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그라운드 / 문보영
- 사막맵
추락으로 시작한다 추락하지 않는 인간은 게임 참여 의사가 없는 것으로 취급한다 뛰어내려 곧 깨어날 거야 너는 추락하는 자를 깨어나는 자라고 부른다 햇볕 아래 놓은 벽돌색 헤드셋을 끼고, 네 마리의 말이 달리는 옷을 입은 네가 웃으며 말한다 너, 송경련은 미소에 소질이 있으니까 무서운 사람이다 여기는 사망맵이야 너는 불안할 때 농담한다 바닥에서 만나자 뛰어내린다 비행기에서 그녀가 먼저
― 시집 『배틀그라운드』(현대문학, 2019)
* 문보영 시인
1992년 제주 출생.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2016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등단.
시집 『책기둥』, 『배틀그라운드』
산문집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준최선의 롱런』.
제36회 김수영문학상 수상
배틀그라운드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이 시에 접근이 다소 어려울 수 있습니다. 사실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저는, 이 게임이 어떤 게임인지 잘 몰랐습니다. 베틀그라운드라는 단어를 검색해보고, 아주 익숙한 이미지의 게임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게임에는 단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 게임이 진행되는 방식이나, 그 세계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상상은 가능합니다. 시인의 발화를 통해서 이 게임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게임은 ‘게임플레이’를 통해서 배워야 하는 것인데, 엉뚱하게 시를 읽으면서 배웁니다. 이 상황은 ‘사랑을 책으로 배웠어요’라는 말보다 더 엉뚱합니다. ‘나는 게임을 문보영 시인의 시로 배웠어요’라고 말 할 수 있으니까요.
약간의 호기심이 생기기도 하지만, 게임을 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저 게임에 깊숙이 빠질 것 같아서요. 그냥 시인의 시로, 간접경험만 하겠습니다. 물론 누군가 이 게임에 대해서 물어봤을 때, 아는 척은 안 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게임 어떻게 시작하는지 알아”라고 누가 물었을 때, 시로 게임을 배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임에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추락으로 시작하지, 추락하지 않는 인간은 게임 참여 의사가 없는 것으로 취급하니까” 이 대답을 들은 질문자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저런 돌 아이가 …”
문보영 시인의 ‘핫’함은 다수의 채널을 통해 접했기 때문에 아실 것입니다. 그 ‘핫’함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것일까요? 가상입니까. 아니면, 꾸며진 것입니까. 저는 개인의 노력이 만들어낸 결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개인이란 어디까지나 ‘문보영’이라는 시인입니다.
어린, 젊은 시인이지만,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접근방식, 전통과 아방가르드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꼭 아방가르드만을 선택하지도 않고, 필요에 따라서 저 두 영역을 오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선택의 방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적어도 우리가 지금의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스스로 철창에 갇힐 필요는 없습니다. 철창을 열고 저 넓고 광활한 세계로 나가야 합니다. 전통을 답습하는 순간, 구습이 되고 맙니다. 우리에게는 답습이 아닌 재해석과 창조가 필요합니다. 문보영 시인은 그런 점에서 충분히 존경할만합니다.
- 주영헌 시인
회사를 다니던 시절에 지하철로 출퇴근을 했어요. 그때 제가 가장 많이 읽었던 책들을 떠올려보니 그게 시집이었어요. 서사는 중단되는 느낌이 있어서 아쉬운데 시는 그렇지 않아서 좋더라고요. 그때를 떠올리면서 최근 읽은 시집 중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시집을 가지고 왔습니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네 번째 시리즈 가운데 하나고요. 『배틀그라운드』 는 ‘전쟁터’라는 뜻이잖아요. 회사에 가는 마음이 전쟁터에 가는 병사의 마음이 아닐까도 생각을 해봤어요.(웃음) 그런데 ‘배틀그라운드’라는 게임이 있어요. 문보영 시인님에게 물어본 적이 있거든요. 이 게임을 해보았느냐고 했더니 자기는 해본 적이 없지만 오빠가 매일 하는 것을 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시집 초반에 ‘배틀그라운드 용사 문지성에게’라고 쓰여 있어요.(웃음) 그 플레이를 보고 이런 시들을 적어낸 거죠.
문보영 시인님은 잘 아시겠지만 정말 탁월한 게, 남들이 생각하지 않은 지점을 잘 요리하는 요리사 같아요. 이번 시집에는 등장인물이 있습니다. 이 등장인물들이 ‘배틀그라운드’를 플레이 하면서 쓰는 시처럼 해두었어요. 아무도 해보지 않은 거잖아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이 문보영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문보영 시인님은 모든 글은 재미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는데요. 역시나 이 시집에 실린 시도 하나같이 묵직하면서 재미를 놓치지 않아요.
추락으로 시작한다 추락하지 않는 인간은 게임 참여 의사가 없는 것으로 취급한다 뛰어내려 곧 깨어날 거야 너는 추락하는 자를 깨어나는 자라고 부른다 햇볕 아래 놓인 벽돌색 헤드셋을 끼고, 네 마리의 말이 달리는 옷을 입은 네가 웃으며 말한다 너, 송경련은 미소에 소질이 있으니까 무서운 사람이다 여기는 사망맵이야 너는 불안할 때 농담한다 바닥에서 만나자 뛰어내린다 비행기에서 그녀가 먼저(「배틀그라운드―사막맵」)
어쩐지 이 시들이 전부 회사 은유처럼 느껴졌어요. 전쟁터,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시집이 아닐까 싶은 거죠. 이런 사람들이 읽을 때 가장 무릎을 탁 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어요. 이 시집을 다 읽었더니 마치 제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다닌 회사 생활을 다시 한 번 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회사 다니던 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시집을 읽었더니 어느 새 전쟁이 끝나 있었고, 평온이 찾아왔죠. 출퇴근 길에 책을 한 권 읽어봐야겠다 마음 먹고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 오은 시인 / 채널예스, 시집 추천글, ‘[책읽아웃] 출근길에 읽으면 좋을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