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최초 설법을 들은 다섯 사문 가운데 막내 격인 아사지 비구는 걸식을 나아가 그날도
"모든 괴로움은 연을 따라 일어나니, 그 연을 멸하면 괴로움은 멸한다네" 를 중얼거리며 걸었는데..
그 말은 들은 마하연과 사리불은 내용이 심상치 않음을 느껴 아사시 비구에게 뜻을 묻는다.
그러자 아시시 비구는 즉답을 하지 않고 둘에게 석가모니 스승을 찾아가라 권했다.
세존 당시 불제자들은 누가 불법을 물으면 "가서(와서) 보아라" 하여.. 질문자 스스로 세존을 찾아가 보고 듣고 느끼라고 하였다.
듣고, 들은 것을 기억하며 사유하여.. 결론에 이르는 길에는
신 가운데에서도 으뜸이라는 브라흐마나 비슈누, 시바 처럼 아무리 위대한 신이라도 끼어들 틈이 없다.
그렇듯 철저하게 자기와 스승 사이에서 자등명 법등명이라 하듯..
스스로 스승이 가르친 법을 밝히는 방식의 불교가
대승불교가 되면서 보살마하살이라는 가면 쓴 신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하여
"본래 공인데 무엇이 있으며, 본래 공인데 무엇인들 없으랴" 라고 가르치기에 이른다.
만일 세존의 제자가 저 말을 들었다면 천천히 되 물으리라..
"본래 공임을 누가 보았으며, 본래 공인 것을 어떻게 보여줄 것입니까?".
이해 경계를 벗어난 것은 말하지 않는 법이기에..
인과법에 의해 만물의 시작이 있었으므로 현재 만물이 있다고 생각한 서양의 자연철학자들은
최초원인은 공기[風]다, 물이다 또는 불이다 라는 주장을 보면.. 듣는 자들이 분명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공기가 아닌 비물질인 공(空)이라 하면 그게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당연히 나온다.
<반야심경>을 보면.. 관자재보살님은 반야바라밀을 깊이 행해 5온이 공임을 보았다고 했다.
우리는 반야바라밀을 깊이 행했다 하여도 5온이 공임을 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보살님은 누구나 인정하는 5온을 바탕으로 공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그러나 법좌에 오른 법사는 그곳에 참석한 청중은 마치 공은 당연한 것처럼.. 몰라도 관계없다는 것처럼..
"본래 공인데.." 하고 말을 시작한다.
그 뿐 아니라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있다와 없다라는 양 극단을 사용하지 않는가..
본래 공인데 누가 부자고 누가 가난한단 말인가..
본래 공인데 우파가 어디있고 좌파가 어딨느냐..
본래 공인데 쾌락인들 어쩌며 고행인들 어쩌리..
본래 공인데 살고 죽는 게 있을 손가..
공을 모르는데 저 뜻을 바르게 새길 수 있을 것이며, 색즉시공이요 공중무색을 어찌 구별하여 이해할 수 있을까?.
노자는 말하길 자연은 자비하지 않다고 했지만..
부처님이 인간과 신의 스승[天人師]인 까닭은 자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부처님을 모시는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깊이 행하니 5온이 공이란 점을 관찰했다고 하는데..
어찌 불보살님 제자인 자들이 자비없이 '본래 공인데..'라고 처음부터 엄포를 지르냐 말이다.
봤어? 어떻게 보여줄건데?!
"이래서 공이다" 라고 하며..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래서'를 먼저 보여줘야지..
얼마 전 동안거가 끝났으니 참여한 수행자는 큰 소식 들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안거를 시작하면서 큰스님께서 본래 공인데 하면.. 안거에 글어간 수행자들은 본래공을 찾아 나서는 것은 참진 수행이고,
안거가 끝났을 때 큰스님께서 본래 공인데 하면.. 안거를 마친 수행자는 미소를 지으며 소이부답으로 알아들으면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일까..^^
그렇게 잘 이해하는 수행자들은
'이래서'를 잘 설명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대중 앞에서 본래 공인데.. 하면 잘못인가?.
아니다.
대승불교는 듣고 이해를 시작으로 하는 근본불교와는 달리 믿음을 바탕으로 시작한다.
대승불교에서 모두가 본래 공이라는 것은 이해의 영역이 아니라 믿음 영역이다..
스스로는 아직 이해하지 못해도.. 믿음으로 '그렇구나' 하면서 시작하는 게 대승불교다.
그러니까.. 무조건 유일신과 예수님을 믿고 시작하는 기독교와 대승불교는 비슷한 출발이 되는 거네..
대승불교의 믿음은 기독교의 믿음과 비슷하여 두 종교가 화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지만..
사실 비슷하게 보이나 안을 보면 분명히 다르다. (계속)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