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시점에 우리들이 더욱더 명심해야 할 것은 6.25전쟁의 막바지에서 중공군 7사단(12만명)의 인해전술에 포위된 흥남으로 철수하는 과정의 "장진호ㅔ 전투"에서 희생된 미군들의 희생을 결코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겨울이 일찍 오는 개마고원의 장진호 일대의 기온은 영하 30도의 혹한 속에 전투가 막바지로 치닫던 11월24일은 영하 37.5도에서 방한복 준비가 거의 없었던 미군은 추위와 함께 동상에 걸렸으며 무릅까지 올라오는 고무로된 방한화는 내부의 땀을 배출하지 못해 방한화와 함께 발이 통체로 얼게되어 벗겨지지 않아 방한화와 함께 발을 잘라낸 병사도 있었다.
그 당시 6,532명의 미군들이 죽어갔으며 살아 있어도 동상으로 인한 수족의 절단으로 수 많은 병사들이 고통받고 있었다.
장진호 전투는 2차대전 이후 모스크바 전투,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함께 세계 3대 동계 전투로 알려져 있지만 장진호 전투가 가장 최악의 전투로 1950년도 사건 당시, 미국의 뉴스위크지는 "진주만 피습 이후 미군 역사상 최악의 패전"이라고 혹평하였다.
우리가 지금 지난 6월 21일 누리호 발사 성공과 과학 및 방위산업의 발전 등 세계속에 경제대국과 함께 어려움 없이 잘살고 있는 것 또한 장진호 전투를 비롯한 각 곳의 전투에서 이분들의 그 값진 희생들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며 이를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이분들은 이제 거의 고인이 되셨거나 살아계셔도 90대 중반을 훌쩍 넘었으리라 생각된다.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 에는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라고 세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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