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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낙양(洛陽). 천년고도의 번화함은 예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었다. 무림의 혈겁은 일반인에게는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못한 것 같았다. 다만 수시로 벌어지는 대량살인과 방화에 관(官)에서는 골치를 썩힐 뿐 일반인들에게는 그저 풍문에 들려오는 무서운 얘기거리일 뿐이었다. 천화대숙전(天華大宿廛). 낙양제일의 객점이자 천하제일의 객점은 천화대숙전의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최근 들어 천화대숙전은 각종 사업에도 손을 대고 있었다. 골동품의 매입과 경매, 무역업에서 심지어는 해운(海運)까지도 손대고 있었다. 낙양인들은 천화대숙전이야말로 천하제일의 부(富)를 쌓은 곳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 대화별원(大和別院). 천화대숙전에서 가장 상원(上院)에 속하는 이곳은 과연 활기와 기쁨에 넘쳤다. 대화별원의 대청에 여러 인물이 모여들었다. 그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기쁨과 흥분이 떠올라 있었다. "하하하...! 오랜만이네." 한 가닥 낭랑하명서도 호탕한 웃음소리가 울렸다. 대청의 호화로운 태사의. 그곳에 앉아있는 화삼청년은 바로 천우가 아니고 달리 또 누구이겠는가? 그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봉황성을 나온 직후 그는 열 여덟 번이나 얼굴을 바꾸면서 그는 미행자를 떨쳐 버렸다. 봉황성주 단목신수는 그의 뒤에 추종술의 영수와 신임하는 내가고수 오명을 따라보내 은밀히 그를 감시하고 보호케한 것이다. 그가 미행을 따돌리고 돌아온 기인총(奇人總)은 상상이상으로 확장되어 있었다. 그것은 기사보(奇士譜)인 이병산(李兵山)의 놀라운 수완 덕분이었다. 천우가 지시한 명령을 모두 그는 수행해놓았을 뿐 아니라 그동안에 천하대숙전의 재산도 다섯 배로 불려놓았다. "하하하... 정말 반갑네." 천우는 중인들을 둘러보며 오랜만에 마음껏 웃음을 터뜨렸다. 실로 얼마만인가? 그들과 헤어진 후 그의 나날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비로소 편안하게 쉴 수 있었다. 초초는 완연히 성숙해져 있었다. 그녀는 그가 돌아오자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리고 그의 옷을 갈아 입히랴, 음식을 직접 만들랴, 온갖 시중을 드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그녀는 지금 얼굴에 화사한 화기를 띄운 채 그의 곁에 서 있었다. 대청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기사보 이병산을 위시하여 남천신도에서 온 십무광사(十武狂師) 태을부(太乙夫)도 있었다. 어디 그 뿐인가? 그 동안 그가 천우의 부탁으로 십무광사가 키워낸 삼십육기인검수(三十六奇人劍手)들과 반가운 미녀들도 있다. 금릉의 도화구(桃花丘) 낙화군방원에서 온 기녀들, 그 중에는 군방사화(群芳四花)도 있었다. 만상화(萬像花). 천문화(天文花). 십전무화(十全武花). 욕망화(慾望花). 그녀들은 여전히 눈부신 미모를 발산하고 있었으나 예전 같은 종이꽃은 아니었다. 천우로 인해 그녀들은 진짜 살아있는 꽃이 된 것이었다. 그밖에도 기사보 이병산의 천거로 기인총에 입총(入總)한 기인(奇人)들과 그들 중 기사위(奇士位)를 받은 기인들은 백 명이 넘었다. 이미 천우는 기사보 이병산으로부터 그들의 명단과 약력을 들은 터였고 만족했다. 모든 것이 흡족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날 밤 대화별원에서는 연회가 베풀어졌다. 천우는 실로 태어난 이래 그처럼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을 마셔보기 처음이었다. 그는 취했다. 마음껏 먹고, 마음껏 취한 것이다. 그는 술잔을 쥐고 쓰러졌으며 그런 그를 부축하여 침상 위로 옮긴 것은 초초였다. 초초는 밤새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놀랄만큼 숙성해 있었고 아름다워졌다. 사랑이 그녀를 그토록 변모케 한 것일까?그녀는 침상 머리맡에 앉아 밤새도록 천우를 지켰고 불타는 시선은 시종 천우의 얼굴에서 떠나지를 않았으며 그녀의 손은 천우의 머리를 매만지고 있었다. "설삼연자탕(雪蔘蓮子湯)이예요. 어서 드세요. 공자님, 숙취에는 그만이거든요."천우는 깨어나자마자 감미롭고 달콤한 음성을 들었다. 동시에 향긋한 냄새가 코 끝에 확 풍겨왔다. 초초가 두 손에 김과 향기가 나는 죽그릇을 들고 있었다. 천우는 빙긋 웃었다. "초초, 너는 다 컸구나." 초초의 얼굴에 홍조가 피어올랐다. "초초는 벌써 큰걸요." "게다가 몰라보게 아름다워졌구나." 초초는 고개를 숙였다. 하이얀 목덜미가 상큼한 육감적으로 천우의 눈에 들어왔다. "웬걸요... 연령언니에 비하면 저는 태양 아래 반딧불인 걸요."그 말에 천우는 부드럽게 말했다. "너도 연령만 못지 않다." "초초를 놀리시는 건가요?" 초초의 눈에 원망이 서려 있다. 천우는 문득 정색을 하고 말했다. "초초... 연령은 물론 아름답다. 하나 미(美)란 보는 관점에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는 거야. 백합(白合)이 아름답긴 하나 향기가 너무 천박하고, 모란은 고귀한 향기가 없지. 야생화(野生花)는 비록 거치나 그 나름대로의 야성미가 있지. 세상의 꽃이란 꽃은 나름대로의 미를 갖고 있다. 너는 그 이치를 모르느냐?"그 말에 초초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공자님은 그 동안 언변이 더욱 늘었군요. 그리고 바람둥이가 되셨어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여인들을 홀리셨나요?""하하하...! 글쎄! 초초와 헤어진 후로 나는 줄곧 세상에는 참 값어치 없는 싸구려 꽃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지.""그말... 믿어도 될까요?" 초초의 얼굴에 어떤 열기가 떠올랐다. 그녀의 뺨은 은은한 백향초에 의해 더욱 발그스레하게 보였다.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가히 이제 막 꽃봉오리를 피우는 매화였다. 그녀는 오늘따라 더없이 고혹적으로 보였다. "초초!" "......?" 천우는 초초의 손을 잡아 끌었다. "나는 한시도 너를 잊은 적이 없다. 왜냐면 그 후 나는 너만큼 좋은 여자를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아......!" 초초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믿을 수 없는 듯 몸을 떨었다. 그러나 곧 그녀는 무너지듯 천우의 품속으로 안겨들었다. 그녀의 머리속에는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아다. 다만 벅찬 감동과 넘치는 기쁨에 대한 감정만으로 황홀했다. 천우의 입술이 진홍빛 꽃잎 같이 촉촉하게 젖은 초초의 입술 을 눌러왔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천우의 뜨거운 입술을 받아들이면서 잠시 연령을 떠올렸다. '연령언니... 미안해요.......' 그러나 곧 연령의 얼굴도 그녀의 뇌리에서 지워지고 말았다. 천우의 길고긴 입맞춤으로 인해 그녀는 자신이 거대한 불꽃으로 타오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천우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여태까지 자신을 헌신적으로 돌보아준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었다. 초초는 이미 처음 군방원에서 본 그 철부지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천우는 초초의 앞섶을 열었다. 천우는 잠시 눈앞이 아찔해져 옴을 느꼈다. 초초는 이미 농염한 여인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에 마른 체구는 색다른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그는 초초의 육봉을 덥석 쥐었다. 그녀의 허리가 전류에 감전이라도 된 듯 꿈틀거렸다. 천우는 익숙하게 그녀의 마지막 고의까지 벗어내렸다. 천우의 뜨거운 손길에 그녀는 점점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초초의 눈에서는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자 천우는 그녀의 눈물을 받아마셨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사조(師組)의 건강은 좋아 보이셨어요." 초초의 말에 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리숙부(萬里叔父)께서 건강하시다니 마음이 놓인다."황금대총에 있는 만리무외(萬里武外). 그는 천우의 모친 십자천화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인물이다. 천중오정의 인물이기도 하며 동시에 제왕토행신가(帝王土行神家)의 가주이기도 한 만리무외. 그가 바로 자신이 말한 대리화(代理花)의 주인공이었다. 십지천화에게 구애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그는 다시 천우의 부친 화령신군 종자백에게 도전했으나 승부를 내지 못하자 잠적했다. 그는 황금대총의 기연을 만나 그곳에 은거하여 스스로 자신의 두 다리를 끊었다. 다시는 세상에 나가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는 얼마 후 마왕성의 붕괴소식을 들었다. 실상 마왕성은 그들 천중오정이 마도(魔道)를 묶어두기 위해 세운 것이었다. 결국 화령신군 종자백은 단목신수의 배신과 음모에 희생당했다. 그 소식을 들은 만리무외는 무서운 증오심을 느꼈다. 그러나 복수하기에는 이미 그의 두 다리는 절단된 상태였다. 그래서 그는 군방원을 세웠고 군방오관을 만들어 인재를 찾았다. 언제고 천하기재를 찾으면 그에게 자신을 대행하여 복수를 꾀하려 한 것이었다. 천우가 그에게 가게 된 것은 천우신조랄 수 있었다. "녹혈림에 침투한 새제갈은?" 천우의 물음에 초초는 대답했다. "그는 충실히 이행하고 있어요. 그는 천제마검(天帝魔劍)의 환심을 얻어 이미 녹혈림의 군사(軍師)가 되었어요."새제갈. 그는 이병산과 마찬가지로 군방오관에 들었던 인물이었다. "고루혈사교( ?血死敎)와 녹혈림은 반목하고 있어요. 모두 새제갈의 계책 때문이예요. 조만간 그 두 집단은 크게 충돌할 것이 분명해요."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새제갈의 수완이 놀랍군." 초초는 화사하게 웃었다. "녹혈림은 그의 뜻대로 움직인다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어떻게 그 정도가 됐지?" "호호... 그의 천재적인 병법(兵法)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결정적인 것은 그가 설단후의 여제자를 사로잡은 것이예요."천우는 껄걸 웃었다. "미남계(美男計)로군!" "호호... 사실 새제갈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세요?" 천우는 씨익 웃었다. "송옥(宋玉) 쯤 되지 않느냐?" 그 말에 초초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 천우가 어리둥절해 하자 그녀는 한참만에야 웃음을 거두며 이렇게 말했다. "새제갈은 곰보에다 키가 오척에 불과한 추악한 자예요.""그... 그럴 리가!" 천우는 아연실색할 지경이었다. "그럼... 추남계에 넘어가는 여인도 있단 말인가?" "호호... 공자님은 여인의 마음을 잘 몰라요. 여인은 꼭 미남자에게만 마음을 뺏기는 것이 아니예요.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상대라면 그 어떤 얼굴이라도 상관이 없는 거예요."천우는 싱긋 웃었다. "그런 경우도 있지. 그런데 새제갈은?" 초초는 약간 숙연해졌다. "그도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해요." 천우는 껄껄 웃었다. "그럼 언젠가 그 두 사람을 성사(成事)시켜 주지." "꼭... 그렇게 해 주어야 해요. 꼭......." 초초의 얼굴에는 진지한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의 일인양 애절하게 천우에게 말했다. 초초는 자신도 천우와 성혼(聖婚)으로 맺어지길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문제는 독황교(毒皇敎)예요." 초초의 다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천우는 가라앉은 음성으로 물었다. "독수서생(毒水書生)이 실패했단 말인가?" "그는... 현재 독황교의 사대령주(四大令主)의 한 명이예요."천우는 의아했다. "그런데... 무슨 문제라는 거지?" "그는 독황교를 다루지 못했어요. 그 이유는... 오독부인(五毒婦人) 때문이예요.""오독부인?" "오독부인은 만독왕(萬毒王) 묘천(苗天)이 가장 늦게 맞은 부인이예요. 그러나 실제 독황교의 실권은 그녀가 장악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예요."천우는 중얼거렸다. "만독왕을 사로잡다니 대단한 여인이군." 만독왕은 여색을 밝히기로 강호에서 그 악명이 높다. 그는 한 번 취한 여자는 두 번 다시 보지 않는다. 그런 그가 오독부인을 보자 과거의 추잡한 오명을 씻고 그녀를 수제자로 받아들이고 오직 그녀만을 바라보게 된 것이었다. 그는 그후 여자 문제에 있어서만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문득 초초는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독부인을 끌어들일 수 있다면 독황교도 자연히 포섭할 수 있어요."천우는 장난기 가득한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그녀를... 유혹하란 말이냐?" "바로 맞추셨어요. 그녀는 독황교의 실제적 교주나 다름없어요. 지금 그녀는 늙은 만독왕에게 실증을 내고 있다는 정보가 있어요. 이럴 때 그녀 앞에 젊고 영준한 미남자가 나타나면......."천우는 싱긋 웃었다. "초초, 나더러 미남계를 쓰라는 것이냐?" "호호... 그래요. 이번에는 추남계가 아니라 미남계죠.""도대체 그녀는 혹 추녀가 아니냐?" 천우의 불안한 질문에 초초는 생긋 웃었다. "안심하세요. 그녀는 정말 아름답고 매력적이예요. 아마 공자님께서 한 눈에 반할 거예요. 나이가 약간 많은 게 흠이긴 하지만요."천우는 히죽 웃었다. "모르는 소리마라. 여자란 나이가 많을수록 더욱 익어있는 법이다.""호호... 그런 말 나오실 줄 알았어요. 하나 그녀는 이제 삼십 육 세에 불과해요."천우의 얼굴이 어지럽게 일그러졌다. "한참 누님뻘이군." "호호... 그러나 겉으로는 이십 사오 세 정도로밖에 안 보이죠."천우는 초초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이미 계획을 세운 듯하구나?" "호호... 모두 준비가 되었어요. 공자님께서는 그저 악양으로 출발하시기만 하면 되요."천우는 섭섭한 듯 투덜거렸다. "제기랄! 벌써 내쫓는 것이냐?" 초초는 생긋 웃었다. "공자님께선 기인총주라는 것을 염두에 두셔야죠. 오독부인은 기인총에서 꼭 필요한 존재예요.""알았다, 알았어." 천우는 손을 흔들었다. "참! 한 가지 주의할 게 있어요. 그녀는 남자를 혐오하는 습관이 있어요. 초초는 공자님께서 그녀에게 너무 깊이 빠지지나 않을지가 걱정이에요."그 말에 천우는 히죽 웃었다. "그래? 후후... 그거 재미있군." "아마 보통 방법으로 안 통할 거예요." 천우는 빙긋 웃었다. "두고 보렴. 초초!" 그는 자신있게 말했다. 이어 초초는 그에게 여러 가지 무림상황에 대해 보고했다. 그 중 천우는 녹혈림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초초는 현재 녹혈림의 림주인 천제마검(天帝魔劍) 설단후(泄檀侯)의 신분내력과 그에게 반역하는 자들의 무리는 없는지에 대해 소상하게 보고했다. 천우의 머릿속에는 무림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가 세워지고 있었다. 초초의 말에 의하면 설단후는 부패한 환관과 왕공, 권신들을 반대하는 동림당(東林黨)의 사맹린(史孟麟)과 모종의 일을 꾸미고 있다는 초초의 말에 천우는 대경했다. 동림당은 만력때 황제, 황공, 훈척, 권신으로 대표되는 대지주집단에 반대하여 새롭게 정치를 개선하고 민생을 돌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무리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당시, 몇몇 대지주들의 토지집중은 이미 유례가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대지주들은 미친 듯이 토지를 겸병하였고, 대다수의 농민들은 잇달아 토지를 잃었다. 그 중에서 더욱더 잔혹한 것은 환관들이었다. 그들은 종종 광산을 개설한다는 명목으로 토지를 강제로 빼앗고 세금을 함부로 징수해 폭리를 취했다. 그리고 그들의 수하에 거느린 건달들은 민가에 들어가 부녀자를 강간하고 마음대로 죽였다. 이에 집을 잃고 거지로 떠돌거나 관(官)에 대항해 죄를 지은 자들은 모두 녹혈림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저주와 염세로 이루어진 집단이었고 그래서 그들의 힘은 강호에서도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그런 성질의 것이었다. 당금 중원은 부패한 환관들과 탐욕스런 관리들에 의해 민생(民生)은 극도로 피폐해졌고 오륜(五倫)은 땅에 떨어졌다. 의(義)와 협(俠)은 옛말이 된 지 이미 오래였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는 중원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강호의 도리마저 난장판으로 변해버렸다. 곳곳에서 민란이 끊이지 않았고 기아와 질병으로 중원의 하늘에는 죽음의 검은 구름이 한시도 떠나지 않고 드리워져 있었다. 이런 난세에 녹혈림의 존재는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관리들을 제치고 백성들에게 자체적인 힘으로 돌보아주었고 림주는 엄격한 내부규율을 세워 약탈과 방화와 필요 이상의 살인을 철저하게 금하고 있어 삼대 림주에 와서는 녹혈림은 어느새 강호 안팍으로 폭넓은 지지와 관심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그는 측천환마전을 이용해서 나머지 잔당들을 소탕할 계책도 세워두었다. 이제 남은 것은 지옥삼겁천과 그들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기인총을 떠났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홀홀단신이었다. 초초는 그를 위해 한 벌의 유삼을 마련했다. 그 유삼은 보통 유삼이 아니었다. 피독(避毒), 피화(避火), 피진(避塵), 피사(避邪)의 신비한 효능이 있는 천잠사와 교룡피, 그리고 만년한삼으로 싼 보의(寶衣)였던 것이다. 기인총주 천우. 그는 또다시 장도에 올랐다. 무림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난마같이 얽힌 무림의 정세는 나날이 위기로 치닫고 있었고 중원무림은 풍운 속에 부침(浮沈)하고 있었다. 붉은 휘장이 위풍당당하게 드리워져 있는 내전 안. 거대한 태사의에 앉아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한 인영의 손엔 일장오척의 금환삭편(金幻索편)이 가지런히 말려져 있었다. 금환삭편(金幻索편). 천축의 소뢰음사(小雷音寺)의 전대 기인 불영패장(佛影貝掌) 마소소(磨笑燒)의 이대신물 중 하나로 그 마명(魔名)이 서장뿐 아니라 황실까지 전해질 정도로 독랄하기가 만병(萬兵)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의 일신에서 풍겨나는 예기가 내전 안을 가득메우고 있었다. 그의 범상치 않은 기골과 형형한 안광은 그가 당금 무림에서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효웅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가 바로 녹혈림의 림주 천제마검(天帝魔劍) 설단후(泄丹侯)였다. "허허, 이게 몇 년 만이냐?" 설단후는 반가움에 태사의에서 몸을 일으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호호, 오라버니도 그동안 무공이 더 고강해지셨군요."설단후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바로 군방원의 만지화였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오누이였단 말인가? "네가 보낸 전서구는 이미 받았다. 주군을 무척 흠모하고 있더구나. 천하의 만지화가 한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리라고 이 오라비는 꿈에도 생각치 못했거늘......."그의 얼굴은 장난기가 가득했다. "몇 년만의 상봉인데 얼굴을 보자마자 이렇게 놀리기부터 할 건 가요? 호호.......""하하... 얼굴이 빨개지는 걸 보니 사실인가 보구나. 하하하......."만지화는 할 수 없다는 듯 뾰루통해져서 쏘아부쳤다. 그러나 설단후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눈빛은 따스하기 그지없었다. "자꾸 그러시면 소매는 그만 돌아갈래요." 내실. 용린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윽한 향기가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설단후와 만지화는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부친은 십오 년 전 환관 주철웅(周鐵雄)에 의해 죽임을 당한 무영총령(武營總領) 설강표(泄鋼彪)였다. 역적으로 몰려 졸지에 부친을 잃고 가족이 모두 몰살을 당하게 되었다. 설단후와 만지화는 현숙한 그들의 모친에 의해 두 동생들을 잃고 죽음만은 모면한 채 복수의 칼을 갈며 중원천지를 떠돌아 다니는 신세가 된 것이었다. 그러던 중 설단후는 녹혈림의 이대 전주를 만나 지금에 이르렀다. 그리고 만지화는 군방원주 만리무외에게 발탁되어 군방사화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소식이 끊겨버렸다. 설단후는 복수를 위해 무공을 연마하기 위해 잠적했고, 만지화는 그녀대로 복수를 위해 군방원에 눌러 앉은 것이었다. 그들은 서로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십오 년을 헤어져 산 것이었다. 그것은 설단후는 녹혈림에 들면서 그의 사부인 이대 림주가 지어진 이름이었다. 그의 원명은 설빈(泄彬)이었다. 만지화 역시 설린(泄 )이라는 그녀의 이름을 잃고 살아온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던 중 그들은 기적적으로 초초에 의해 만나게 된 것이다. 비밀리에 녹혈림과 설단후의 신분내력과 조직을 조사하던 중 자신이 있던 군방원의 사화 중 만지화가 바로 그녀의 누이임을 알아낸 것이었다. ...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나뿐인 네 주군을 잘 모셔라. 이 오라비는 조만간 이곳을 떠날 것이다. 녹혈림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전서구를 날리거라. 내 수하들이 목숨을 내놓고 그의 일을 도와줄 것이다. 그럼 태평천하에서 만나자. 만지화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두 오누이가 헤어진 이후 설단후가 겪은 갖은 고통과 외로움에 대해 생각하다 자신도 모르게 설움이 북받친 것이었다. 그녀 또한 만리무외를 만났을 때는 기방에 팔려온 신세가 아니었던가! 그야말로 만리무외와의 만남은 천우신조였다.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그녀는 아마 꿈도 꿀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그녀는 천우만을 바라보게 된 것이었다. 그녀 외에도 삼화가 모두 천우를 사모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눈이 보이지 않는 십전무화의 사랑은 그녀가 생각해도 너무도 지고지순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좋았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소중하게 여기며 평생 천우 곁에서 사는 것을 최대의 행복으로 여기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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