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학술]
"정읍선언은 통일정부
수립 주창한
'이승만 독트린'"
6·3 정읍선언
80주년 학술대회
“1946년 6월 3일의 ‘정읍선언’은
소련과 미국의 한반도 흥정을 거부한
‘이승만 독트린(doctrine·정책 원칙)’
이었다.
38선을 부수고 통일된 자유민주공화국을
세우겠다는 독트린이었다.”
(인보길 뉴데일리 회장의 기조 연설문 중)
6월 3일은 해방 직후의 혼란 속에서
정치인 이승만(1875~1965)이 남선(南鮮)
순행 도중 ‘정읍선언’을 한 지 80주년
되는 날이다.
우남네트워크(상임대표회장 신철식)는
오는 5일 오후 2시 30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6·3 정읍선언 80주년을 기념한
학술대회 ‘정읍선언은 이승만 독트린이다:
이승만의 독립외교와 건국노선
재조명’을 연다.
----1948년 4월 31일 대한민국 제헌의회
개원식에서 의사 진행을 하는 이승만(맨 왼쪽).
아래 사진은 이승만의 정읍선언을 보도한
1946년 6월 5일 자 조선일보. ‘공위(共委)가
재개 안 되면 통일기관 즉시 설립’이란
제목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미소
공동위원회가 휴회에 들어간 상황에서,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임시정부를 세워야
한다는 이승만의 말을 설명한 것이다----
< 조선일보 DB >
오래도록 ‘정읍발언’으로 알려졌던
이승만의 정읍선언은
“이제 우리는 무기 휴회된 공위
(미소공동위원회)가 재개될 기색도
보이지 않으며, 통일 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케 되지 않으니, 우리는 남방(南方)
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38 이북에서 소련이
철퇴하도록 세계 공론에 호소하여야
할 것이다”
라는 내용이었다.
이 발언은 38선 이남의 단독 정부
수립을 처음으로 언급한 것으로 인식돼
비판을 받았으나
‘사실상 단독 정부가 먼저 들어선 것은
이보다 앞선 1946년 2월 평양의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였다’
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정읍선언은 오히려 통일 민주 정부의
계획이 들어 있는 역사적 선언이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대한민국 수립의 기초가 됐다는
것이다.
5일 학술대회에서 주제 발표
‘이승만의 정읍선언, 단독 정부인가?
통일 정부인가?’를 맡은 박명수
서울신학대 명예교수는
“정읍선언에서 언급한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는 단독 정부가 아니라
이승만의 설명대로 통일 독립을 위한
과도 정부라고 봐야 한다”
고 지적했다.
이것은 좌우합작위원회나 입법의원을
말하는 것으로, 여운형 세력은 포괄하고
박헌영 세력을 제외하는 좌우 세력이
합해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승만은 과도 정부를 통해서 유엔의
동의를 끌어내려 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단기적으로 볼 때 정읍선언이 의도한
정부 수립 계획은 실패했지만,
이승만은 국제 사회로 나아가 국민투표로
선출되는 새로운 민주 통일 정부 수립을
주장했고, 1947년 11월 유엔 총회가
여기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고 했다.
한반도가 미·소 공위 체재(體裁)에서
유엔 체재로 전환됐으며 유엔은
한반도 전체를 대표하는 중앙정부를
지향했다.
그것이 대한민국이었다.
박 교수는
“대한민국이 통일 독립 중앙정부라는
정신에 의해 제헌헌법이 제정된
것이며, 따라서 대한민국을 남한의
단독 정부라고 보는 것은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
고 말했다.
주제 발표 ‘이승만의 남선 순행과
정읍선언의 의미’를 맡은 이은선
안양대 명예교수는
“이승만은 1946년 남선 순행을 통해
민주주의 공화제 국가 건설의 목표를
제시했고, 자유와 평등의 권리를
누리는 국가를 건설할 것을 역설했다”
고 분석했다.
당시 이승만은 소련에 의해 조종되는
북한, 좌우 합작을 통해 공산화돼
가는 폴란드 등 동유럽을 보며,
남한의 임시정부 수립을 통해
우리 국민의 자주적인 통일 정부
수립을 달성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날 학술대회에선 양준석 국민대 교수,
조평세 우남네트워크 공동대표,
오영섭 안중근의사숭모회 연구위원,
김정민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
학예연구실장 등이 토론자로
나설 예정이다.
☞정읍선언(井邑宣言)
1946년 6월 3일 이승만이 전북
정읍에서 ‘남방만이라도 임시정부를
조직해 소련이 38선 이북에서
철퇴하도록 세계에 호소해야 한다’
고 했던 선언.
유석재 역사문화전문 기자
[출처 : 조선일보]
[100자평]
자유가좋다
미, 쏘 양 진영이 맞부딪히는 요새로 국토분단이
되어 해방을 맞게된 것,
민족 비극의 씨앗이었고, 만악의 근원이었다.
해방정국은 어지러웠고 혼미했을 것임은
불문가지이다.
그로부터 80년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누가 이 겨례에게 옳은 유산을 넘겨주었는지
평가할 수 있다.
이승만이 있었다는것, 이 민족에겐 참으로
감사하고, 너무나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회원92524635
이승만 건국대통령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이 나라가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님이 가지신 정신으로 살아가면
다시 극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