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이익의 극대화를 내세우며 자신들과 이해관계가 맞지 않은 각국에 각을 세웠던 미국이 점차 태도를 바꾸는 모양이 두드러지고 있다. 자국에 이익에 반하면 무조건 험한 표정을 지었던 상황과는 조금 달라지는 모습이다. 그동안 강경 일변도였던 대중 외교에서 조금 유화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중동에 있어서도 지금까지와는 결이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뭔가 다른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내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에서 전 대통령이었던 트럼프가 유력한 후보로 굳어지는 상황에서, 4년전 민주당 공화당 후보가 동일하다는 전대미문의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시사하는 것이 많다. 트럼프의 외교와 다른 행보를 보여야만 유권자에게 먹힐 수 있다는 생각때문일까. 요즘 미국이 행하는 자세는 불과 얼마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예정대로 6월 18일 중국을 방문했다. 이틀동안의 일정이다. 얼마전 미국의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오스트리아에서 5월에 만난 이후 한달여 만의 일이다.블링컨은 친강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등을 만나 양국의 현안을 논의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블링컨의 방중은 원래 지난 2월 초 이뤄질 예정이었지만 중국의 정찰 풍선이 미국 영공으로 진입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그로인해 미중 약국의 갈등이 첨예화되었다. 결국 블링컨의 방중은 취소되고 말았다. 이번 방중은 4개월만에 재추진되는 것인데 이번 방중도 상당한 위기를 맞았다. 미국의 코 밑인 쿠바안에 중국의 도청기지가 있다는 것을 미국이 폭로하면서 양국 갈등이 재점화되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미국이 정말 화들짝 놀라 강한 반응을 보일 만했지만 미국은 그냥 넘겼다. 뭔가 미국이 중국과의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미국이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면서 등장했던 디커플링이란 용어에서 최근에서 디리스킹이라는 다소 애매모호한 단어가 등장한데서도 그런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이번 미 국무장관의 방중은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트럼프 정권때 국무장관이던 폼페이오의 방중 이후 4년 8개월 만이다. 앞에서 언급한 설리번과 왕이의 회동에서 미중 외교장관회담과 정상과의 만남 등이 조율되지 않았겠는가 그렇게 판단하게 한다.
대중 외교뿐 아니라 미국의 중동에 대한 외교에도 변화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한 미국의 중재 노력에 힘이 붙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유력 언론들은 최근 미국의 핵심 외교 당국자들이 사우디와 이스라엘 정부 관계자와 연쇄적으로 접촉을 해서 서로의 이견과 오해를 조정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지난 6일 사우디를 방문해서 사우디의 빈살만 왕세자와 회담한 직후 이스라엘 총리인 네타냐후에게 전화해 사우디측의 요구를 전달하기도 했다. 물론 미국이 중동에 다시 관심을 갖는 것은 그동안 미국이 떠난 중동에 중국이 무주공산식 외교를 펴는 것에 상당한 불편함과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미국의 대통령 바이든은 최근 부쩍 자신의 업적을 내세우는 언급을 자주하는 모양새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자신의 치적을 내세우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도 예상치 못한 것도 아니지만 바이든은 특히 외교적 업적을 강조하고 있다. 그 가운데는 러시아 우크라 전쟁에서 러시아의 침공을 적절하게 잘 방어하고 있다는 것이 우선으로 꼽힌다. 미국은 파병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러시아를 무력하게 만들고 있으며 이런 것이 바로 미국 외교의 성과라는 입장이다. 두번째 외교적 업적은 바로 한일 관계 개선이다. 바이든은 자신이 나서서 서로 갈등을 겪던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어느정도 편하게 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전 정권인 트럼프때는 한일관계는 당사자가 알아서 하는 입장이었지만 바이든 자신이 나서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미국 블링컨은 방중에서 과연 시진핑을 만날 수 있을까가 관전 포인트이다. 중국은 블링컨이 굳이 찾아오려는 것을 막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나서서 환영하는 모양새는 절대 취할 생각이 없다. 시진핑은 블링컨을 만나고 싶은 생각이 있겠지만 측근들이 막을 가능성도 높다. 지금 중국이 미국에 비해 밀리는 형국이 아닌데 일부러 상대적 저자세로 보일 수 있는 태도는 역효과를 가중시킬 있다는 생각에서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미국 바이든 입장에서는 블링컨이 시진핑을 만나 바이든의 의사를 전달하던 하지 않던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미국의 바이든 입장에서는 미국은 중국과 상황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전세계에 보이면 된다. 그런 상황은 미국 유권자에게도 뚜렷하게 비춰질 것이다. 바이든의 외교가 트럼프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미국 유권자에게 제대로 보이기만 하면 그것이 바로 이번 미 국무장관의 방중 성과일 것이다. 앞으로 미국의 외교는 내년 대선을 정확하게 겨냥하고 있다. 이런 저런 법적 기소로 인해 운신의 폭이 좁아진 트럼프에 비해 적어도 외교적 성과에서는 무언가를 보여주면 상당한 유리한 고지를 획득할 것이라는 바이든의 전략은 적어도 내년 대선때까지는 줄기차게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이유이다.
또한 미국은 경제와 경제 외적인 면을 뚜렷하게 구분하려는 입장이다. 미국과 중국의 교역은 지금도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정치 군사적인 면에서는 서로 으르렁대지만 경제 문제에서만은 서로 날카로운 각을 피해가려고 한다.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동맹국으로 미국이 내건 디커플링에 따른다는 모습이지만 무역측면에서는 다르다. 중국과 각을 세우지만 무역량이 줄어든다는 소리는 아직 없다. 그만큼 무역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측면과 외교를 내세운 정치 군사적 상황은 다른 것임을 최근 미국의 행보에서 쉽게 느낄 수 있다.
2023년 6월 18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