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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
천우는 문득 온몸이 경직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온몸의 자유(自由)를 잃고 만 것이었다.
갑자기 의자의 팔걸이에서 은사슬이 솟아 그의 두 팔을 묶었고 허리도 하나의 은사(銀絲)가 한 바퀴 휘감았다. 뿐만 아니라 발목에는 무엇인가가 감겨지는 느낌이었다.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는 피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가슴이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만년한삭(萬年寒索)으로 만든 포승줄이었다.
물론 그의 호신강기로 쉽게 끊어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는 마음속에 어떤 암계가 벌써 세워져 있는 듯 짐짓 낭패스런 표정을 지으며 단목신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단목신수가 담담하게 말했다.
"자네는 하나의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그는 태연히 말하고 있었다. 마치 천우의 처지는 그 자신의 뜻과는 관계가 없다는 듯이 그는 천우에게 등을 보이고 서서 말했다.
천우는 쓴웃음을 웃었다.
"이렇게 제압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단목신수는 빙그레 웃었다.
"때로는 그런 유치한 수법이 가장 효과적일 때도 있는 법일세."이어 그는 천우를 지긋이 내려다 보며 말했다.
"극락쾌활림에서 온 자네이므로 이곳이 어떤 곳이며 노부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알고 있을 것이네."천우는 히죽 웃었다.
"그것은 불초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네의 정체는 무엇인가?"
단목신수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오자 천우는 이상하다는 듯 되려 반문했다.
"정체라니요?"
"감추려 해도 소용없네. 노부는 전 무림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고 자부하네. 현무림에서 자네같이 강한 청년을 키울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흔하지 않지.""불초를 높이 봐주어 감사합니다만......."
"자네의 사부는 누군가?"
천우는 고개를 저었다.
"사부는 없습니다."
"그 말을 믿을 것 같은가?"
"하하... 믿지 않으려면 도리가 없읍니다만 어쩌겠소이까? 그럼 거짓을 말하라면 하겠소이다. 나의 사부는 장자(莊子)......."단목신수의 물같이 담담하던 눈에서 불꽃이 퉁겼다. 순식간에 그의 우수(右手)가 수평으로 뻗었다.
펑!
"윽!"
천우는 손발이 묶여 있으므로 그에 항거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도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 호신강기를 펼칠 수조차 없었다.
단목신수의 일격에 격중당하자 그는 가슴이 으깨어지는 듯한 충격과 고통을 느꼈으며 그 순간 입으로 한 사발의 핏덩이를 토해내고 말았다.
무황의 일장(一掌).
그것은 보통 고수의 장과는 다르다.
그의 일장은 만년강모(萬年鋼毛)라 해도 단숨에 가루로 만들 수 있는 가공할 위력을 지닌 것이었다. 천우는 호신강기를 순간적으로 끌어올렸으나 장력을 맞는 순간 곧 그것이 흩어지는 것을 느꼈고 의식을 잃고 말았다.
단목신수는 그런 인물이었다. 일단 마음을 먹으면 경고 따위는 하지 않으며 죽이고 싶으면 그저 죽일 뿐이다. 이제껏 그의 뜻이 어긋난 적은 없었다.
처음 단목가영으로부터 전서를 받았을 때 그는 채화공자 반준에 대해 호기심을 가졌었다. 누구나 그와 동류의 인간을 만난다는 것은 일종의 기쁨이었다.
그러나 그를 대한 순간 그는 은근히 분노가 치밀었다. 자신은 천하제일인이다. 그런데 새파랗게 젊은 반준이라는 작자는 도대체가 안하무인이지 않은가?그는 살기를 느꼈고 무정수(無情手)를 발출했다. 그것으로 그를 죽이는 것은 간단한 일이었다.
그런데, 정녕 꿈에도 생각지 못하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헉...! 저것은...!"
천우의 가슴은 짓이겨져 있었다. 뼈가 드러날 정도로 뭉개졌고 옷자락은 가루가 되었다. 피와 살점으로 뭉개진 앞가슴에서 푸른 빛을 발하는 구슬(珠) 하나가 그의 시선을 끄는 것이 아닌가?"천(天)... 목(木)... 신주(神珠)......."
단목신수는 마치 낙뢰에 얻어맞은 것처럼 전신이 뻣뻣해졌다. 그리고 지체없이 그 자리에서 몸을 던지듯 신형을 날렸다.
세상에 태어난 이래 아무도 사랑한 적이 없었던 그였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가문(家門)의 수백 년 동안 축적되었던 야망의 화신(化身)이 되도록 강요받았다.
제왕현수신가(帝王玄水神家)는 그의 탄생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는 제왕(帝王)이 되어야 했다. 어린 그에게 강요된 것은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뛰어넘는 모든 것이었다.
정(情)을 버려야 했다.
어릴 적부터 그는 모든 것을 배웠다.
무공(武功).
병법(兵法).
계략(計略).
기관술(機關術).
용병술(用兵術).
그가 가장 고통을 느낀 것은 무정(無情)을 배우는 일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정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자라면서 배웠다.
오 세 때 그는 살인(殺人)을 했다. 그의 부친은 그의 손에 거치도록 들려주고 부친이 보는 앞에서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다섯 살의 소동은 울면서 한 사나이의 목을 내리쳤다. 한 번에 목을 끊지 못한 그는 수십 번을 내려쳐야만 했다.
일곱 살 때 그는 홀로 사창가에 버려져야 했다. 그로부터 열 두 살때까지 그는 사창가에서 벌레만도 못한 삶을 배우고 체험했으며 열 살 때 동정을 늙은 창녀에게 빼앗겼으며 그 다음날 그녀를 죽였다.
그 동안 그가 상대한 창녀는 모두 죽었다.
열 다섯 살 때에는 동영(東瀛)으로 건너가 동영 인자마교(忍者魔敎)에 입문(入門)했다. 인자마교에서 인자술(忍者術), 은둔술, 잠입, 추적, 수백 가지 살인술을 익힌 그는 십 팔 세때 인자마교의 교주와 그의 일가를 몰살시킨 후 다시 중원으로 건너왔다.
제왕현수신가에 돌아온 그는 비로소 가공(家功)을 전수 받았으며 또한 만권경서(萬卷經書)를 읽었다.
이십 오 세 때 그는 얼굴 없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그는 야망의 길을 걸었다. 중원무림에 처음 출도했을 때 그는 네 명의 기재를 만나게 되었다. 그들과 함께 그는 그 시대 최고의 기재로 일컬어졌다.
천중오정(天中五鼎)이란 칭호는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는 독보인(獨步人)이 되어야 했다.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이 되어야 했다. 그는 자신이 배우고 익힌 모든 수법을 총동원했고 마침내 그는 원하는 모든 것을 얻었다.
한데 무정(無情)하던 그의 얼음심장이 단 한번 꼭 한번 뜨거운 정열로 녹아버린 적이 있었다.
여인(女人).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여인을 보는 순간 그의 얼음심장은 여지없이 타올랐고 그의 사라졌던 얼굴에는 표정이 되살아났다.
십지천화(十地天花) 송문연(宋文燕).
천중오정의 일원이었던 그녀는 그의 생의 꿈이자 모든 것이었다. 네 명의 기재는 모두 그녀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를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 야심도 그는 이룰 수 있었다.
그가 천하제일인이 된 후, 그는 십지천화를 아내로 맞이한다. 그러나 그것이 상상치도 못했던 엄청난 비극을 불러 일으키게 될 줄이야!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 십지천화가 미쳐버린 것이다.
그의 핏줄을 잉태한 채 그녀는 미쳐버린 것이다. 그는 그래도 그녀를 사랑했고 자신의 핏줄과 그녀를 위해 천하를 이잡듯이 뒤져 고금의 영약기초란 것은 모두 구해 그녀에게 복용시켰다.
뱃속의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고, 그가 태어나면 천하제일의 기재가 될 것은 틀림없었다.
한데 사라진 것이다.
십지천화는 출산일을 불과 한달여 남기고 돌연 광기(狂氣)가 격발되어 무사 오십여 인을 죽이고 어디론가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는 자신이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수천 수만의 고수를 풀어 천하를 이잡 듯이 뒤졌다. 그런데 바다에 빠진 바늘이기라도 한 듯 그녀와 그녀가 출산했을지 모를 그의 핏줄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돌아왔다.
그토록 애타게 찾고 찾았던 자신의 핏줄이 이렇게 바로 자신의 앞으로 스스로 돌아온 것이 아닌가?단목신수는 격동의 시선으로 천우를 내려보고 있었다.
아방궁을 연상케 할 정도로 화려한 침전.
호화로운 침상에 누워 있었고 그의 가슴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져 있었다. 단목신수는 넋을 잃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천우가 목에 걸고 있는 천목신주를 본 순간 전율을 느꼈다. 그것은 그의 아내 십지천화가 늘상 품고 있던 것이었다.
제왕오대신주의 하나인 천목신주.
그것을 천우가 지니고 있다면 그는 치밀한 인간이었다.
그는 천우 즉, 반준의 피를 찍어 맛보았다. 그 핏 속에는 영약(靈藥)의 신험한 냄새를 느낄 수가 있었다.
'오오... 내 아들...! 아들이다!'
그렇다.
과거 그는 십지천화에게 수백 종의 희귀한 영약을 복용시켰다. 그 영약은 태아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아이가 태어나면 어미의 핏속에 영약의 기운이 흐를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천우는 사흘 만에 깨어났다. 눈을 뜬 순간 그는 단목신수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성주, 왜 불초를 죽이지 않으셨소?"
단목신수는 격동을 일으키더니 그의 손을 잡았다.
"너는... 너는... 모르겠느냐? 노부가 네 아버지라는 사실을?""......?"
천우는 짐짓 어리둥절한 표정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성주께서는 사람을 놀리는 각별한 취미가 있으시구료? 후후... 이런 식으로 사람을 끌어 들인다면 성주의 아들은 대체 몇이나 되는 것이오?"모욕적 언사였으나 단목신수의 얼굴에 분노의 기색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 구슬은 너의 것이냐?"
천우는 힐끗 천목신주를 보고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이다. 그건... 본래 어머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유물이오.""그... 그녀는... 아직 살아 있느냐?"
단목신수의 음성이 급격히 떨렸다.
천우는 이상한 듯 물었다.
"성주는 모친을 알고 있소?"
"사... 살아 있느냐고 물었다......!"
"죽었소."
천우의 시큰둥한 말에 단목신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어떻게 죽었느냐?"
"광증이 재발하여 죽었소."
"그녀는... 너에게 부친이 누구냐고 말해주지 않았느냐......?"천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모친은 줄곧 기억을 잃고 있었소. 그녀는 항상 먼 하늘만 바라보는 것이 일이었소.""너는... 누구에게 무공을 배웠느냐?"
"모친은 가끔 내게 무공을 전수하곤 했소. 그리고... 우연히 한 산동(山洞) 속에서 기연을 만나 그곳에서 얻은 무명비급(無名秘 )을 통해 나 스스로 익혔소.""그녀는... 줄곧 혼자 살았느냐?"
천우는 그 말에 히죽 웃었다.
"그녀는 몹시 다정다감한 여자였소. 그녀는 한시도 남자 없이는 살 수가 없는 여자였소. 후후... 송령산(松嶺山) 일대의 사냥꾼이라면 그녀와 한 번 자보지 않은 자가 없을 지경이었소.""그... 그게 정말이냐?"
무섭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단목신수는 천우의 거짓말에 흡사 비수로 가슴을 파헤쳐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런 종류의 인간은 자부심이 무척 강하다. 그는 자부심에 큰 손상을 입은 것이었다.
천우는 그의 충격을 받는 모습에 한술 더 떴다.
"그녀는 인기가 좋았소. 얼굴이 예뻤을뿐더러 그 방면의 기술도 몹시 좋았던 모양이오. 사냥꾼들은 매일밤 서로 그녀와 자려고 대가리가 터지도록 싸웠으니까.......""그만!"
단목신수의 얼굴에 살얼음이 어린 듯 차가와졌다.
"너는... 그 놈들을 그냥 두었느냐?"
"후후... 그들은 나의 친구들이오. 내가 채화공자가 된 것도 그들 덕분이오.""송... 령산이라고 그랬느냐?"
"그렇소."
천우는 꿈에도 상상치 못했다.
원수 단목신수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기 위해 그의 거짓말로 인해 훗날 송령산 일대의 남자란 남자는 모두 처참한 죽음을 당하게 될 줄이야......!봉황성주 단목신수는 수하들을 시켜 송령산 일대의 사내란 사내는 모두 도륙을 시켜버린 것이었다.
"그... 그것이 사실이오......?"
천우는 눈을 크게 떴다.
단목신수는 십지천화가 과거 자신의 아내였다는 것...... 임신을 한 채 미쳐 봉황성을 빠져 나갔다는 사실을 얘기한 것이었다.
"그렇다. 내가 네 아비다."
"......!"
천우는 너무나 큰 충격에 마치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천부적인 연기의 소질을 타고난 것일까. 그는 너무도 태연하게 단목신수를 속이고 있는 것이다.
단목신수는 그런 그를 자애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일장탄식(一長嘆息)을 뱉아냈다.
"그간의 일로 너를 탓하지 않으마... 너의 잘못은 아니니까. 너에게 시간을 주마. 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기까지 말이다."그는 그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천우는 그가 사라질 때까지 여전히 큰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듯 멍청한 시선을 천정에 못박고 있었다.
봉황성은 하나의 충격적 사건에 접해 술렁였다. 그것은 봉황성주 신단기성 단목신수가 발표한 전격적인 사실 때문이었다.
- 봉황제사왕(鳳凰第四王)의 탄생(誕生).
놀라운 일이었다.
봉황성주에게는 세 제자(弟子)가 있다. 그들을 일컬어 세인들은 봉황삼왕이라 불렀다. 그들은 봉황성의 지주였고, 정도무림을 영도할 세 개의 거목(巨木)이었다.
자면신군(紫面神君) 담세기(覃世奇).
삼절신군(三絶神君) 범고풍(凡古風).
옥수서생(玉手書生) 유세옥(庾世玉).
그들은 정도(正道) 사상 최강의 신진고수들이었다.
자면신군 담세기는 이제 중년기로 접어든 나이로 사실상 봉황성의 후계자로 지목되고 있었다. 그는 봉황성의 대소사를 단목신수를 대신하여 거의 도맡아시피 처리한다.
정도기인들은 그를 마치 차기 무황으로 예우하고 있었다.
삼절신군 범고풍과 옥수서생 유세옥은 매우 특별한 존재였다.
그들은 봉황성의 무서운 행동가였으며 무림에 해결하지 못한 난사(難事)가 발생하면 그들이 출동했다. 이제까지 그들 두 사람이 출동하여 해결되지 않은 일은 없었다.
봉황삼왕은 봉황성의 얼굴이자 중원무림의 미래였다. 그러네 봉황성주는 갑자기 난데없이 나타난 일개 탕아(蕩兒)에게 제 사왕(四王)을 임명한 것이었다.
- 채화공자(採花公子) 반준!
그를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그를 본 사람들은 모두가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그의 경박한 언동과 음탕한 행위에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채화공자 반준은 봉황성에 들어온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그에게 농락당한 여인은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그는 점점 정도가 심해져 나중에는 대낮에도 성안의 아녀자들은 반준을 피해 도망을 다녀야 할 판이었다.
정도명문의 소녀들이나 봉황성의 시비들치고 얼굴이 반반한 경우라면 한 번쯤 그에게 둔부를 떡처럼 주물려보지 않은 여인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막상 여인들이 달아올라 그의 허리며 목을 붙잡고 늘어질 때면 어김없이 싸늘한 얼굴로 돌변해 그들의 자존심을 구겨놓는 것이었다.
그것 때문에도 반준의 악명은 더욱 극심해졌다. 그를 보이지 않게 사모하는 여인들의 수도 그의 악명만큼 늘어갔다. 그는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철없는 망나니 정도로 비쳐질 뿐이었다.
봉황성 내에서는 함부로 반준을 야단치거나 혼을 내지 못했다.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는 타고난 난봉꾼이었다. 그런데 대체 봉황성주는 무슨 마음으로 희대의 탕아를 무림의 희망이자 미래인 봉황사왕야(鳳凰四王爺)로 임명했단 말인가?아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을 뿐더러 심지어는 봉황성주의 처사에 불만을 품는 자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감히 그런 일을 드러내 놓고 반박하는 자는 없었다.
무황. 그의 말은 곧 법(法)이기에.
천우는 단목신수의 특별한 배려로 제사왕야가 되었다. 그의 거들먹거리는 모양새는 갈수록 가관이었다. 그는 안하무인이었고 거침없이 지껄여댔다.
그런 그를 단목신수는 자신의 아들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는 보통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핏줄이라고 하여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아부을 위인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천우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에게 분명히 말해 두겠다. 너는 노부의 아들이다. 하나 나의 정식 후계자가 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노부에게는 세 제자가 있다. 너를 사왕야로 임명하겠다. 너의 가진 바 능력으로 그들을 누르고 올라설 수 있다면 봉황성과 천하는 너의 것이 될 것이다. 아들아, 그때 나는 너를 정식으로 후계자로 지목함과 동시에 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정식으로 천하무림에 알리겠다."천우는 사왕야가 된 뒤로 봉황성내에서 눈에 뵈는 것이 없는 듯 행동했다. 봉황삼왕은 그의 갑작스런 부상에 처음에는 경계와 질시를 금치 못했으나 차츰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그들은 천우에게 다만 경멸만을 느낄 수 있었을 뿐 감히 그가 자신들의 경쟁자라는 생각은 추호도 갖지 않았다.
아무튼 천우는 팔자가 늘어질대로 늘어졌다.
그는 매일 향유로 목욕을 하고 열 두 명의 미녀들에 둘러싸여 생활했다. 사치와 향락을 일삼았고, 허세부리기를 좋아했다. 또한 언제나 화려한 비단옷을 둘렀으며 그가 지나갈 때는 짙은 향수내음이 고수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한달 후.
그는 봉황성 내에서 이름뿐인 사왕야일 뿐 아무도 그를 상대하려 들지 않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 사실은 봉황성주를 실망시켰다.
그는 천우의 일거일동에 대해 한시도 신경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천우가 어디를 가든, 무슨 언동을 취하든, 그것은 낱낱이 그에게 보고 되었다.
그는 마침내 참고 참았던 탄식을 터트리고 말았다.
"내게서... 견자(犬子)가 태어났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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