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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부문 스크랩 [연재소설] 한(恨) -생존 5회-
최석영 추천 0 조회 109 07.09.07 20:36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한(恨)

 

-최석영-

 

3부 생존 5회


들빼기 모녀였다. 사냥을 한다며 나갔던 모녀가 무슨 연유로 가던 길을 되돌려 왔는지 모르나 창고 문을 들어서는 사람들은 분명 두 여자였고 인기척에 놀라 뒷걸음질 치는 배씨는 모골이 송연 하면서 식은땀이 흘렀다.

“칠성이가 죽다니? 그것이 뭔 말이여?”

“전쟁터에서 사람이 왜 죽것소.”

“뭐…, 뭐…,”

차마 말을 있지 못하는 배씨의 팔목을 틀어쥐는 들빼기의 아귀힘이 모질다. 다 늙어 백발인데다 물레질로 진이 빠진 배씨다. 사람을 잡아먹는 악귀들 이라는 두려움에 사내의 힘을 써 보지만 무거운 짐에 깔린 삭신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창고에 가두자.”

“엄니, 살래 둘라고?”

“암 소리 말어. 늬아부지 아니믄 너도 나도 세상 빛 못 봤응께.”

“글다가 군영에 알리기라도 하므는…!”

“미친 영감 말을 누가 믿간디. 메칠 가다놨다가 미친 사람을 찾아 왔다고 하므는 이 영감 말을 믿을 사람 아무도 없을 거시여.”

배씨는 입에 재갈 물려 창고에 가둬 지고 여자와 들빼기는 배씨가 없어졌다고 소문을 내었다. 산짐승이 창궐하고 시시때때로 백제와 신라가 싸움이 벌어지는 땅에서 사람 하나가 실종 되었다고 큰 사단이 나는 것도 아니었다. 눈앞에 사람이 며칠 보이지 않으면 그저 어디서 죽었을 것이라 짐작을 할뿐이다. 그러나 배씨는 달랐다. 운봉을 지키는 관군의 질그릇을 구워내는 관요는 중요 군사 시설이었다. 천명이 넘는 병사들이 먹고 마시는 모든 그릇이 질그릇 이였고 공성전에서 기름을 담아 적군에 던지는 불 항아리도 질그릇 이였다. 그러니 옹구장이 배씨의 실종은 신라 군영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고 운봉지역 수비를 총괄하는 석사르반 장군 역시 옹구장이 배씨의 행방은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달포가 지나 군영에 서방을 찾았다고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신라 군영 석사르반 장군이 배씨를 보기위해 가마터를 찾았다. 그러나 정신이 혼미한 배씨는 창고에 가둬 진 상태였다.

“어데서 찾았나?”

“쉔네 딸년이 마천 꺼정 가서 차자 왔그먼이라.”

“애 마이썼다.”

배씨는 소리소리 질러 ‘이년들이 사람 괴기를 묵는다고, 칠성이도 이년들이 잡아먹었다.’고 말했지만 이미 온 몸에 똥칠을 하고 역한 냄새를 풍기며 욕지거리를 해 대는 배씨의 말을 귀담아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애비가 없어도 애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할 수 있것나?”

“이미 달포가 넘게 그릇을 대 드렸구만이라.”

“얘기는 들었구마는 시집도 안간 가시나 몸이라 걱정이 돼서 안거나? 어려분일 있으마. 십장에게 얘기 하그라. 필요 한 그는 뭐든지 도와주라고 얘기해 줄 꾸마. 알재? 단디이 해야 헌다이.”

석 장군이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 너그럽고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고 여자가 들빼기가 고개를 깊숙이 숙여 읊조렸다. 여자는 석장군의 면상을 똑바로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감히 얼굴을 들어 마주볼 수 없는 대상이었다. 어떤 얼굴이기에 어떤 몸을 가졌기에 한 집안을 그리도 쑥대밭으로 만들고 사람을 잡아다 노예로 팔고 죽이는지…,

몇 백 년을 두고 벌여온 영토 분쟁이었다. 때문일까? 질그릇의 수요가 워낙 많은 터라 신라 군영에서는 흙 파오는 일, 나무 해 오는 일, 흙을 빚어 그릇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일 전부에 대해 사람을 대 주고 있었음으로 들빼기 혼자서 그릇을 빗는다고 해서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부모의 직업을 물려받는 세습사회인 신라에서는 더더욱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들빼기는 배씨의 옹구 굽는 가마를 물려받았고 백제군 포로로 잡혀와 가마터에 눌러앉은 천가를 배필로 맞았다. 천가를 옹구 장이 들빼기의 사위로 들이는 날 배씨는 피를 토하고 죽었다. 혼인날이 곧 초상 날이 되었지만 모녀는 이렇다 할 동요도 없이 배씨를 가마가 있는 야산 위 언덕배기 양지바른 곳에다 묻었다. 배씨가 죽고 얼마 안 있어 여자도 죽었다. 여자가 죽으며 들빼기에게 이르기를 석가 놈이 주는 것은 물이라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고 들레는 죽는 어미 앞에서 그 유언을 맹세로서 받았다. 어쩔 수 없이 군영에 옹구를 구워 대는 일을 하고 있으나 석가가 주는 것을 받아먹지 않고 그것을 일꾼들에게 나눠주니 인심은 후 하였고 여러 사람들에게 신망이 두터웠다.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그러는 사람이 사람 고기를 주식으로 삼는 사람이라는 것을.


국경마을 이었던 운봉이 백제가 멸망 하면서 남원경의 작은 촌락으로 남아평화를 누렸다. 운봉을 방어하고 지키던 석장군의 후손은 무진주 남원경 운성현의 성주가 되었고 사람 고기를 먹으며 석씨에게 복종하기를 거부했던 고 씨의 후손들 역시 옹구를 구우며 운봉 땅에 살아남았다.

‘우리 조상이 저것들(석씨)에게 버림받고 백제군에게 몰살 당면서 이 땅에서 왕 노릇 하던 영화를 이러 부랬다. 어찌 어찌하여 조상 한분이 살아남아 어떤 여자에게 씨를 주었는데 그 할매가 우리 씨를 지킬라고. 사람 괴기를 무금성 얼라를 나았느니라. 본래 이 가마터는 우리 것이 아니여 우리 할매를 구해주고 우리 씨를 살래준 배씨라는 사람 거시제. 근디 그 배씨가 저것들(석씨)에게 옹구를 대주는 사람이라. 옹구를 대 줌성 밥을 얻어먹는디 그 밥이 먼 밥이여? 우리 조상 다 주기고 우리 할매 자바다 종으로 팔아 무글라고 허던 저것들(석씨) 것이 아니여? 그것 들이 주는 밥을 절대로 무글 수가 없었던 우리의 할매는 전쟁에서 죽어나간 사람 괴기를 뜯어 먹음성 우리를, 우리를 이릇케 살랬단다. 긍깨 느그들도 조 한 알, 수수 한 모금이라도 저것(석씨)들 것은 입에 넣지 마라. 저것들은 우리를 망허게 허고 우리 피로 호의호식 허는 철천지웬수여 웬수. 저것(석씨)들 것이 아니고는 정 먹을 것이 없거들랑 사람괴기를 머거라. 그렇게라도 살아남아라. 살아남아서 이 땅, 운봉 땅에서 한을 풀어 느그가 꼭 옛날 우리 조상들이 누리던 그 세상을 다시 만들어라.’

유언을 하는 사람도 유언을 듣는 사람도 그것이 뜬구름 잡는 얘기로만 들릴 뿐 도무지 믿어지지도 않는 얘기고 이루어 질 것 같지도 않은 얘기다. 어떻게 사람으로서 사람 고기를 먹으며 과거 조상이 이 땅에서 왕 노릇 하였으면 뭣하며 또 그것을 이 힘없는 후손이 어떻게 이룬단 말인가? 무슨 수로… 돈도, 권력도, 없이 그저 옹구(옹기)나 구워 파는 처량한 신세에 말이다. 그나마 다행 이라면 백제가 망하고 신라가 저 멀리까지 국경을 넓히면서 운봉은 남원경의 작은 촌락이 되었고 운성 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지금의 산래 마천 운봉 땅이 이에 해당 되었고 국경을 지키던 병사들은 양민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운봉 땅에 남아 농사를 짓기 시작 하였다. 옹구장이를 세습하여 온 고 씨 후손들 역시 군요가 아닌 양민들에게 질그릇을 구워 팔게 되면서 더 이상 사람 고기를 먹지 않았다. 질그릇을 구워도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사람 고기를 먹었다던 조상의 뿌리도 희미해지고 저것들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원망도 사라져갈 때 3년간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가뭄이 들었다. 운봉 땅이 저것들의 땅이요 운봉에 사는 사람들은 그저 그 땅을 붙여먹고 살던 시절이라 땅이 떡- 떡- 갈라진 가뭄에 속수무책 이었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죽어갔다. 농사지을 줄도 모르고 농사지을 땅도 없고 그저 옹구나 구워 팔며 살던 옹구장이들이 옹구를 팔아야 먹고 살 판인데 흉년이 들었으니 옹구를 살 사람이 없었다. 먹을 것도 없는데 관에서는 산신제를 지낸다며 산신제에 쓸 그릇 일체를 준비하란다.

“노고단에서- 성도성모(박혁거세의 어머니)님께 산신제를 드려 비를 내려 주십사 빈다 카는데 이번에도 느그들이 하그라이?.”

벌써 어린애가 죽어 나가는 판이었다. 하다못해 조나 수수라도 한말 주면서 그릇을 구워 내라면 모를까 아무리 운봉 땅을 다스리는 대아찬이라도 그렇지 이 흉년에 그 많은 그릇을 맨입으로 굽기란 불가능했다.

‘씨벌, 우리 조상이나 망허게 허믄 됐제. 우리까정 주개 불라고? 성모성악이 내 할매여? 즈그 할매재! 옹구는 입으로 빚가이? 흙은 누가 파고 나무는 구가 허간디? 다 사람이 허는 짓인디 사람은 멀로 움지기가이? 멀 무거야 일을 헐 거시 아니 다고?”

할아버지에 할아버지에 할머니에 할머니가 또 할아버지에게 들었다는 사람고기 먹던 풍습을 생각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사람고기 먹는 일이 그렇게 흉악스러운 일일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전쟁이 끝나고 바람처럼 떠돌기 시작한 해괴한 소문들. 사람고기를 먹고 전쟁을 했다는 얘기, 사람고기를 먹으며 고향으로 돌아 왔다는 얘기가 괜히 떠도는 얘기가 아니었고 미친년이 제 자식을 삶아 먹었다는 소문이 헛소문이 아닐 거라는 심증이 드는 것은 운성을 다스리는 성주에 대한 반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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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09.10 10:37

    첫댓글 2, 3, 4회는 어디로 사라졌어요... 역사적인 내용 같은데...

  • 작성자 07.09.10 12:49

    일반 게시판에 올리기 껄끄러운 내용이 다소 있어 제 블러그에서만 공개하고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제 블러그에 들려 참조 하시길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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