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②
휘류륭!
눈보라.
북국(北國)의 황원(荒原)은 끝없이 펼쳐져 있다.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는 설풍(雪風)의 황원을 자욱한 설우가 뒤덮고 있었다.
건곤일색이라고나 할까?
눈(雪).......
천지사방 그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눈 뿐이었다. 그곳을 한 대의 마차가 설풍을 뚫고 가로질렀다. 마차는 설지(雪地) 위를 달릴 수 있도록 특수하게 설계된 것이었다.
바퀴엔 미세한 철심이 박혀 있었고 바퀴의 안쪽에 다시 철판을 길게 받쳐 눈의 저항을 줄이고 빙판에서 속력을 더 높일 수 있도록 안배한 마차였다.
마차를 끄는 말은 튼튼한 대완산 명마였으며 달리는 속도는 놀랄만큼 빨랐다.
마차는 힘차게 남(南)으로 달리고 있었다.
마차 내부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늑했고 훈훈한 훈기가 감돌고 있으며 내부는 화려하고 안락했다. 흔들림조차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편안하여 흡사 아늑한 정실을 연상케 했다.
마주 보고 두 개의 긴 의자가 있었고 두 명의 남녀가 있었다.
여인은 아름답고 성숙했고 남자는 준수했다. 그런데 남자는 긴 의자에 벌렁 드러누워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아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그는 바로 채화공자 즉 반준으로 위장한 천우였고 맞은편 의자에 비스듬히 기댄 채 오래도록 시선을 그에게서 떼지 않고 있는 미녀는 바로 태월아였다. 그녀는 어이가 없었다.
장백을 떠나온 이후 삼 일 동안 줄곧 눈 앞의 사내는 잠만 자는 것이 아닌가? 태월아는 은근히 봉황성으로 향하는 긴 여로에 대해 벅찬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이 무례하고 건방진 사내에게 그녀는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여로에서 그녀는 그와의 달콤한 밀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일 그가 구애(求愛)한다면 결연히 거절해야지.... 그러다가 그의 애를 태운 뒤 살며시 그의 품에 안기리라.'그런데 그녀의 환상은 극락쾌활림을 떠나는 순간부터 산산이 깨어지고 말았다. 반준, 즉 천우는 마차에 오르자마자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아함...! 월아, 날 깨우지 마시오. 나는 한 번 잠자면 몇 날 며칠이고 골아 떨어지는 습관이 있거든."그것이 끝이었다. 정말 그로부터 삼 일 지난 지금까지 그는 한 번도 깰 생각을 않고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기만 하는 것이 아닌가?처음에는 야속하고 괘씸했다.
몇 번이고 그의 콧잔등을 갈겨주고 싶은 심정을 꼭꼭 눌러 참아야만 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또 덧없이 흘러가자 그녀는 그만 비참한 심경에 빠지고 말았다.
'내... 내가 그토록 관심 밖이란 말인가? 이 사람의 안중에 태월아는 그저 하찮은 잡화(雜花)로 밖에 보이지 않는 거야......?'시야가 흐려졌다.
태월아는 사흘 간 잠을 자지 못했다. 피로해진 탓이라고 생각했다. 하나 뺨을 뜨끈하게 적시는 것은 무엇인가?"바보 같은 계집애......."
그녀는 소매 끝으로 눈물을 찍어 눌렀다. 여전히 천우는 얄밉게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골고 있었다.
마차는 여전히 설원을 외롭게 달리고 있었다.
말은 천리준마여서 단 한 번의 휴식도 없이 수천리 눈길을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며칠 후면 만리장성에 닿으리라.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태월아는 마차 벽에 머리를 기댄 채 잠이 들었다. 이 며칠 간 속을 태우며 잠을 자지 못한 탓에 일단 잠에 빠지자 그녀는 깊은 수면상태에 이르렀다.
그녀는 불편한 자세로 앉은 채 잠이 들었다.
그것은 꿈이었을까? 어디선가 부드러운 손길이 다가와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없이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그녀의 상한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쯧쯧... 바보같이 눈물로 얼룩진 채 잠이 들다니, 고운 얼굴이 많이 상했군."그녀는 꿈 속에서 그의 음성을 들었다.
'아아.......'
그녀는 기뻤다.
그녀는 그의 자신에게 그런 관심을 보여준 데 대해 감격했고 눈물은 더욱 흘러내렸다. 사내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입술로 그녀의 눈두덩이에 입을 맞추어 주었다.
"푹 자 두는게 좋을 거야. 설원의 여행은 지루할 테니 말이야......."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는 의식이 몽롱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졸음이 쏟아져 눈거풀이 천 근이나 된 듯 무거워졌다.
'깨어야 해... 바보같이... 잠을 자면 어떻게.......'
그러나 그녀의 의지와는 다르게 온몸이 나른해지며 그간의 섭섭함과 나 의지와는 달리 그녀는 온몸이 나른해지며 곧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꿈이었던가, 현실이었던가?
그녀는 그 판단을 그 후에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으로 지금까지 가슴속에 쌓아두었던 천우에 대한 온갖 야속한 감정들이 봄비를 만난 눈처럼 일순간에 다 녹아버린 것이었다.
폭설(暴雪).
몇 십 년 만의 대설(大雪)이라고 했다.
대륙은 온통 폭설로 뒤덮이고 주먹만한 눈보라가 대륙을 흰 눈 속에 아주 묻어 버리려는 기세였다. 길은 끊어지고 산은 자욱한 눈보라에 도무지 보이지조차 않는다.
태극장(太極莊).
칠십 년 전 남북으로 양단된 문도를 규합하여 일문(一門)으로 단결한 후 그 위세를 크게 떨친 태극문(太極紋).
당금 구파일방에서도 큰 힘을 떨치고 있는 천하십문의 일문이었다. 비록 십문(十門)이 궁지에 몰려 있다 해도 여전히 그 위세는 절대적이었다. 태극장의 태극문양이 크게 그려진 장원문은 굳게 잠겨 있다.
폭설 탓에 출입할 수도 없었기 때문일까?
폭설이 태극장을 온통 파묻으려는 듯 쏟아졌다. 장원 안에서는 불빛이 가물거리고 들리는 것은 온통 눈보라의 회오리 뿐, 숨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저벅, 저벅......!
사방으로부터 눈을 밟고 오는 무거운 발자국 소리가 태극문을 암중으로 조여오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눈보라 속에서 그 소리는 선명하게 들려왔다.
죽음을 통고하는 염라사자의 발자국 소리라도 되는 것일까? 어둠 속 자욱한 눈보라를 뚫고 다가드는 그림자들의 수는 수백 명도 넘었다.
그들은 머리 끝서 발 끝까지 온통 흑색 일면도였다. 폭설을 맞으며 그들은 사방으로부터 규칙적으로 다가들었다.
기이한 일이었다. 그들은 곧 태극문과의 일전을 치를 기세로 주위에 설치되어 있는 태극혜광번안진(太極慧光繁按陳)이 수백명의 흑의인들이 일시에 펼치는 마령구회진(魔靈球回陳)에 의해 삽시간에 파해되는 것이었다.
그 진세는 태극문이 강호에 개문한 이래 그 깊이를 알 수 없으리만치 무공이 심오하다고 전해지는 이대 문주인 선화뇌옹(仙華雷 ) 진추하(秦抽河)의 백년 노작이었다.
매 시진마다 음문과 양문이 팔괘의 변화에 따라 서른여섯 가지 생문과 사문을 열고 닫는 오행문진류(五行門陳流)의 총화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윽고 장원 문 앞,사인(四人)의 흑의인이 나란히 섰고 그들의 머리와 어깨에는 온통 눈이 덮여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산 사람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창백해 보였다. 모두 중년인이었는데 언뜻 서로 닮아 있었다.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에서는 푸르스름한 귀기마저 어리고 있었다.
"크크크... 태극문도 오늘로써 끝장이다. 태극일수(太極一 ) 천인엽(千 葉)과 함께......."우측의 뺨에 굵은 도상(刀傷)이 찍힌 중년인이 음산한 기운을 내며 말했다.
"누구냐?"
대문 안으로부터 날카로운 소리가 터져나왔다.
"크크크... 검은바람(黑風)을 몰고온 지옥사자(地獄使者)다.""어떤 미친 놈이......."
삐-- 익!
문이 열리고 청삼을 입은 중년무사가 얼굴을 내밀다가 그 얼굴이 곧 딱딱한 공포로 굳어지고 말았다.
그는 본 것은 시체 같은 네 명의 중년인과 장원 둘레를 포위하고 있는 흑의인들의 그림자들이었다.
"너... 너희들은 누구냐?"
그는 그 다음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슥!
네 중년인이 일제히 우수를 치켜 들었고 그 순간 네 개의 손바닥에서 홍광(紅光)이 번쩍인 순간,쾅!
"으아악!"
그의 몸은 곧 하나의 잿덩이가 되어 날아갔다. 네 명의 합공에 그는 어이없이 당한 것이었다. 도대체 상상할 수도 없는 수법이었다. 이렇듯 사이한 무공을 사용하는 그들의 정체는 무엇일까?"남김없이 도륙하라!"
어디선가 지옥의 문을 여는 듯한 괴기한 음성이 들려왔다.
슉! 슈욱!
사방에서 흑영이 폭설을 뚫고 담을 뛰어넘었다. 설원을 가득 덮은 흑영들로 인해 삽시간에 천지는 암흑 속에 갇힌 것 같았다.
쾅! 콰르릉!
폭음이 장원 내에서 일제히 울리고 불길이 솟구쳤다. 그와 함께 처절한 비명소리가 연달아 들리기 시작했다.
"적이다... 크-- 악--!"
그것은 지옥도(地獄圖)였다.
흑의인들의 살수는 무정하고 잔악무도했다. 그들이 손을 뻗을 때마다 태극문도들은 그대로 백회혈에서 회음혈까지 양단되어 거꾸러졌다.
퍼-- 엉!
그들이 쓰는 장력은 이제껏 보지도, 듣지도 못한 마공이었다.
장심에서 홍(紅), 청(靑), 흑(黑), 백(白), 자(紫)의 광채가 번쩍일 때마다 태극문도들은 대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죽었다.
아비규환의 대살륙장이었다.
태극문의 무공은 태극신강(太極神 )과 무적혜천태극비모신검류(無敵慧天太極飛矛神劍流)였다. 그러나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그들은 흑의인들의 마공에 속수무책 피를 뿌리며 쓰러져 갔다.
번-- 쩍!
흑의인들의 도(刀)가 난무하면 그들은 허위적거리며 양단되어 쓰러졌다. 흡사 짚단을 베듯 흑의인들은 간단히 그들을 베어 넘겼다.
"아-- 악!"
그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마구 살수를 뿌렸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피에 굶주린 금수였고 인육에 눈이 뒤집힌 식인귀였다.
번-- 쩍--!
하늘도 노했다. 눈보라 속에서 암천이 갈라지며 뇌성벽력이 천지를 온통 붕멸시킬 듯했다.
"허억! 너희들은 북로지옥사살신(北路地獄四煞神)......!"대전 앞, 사 인의 흑의중년인 앞에 태극무복을 입은 육순 가량의 노인이 대경했다.
"쿠후후훗......! 그렇다. 천인엽(千 葉)! 과거 네놈에게 얻은 이 상처를 아직도 기억하겠지?"북로지옥사살신.
근 육십 년 전 천하를 횡행하던 대마두.
그들은 형제였고 북방(北方)에서 왔다.
당시 천하무림의 공적(共敵)으로 북무림도상에서 백도인들에게 쫓겼으며 그 중 대살신(大煞神) 패황(貝黃)은 태극문주 태극일수 천인엽에서 일검(一劍)을 맞았다.
그 후 생사행방이 묘연하던 그들이 한꺼번에 그 앞에 나타난 것이다.
"복... 복수냐?"
"복수? 크카카캇...! 네 놈은 스스로 복수할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우리들은 흑룡강(黑龍江)에서 온 흑사풍(黑死風) 사도들이다.""뭐... 뭣?"
천인엽의 흰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마침내 말로만 듣던 죽음의 검은 바람, 지옥삼겁천의 피의 대장정이 태극문에까지 들이닥친 것이다. 그는 순간 절망을 떠올렸다.
"크핫핫핫......! 받아라!"
번-- 쩍!
네 줄기 붉은 광채가 폭사되었다.
"어딜!"
째-- 앵!
태극신검이 발출되고 태극환과 함께 막강한 은빛 검강이 사위로 폭사되었다.
"쿠후후......."
네 가닥 홍광과 검강이 격돌한 순간 천인엽은 눈앞이 캄캄해짐을 느꼈다. 이어 그는 모든 지각능력을 상실했다.
"으아아악--!"
그의 몸은 잿덩이가 되어 눈보라 속으로 흩어졌다.
"크흐흐흐... 깨끗이 쓸어 버려라!"
"모조리 불태워라!"
"크핫핫핫...! 흑사풍의 선물이니라!"
비명, 절규, 피보라 속에서 태극문의 붕괴는 불과 반 시진 만에 그 수백 년의 전통을 일시에 종지부 찍고 있었다.
무서운 혈겁이었다.
교자.
윗통을 벗은 거한 팔십 일 명이 메고 있는 거대(巨大)한 교자 위에는 온통 흑색의 악마신상(惡魔神像)이 앉아 있었다.
휘류류륭......!
폭설 속에 악마상은 이빨을 드러내 웃고 있으며 여덟 개의 팔에는 각각 인두(人頭)를 움켜쥐고 그 중 하나를 막 입으로 집어 넣으려 하고 있었다. 두 눈에는 시퍼런 귀화(鬼火)가 타오르고 있어, 정녕 지옥의 염라귀가 환신한 것 같았다.
팔십 일 명의 교자를 멘 장한들의 벌거벗은 웃통에는 흑문신(黑紋身)이 어지럽게 새겨져 있었다. 악마의 문신인 듯 하나같이 일신에 공포스러운 악귀의 모습과 해골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들은 표정이 없었다. 혼을 빼앗긴 것처럼 눈동자는 초점 없이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교자는 태극장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있었다. 이윽고 활활 시뻘건 화염기둥으로 변한 태극장으로부터 살룩을 마친 흑의인들이 교자를 향해 다가왔다.
그들은 언덕에 이르자 모두 엎드렸고 지옥사살신이 앞으로 나섰다.
"혈우마마천제(血雨魔魔天帝)께 보고 드립니다. 사망자는 오백 팔 인, 전멸입니다."그러자 묵신악마신상으로부터 음산한 음성이 들려왔다.
"생존자는?"
"없습니다."
대살신의 음성은 떨려나왔다.
"흑사병의 희생자는?"
"오... 오십 일 명입니다."
"크크크... 그렇다면 곧 채워라."
"무... 물론입니다."
"크크크... 그 동안 투항자는 모두 몇 명이냐?"
"총... 삼천 육백 십 명입니다."
"그들을 흑룡강에 보내 지옥연화동(地獄練火洞)에 넣어 연단시킨 후 흑사병에 귀속시킬 것이다. 우리는 계속 남하한다.""하(下)-- 명(命)--!"
"크크크... 눈(雪)이 많이 오는군. 그래, 마치 고향에 온 것 같군. 우리가 떠나온 흑룡강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눈이 내리겠지?"혈우마마천제는 광소를 터뜨렸다. 묵신악마신상 속에서 그 광소가 들렸다.
"크핫핫핫핫...! 중원(中原)이여! 이제 너희들은 흑룡족(黑龍族)의 위대한 발길 아래 무릎을 꿇을 것이다! 크하하하......!"벽력음으로 천지가 진동한다.
번-- 쩍!
뇌전이 묵신악마신상의 정수리에 떨어지자 악마상은 여덟 개의 팔을 일제히 움직이며 저주스런 마소(魔笑)를 터트렸다.
"크하하하핫... 크카카캇......!"
죽음의 검은 바람.
지옥삼겁천(地獄三劫天)의 일원인 흑사풍은 동북무림(東北武林)을 철저히 유린했다. 한동안 소강 상태에 빠졌던 무림은 다시 피의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중원은 세 개의 바람 속에 절망상태에 빠졌다. 죽음의 검은 바람, 미친 모래바람, 피바람이 다시 불어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북(河北) 석문(石門)에 있던 십대문파의 하나인 태극문(太極紋)의 참화를 시발로 다시 지옥삼겁풍은 피비린내를 풍기며 중원을 휩쓸기 시작했다.
거기에 미친 듯한 설풍(雪風)마저 가세했으니 천지에 뿌려진 정파무림의 피는 더욱 선명했다.
중원의 상황은 점점 더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여기에 천외사패(天外四覇)마저 그들의 중원 무림에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혈겁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중원무림은 헤어날 수 없는 늪 속에 빠진 것이다.
석문을 떠나온 마차는 그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마차 안.
"흐흠... 혈우마마천제란 자는 상상보다 훨씬 더 미개한 자로군. 그 따위 어설픈 신상 속에 숨어 부하들에게 위엄과 겁을 주려 하다니 말야."채화공자 반준 즉, 천우가 중얼거렸다.
태월아는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는 듯 어깨를 떨었다.
"그... 전체가 묵빛인 악마상은... 생각만 해도 소름끼쳐요. 보셨어요? 악마상이 들고 있는 여덟 개의 인두는 정말 사람머리였어요. 그 웃음소리는 정말 악마의 웃음소리였어요."천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히죽 웃었다.
"미개인들은 공연히 그런 식으로 허세를 부리는 데가 있지.""흑사풍... 정말 무서운 자들이예요. 그래도 중원 정통의 십대문파의 하나인 태극문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다니......."태월아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어렸다. 그녀도 말로만 듣던 지옥삼겁천이라는 가공할 집단의 위력을 실제로 목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태극문의 혈겁.
그들은 마침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볼 수 있었다. 천우는 줄곧 냉정히 그들의 혈겁을 지켜보았다.
그도 중원인이다. 그는 몇 번이나 뛰쳐나가 흑사풍의 졸개들을 단숨에 도륙내고 싶었으나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었다. 한순간의 호승지심으로 대계를 그르칠 순 없었다.
천우의 가슴 속에는 누구보다 뜨거운 피가 끓고 있었다. 그러나 그 피는 냉철한 이성에 의해 폭발하지 않고 부글거리며 속으로 갈무리되어 있었다. 그는 훗날을 기약했다.
그는 봉황성으로 가야 했다. 그것도 원수를 아버지라 부르기 위해 가는 것이다. 그것은 무림을 위한 일이었고 또한 난세무림의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대의(大義)를 위한 것이었다.
천우에게 이미 복수란 부차적인 문제였다.
그는 기인총주(奇人總主)다.
그에게는 천하가 있었다. 천하는 군림하려는 자의 것이 아니라 아끼고 사랑하며 수호하는 다수의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그러나 하늘은 이 모든 것의 위에 있다. 그것을 모르는 인간은 야망을 위해 수천 만명의 무고한 인명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죽이는 것이었다.
그들은 무림을 얻기 위해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아버린 것이다.
천우는 남하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무림은 그의 고향이다. 무림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무를 사랑하는 사람 모두의 것이며, 무림이란 숱하게 반복되어진 의(義)와 협(俠)의 역사, 그 자체이기도 했다.
중원의 혈겁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중원인은 스스로의 힘을 너무 믿었고 지나치게 안일했다. 그 결과 헛된 야망을 품는 무수한 욕망의 화신을 낳았으며 그들은 무림을 그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거침없이 무림을 파괴하고 있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무림을 초토화시키고 나서 그 위에 올라서서 제왕의 관을 쓴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무림이, 수많은 지아비를 잃은 미망인과 고아들과 붕우들을 잃고 치유불가능할 정도로 극심한 절망과 저주의 늪에 빠져 있는 무림이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말이다.
무림은 그 누구의 야망에 의해서 정복되어질 곳이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천리로서만 다스려지고 수천년을 면면이 이어져 내려온 의에 대한 신념과 완전함에 대한 뼈를 깎는 노력만이 진정한 무림의 주인인 것이다.
그러나 야망의 덫에 걸린 자는 그런 이치를 알지 못할뿐더러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즐독입니다
즐독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고맙습니다^^
즐독 합니다!
순국 선열에 대한 묵념~
감사합니다
즐감
즐감 감사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
감사
즐독 입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즐독입니다
즐감
잘 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