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손바닥 위를 걷다>를 보고..
4. 붓다는 사리붓다에게 들은 말을 제자들에게 전하며 말했다.
“내가 만룽가풋다의 질문에 침묵을 한 것은.. 그는 결코 아트만(我)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무아(無我) 임을 믿지 않으면.. 결코 무아를 깨칠 수 없다.”
그때 그 자리에 앉아있던 제자들 가운데 삼분의 일이 ‘스승께서도 믿음을 강조하신다.’ 면서..
절을 하고 부처님 곁을 떠나갔다.
/ 만룽가풋다 [Malunkyaputta 鬘童子]의 춘몽에서..
존 로크는 "인간은 백지상태로 태어난다"는 백지설 theory of tabula rasa을 주장했는데.. 그 의미는 하얀 종이이기에 거기에 검은 먹으로 무엇을 그리느냐는 그의 인생을 좌우한다는 것이지.
로크의 말처럼 '나는 아트만[자아]이라는 게 있어' 하고 백지 위에 그려 놓으면.. 그 생각을 바꾸는 게 결코 쉽지 않기에..
세존은 지금 유아라고 여기는 자신이 무아임을 믿지 않으면.. 만동자처럼 누구의 말을 들어도 무아를 믿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건데..
<법화경>에 나오는 데바닷타 그룹은 평소 석가세존에 불만이 있었기에 그것을 빌미로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 것을 소설 스토리로 연결시킨 것이야.^^.
재미없다고? ㅎㅎㅎ^^
어쩌나.. 내 능력이 고런걸.. 이해 좀 해주셔야지^^
무기에 대해 고광스님은 설명하길. 세존께서는 질문과 답이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은 것이 되면 답변을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 기록될 수 없기에 무기한 것이라고 설명하더군.
나는 무기하는 이유로 만룽가풋다가 질문할 때 잘못된 인식.. 14 가지로 정리한 것들을 각각 존재로 인식하면서 질문했기에 마음 법으로 바른 답을 할 수 없어서 침묵했다는 하는데.. ㅎㅎㅎ^^
그런데 말이야.. 불교는 무상이요 무아의 법이다 라고 알고 있는데.. 그렇게 알고 있는 자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무상과 무아와 세존이 설하는 무상과 무아의 뜻이 다르다고 하잖아?.
해서 세간에서 부처님이 설하실 때는 세간 눈높이에 맞추어 우리가 알고 만룽가춧다가 인식하고 있는 무상과 무아로 설하시지만..
출세간인 제자들 앞에서 설할 때 무상과 무아는 마음 법으로 무상과 무아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지.
그래서 나는 강조하잖아.
불법은 하나의 일미가 아닌 세간(세상) 법과 출세간법으로 나누어 봐야 한다고.. 유전문과 환멸문을 나누어 보듯이..
그것을 억지로 하나의 법으로 해놓으니.. 이해는 배가 산으로 가는 거 아닌감?^^.
그래도 말이 되는 건.. 노아가 탄 방주가 튀르키예에 있는 산 정상 근처에서 발견되었다고 하잖아.
배가 산으로도 아닌 산 꼭대기까지 간 거야.^^..
다시 강조하노니.. 8정도는 불교의 핵심 수행법인데..
그 설명은 존재를 인정하는 세간법과 비존재인 마음을 설하는 출세간법으로 나누어 알고 있어야 한다고..
그리고 우리 불교는
존재를 인정하는 대승불교로 존재하는 내가 사는 이 세상을 평화의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행동하는 불교라고.^^().
그러기에 말세에는 전쟁과 대 기근이 일어난다고 했지만.. 불교는 예정설이나 운명적이지 아니듯..
현대를 말세라고 하지 않으며..
이미 일어난 전쟁은 어쩔 수 없지만..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연의 조치를 실천해야 한다고..
그러려면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등 더 많은 나라에 평화를 실천하는 보살들이 나오도록 불교를 전해야만 하는 게 아니냐 말이야.().
어떤 말을 하든 안하든..
봄은 오고.. 봄은 간다.^^..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