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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7년 1월 12일 ~ 13일
참여한 분: 황현철, 이상기, 김영철, 구본황 (총4명)
기타: 1박2일 산행여행(경상남도 남해도→ 진주), 참가비 15만원
1월 12일(목) 김영철 선생님의 주도로 아침 8시 남부터미널에서 우등버스를 타고 <남해도>로 산행여행을 떠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전날 모든 여행 준비를 완료하고, 여행 당일에는 새벽 같이 일어나서 전국교통지도를 살펴보면서 인터넷으로 금산 산행정보까지 검색하고 나서 여유있게 배낭을 메고 현관문을 나서려는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지 않겠습니까?
아뿔싸 안경이 깜쪽 같이 사라진 것입니다.
이 순간 이후 거실, 욕실, 침실까지 샅샅이 뒤졌으나 술래잡기 놀이의 얄밉게 숨은 아이들 같이 안경은 어느 곳에서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결국 곤히 자는 가족까지 깨워 찾았습니다만 무려 1시간 30분이 유유히 흘러가니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어서, 김 선생님에게 다음 차로 내려가겠다는 연락을 드리고 나서 옷장을 열고 전날 입은 점퍼를 점검해보니, 호주머니 속에서 안경이 만져지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새로운 <건망증 손님 방문> 사건으로 혼자 우등고속을 타고 4시간 반을 달려 남해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1시 30분 경이 되었는데, 1시간 전에 도착한 일행이 터미널 부근 <대박집>에서 고기를 굽고 약주를 건네다 반갑게 맞아주는 것이었습니다.
새로 <당산대형> 산행에 참여한 황 선생님과 술잔을 부딪치며 정담을 나누니, 새해 산행여행을 시작하는 기쁨이 저절로 느껴졌습니다.
남해도에서 오늘 우리 팀이 숙박할 <독일마을>까지 시내버스로 이동하였는데, 일반고속버스 같은 고급차종이어서 낯설면서도 든든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독일마을은 남해도 동남쪽에 위치한 삼동면 동천리에 자리잡고 있는데, 언덕 위에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우리 팀은 그 중에서도 전망좋은 <하이델베르크> 민박집에서 겨울 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선생님들이 독일 학문의 도시에 머물게된 것이 과연 우연 뿐일까요?
숙소에 배낭을 내려놓고 산책을 나왔습니다.
먼저 독일 마을 조성의 역사가 담긴 <파독전시관>을 찾았습니다.
독일마을은 건축자재까지 독일에서 공수하여 2001년부터 조성되었다고 하는데,
독일광장 문 앞에 서 있는 제 모습에서 독일을 찾아온 길손의 기쁨이 보이시나요!
1960~70년대 청춘을 모진 고난 속에 희생하면서 산업화의 선구자 역할을 한 분들의 자취를 살펴보니 숙연한 마음에 젖어들게 되는데, 뒤늦게나마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하여, 비록 소수이지만, 노년을 위한 안식처를 조성해드리고, 멀리서 찾아온 독일 친구들과 지방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축하해드리는 사진을 보니 마음이 뿌듯해졌습니다.
파독전시관을 견학하였지만 아직은 4시를 갓 넘어 뱃속이 든든한 관계로, 아랫마을 물건리로 마실가기로 하였습니다.
멸치 말리기가 한창인 마을 이름이 <물건리>라, 그 이름이 재미있어서 꼬리말 잇기 시합처럼 정담이 이어지다 보니, 어느덧 바다 물결이 반짝반짝 반기는 <물건항> 해변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길 주변의 거인 나무들에 저절로 눈길이 머물게 되는데, 이 귀인들이야말로 <천연기념물>
150호로 지정된 <방조어부림>이어서 뜻밖의 눈 호강을 하게 되었고, 길을 내려와 몽돌해변을 거닐면서 철새를 손짓하는 기쁨도 맛볼 수 있었습니다.
항구에는 요트학교가 있어 호텔급 요트를 타고 크루즈 해상 관광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정박해 있는 호화 요트와 등대 사이 방파제 안으로 달려오는 꼬마 어선들이 대조가 되어 시야를 붙잡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랫마을 물건리에서 횟집을 찾았지만, 겨울 비수기 평일이어서인지 문이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우리 팀은 어느덧 땅거미가 지는 윗마을 동천리 독일마을 쪽으로로 다시 발길을 돌렸는데, 제법 경사진 비탈길을 오르니 운동이 되어, 시장기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당산대형> 학생(?)들이 벌써 6학년생들이라 이구동성으로 느끼한 서양 음식 보다는 한식을 먹기로 의견이 모아져서, 독일마을 발치 아래에 있는 한식당 <물건가든>에 들어갔습니다.
1인당 15,000원 씩하는 모듬매운탕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고 소주로 건배하니 남해에 내려온 흥취를 다소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식당을 나와 숙소로 향하는데 우리가 거닐었던 항구 쪽을 내려다보니 남해 바다 위로 휘영청 보름달이 떠올라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
이런 때는 멋진 누각에 올라 한잔 술로 달래야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독일마을 입구에서 풍차 조명으로 손짓하는 서양 누각 <크란츠러 카페>에 올라갔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해바라기 벽화와 아기자기한 인테리어가 손을 끌어당기는데,
전망이 좋은 의자에 앉아서 독일 전통의 흑맥주 <와바둔켈>을 잘록한 허리가 눈길을 끄는
<미녀 맥주병>에 거품 가득 따라 목에 넘기니 더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다음 날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 보리암 일출 산행이 있는 날이라, 우리 일행은 이른 아침 5시 30분 경 모두 벌떡 일어나 산행준비를 하였습니다.
숙소를 나서기 전에 황 선생님이 주도하여 전날 슈퍼에서 사온 햇반에 컵라면을 끓이고 소주 잔을 기울이니, 겨울 날 아침 산행 식사로 무얼 더 바라겠습니까?
김 선생님이 전날 미리 예약한 덕분으로 편하게 정각 7시에 택시를 타고 산행 목표 지점인 금산(해발 705m)을 향해 산굽이를 감돌아 달리는데, 남해도에서 가장 높은 서북쪽 망운산(해발 786m) 머리 위에서는 어제 우리 일행과 저녁 산책 동무를 하였던 보름달이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임진년 해전 역사에 밝은 기사님이 조수를 이용한 이순신 장군의 용병술을 열심히 강의하는데, 선생님들의 수강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꼬불거리는 산길을 마다하지 않고 정상 바로 아래 복곡 탐방 지원센터까지 천리마를 내달아주어서, 오늘 우리 일행은 당산대형 산행 역사에 남을 산책 수준의 산행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보리암 일출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7시 30분 경, 왼쪽으로는 보리암이 바로 발 아래 내려다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금산 정상으로 오르는 갈림길 언덕에 오르니, 청명한 하늘 아래 남해 검은 물결을 박차고 붉은 해가 힘차게 떠오르려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팀은 울타리를 넘어 나란히 어깨를 마주하고 새해 남해 일출의 기쁨을 나누었는데, 산행 때 마다 궂은 날씨가 따라다녀 산 아래 멋진 정경을 조망하지 못하곤 하였던 이 선생님이 가장 즐거워하였습니다.
우리 일행은 먼저 5분 거리에 불과한 정상을 오르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루루 상록수림을 헤치고 건장한 청년들이 쏟아져 내려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처음에는 군인이나 경찰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야구 선수들이었습니다.
새해 일출맞이 산행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청소년들이 믿음직스럽기만 하였습니다.
조선 태조가 백일기도 후 바로 건국을 성취하였다는 개국설화가 깃든 금산 정상은 봉수대가 있어서 <망대>라고 불려지는데, 어느 지각 없는 부부가 사진기를 세워놓고 자기들이 정상 주인인양 하염없이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결국 우리 팀은 단체 사진을 남기지 못하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는데, 산새들이 주변을 빙빙돌며 위로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봉수대 바로 아래에 내려와서 정상 표지석을 배경으로 차례로 인증샷을 남기고 보리암으로 내려왔습니다.
우리나라 4대 관음도량에 다시 오니 감회가 새로워지는데, 남해를 붉은 색 비단으로 단장하였던 일출이 어느새 황금색 주단으로 온천지를 수놓고 있어서 장엄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우리 팀은 웅장한 대장봉 아래 제비집 같이 자리잡고 있는 고졸한 전각들을 둘러보고 자비로운 해수관음상 옆에서 단체사진을 남길 수 있었는데, 마치 어린 시절 부모님 곁에 돌아온 듯,
마음 속이 한없이 정화되고 평안함이 깃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산 길은 남쪽으로 발길을 돌려 <은모래비치>로 유명한 상주면의 금산탐방지원센터 쪽으로 내려왔는데, 상사병에 걸려 죽을 뻔한 이사 온 이웃집 남정네를 아낙이 구해주었다는 <상사바위>를 비롯한 타이탄 바위들이 시야를 압도하고 있어서, 자꾸만 발걸음이 늦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천상세계에서 지상세계로 넘어가는 관문 같은 <쌍홍굴>을 고개 숙이고 지나가니, 친절한 이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다가 된비알 길이니 스틱을 짚고 내려가자고 권유하였습니다.
마침내 대나무 숲을 지나서 금산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하여 하산을 완료하니 9시 30분 경 되었고, 지나가는 고급(?) 시내버스를 기다려 남해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10시를 막 비켜가서 서울행 우등고속버스를 아슬아슬하게 놓치고 말았습니다.
서울로 가려면 1시간 가량을 더 기다려야하고 너무 이른 시간 산행을 완료하여, 우리 팀은 김 선생님의 의견대로 보너스로 진주 여행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남해도는 외진 곳이어서인지 서울이나 부산 보다는 경남 서부의 중심 도시인 진주로 가는 버스 편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남해 시외버스터미널에서 10시 35분 진주행 버스를 타고 출발하였습니다.
그런데 시골 어르신들이 많이 탑승하여서인지 난방 온도가 너무 높고, 시골 길을 쾌속 질주하니 멀미가 느껴져 힘겨웠는데, 하차 후 일행 모두 산행 보다 몇 배나 힘든 시간이었다며 고개를 내젓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남해 여행은 날씨가 청명하면서도 온화하여, <복받은> 여행이었다고 이글을 쓰는 지금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당산대형> 6학년 학생들이 지난 1년간 열심히 살아온데 대한 <성실상>을 받은 것일까요?
아니면 학생들 중 숨어있는 누군가가 착한 생각과 행동을 해 온 것에 대하여 받은 <선행상>을 일행 모두 공유하게 된 것일까요?
진주에 도착하여 푸르디 푸른 하늘 아래 봄날 같은 햇볕을 받으며 남강 시민공원을 거니는 발걸음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개를 들어보니 머리 위 진주성으로 올라가는 광장 사이의 벽에 멋진 벽화가 손짓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4백여년 전 범접하지 못할 단아한 품위를 내뿜는 여인이 사뿐사뿐 촉석루를 내려와 단정학의 마중을 받으면서 황포돛배에 오르려는 정경인데, 자석에 붙잡힌 듯 발걸음을 옮길 수 없었습니다.
계단을 오르니 진주성의 <촉석문>이 반겨주었습니다.
낯선 <矗(우뚝솟을 촉)>자에 대하여 궁금해하는 우리 일행이야 말로 학문하는 선생님 모임인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문을 지나니 웅장한 누각이 시야를 압도하며 우리 팀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귓볼을 간지럽히는 여성 문화해설사의 <남촉북벽>(남한에는 촉석루가 대표적인 누각이고 북한에는 부벽루가 으뜸이다) 낭낭한 소리가 소매를 잡아 당겼지만, 우리 팀은 썰물처럼 남강 가로 내려가 <의암>을 찾았습니다.
여기서도 또 다른 여성 문화해설사가 왜란 당시에는 대나무 숲이 남강을 에워싸고 있었고 센 물살이 의암을 굽이치며 흘러갔었다며, 낯선 길손들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 오르고 촉석루를 다시 지나쳐서 <의기사>를 찾았는데, 오호라 사당에 모셔져 있는 <충절의 여인>이 바로 발길을 붙잡아 맸던 벽화 속 <선녀>가 아니겠습니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고귀한 기품에 가슴 속이 서늘하게 정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행과 떨어져서 홀로 경내를 거닐다가 담장 너머 서쪽 하늘을 바라보니, 굽이치며 달아나는 진주성벽과 남강 물결이 장난꾸러기 아이들처럼 손짓하며 부르고 있는데, 검은 대나무와 푸른 소나무는 그날의 선열들처럼 묵묵히 철갑을 두르고 동쪽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진주성을 나와 60년 전통을 자랑하는 맛집 <북경장>을 찾아가 이번 여행을 마무리하기로 하였습니다.
팔보채 요리와 처음 맛보는 <순한 굴 짬뽕> 맛이 저절로 서울 촌놈들을 미소짓게 하는데, 경남 지역 소주 <좋은데이>는 너무 밍밍하다면서 <공부가주>와 <연태고량주> 병을 삼국지 호걸들처럼 연속 비우다 보니, 남해 여행 장면들이 멋진 영화 같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1월 남해 금산 산행여행
구 본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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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새해 남해 금산 찾으니
황금색 주단 햇살 아래 관음보살님이 반겨주셨네
거인 방조림 너머
날치 비늘, 노을 잠긴 바다 물살이 손짓하고
어둠 가르는 웃음소리 새어나오는 카페 바라보며
보름달이 미소 지었네
고운 님 자취 그리운, 석류 빛 새해 일출 내려다보니
산새들이 빙빙 돌면서 애잔한 마음 위로해주었는데
남강 가 돛배 오르려는 님 향기 찾아 진주성 오르니
의기사 감싼 검은 대나무들이 봄바람 불러
지난 이야기 속삭여주었네
( 2017년 2월 8일 적음 )
첫댓글 새해 남해 산행여행은 복받은 날씨에 산과 바다, 문화유적지 품 속에서 몸과 마음을 정화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친구들과 서로 배려하고 정담을 나눈 여행 기억은, 계속하여 미래를 나아가는 발걸음에 활력을 불어넣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