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 1
나는 일주일에 한두번은 택시를 탄다. 걷는 것도 좋아하고, 생활도 검소한 편인데 유독 택시를 타는 것은 잘 못 끊겠더라. 일점호화주의라며 나에게 허용한 작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오늘 아침 약속시간에 늦어 사당동에서 서초동으로 가면서 택시를 탔다. 예정된 회의와 일에 대한 부담감이 찾아온 터였다. (그러고보니 난 주로 긴장할 때 택시를 타는구나~)
유난히 신호에 자주 걸리는 날이 있는데 그런 날은 요금이 살짝 더 나온다. 오늘은 택시를 타자마자 신호에 걸렸다. 마음이 급해진 터라 재촉을 할까 하는 요량으로 기사님께 눈을 돌렸다. 푸른색 바탕에 흰 스트라이프 셔츠가 말끔했다. 헌데 오른쪽 팔 절반이 없었고 왼손으로 운전을 하시는 기사님의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왠지 긴장이 느껴졌다.
순간, 내 긴장된 마음을 바깥에 돌리려 했구나 알아졌다. 휴~ 숨을 돌려쉬고 시선을 바깥으로 돌렸는데 똑같은 셔츠를 옆의 택시 기사님도 입고 계신게 아닌가? 그래서 물었다. "기사님! 혹시 그 셔츠(남방)가 유니폼인가요?" 처음엔 잘 못알아 들으시더니 "아~" 하시며 그렇단다. 택시기사는 그 셔츠를 입게 되어 있다고 말하시며 "짜증나요" 하시는거다.
왜요? 했더니 "전 누가 뭐 하라고 하는 것이나, 하지 말라고 간섭 당하는 게 너무 싫어요" 하셨다. 국제화 시대에 발맞춰 런닝 내의(메리야스)나 반바지 등을 입고 운전하는 분들을 계도하기 위한 취지인듯한데 기사님 입장에서는 구속하는 느낌이 드는가보다. 나는 맞장구를 쳐주는 대신 이쁘게 웃는 얼굴로 "산뜻하고 단정해 보이세요~" 했다. 그말에 한결 가벼운 목소리로 "제가 택시 이야기를 좀 들려드릴까요? 하시는 거다. 역시 부정적인 에너지는 반전이 필요하다.
젊은 기사님에게 들은 택시 스토리 ~
1. 택시기사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단거리 손님, 가장 환영하는 것은 장거리 손님이다.
택시의 대부분은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데 운행한 거리와 상관없이 요금이 많이 쌓여야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택시요금의 특성상 단거리보다는 장거리가 채산이 맞다고 한다.
2. 빈차여도 택시가 잘 서지 않을 때는 이유가 있다!
자신이 검은 비닐 봉지를 들고 있거나, 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택시를 잡는지 살펴볼 것. 택시기사들 사이에서 검정 비닐봉다리는 단거리 손님을 상징하는 코드다. 마을 버스 정류장 앞에서 기다리는 손님은 대부분 마을버스 노선으로 가는 것이라고 한다.
3. 그렇다면 늦은 밤 택시를 타려면?
시외 버스 정류장에서 택시를 잡아라! 일단 택시는 타고 나면 게임 끝이다. 무조건 타서 가까운 거리라도 가라!
4. 택시기사들 사이에서 '나 좀 놀아'하는 표시는?
흰 양말에 쪼리다! 잘 이해가 안가지만 흰 양말에 쪼리를 신고 바지를 살짝 걷고 다니는 분들은 '나 건들지마'하는 의상이란다. 이분들은 주로 장거리 위주로 운행하신단다. 한 성깔 하시니 택시를 탈 때 조심할 것~
5. 택시기사들은 복장단속이 있다!
종종 셔츠를 입지 않은 것을 단속할 때가 있다. 공공기관이나 공항등에서는 상시로 단속을 하는 편. 물론 자유로운 영혼의 택시기사님들은 거의 셔츠를 입지 않는단다.
6. 셔츠를 입지 않았을 때 장거리 손님이 탔을 경우~
서울 시내에서 인천 공항을 가자는 손님은 'VIP'다. 셔츠를 입지 않은 날 VIP손님이 타는 경우는 공항 근처까지 가서 셔츠를 입은 기사님의 택시로 갈아 태우는 것은 일종의 노하우다.
신나게 이야기를 하시며 밝아지는 기사님의 표정에 나 역시 기분이 좋아졌다. 어느덧 목적지에 다다랗고 내 마음의 긴장도 많이 풀려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행복은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고 즐겁게 받아들일 때 일어나는 감정인듯하다. 기사님께 배운대로 부담감을 확~ 줄이고 오전과 오후에 있었던 미팅들을 마칠 수 있었다.
코드 2
집은 돌아오는 길에 비가 한 두방울 똑똑 떨어졌고 몸도 으슬으슬 했다. 어제 통일체육축전을 마치고 찾아온 피로감이거나 내일 있을 일에 대한 긴장감이겠지. 대부분의 불편함은 현재에 있지 않을 때 찾아온다. 우유와 과일로 저녁을 간단히 먹고 목욕탕에 갔다. 평일 저녁의 목욕탕은 한산했다. 냉탕, 온탕을 오가고, 건식, 습식 사우나를 드나들며 몸을 살피기 시작하자 기분이 좋아졌다. 확실히 기분이 좋아지면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오랜만에 찾는 목욕탕에서 본 익숙한 풍경들도 새로웠다.
목욕탕에 가면 꼭 있다. 베스트 3
- 바가지 두 개 맞붙여서 냉탕에서 수영하시는 분
주로 애들이 그러는데, 오늘은 나이드신 분도 그러시더라. 물장구는 살살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사우나에서 동네 뉴스 전하는 분
오늘도 김xx씨네 이혼 소식이며, 노xx씨의 이사 소식등 동네 뉴스를 본의 아니게 듣게 되었다.
- 락커앞 평상에서 일일 드라마 보며 분개하는 분
일일 드라마의 백미는 불륜과 치정. 티비 앞에서 서로 맞장구 치며 드라마 보는 풍경은 인도 영화관을 연상케 한다.
특히 오늘은 마흔 아홉 아줌마와 삼십대 총각의 로맨스가 나왔는데, 아줌마가 나이를 밝히자 고민하다가 키스씬으로 연결되었다. 이건 정말이지 아줌마들을 위한 교활한 극본이 아닐까 싶었다.
3번쯤 고민하다가 목욕탕에서 옆에 앉은 아줌마에게 등을 같이 밀자고 했는데(난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9단이다), 그 아주머니가 목욕관리사(흔히 때밀이라부르는)를 능가하는 신공 때밀기와 어깨 안마까지 해주신다면 대단한 행운이라 할 수 있겠다. 게다가 내가 미는 그녀의 등은 때가 거의 나오지 않는 요구르트 마사지로 단련된 등이라면 더더욱~. 오늘 저녁 백두산 사우나에서 뜻밖의 등밀기 교환에 깜짝선물을 받은 기분^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