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로는 아는데 가슴으로는 안 될 때
2025년 3월 15일 사순 제1주간 토요일
<하늘의 너희 아버지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43-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47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머리로는 아는데 가슴으로는 안 될 때。
"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이 따라주지 않네요."
" 머리는 아는데 가슴이 모르네요."
" 저도 아는데 안 되네요."
" 저도 한다고 하는데 왜 그런지를 모르겠어요."
이런 말을 하도 많이 듣다보니 이제는 대수롭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듣다 보면 내가 만나는 거의 모든 이들이 이런 식으로 말을 하기도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도 머리로 안 것을 가슴으로 느껴 실행하는 데 그렇게 오래 걸렸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니 머리로는 아는데 가슴으로는 안 되는 것이 사랑의 실천이 아닌가 합니다.
온갖 지식들로 무장한 채 머리로 안다고 자부를 하곤 합니다. 알면 아는 대로 하면 될 일이지 왜 안 하는지 나도 모릅니다. 머리는 충분히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할지, 자기 사랑하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내 몸은 전혀 딴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주 답답하고 속상하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마치 마음이라는 것은 성난 망아지마냥 내 말을 전혀 듣지 않습니다.
나의 스승님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조언도 많이 해주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 저도 충분히 다 압니다, 그런데 안 되는데 어떻게 합니까? 제가 더 답답해요." 오랜 시간 투정부리듯 그런 말투로 나의 문제를 대변 한듯 싶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조금씩 내 마음을 바로잡고 나를 사랑해줄 수 있을 때가 찾아왔습니다. 물론 그런 과정 속에서는 수많은 눈물과 보이지 않는 내면의 고행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했던 그 말들이 참 무책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머리로 안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텔레비젼을 통해서 경험한 눈(雪)과, 한국 사람이 직접 겨울에 눈을 맞으며 만지면서 경험한 눈은 다를 것입니다. 모두 눈을 안다고 말하겠지만 전자는 거의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안다’로 규정을 해 버리는 순간 당신의 귀는 이제 닫혀 버립니다. 모르면 배워야 하는데 안다고 잘난 척을 해 버린 이상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모르면 배워야 합니다. 그것이 상책입니다. 내 경험상 당신이 안다고 말하면서 가슴으로 안 된다는 것은 결국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두 번째는 행동하기 싫다는 두려움이나 회피의 심리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를 때리는 엄마는 아이의 고통보다 본인의 감정을 더 소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분노를 쉽게 표출해 버리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만의 이기적인 욕구를 다스리지 못하고 그대로 발산해 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탓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은 크게 나쁜 일이라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친구를 왕따를 시키고 나서 왕따를 당 할만 했다라고 항변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 번째는 행동을 통한 변화를 경험해보지 못한 것입니다. 가끔 자기사랑을 책에서 그토록 읽어봤는데 여전히 모르겠다고 말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실제로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준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마치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면 그때 실천할 것처럼 수수방관하기도 합니다. 긍정의 연습을 했다고 말을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뿐 오랜 시간 하지 않습니다. 기도를 했다고 하는데 진정 꾸준히 간절하게 하지 않기도 합니다. 스스로가 경험을 통한 실제적인 체험을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에 자꾸 그것이 무엇인지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만 하는 것입니다.
어떤 하나를 배웠으면 그것이 내 것이 될 때까지 꾸준히 연습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네 번째는 그동안 귀를 닫고 산 것입니다. 남의 조언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변화가 늦는 사람은 나쁜 사람도 아니고 귀를 막은 어리석은 사람이랍니다. 자존심이나 고집이 세서 세상속의 지혜나
주변 사람의 조언을 듣지 않게 되면 결국 자기 마음속에 갇혀버리고 고립되기 마련입니다. 그는 자기가 정답이라 생각합니다. 내 말이 법이라고 할 정도로 독선적인 성향을 갖게 되면 거의 답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본인이 신처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섯 번째 자기합리화 그만하고 게으름은 그만 피워야 합니다. 결국 무책임일 뿐입니다. 스스로의 정당성을 주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술이 몸에 좋지 않다고 하면서 술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당연히 해야 합니다. 책임을 질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자꾸 남 탓을 하고 내가 그럴 수밖에 없음을 항변한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지 않습니다. 원래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사람에게 아침 6시마다 전기충격기로 3일만 깨워주면 알아서 벌떡 일어날 것입니다. 남의 인생도 아니고 자기 인생을 그렇게 대충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내 것이기 때문에 하루빨리 잘못된 것으로부터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언제까지 아는데 안 된다고 투덜거리고 있으면 안 될 것입니다. 진정 안다면 오늘부터 행동으로 고치고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