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시간의 본질에 대해 정확한 답을 내린다기보다는 물리학자들이 보는 '시간'의 여러 가지 측면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시간에 대해서는 이미 아주 많은 사람이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그 가운데 몇 사람만 소개해보겠습니다.
시간은 변화의 척도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면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아리스토텔레스
우리가 과거에 대해 아는 것은 오직 과거에 대해 가지고 있는 현재의 기억뿐이다. 과거, 현재, 미래 모두 인간의 정신 안에 있다.
-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에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라고 이야기할 때, 과거는 이미 존재하지 않습니다. 과거가 있다는 우리의 기억만이 존재할 따름입니다. 마찬가지로 미래도 존재 하지 않습니다. 미래라는 기대가 있을 뿐이죠. 이처럼 과거와 미래 시간을 이루는 중요한 구조물 중에 하나인데도 인간에게는 심리적 기억이나 기대에 불과합니다.
시간과 공간은 독자적 실체가 아니라 생각의 사물이다. 시간은 동시에 공존하지 않는 것들의 보편적 인과적 질서다.
-라이프니츠
라이프니츠는 기본적으로 시간을 우리가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시간은 공존할 수 없는 사건들에 부여한 인과적 질서라는 것입니다. 시간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기보다 어쩌면 임의로 부과한 순서라는 뜻인데, 과학보다는 철학에 가까운 이야기로 보입니다. 이에 반해 뉴턴이 정리한 시간을 살펴보면, 오늘날 우리가 가진 시간관념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변화와 상관없이 시간은 흐른다. 아무런 변화가 없어도 시간은 흐른다.
수학적이고 절대적인 시간이 존재한다.
-뉴턴
뉴턴에 따르면 시간은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우리와 상관없이 그냥 혼자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문장만 보면 시간이란 인간의 인식과 무관한 절대적 실체로 느껴집니다. 위대한 물리학자 중
하나였던 리처드 파인만도 자신의 책에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때에도 흐르는 것이 시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아마 뉴턴의 이야기를 변주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분의 이야기니까
여전히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끝으로 철학자 두사람의 말을 더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시간과 공간은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선험적 형식이다.
- 칸트
'우리는 시간을 통해서 사물의 변화를 측정할 수 없다. 시간은 오히려 사물의 변화를 통해 얻어내는 추상성이다.'
- 마흐
칸트는 시간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시간과 공간의 틀로 세상을 본다는 관념론을 주장했습니다. 오늘날 뇌 과학으로 얘기한다.면 우리가 본성으로 뇌에 가지고 태어나는 선천적 구조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유전자에 그 정보가 저장되어 있을 겁니다. 철학자 마흐 역시 시간은 관념적이고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것이지 실체가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뉴턴을 제외한 사람들이 시간은 굉장히 추상적인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인지혁명
인간이 시간에 대해서 언제 처음 깨달았는지를 사실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인류학자들은 아주 먼 옛날 인간에게 인지혁명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알타미라 동굴에 벽화가 그려질 때쯤 사람에게는 중
대한 변화가 일어났는데, 인간과 외부 자연을 분리시켜 생각하는 개념이 생긴 것입니다. 어떻게 인류학자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아마 여러 방법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인지혁명이 일어날 때 즈음 시간과 공간 같은 개념도 생겼을 것입니다.
'나'와 주변을 분리하여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분리가 되어야만 신석기 혁명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와 자연이 분리되어야 비로소 내가 자연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도구를 만들거나 자연을 변화시켜서 농사를 짓는다는 개념 자체가 생기려면 첫 번째로 인지혁명이 필요했는데, 이때 시간이라는 관념도 생겼을 거라고 인류학자들은 주장합니다. 그
렇다면 시간이라는 개념이 칸트가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 본성에 가깝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야기하는 시간에 가까운 개념이 처음 생긴 것은 신석기시대를 거치면서일 것입니다.
시간의 정의
뉴턴이 쓴 《프린키피아》는 자연의 법칙을 수학적으로 기술한 책으로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 형식으로 쓰였습니다. 정의와 공리를 소개하고 나머지를 수학적으로 논증하는 책입니다. 중요한 개념들을 먼저 정의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시간과 공간이 나와야 했습니다. 책을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나는 시간과 공간과 위치와 운동을 정의하지 않겠다. 모두가 잘 알고 있으니까.'
사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으니까'라고는 했지만 아마 뭔지 몰라서 정의하지 못한 것일 수 있습니다. 지금도 시간을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시간이나 공간에 대해서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절대적이고 진실되고 참되고 수학적인 시간을 이야기합니다.
시간의 화살
시간을 수학적인 것으로 간주하면 중대한 문제가 하나 생깁니다.
시간이 수직선상에 있는 숫자들이라면 마이너스 1도 가능하고 플러스 1도 가능하고, 마이너스 1에서 플러스 1로 선 긋는 것도 가능하고 플러스 1에서 마이너스 1로 선 긋는 것도 가능해야 합니다. 즉 시
간의 방향에 대해서는 어떤 얘기도 할 수 없습니다. 뉴턴의 F=ma라는 방정식 자체도 시간의 방향을 바꾸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뉴턴이 제안한 대로라면 시간이 방향을 갖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뉴턴의 체계 내에는 시간의 방향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재 세상에는 왜 시간의 방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지, 왜 그런 느낌이 생기는지를 설명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시간의 화살 문제입니다.
물리학에서 시간의 화살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됐을 때는 서양 사회가 산업혁명 시대로 진입한 때입니다. 이때는 노동자들이 분 단위로 일을 해야 했습니다. 산업혁명 시기에 가장 중요한 동력원이었던 열 엔진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시간의 방향에 대한 단서가 나옵니다.
우리는 그것을 열역학 제2법칙이라고 부릅니다. 볼츠만이 발견한 열역학 제2법칙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시간의 방향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됩니다. 여기서 핵심적인 개념은 '엔트로피'입니다.
큐브를 예로 들어 엔트로피의 상태를 설명하면,
6면의 색이 모두 맞는 경우가 엔트로피가 작은 상태가 된다.
여러 번 하고 나면 결과적으로는 언제나 경우의 수
가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갈 수 있을 뿐,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갈 확률은 너무 작아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볼츠만이 설명한 시간의 방향입니다.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현재 엔트로피가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시간의 방향과 우리 인간이 심리적으로 느끼는 시간의 방향이 같기 때문에 바로 이 방향이 우리가 보통 말하는 시간의 방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스티븐 호킹이 한 이야기입니다. 우주의 엔트로피가 지금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빅뱅으로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시대, 전자기 혁명
(아인슈타인)
시간이 지나는 동안 공간에서 물체의 위치가 어떻게 변하는지 설명하는 학문이 역학이다. 여기서 위치와 공간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아무 의미 없는 공간이라는 애매한 단어 대신 좌표계에 대한 상대적 운동이라고 말해야 한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궤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좌표계에 대한 상대 궤적만 존재한다"
아인슈타인은 텅 빈 공간이라는 개념을 우리 모두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실체가 과연 존재할까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텅 빈 우주 공간에 단 하나의 물체만 존재하고 이 물체가 움직인다면
움직인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비교할 대상이 없는데 말입니다. 물리에서는 최소한 2개의 물체가 있어야 움직임을 말할 수 있습니다. 운동의 변화를 일으키는 힘은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데, 본질적으로 두 물체 사이의 관계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물체만 있을 때의 운동은 등속직선운동뿐입니다. 이것은 정지 상태와 같습니다. 하나의 물체만으로는 의미 있는 운동을 만들 수 없다는 뜻이죠.
아인슈타인의 논의에서 여전히 시간의 본질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아인슈타인에게 시간은 시계의 눈금을 읽어서 얻은 값일 뿐입니다. 시간을 측정하려면 우선 시작과 끝에 대응하는 두 사건이 있어야 하고, 각각의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에 놓인 시계를 읽어 그 차를 구한 것이 시간입니다. 이 정의를 충실히 따르면 움직이는 물체의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결과를 얻게 됩니다. 우리의 시간 개념은 뉴턴으로부터 더 확장되어야 합니다. 시간
은 수학적이고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관측자의 운동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시간은 물질의 존재에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은 생각의 도구인 인간 지성의 자유로운 창작물이다'라고 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시간이 실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상대성이론의 시간은 본질적으로 시계의 눈금과 다를 바 없습니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시간이 갖는 절대적 불변성만 제거했을 뿐, 수학적이고 추상적 존재라는 사실은 건드리지 않은 셈입니다. 상대성이론의 기본 방정식들도 뉴턴의 방정식처럼 시간의 방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도 엔트로피 같은 것을 도입하는 것이 방향을 설명할 유일한 방법입니다.
우리는 왜 시간이 존재할 뿐 아니라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고 느끼는 걸까요? 시간이 흐른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기억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기억을 만드는 과정에서 엔트로피가 늘어나는데, 우주가 팽창하는 동안 엔트로피가 늘어납니다. 우주의 팽창 방향이 심리적 시간의 방향과 같다는 말입니다. 심리적으로 시간은 기억들의 순서를 정하는 과정에서 생긴 개념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시간은 일종의 환상인지도 모릅니다.
안타깝지만 아직 누구도 시간의 본질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물리학자들은 여전히 시간이 뭔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패널토의
송민령 만일에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가 있다면 그 물체한테는 시간이 어떻게 적용될지 궁금합니다.
김상욱 상대성이론의 공식을 써놓고 보면 빛의 속도가 되는 순간, 시간이 멈춘다고 되어 있습니다. 점점 빨라지면 시간이 느리게 가는데, 이걸 극단으로 밀어붙이면 모든 속도의 한계가 빛의 속도니까 빛의 속도에 근접해갈수록 무한히 느
려지다가 결국 시간이 멈춥니다. 근데 다행히도 질량을 가진 어떤 물체도 빛의 속도로 움직일 수는 없기 때문에 정말로 빛의 속도가 되면 시간이 멈추는지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이렇게 물어볼 수는 있습니다. '내가 빛이면 시간이 흐르지 않나요?' 많이 받는 질문인데, 질문이 틀렸습니다. '나'는 빛일 수가 없습니다. 빛은 질량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에 따
르면 의식은 질량을 가진 물체에 기반을 둡니다. 그러니까 빛은 다른 모든 물질과 비교해 완전 다른 존재라는 것입니다. 빛은 항상 유일하게 그리고 영원히 빛의 속도로만 달리는 존재입니다. 주변의 일상적인 물질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면'이라는 전제가 틀렸기 때문에 질문 자체가 틀린 것입니다.
정애리 빛의 속도가 0이 돼 버리는 순간 물리법칙이 다 무너지지 않나요?
송민령 지구는 자전도 하고 공전도 하는데, 공전 속도가 굉장히 빨라지면 우리가 느끼는 시간은 어떻게 될까요?
정애리 중력장이 커지면 큰 지역으로 갈수록 시간이 느리게 갈 거라고 많이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제3자가 봤을 때이고, 나의 시간은 계속 똑같이 흘러
갑니다. 단위가 달라질지는 모르지만 그 안에서의 나의 시계는 그냥 그대로 갑니다.
김상욱 상대성이론에서 시간이 느리게 간다. 빠르게 간다는 이야기는 서로 다른 관측자들이 각자 측정한 시간을 서로 비교할 때에만 의미를 가지는 상대적인
이야기입니다. 모든 관측자에게 시간은 언제나 평소처럼 흘러갑니다. 모든 관측자가 자기의 시간이 이 우주에서 가장 정당하고 가장 절대적이고 자연스러운 시간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은 모두 옳죠
(유튜브에서의 토론)
김상욱 뉴튼은 힘이 정의하지 않고도 F=MA 공식을 만들었습니다. 갈릴레이도 물질이 왜 땅에 떨어지려고 하는 성질이 있는 것 보다 1초후에 물체가 몇 M 떨어지는지 계산하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그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측정의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송민령 무엇보다 어떻게가 중요하다는 말씀이시군요. 카를로 로벨리의 책에 보면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라거나 리처드 뮬러의 '나우, 시간의 물리학'이라는 책에서 보면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합니다.상식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기이하게 들리는데요?
김상욱 일단 그 두책을 다 읽어봤는데요. 리처드 뮬러에 의하면 빅뱅 때문에 공간도 팽창하지만 시간도 팽창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른다고 합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또 자유의지를 통해서 엔트로피를 역전시킬 수 있다고 하는데 표준과학과 어긋나는 이야기입니다. 카를로 로벨리의 고리양자중력이론은 통일장이론의 한 버전인데요. 저는 잘 모르는 분야입니다. 시간이 자기들의 주요 방정식에 등장하지 않으므로 시간이 없다고 짧게 설명하고 마는데요. 제가 모르기 때문에 평가하지 힘듧니다. 다만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느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주제 2: 천문학과 시공간
송민령 보통 사람들에게는 위치나 장소가 시간하고 명백히 구별되는 개념인데 두 교수님께서는 두 가지를 연결해서 시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공간은 어느 방향으로든 갈 수 있지만 시간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시간과 공간 사이에 있는 차이를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상욱 뉴턴의 이론에서 시간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단지 진행방향이 있다는 것만 다르죠. 시간도 공간의 x축 y축처럼 축의 하나로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간이나 공간 모두 서로 독립적인 축들로 나타낼 수가 있습니다. 시간
과 공간이 별개인 것이죠.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나온 후 시간과 공간을 따로 이야기하기는 힘들어집니다. 관측자의 운동에 따라 시간과 공간 모두에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죠. 따라서 아예 시공간이라고 붙여서 부릅니다.
김상욱 시간은 기본적으로 지구나 천체가 보이는 주기운동으로부터 정의된 것입니다. 현대의 표준시는 원자를 이용하여 정의하는데, 원자의 양자역학적 진동을 이용합니다. 여전히 우리에게 시간은 뭔가 주기적인 것이죠. 아인슈타인이 했듯이 공간에 시계를 뿌려 놓고 시계를 맞추는 작업을 시작하려면, 일단 시계가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시계는 모두 똑같다는 전제가 필요하죠 기본적으로
어떤 주기운동이 우주에 있다는 사실은 시간 이전에 운동이 먼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운동은 물질이 만듭니다. 그러니까 다시 물질로 돌아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시간보다 물질의 운동이 가장 근원에 있다는 것도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송민령 블랙홀 근처에 가면 시간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사건의 지평선이라고도 하는데, 거기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애리 큰 중력장 주변에 가면 시계가 느리게 가다가 사건의 지평선까지 가면 시간이 멈춘다고들 생각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봤을 때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지구에 있고 1초에 한 번씩 신호를 보내도록 만들어진 작은 함선이 블랙홀로 계속 다가갑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1초에 한 번씩 오던 신호가 센 중력장으로 갈수록 간격이 더 늘어집니다. 2초, 100초, 1년, 10년, 100년 이런 식으로 늘어지다 보니 우주선 안에서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생각되는데, 사실은 그 안에서의 시간은 그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질의응답
01 시간의 본질이 무엇인지 시간의 본질에 대한 증거를 도출할 수 있는 실험을 구성할 수 있다고 보는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시간의 본질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게 될 거라고 보는지, 아니면 그런 건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하고 물리학 밖의 영역이라고 보는지도 궁금합니다.
김상욱 그런 걸 할 수만 있다면 노벨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시간이 그냥 개념에 가까운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알 수 없는 것을 굳이
정의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측정할 수 있다는 사실로 충분하지 않은가 하고 생각합니다. 시간의 본질에 대한 것은 현재로서는 물리 영역 밖의 질문이 아닐 까 생각합니다.
Q2 우리 주변에 블랙홀처럼 시간이 특별하게 극단적으로 빨리 가는 영역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상욱 지구에서도 블랙홀과 같이 시간지연 효과를 볼 수 있는 장소가 있느냐는 질문이네요. 그냥 없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지구는 질량이 너무 작아서 인간의 경험으로 느낄 수 있는 상대론적인 효과를 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지구 표면에서 시간을 재고 지구에서 충분히 멀리 떨어져서 시간을 재봤자 아주 의미있게 느낄 만한 차이는 없습니다. 인간에게 지구는 거대한 행성이지만 블랙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참고로 우리은하 중심에 있는 블랙홀의 질량은 지구 질량의 1조 배 정도 됩니다.
Q3 지구가 움직이는 속도에서 움직이는 걸 외부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거보다 훨씬 더 느리게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면 시간이 적게 흘러갈 수 있는지, 아니면 시간이 그만큼 빨리 흘러가는 건지 궁금합니다.
정애리 여러 가지 속도 중에서 가장 큰 것은 태양계 자체가 은하를 공전하는 속도일 것입니다. 초당 250km 정도를 가기 때문에 한 시간에 250km를 가는 KTX에 비하면 굉장히 빠른 속도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제3자가 관측했을 때, 만약 우리가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면 예전에 측정했던 우리의 시간과 훨씬 더 빨리 움직이고 난 다음 우리의 시계는 달리 가는 것처럼 보이기는 합니다.
*적도의 길이는 약 40,000km에 달한다. 그러므로 적도 위의 한 점은 하루에 약 40,000km의 거리를 움직이는 셈이다. 이를 24시간으로 나누면, 지구는 시속 약 1,670km(초속 463.89m/s)의 속도로 돌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즉, 적도에 서 있는 사람은 시속 1,700km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 것과 같다. 이는 일반 항공기보다 빠른 속도이다.
김상욱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인데, 절대시간이 없다는 것은 관측자에 따라 시간이 다 다르다는 뜻입니다. 우주의 나이를 이야기할 때도 지구에서 우리가 본 시간이 138억 년이라는 거지 다른 곳에서 보면 시간은 달라집니다. 만약 우주가
생겨나고 한 수십억 년 뒤에 만들어진 어떤 블랙홀 주변에 누군가 살았다면 그 사람은 우주의 나이를 전혀 다르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다 맞다는 게 상대성이론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속도도 우리은하 중심에 대한 속도이지 다른 은하는 또 다른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그중 누구의 속도, 누구의 시간이 옳은지 얘기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상대가 없다면 빠르다. 느리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전혀 무의미하다는 게 상대성이론의 핵심입니다.
Q4 시간이 연속적이지 않고 양자화 됐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렇다면 얼마만큼 양자화 됐는지 혹은 그게 플랑크 상수랑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김상욱 플랑크 타임이라고 해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시간 스케일이 있습니다. 그 시간으로 시간이 양자화 되었다는 이론이 있다고 알고는 있지만 제 전문분야가 아니라서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통일장이론 혹은 양자중력이론을 구축하는 여러 제안들이 있는데 그것들에서 사용되는 가정입니다. 아직 실험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