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 한 스님이나. 노년스님, 스님들을 욕하고 비방하는 사람의 말로를 보며 - 끝까지 읽어 보세요.
불교신도가 출가한 스님들을 욕하는 경우, 당사자의 말로(末路)가 좋지 않다. 또는 가족들이 재앙을 입든가 해를 당한다. 불교신도 중에서 입이 날카로운 사람들, 스님들 욕을 잘하는 주변 사람들의 말로를 살펴보면 안다. 말년에 외롭다든가, 자식이나 가족들로부터 배척을 당하는 과보를 받는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인과응보를 받는다. 그런 과보들 중에서 삼보를 비방한 죄는 크고 무거운 대죄(大罪), 중죄(重罪)에 해당된다. 경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는 것은 보통의 일이 아니다. 자못 희유한 일이다. 나라에서 10년 만에 과거를 시행해 열명이 급제했다면, 사람 중에 스님이 된 건 그 열 명과도 같다. 그와 같이 드물고 드문 일이 출가하여 스님이 되는 일이다. 매우 특수하고 귀한 신분이 스님이다. 그럼에도 신도가 스님과 가깝다 보면 범상하게 본다. 타성에 젖어서다. 여기서 퍼득 정신 차려야 한다. 보통 사람이 대통령을 욕하면 비방죄나 명예훼손 죄에 걸리는 것과 같이 신도가 스님을 욕하면 그보다 더한 죄를 받게 된다. 무간지옥에 떨어진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일이다. 충분한 이유가 있다.
스님의 출가는 신성한 일이고 아무나 흉내 낼 수조차 없는 지극하고 존엄한 일이다. 그러므로 스님이 되면 크고 큰 공덕(功德)이 있다. 사람들이 스님들을 보게 되면 부처님을 생각하게 된다. 부처님처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이 부처님에게 욕을 하면, 그 인연으로 불자가 된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스님 한 사람이 집안에 태어나면 구족(九族)이 천상(天上)에 태어난다.
비록, 어느 스님이 살다가 처음 마음을 한 때 등졌다고 해도, 그 처음 마음이 어디로 달아난 게 아니다. 때가 되면 다시 복원된다. 신도들은 스님들의 비행을 보고, 성급하게 욕하기 앞서 스님의 그 처음 마음이 복원되도록 부처님께 간절히 기도 한다. 신도는 눈앞이 아닌 멀리 앞을 바라보고 기도 한다. 기도하는 사람은 결코 남 욕하지 않는다. 스님들이 옳지 못해서 불교가 망하고, 거기다 신도들이 욕해서 불교는 더 망한다. 깡그리 망한다.
그러나 스님들의 비행을 보고, 욕부터할 게 아니라 스님들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갈 걸 간절히 기도하면 불교는 흥한다. 반드시 흥하고 만다. 불교의 흥망은 오로지 신도들에게 달렸고 기도에 달렸다. 그리고 신도는 스님들의 비행을 보면 꼭꼭 파묻고 감춰야 한다. 위법(僞法)이라고 해도 파묻고 감추는 게 우선이다. 불법을 지키고 수호하는 일이어서다. 꼭꼭 파묻어야 불법이 지켜진다. (타종교에선 이 점을 몹시 잘한다. 잘하는 건 우리도 힘써 배우자.)
인도 보드가야의 대탑이나 산치 대탑은 파묻어서 지킨 탑이다. 무자비한 적, 이슬람이 인도대륙에 쳐들어 왔을 때 당시의 불자들은 죽음으로 목숨을 걸고 그 탑을 땅속에 파묻었다. 파묻었기에 훗날 탑이 온전할 수 있었다. 파묻어서 지킬 일은 탑만이 아니라 스님들의 비행도 파묻어야 한다. 때가 되면 참회가 되어 온전한 모습으로 다시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기도이고, 보호하는 땅 속은 신도의 가슴 속이다.
스님의 비행(非行)을 보거던 욕하거나 비난하지 말고, 천 개의 창으로 자기 가슴을 찌르는 것 같이 아파해야 한다. 그게 파묻는 거다. 신도의 가슴에 파묻는 거다. 결코, 욕하거나 비방해서 안 된다. 불법(佛法)을 쇠퇴시켜선 안 되기 때문이다. 불자가 다니는 절[本刹]의 스님을 욕해서, 불법(佛法)을 쇠퇴시키면, 절이 폐사가 되고, 세상은 어둠 속에 빠져 망한다.
이점을 간과하거나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부디, 입으로 짓는 죄로 살아서도 무간지옥, 죽어서도 무간지옥으로 직행하지 말아야 한다. 가령, 스님들의 비행을 봤다고 신심이 떨어져 절과 인연을 끊거나 개종을 한다면 그는 그것 밖에 안 되는 신앙수준이다. 이미 그는 불자도 아니다. 부처님을 믿거나 우러러 바라보면, 그 어떤 것에도 걸리지 않게 된다. 땡초스님 따위들의 비행은 안중에도 없다. 어찌, 숭고한 부처님 진리에서, 법의 위신력에서 물러설 수 있으랴.
대덕사
보명ㆍ경우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