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Manfred von Richthofen, 1892년~1918년)



"내가 날고 있는 고도보다 낮게 날고 있는 적기가 후방기총좌가 없는 단좌기라면, 거의 죽은 목숨이나 다름 없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육군 항공대의 에이스. 1918년 4월 21일 격추당할 때까지의 총 격추수 80으로 1차대전 에이스 중 1위. 이후 영국에서의 연구를 통해 73기의 격추기록을 확인했다. 미확인 격추까지 합치면 100기가 넘으리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저 기록의 대부분은 독일 제국이 하늘에서 밀리던 시기에 쌓은 것들이다. 제2차 세계대전 독일 에이스들의 3자릿수 기록에 비하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당시에는 2차대전때만큼 전쟁에 투입된 비행기가 많지 않았으며 광학 조준기나 자동 추적 장치도 없이 그야말로 순수하게 인간의 감각만으로 격추해야 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저 기록은 전설이 되고도 남는다.
타고다닌 전투기를 항상 빨갛게 칠하고 다녀서 붉은 남작(Der Rote Baron)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포커 삼엽기. 리히트호펜의 이름은 대전기간 내내 연합군과 독일군 양쪽에서 칭송받았다. 즉 오덕계에서 아주 유명한 뿔 달린 3배 빠른 기체를 타고다니는 가면남을 포함해 픽션에 등장하는 붉은 기체의 에이스 파일럿은 십중팔구 리히트호펜이 모티브다.
슐레지엔 지방 브레슬라우 근교에서 귀족(남작)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한 살이 되자 다른 프로이센 귀족 아이들처럼 소년 군사학교에 들어가 군사 교육을 받게 된다. 군사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황실 육군학교에 입학하여 더 수준 높은 교육을 받게 된다.
황실 제1기병대의 육군 기병장교로 군생활을 시작했으나 시대는 이미 기병의 황혼을 가져온 기관총이 대세였다. 동부전선에 배치됐지만 곧 부대가 전멸, 기병으로 전장에 참전했는데 식료품만 나르는 신세로 전락했다고 하면서 병과전환을 신청, 항공장교로 전과해 정찰기 승무원으로 배치됐다. 처음에는 정찰기 뒷좌석의 후방기총으로 적 항공기를 잡아보고는, 삘 받아서 전투기 조종사를 지원한다. 이때 뵐케의 금언으로 유명한 오스발트 뵐케의 광팬이 되었는데, 마침 뵐케는 기존의 정찰이나 폭격 임무는 배제하고 순수하게 제공 전투를 전문으로 하는 새로운 비행대 야스타2를 창설하려고 하고 있었다. 리히트호펜은 우연히 뵐케를 만나 여기에 발탁되어 격전이 벌어지던 서부전선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킬수를 쌓아올렸고 뵐케 사후에는 우수한 항공부대 지휘관으로 복무, 국민적인 영웅이 되어 자서전도 출판할 정도로 명성을 쌓는다. 이 자서전은 초창기의 공중전에 대해 리히트호펜 본인이 간소하게나마 이론을 정립해 놓은 책으로, 당시에는 물론 이후에도 전세계 전투기 조종사들의 필독서가 된다. 2차 세계대전 에이스들 상당수가 이 책을 읽고 하늘의 길을 택했다는 후문이 있다.
독일이 하늘과 지상에서 모두 한계에 달했던 1918년 봄, 평소처럼 출격했다가 그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출격 전에 엽서에 싸인해달라고 부탁한 정비사한테 "혹시 내가 안돌아올까봐 걱정돼서 그래요?" 라는 장난스러운 질문을 날렸다고 한다.
리히트호펜은 기체 피격에 의한 추락사가 아닌 총상으로 사망했다. 리히트호펜은 총에 맞고 의식불명이 되어 전투기와 함께 추락 직전까지 갔으나 다시 깨어나 평지에 착륙한다. 그리고 몇 분 뒤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비행기와 함께 추락해 형체도 남지 않았던 다른 조종사에 비해 깔끔하게(?) 죽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비행기는 거의 멀쩡했던지라 기념품 사냥꾼들이 부품을 다 뜯어갔다고 한다.
이렇게 기체가 조각나서 사라져 버린 탓에 리히트호펜을 격추시킨 것이 누군지 확실치 않다. 왜냐하면 워낙에 리히트호펜이 유명하다 보니 미 육군 및 영국 육군 에이스들이 서로들 자신이 격추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영국과 미국 언론은 죽은 붉은 남작만 더 유명해진다고 이들을 비아냥거렸다. 영국 육군에서는 최종적으로 캐나다 출신의 에이스 로이 브라운이 리히트호펜을 격추했다고 발표했지만, 브라운의 총 격추 전과는 딱 10기다. 물론 이것도 적은건 아니고, 또 공중전에서 절대는 없겠지만 별로 신뢰성이 없어보인다.
결국 대전 당시에는 확실하게 누구인지 확정되지 못한 채로 되려 붉은 남작만 더 유명해지고 정작 리히트호펜과 마지막으로 교전했던 이들은 대부분 묻혔다. 훗날 시신을 다시 파내 부검한 결과, 적기에게 격추된 것이 아니라 대공 기관총탄이 아래에서 위로 관통한 것이 사인임이 밝혀졌다.
1차대전 당시 리히트호펜의 인지도는 그냥 유명한 에이스 수준이 아니라 전국적인 아이돌 수준이었다. 금발의 미남이라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으며, 육군 병사들조차 리히트호펜의 사인을 받고 싶어했다. 1925년에 리히트호펜의 유해가 독일로 돌아왔는데 전국에 조기가 게양됐고 장례 행렬 뒤로는 베를린이 생긴 이래 가장 긴 줄이 만들어졌다. 리히트호펜이 베를린 군인묘지에 묻힐 때 첫 삽을 뜬 사람은 파울 폰 힌덴부르크 독일 대통령이었다.
되려 로이 브라운(1893~1944)은 그다지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다. 그는 살아생전 자신이 붉은 남작을 격추했다고 자랑했지만 캐나다나 영국에서도 별로 믿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1차대전 말기에는 병에 걸리거나 공중전 도중 부상을 당해 치료받기도 하면서 격추 수가 적은 탓에 저런 이가 붉은 남작, 그 괴물을 격추했다고? 전세계적으로 사람들이 못 미더워했던 걸 본인도 무척 스트레스를 받았다. 오죽하면 리히트호펜이 엄청난 장례식을 치루던 걸 전해듣고 "그 놈은 죽어서 전설이 되었지만 나는 살아서 잊혀진 지 오래이다." 라고 한탄했던 바 있다. 30대 초반 일찍 군을 예편하여 공인회계사로 벌어먹으며 살아갔다가 그래도 직업상으로 작은 항공업체 간부로 일하기도 했지만 이름을 알리진 못했다. 2차대전이 터지자 징집연령을 훨씬 넘긴 나이로 공군에 지원했지만 나이가 많다고(46) 거부당한 그는 1941년 시의원 선거에도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은둔하여 시골 농장에서 지내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세월이 훨씬 지나서 2010년대에서야 고향에서 에이스라며 재평가도 하고 기념비라든지 여러 가지로 알리고 있지만 고향을 떠나면 듣보잡 신세다.
리히트호펜 자신을 비롯해 부하들까지 온갖 원색을 동원해 제멋대로 칠한 항공기를 타고 다녀서, 리히트호펜의 부대는 날아다니는 서커스단(Flying Circus)으로 불렸다. 이는 리히트호펜의 부대가 일종의 전술 예비대로서 열차를 사용해 위급한 전선마다 급파되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형형 색색의 복엽기들이 열차 화물칸에 줄지어 늘어선 모습이 마치 순회공연을 다니는 서커스단 같아서 붙은 이름. 붉은 남작 본인이 직접 여러 부대를 돌아다니며 선발해 온 에이스들로 득시글댔기에 그 전과는 무시무시했다. 참고로 리히트호펜 전사후 이 부대를 지휘한건 다름아닌 헤르만 괴링.
활약상을 보면 적어도 중령 이상은 달아야 했지만 계급은 계속 대위였는데, 아버지가 예비역 소령이어서 그걸 넘어설 수 없었다고 한다. 대신 훈장을 푸짐하게 받은 편.
참고로 리히트호펜의 동생 로타와 사촌동생 볼프람도 유능한 파일럿 겸 지휘관으로 명망 높았으며 사촌동생 볼프람 폰 리히트호펜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사촌형의 이름이 붙은 리히트호펜 비행대의 지휘관이었다. 루프트바페의 일원으로 스페인 내전에서 독일측 지원군이었던 콘도르 군단을 지휘, 게르니카 폭격을 비롯해서 스페인 여러 동네를 개발살내고 공군원수로까지 승진해서 이후 유럽 여러 곳을 폭격으로 개박살 개발살 냈다.
이 전투비행대는 2차대전 기간은 물론 현 독일 공군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리히트호펜은 입대하기전에 사냥이 취미였는데 공중전 또한 사냥의 연장선으로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리히트호펜은 자신이 격추시킨 전투기들의 잔해로 자신의 숙소를 꾸미는 악취미가 있었다. 얼핏 보면 자신의 훌륭한 전투 기술을 증명할 수 있는 멋진 방이지만 희생자들과 연합군 조종사들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는 비록 영웅이지만, 뼛 속까지 군국주의자인 인물이였다.
한번은 격추당해서 독일쪽의 포로가 된 영국 조종사가 리히트호펜을 보고 여자가 아니여서 매우 놀란 일화가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영국군 전투기 조종사들 사이에선 전투기에 붉은색 페인트를 칠하고 날아다니는걸로 보아하니 붉은 알바트로스전투기의 조종사는 잔다르크같은 여성조종사일 것이라는 소문 때문이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