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24. 월요일
임은미(유니스)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나의 성장 과정을 귀히 여겨 주시는 하나님!" 창세기 22장
지난 2주 동안 나는 설교하지 않았다.
대신 오는 11월이면 신학교를 졸업하게 되는 우리 교회 신학생들에게 모세 목사님의 허락을 받아 설교할 기회를 주고 있다.
이번 주에도 신학생 한 명이 설교했는데 설교를 정말 잘했다.
어제 설교의 주제는 ‘하나님의 시간과 기도’였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때에 응답받는 것,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기도하면서 무엇을 보호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다섯 가지 포인트로 설교했다.
그 가운데 마지막 포인트가 특별히 내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하나님, 제가 미성숙할 때 저를 높이지 말아 주십시오.”라는 포인트였다.
영어로는 "Cover me from premature promotion!"이었다
우리가 아직 성숙하지 않았는데 너무 일찍 높은 자리로 올라가게 되면 그 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가!
직분이든 지위든 영향력이든 그것을 감당할 만한 인격과 성숙함이 준비되지 않았는데 먼저 높아지면, 그것이 복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어려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라는 것이다.
“하나님, 제가 아직 미성숙할 때는 절대로 저를 높이지 말아 주세요. 저를 먼저 성숙하게 해 주세요.”
참 깊이 있는 설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제 이 교회에서의 사역을 내려놓고 내 제자들에게 교회를 맡겨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그러니 제자들이 어떻게 설교하는지,
그들의 인품은 어떠한지,
교회를 맡아 섬길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살펴보게 된다.
그런데 어제 설교를 들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제는 다 맡겨도 되겠구나.’
‘이제는 정말 떠나도 되겠구나.’
우리 교회는 누가 설교하든 설교가 끝난 후 기도 시간이 되면 선교사인 우리 남편과 나 그리고 교회의 목회자들이 강단 앞으로 나간다.
그리고 기도 받기 위해 앞으로 나온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 머리에 손을 얹거나 어깨에 손을 얹고 기도해 준다.
어제도 설교가 끝난 후 강단 앞으로 나온 많은 사람을 한 사람 한 사람 기도해 주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선교사로서 이제 현지인 지도자들에게 이 교회 사역을 온전히 맡기고 물러서야 하는 이 시점에 하나님께서 참 많이 도와주셨구나!
아니, 많이 도와주신 정도가 아니라 전부를 도와주셨구나!
찬양 인도자들도 잘 세워졌고,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들도 잘 세워졌고, 교회를 움직이는 모든 시스템도 견고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너무나 감사한 주일이었다.
나는 이제 곧 케냐를 떠난다.
그리고 다시 케냐로 돌아오는 것은 내 계획으로는 아마 내년 4월 말쯤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사람이 계획을 세울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내가 언제 다시 케냐에 오게 될지는 하나님만이 아신다.
내년 8월에는 미국에서 오는 단기 선교팀 한 팀을 받기로 했다.
앞으로 내가 직접 받는 마지막 단기 선교팀이 될 것 같다.
그러니 내년 8월에는 분명 케냐에 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계속 내 마음에 들어오는 성경 구절 한 말씀이 있다.
“이제 여기를 떠나자.”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이다.
이제 나도 이곳을 떠나도 된다는 마음이 든다.
감사한 것은 불안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안심하고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시작하면 마치는 때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만큼의 성과를 거두었는가..
그 일만을 보시는 분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그 일을 하는 동안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만났는지, 하나님과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더 깊어졌는지, 하나님은 그 모든 과정을 보고 계셨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의 시간을 하나님은 중요하게 여겨 주셨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감사로 귀결된다.
처음 케냐 선교사의 사역을
감사로 시작했고,
감사로 굽이굽이 모든 과정을 지나왔고, 이제 감사로 주님 인도해 주셨던 사역의 한 챕터의 문을 닫는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 하나님께서 계셔 주신 것이 감사하다.
처음에는 사람을 기대했던 시간들,
그러나 사람은 기대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할 대상이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가르쳐 주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내 시선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되기를 원한다.
예수님 단 한 분만으로 충분하고,
예수님 단 한 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나의 남은 삶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소원한다.
우리말성경 창세기 22장
8. 아브라함이 대답했습니다. “내 아들아, 번제로 드릴 양은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 두 사람은 함께 계속 길을 갔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 마음에 오래 머무는 표현이 있다.
“두 사람은 함께 계속 길을 갔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삭이 누구인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오랜 세월 기다리게 하신 후 주신 약속의 아들이었다.
아브라함에게 가장 귀하고 가장 소중한 존재였을 것이다.
그런 이삭을 하나님께서 바치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이삭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곳을 멀리서 바라보게 된다.
그때 아브라함은 종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려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로 가서 경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겠다.”
나는 이 말씀을 읽을 때 궁금한 것이 있다.
“우리가 돌아오겠다!”
왜 아브라함은 “내가 돌아오겠다”라고 하지 않고 “우리가 돌아오겠다”라고 말했을까?
그냥 종들에게 건넨 인사말이었을까?
신약의 히브리서는 아브라함의 마음을 조금 더 분명하게 설명해 준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도 살리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9절)
그러니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을 바쳐야 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약속의 아들 이삭을 다시 살리실 수도 있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은 계속해서 함께 걷는다.
그 길에서 이삭이 묻는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여기 있는데 번제로 드릴 양은 어디 있나요?”
이 질문을 들었을 때 아브라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아브라함은 대답한다.
“내 아들아, 번제로 드릴 양은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
그리고 성경은 다시 말한다.
“두 사람은 함께 계속 길을 갔습니다.”
나는 오늘 이 “계속 길을 갔다”라는 말씀을 묵상하게 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이삭을 바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집을 떠나 실제로 이삭을 제단에 올려놓기까지 사흘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그 사흘 동안 아브라함의 마음에는 어떤 생각들이 오고 갔을까?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정말 제대로 들은 것일까?”
“사라에게 이야기하고 와야 했던 것은 아닐까?”
“정말 내 아들을 내 손으로 죽여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 아들을 통해 후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렇다면 내가 이삭을 죽인다 해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 주실 수 있지 않을까?”
성경에는 아브라함이 사흘 동안 이런 생각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한 아버지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데리고 사흘 동안 걸어가는 그 길이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갈등도 없는 길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집을 나설 때부터 그의 마음을 알고 계셨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미 순종하기로 작정했다는 것도 알고 계셨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그 자리에서
“됐다! 아브라함아! 네 마음을 내가 알았다!”
라고 하지 않으셨을까?
왜 사흘 길을 걷게 하셨을까?
오늘 나는 그 **“사흘의 과정”**을 생각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마지막 순종만 보신 것이 아니라 그 순종의 자리까지 걸어가는 모든 과정도 보고 계셨을 것이다.
아들을 데리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아브라함의 마음도 보고 계셨을 것이다.
믿음과 갈등이 교차하는 순간도,
이해되지 않지만 계속 걸어가는 발걸음도 하나님은 모두 보고 계셨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이삭을 죽이려 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내가 알았다.”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하나님은 결과만 보시는 분이 아니시니 감사합니다!
내가 무엇을 이루었는지, 어떤 성과를 냈는지, 마지막에 얼마나 멋지게 순종했는지만 보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 순종의 자리까지 가는 동안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생각과 갈등과 고민과 씨름까지도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나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 주십니다.
내가 완전한 믿음으로 걷지 못하는 순간에도,
마음에 갈등이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향해 계속 걸어가는 그 한 걸음 한 걸음을 하나님은 귀하게 여기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오늘도 내가 순종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면서 그 순종까지 가는 과정에서 마음에 여러 생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들의 흐름을
그리고 모든 일에
과정을
주님이 귀히 여겨 주시고
저랑 동행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 종일 기쁨을 넘어서 감동을 받으시면 참 좋겠습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
2026. 8. 24.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출. 석. 부르고 있습니다.
대답하셨나요?
사랑하는 그대여
오늘 그대는 무엇을
순종해야 하는지요?
순종하라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어제 들으셨나요?
한 달 전에 들으셨나요?
지금도 그 순종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과정에
그대가 계신지요.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그대를 귀히 여기십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축복합니다.
오늘도 그대의 최고의 날입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말은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대사여'를 줄여서 말하는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