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르노 FT-17 경전차




제1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프랑스에서 개발한 경전차로, 그야말로 전차의 혁신을 불러일으킨 명전차. 최초의 전차인 Mk 시리즈에 버금가는 충격을 주었으며, 이후 개발되어 현대에까지 이어지는 거의 모든 전차의 기본형이 되었다. 후일 최대의 전차강국이 되는 미국과 소련이 이 전차로 처음 전차운용을 배웠고, 이 전차를 라이센스 생산한 것이 국산전차 1호였다는 것만으로도 그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전차로는 빠른 속도에 최초로 선회식 포탑을 채택하였으며 양호한 정비성과 생산성 등은 유럽 각국에서 오오 프랑스 오오!라는 감탄사를 외치게 하였다. 각종 바리에이션을 모두 합칠 경우 5천대도 넘게 찍혀 나오며 세계 각국에 팔려나간 베스트셀러였으며, 수많은 국가의 전차개발에 영감을 준 뛰어난 전차였다.
이 전차의 개발 배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전쟁이 한창이던 1916년, 당시 프랑스가 보유하고 있던 슈나이더 CA1이나 생샤몽 전차는 크기도 크기였고 제작비용도 많이 들었으며 험지주파력이 상당히 떨어졌기에 군부에선 새로운 전차를 원하고 있었다. 여기서 후에 프랑스 전차의 아버지라 불리게 된 장-바스티엥 유진 에스티엔느 대령이 생각한 2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하나는 기존 탱크들보다 제작 비용이 낮아야 했으며, 또 다른 하나는 보병과 같이 임무수행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916년 6월 장 바스티엥 대령은 르노 사의 창업자중 한명인 루이 르노에게 새로운 전차에 대한 개발을 요청하였으나 르노는 이를 거절하였다. 지금까지 자동차만 만들어왔지, 전차를 개발해 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기에 거절한 것. 하지만 르노는 곧 마음을 바꿔 1916년 8월 제안을 수락한다.
그후 첫번째 목업 전차까지 나왔으나 하필 당시 프랑스 군부는 이런 작은 전차보다 샤르 2C 같은 정신나간 지상전함에 더 관심이 많아 더 이상의 지원을 끊어버리고자 했다. 하지만 장 바스티엥 대령이 프랑스 군부를 설득하여 지원을 받아 1917년 프로토타입이 나올 수 있었다. 이후 이듬해 1월에 첫번째 시운전을 거쳤으며 3월에는 "Type. M 17 FT",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FT-17이 정식 채택되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400여대가 생산되었는데 이는 1차대전에서 실전 투입된 전차 가운데 가장 많은 생산량으로 가히 1차대전판 T-34라고 할만한 놈이었다. 르노 FT-17은 1918년 백일 전투 당시 연합군을 승리로 이끈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명전차라도 세월의 흐름을 이길 수는 없는 법. 1940년, 독일군의 프랑스 침공 당시 프랑스 육군의 주력 전차는 엄연히 르노 R35나 호치키스 H35로 이들 전차는 개전 시점에서 각기 1,500대 이상 생산되어 있었고 FT-17은 보조 정도의 위치만 차지했다.
당장 FT-17에 장착된 퓌토 SA18 21구경 37mm 전차포는 500m에서 직각 장갑판 4mm 관통 정도의 단포신 보병포라 사실상 유탄발사기에 불과하므로 전차전에는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장갑도 연강(軟鋼)판을 리벳 접합한 것이라 20mm 기관포, 수류탄에도 구멍이 숭숭 뚫렸다. 때문에 1930년대 초 근대화개장을 거쳤던 것도 8mm 기총탑재모델을 7.5mm 기총으로 교체하고 주행성능을 개선하는 정도로 그쳤다. 르노 또한 FT-17의 성능한계를 인정해서 르노 NC라는 개량형을 이미 1926년에 제시했지만 설계 자체가 구식이라 채용되지 못했다. 37mm L/21 SA18 퓌토 전차포는 후일 37mm L/21 SA18 M37이라는 개량형이 등장, 관통력을 배 이상 증가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는 르노 R35/40이나 호치키스 H35/39, FCM 36에 탑재되어 그 우수함을 증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스페인 내전에서 M1932 45mm L/46(1,300mm에서 수직장갑 41mm 관통) 전차포를 장착한 T-26 후기형과 BT-5까지 상대해본 독일군 대전차포 중대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여기에 더하여 프랑스 항복 때까지 전선에 동원할 수 있었던 건 기껏 520대 정도였고 나머지는 국가헌병대나 식민지군이 순찰용도로나 사용했다. 굳이 패인을 제공한 것이라면 프랑스군의 높으신 분들에게 전차는 두 명이 타는 물건이라는 인식을 박아놓은 점이라고 해야 할까...
이후 독일군에게 접수되었지만, 차마 이런 빈약한 장갑과 화력을 지닌 물건을 일선에서 쓰기엔 무리가 있었던 터라 주로 경찰 등의 후방부대에서 폭동 진압용으로 쓰이거나 포탑을 떼내어 탄약운반차나 트랙터 대용으로 쓰고 떼낸 포탑은 대서양 방벽의 고정포대 대용으로 사용했다.
생산량이 많은 만큼 프랑스군도 지휘전차, 지뢰처리전차, 철조망 가설전차, 조명탑을 단 투광전차 등을 만들었고 이중 일부는 독일의 군사시설대인 토트 조직(Organisation Todt)이 운용했다.
2003년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실제로 가동이 가능한 FT-17 2대와 고철 수준의 2대를 발견했다! 2대는 미국으로 옮겨져서 전시 중이고 나머지 2대 중 1대는 입수경로를 역추적해서 알아낸 원 소속국가(?)인 폴란드로 돌아갔다.
3. 평가
진정한 현대전차의 아버지. 이 전차의 주요 기계적 구성요소는 그 이후의 전차들이 대부분 준수하는 규칙이 되었다.
• 360도 선회포탑 1기 탑재
• 대부분의 무장은 포탑에 집중
• 포탑에 장착되는 주포는 1문으로 제한
• 엔진을 차체 후방부위에 놓고 엔진룸으로 분리함으로써 만든 소음 저하를 통해 승무원 간 의사소통 원활 및 정비 편의성 향상, 승무원에게 미치는 발열 감소로 승무원의 교전 효율 상승
• 전차장용 큐폴라 탑재
르노 FT-17이 현대 전차의 기계적 구성요소를 처음으로 완성했다.
폴란드는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19년 6월 120대 분량의 FT-17 전차를 프랑스로부터 공여받았으며, 이 전차들은 소비에트-폴란드 전쟁(1919-1921)에서 실전 투입되었다.
1924년 폴란드는 비무장 지휘전차 모델인 르노 TSF 6대를 프랑스에게서 수입하였으며, 1929년과 1930년에는 23대의 FT-17을 프랑스에서 추가로 들여오면서 동시에 기존 FT-17의 개량형인 르노 M26/27 5대와 르노 NC-27 1대를 테스트 목적으로 구매하였다. 폴란드에서 르노 TSF와 M26/27, NC-27은 기존의 FT-17 전차와 명칭의 구분없이 함께 분류되어 운용되었다. 그 밖에 FT-17에 기반한 이탈리아제 피아트 3000 경전차 1대가 비무장 상태로 수입되어 시운전을 거치기도 하였다고 한다.
1925년에는 스테판 카르다셰비츠(Stefan Kardaszewicz) 대위가 고안한 개량형 무한궤도가 1926년부터 65대의 FT-17에 부착되었다. 이 무한궤도는 전차의 속도와 연비를 개선하면서 소음과 진동을 줄이고 승차감을 개선해주었다. 1926년에는 바르샤바의 CWS 공장에서 예비 전차부품과 연철 장갑으로 27대의 전차를 새로 제작했는데, 이 전차들은 종종 "FT-17 CWS" 또는 "젤라즈니(Zelazny; 연철)"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CWS 전차들은 연철로 제작되었기에 장갑 방어력이 거의 없었고, 대부분 훈련용으로 활용되었다. 같은해에는 FT-17 전차를 기반으로 한 화학전용 전차 1대가 시험적으로 제작되었으나 프로젝트가 더 진행되지 않고 끝났다.
1932년과 1933년에는 FT-17 전차를 활용한 철로용 궤도차가 개발되었다. 해당 궤도차는 "장갑궤도차 R"이라는 형식으로 채택되어 1939년까지 총 38대 분량이 제작되었다. 한편으로는 구식화된 6량의 르노 TSF 지휘전차를 무장 장착형 전차로 전환하는 작업이 1930년대에 진행되기도 했다. 그 밖에 FT-17의 성능 개선을 위한 여러가지 프로젝트가 시험 또는 계획되었으나 비용과 효율의 문제로 채택되지는 않았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폴란드는 보유하고 있던 FT-17 전차 가운데 32대 분량을 스페인 공화정부 측에 판매하였으며, 여기서 얻은 자금은 7TP 전차의 추가물량 생산비용으로 사용되었다.
1939년 폴란드 침공 당시 폴란드군은 도합 102대의 FT-17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 중 일부는 연철로 만든 CWS 전차였다. 70대의 전차들은 주라비차(Żurawica) 주둔 제2기갑대대에 배속되어 있다가 3개(111, 112, 113)의 경전차중대로 나뉘어 편성되었고, 9월 14일부터 16일까지 이어진 브제시치(Brześć) 요새 공방전에서 독일군에 맞서 실전 투입되었다. 나머지 전차들은 장갑열차에 딸린 궤도차로 활용되어 방어전에 투입되거나, 급조된 소규모 기갑부대에 배치되어 전투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기존의 FT에 케그레스 궤도를 적용한 르노-케그레스, M24/25의 개량형이다. 제식명으로만 보면 NC-1의 후속 기종으로 보여지나 계통은 다소 상이하다. 유고슬라비아에서 사용한 차량이 유명하다. 1차 세계 대전 중에 체코 군단에게 판매되었다가 체코 군단이 귀국하는 길에 36대의 르노 전차를 장쭤린에게 판매하여 봉천군벌이 르노 전차로 무장했지만 12대는 교전 중 파괴되고 나머지는 만주사변 때 관동군이 노획했다. 딱 한대는 국민정부가 노획하여 난징에 보관하였으나 중일전쟁 때 역시 일본군에게 노획되었다.
프랑스에서 구입한 13대의 차량이 1919년부터 일본군에 도입되어 '갑식 전차'라는 형식으로 사용되었다. 1929년에는 FT-17의 개량형인 NC-27 10대가 수입되어 '을식 전차'라는 형식을 부여받고 일선 부대에 배치되었다. 갑식 전차와 을식 전차의 무장은 1916년형 37mm 저격포(11식 보병포의 전신) 또는 기관총이 사용되었으며, 이들 전차는 시베리아와 만주 및 상하이 사변에서 전투용으로 사용하다 나중에 훈련용으로 전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