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미국, 미국 속 영화(33회)＞(디트로이트편) - 2009년 미국을 감동케 했던 명작 ＜그랜 토리노＞ - 이스트우드 작곡 OST를 들으며

[블라디고]

* 맥주를 연신 들이키며 옆집 몽족을 영 못마땅해하는 꼰대 코왈스키

[ 영화, 그랜 토리노 ]

* 코왈스키가 애지중지하는  1972년형 포드 자동차

* 고집불통 노인의 은밀한 사생활

이스트우드의 오랜 파트너인 프로듀서 로버트 로렌즈는 “재미있게 읽었다”라는 소감과 함께 시나리오 한 편을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건넸습니다. 어느 신인 작가의 첫 작품이었던 <그랜 토리노>는 디트로이트에 사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백인 참전 용사와 아시아 몽족 사회와의 대립과 우애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랜 토리노는 1972년형 포드 자동차 이름입니다.

작가는 몽족(베트남의 소수민족)과 함께 공장에서 근무한 경험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완성했습니다.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주인공 월트 코왈스키는 인종 차별을 고수하는 백인 독거노인으로, 마을에 점점 늘어나는 아시아인들을 경멸하며 나나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곤경에 처한 몽족인 한 동양인 소년을 구하면서 그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됩니다.

* 타오와 누나 그리고 타오의 엄마가 월트를 만나는 장면

매일 M1 소총을 닦으면서 늙은 개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는 까칠한 노인. 아내는 막 세상을 떠났고 경제적으로 성공했지만 돈만 아는 아들들과는 거의 소원하게 지냅니다. 50년 동안 자동차 공장 노동자로 살아왔던 그의 주변에는 이제 아무도 없습니다. 노동자의 생활 습관을 미처 버리지 못한 그는 하루 종일 이곳저곳 집수리를 하며 부지런하게 보냅니다.

현재 월트의 낙은, 긴 총을 옆에 세우고 문가 의자에 앉아 수북이 쌓인 맥주캔을 따서 마시면서 스스로 조립한 1972년형 그랜 토리노를 뿌듯하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옆집에 시끄러운 몽족 가족이 이사 오기 전까지는, 외롭긴 해도 평화로운 일상이었습니다. 이스트우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월트가 무뢰한이라서 마음에 들었다. 자라오면서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봤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걸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시대 안에 있다.” 그가 연기하는 월트 코왈스키가 동양인 이웃에게 총을 겨누거나 욕을 내뱉는 건 다반사입니다. 그런데 아시아인들을 삐딱하게 바라보던 그가 몽족의 아이들과 인연을 맺으며 조금씩 아시아인들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 이탈리아계 단골 이발사와 타오 그리고 월트

* 꼰대 월트의 마음을 바꾼 동양인 사회

<그랜 토리노>는 ‘몽족이 주인공을 맡은 첫 영화’라는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몽족은 베트남의 소수 부족으로, 베트남 전쟁 때 미국을 도운 대가로 쫓기다시피 하면서 모두 미국으로 탈출했습니다. 이들은 현재 미네소타, 캘리포니아, 미시간 등지에서 커뮤니티를 이루고 살고 있습니다.

극 중 월트 코왈스키의 옆집으로 이사 온 가족이 몽족이었고, 몽족 젊은이들로 이뤄진 동네의 갱단(일종의 양아치들)도 주요 캐릭터로 등장합니다. 가능한 한 이들을 진실하게 담아내려고 했던 이스트우드는 몽족 커뮤니티를 통해 이들 아마추어 배우들을 영화에 캐스팅했습니다.

* 타오의 누나 수

월트의 상대역으로 등장하는 타오 역 또한 한 번도 연기해 본 적이 없는 고등학생 비 뱅이 맡았습니다. 열일곱 소년에게는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한다는 기쁨보다 160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초짜 연기자인 자신이 190센티미터가 넘는 ‘살아 있는 영화의 전설’ 앞에 마주서야 한다는 두려움이 앞섰다고 합니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몽족 캐스팅을 진행했던 이스트우드는 ‘타오의 이미지와 딱 맞아’ 비 뱅을 캐스팅했고, 그는 기대 이상의 연기를 해냈습니다. 아버지 없이 할머니, 어머니, 누나 틈에서 자란 타오에게 옆집 할아버지 월트는 그에게 일종의 ‘롤 모델’이 됩니다.

갱단의 협박을 받아 그랜 토리노를 훔치려다 실패한 그는 사과의 표현으로 월트의 일을 도와주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면서 월트가 해왔던 수리 일을 조금씩 배워나가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품습니다. 완고한 노인 월트와 수줍은 소년 타오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소박한 코미디로 이어집니다. 두 사람은 마음을 열면서 조금씩 인간에 대한 믿음을 깨닫게 됩니다. 타오 역뿐만 아니라 영화에 등장하는 몽족 커뮤니티는 모두 실제 몽족 사람들입니다.

* 동네 신부와 얘기중인 월트, 그는 지가 인생을 뭐 아냐고 젊은 신부를 영 못마땅해 한다.

제작자 로렌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미 해본 것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랜 토리노> 시나리오는 새로운 것을 제공했다. 월트는 그의 나이 및 캐릭터와 딱 맞았고 <더티 해리> 같은 그의 과거 인생을 현재로 끌어온 것 같다. 월트 또한 더티 해리처럼 법 없이 살고, 냉정하며,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다. 클린트가 월트 역을 맡으면서 캐릭터는 더 발전했고 그는 새로운 영역을 정복했다”고 말합니다.

<그랜 토리노>의 성공으로 몽족의 존재는 더 많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고, 사람들은 외로운 독거노인들의 노후 생활에 대해서도 성숙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랜 토리노>는 평범한 보통의 이야기 속에서도 감동의 드라마를 찾아내는 그의 내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종 차별 문제를 거창하게 말하지 않아도 영화 <그랜 토리노>는 어떤 인종 차별 반대 영화보다 큰 울림을 남깁니다.

* 동네 양아치들을 혼내주는 월트

[ 뒷 얘기 ]

개봉 당시 TV 광고 등에서 M1 개런드 반자동 소총을 떡 들고 더티 해리를 방불케 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그의 마지막 액션영화인 줄 알고 크게 기대를 했지만 정작 영화는 잔잔한 감동을 주는 휴먼 드라마라 당황했다고 합니니다. 사실 서부영화에서 총잡이로 배우로서의 전성기를 누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필모그라피(출연 영화들)를 생각해보면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비폭력의 응징이 아이러니하면서도 동시에 깊은 울림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는 미국적인 가치관으로 평생을 살아온 월트가 새로운 미국인들인 타오와 가족들에게 미국적인 가치를 전달하며 본인이 애지중지하던 오래된 미국인의 영혼과도 같은 자동차인 ‘그랜 토리노’를 신세대 미국인인 타오에게 넘기는 것으로 끝납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인종차별적 모습을 보이던 월트 본인 또한 폴란드계 미국인입니다.

* 타오를 못살게 구는 동네 몽족 양아치들

미국 주류 백인 사회에서 경멸을 당해온 이탈리아계 단골 이발사 마틴은 자기 주제에 "폴란드 놈(Polack)이 죽지도 않고 또 오네."식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 웃음이 저절로 나오게 합니다. 또한 타오에게 일자리를 주선하러 만난 노가다 현장 소장도 아일랜드계 미국인입니다. 폴란드계 미국인, 이탈리아계 미국인, 아일랜드계 미국인 이 세 집단은 백인이지만 미국의 다른 백인들에게 열등한 취급을 받았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월트가 가지고 있는 M1 소총 또한 자세히 살펴보면 자동차 ‘그랜 토리노’외에 중요한 소품역할을 합니다. M1 소총은 미국과 미국인을 상징하는 가장 '미국적인' 총으로 꼽힙니다. 보수적이고 미국적인 가치를 중요시하는 월트의 이미지와 딱 어울리는 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한국전쟁의 끔찍했던 기억에 아직도 얽매여 있는 윌트의 모습을 미군들이 한국전쟁 때 주요 총기로 사용했던 M1 소총을 빌려 말하고 있다고 해석되기도 합니다.

* 이스트우드가 M1 소총을 들고있는 포스터

영화에서 월트는 한국전쟁에서의 끔찍했던 참상을 기억하고 있고, 자신이 죽인 중공군들에게 죄책감을 심하게 가진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본인이 말하기로는 17살짜리 소년병을, 그것도 항복하겠다는 애를 사살한 모양입니다. 50년이 지난 후에도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이 때 소년병을 쏴 죽인 총이 현재 소지하고 있는 총이라고 후반부에 타오에게 무심코 털어놓기도 합니다.

* 동네 양아치들에게 M1 소총을 겨누고 있는 월트

영화에서 월트는 포드사의 공장에서 일했던 것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큰아들 부부가 타는 차는 일제 토요타입니다. 큰아들 부부의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서 월트가 "미국 차 타면 어디 덧나냐!"하면서 상당히 못마땅해 하는 모습도 미국적인 것을 지키려는 꼰대 월트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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