을 영정사 표충서원으로 옮겼다.
사찰에서는 보기 드물게 유교식 서원이 자리 잡게 된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 인연으로 오늘날 표충사는 오늘날까지도 사명대사의 유품을 후세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
첫댓글 귀중한것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