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순덕 시인,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구름 위의 구두
유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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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도록 소슬바람 별자리가 휘고 있다
모래폭풍 부는 방이 공중으로 떠올라도
심 닳은 연필을 쥐고 청년은 잠이 든다
도시 계곡 빌딩 숲을 또 감는 회리바람
도마뱀 꼬리 같은 추잉검만 질겅대고
수십 번 눈물로 심은 비정규직 이력서
윤기 나게 닦은 구두 구름 위에 올려놓고
조간신문 행간에서 술빵 냄새 맡는 아침
환청의 발걸음 소리 꽃멀미에 가볍다
[심사평] 소재의 참신함에 현대 시조다운 제목 돋보여
올해는 양과 질 모두에서 기댓값 이상의 수확이다. 응모편수가 지난해에 비해 30% 이상 늘어난 데다, 작품의 성취도 또한 상승세가 뚜렷하다. 그간 하나의 경향성을 보였던 역사나 자연시편이 줄어든 대신, 명퇴나 비정규직 같은 당대 삶의 문제에 관심이 증폭된 것도 고무할 만한 일이다.
‘구운몽 여름’(박경희), ‘다시, 와온’(장은해), ‘봄, 난타’(강선희), ‘꽃비, 은비늘 입다’(고윤석), ‘구조조정’(정미경), ‘구름 위의 구두’(유순덕) 등이 마지막까지 각축을 벌였다. 역사현실에 충실한 박경희의 ‘구운몽 여름’은 놓치기 아까운 가작이다. 유배의 자취와 풍경을 결속하는 솜씨가 만만찮은 시력을 짐작게 한다. 그러나 주제의식을 부각하는 표현의 밀도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유순덕의 ‘구름 위의 구두’를 당선작으로 낙점한다. 소재의 참신함이 돋보이는 데다, 제목부터가 짐짓 현대시조답다. 청년실업이라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정면에서 응시한다. ‘심 닳은 연필을’ 쥔 채 잠든 ‘청년’의 밤은 ‘소슬바람’에 ‘별자리가 휘고 있다’. 정황 묘사를 넘어서는 심리 묘사가 발군이다. 생존 현장에 직핍한 정서의 힘은 셋째 수에서 정점을 이룬다. 출근을 고대하며 ‘윤기 나게 닦은 구두’. 하지만 그 구두를 ‘구름 위에 올려놓을’ 수밖에 없는 암담한 현실이 ‘조간신문 행간에서 술빵 냄새’를 맡게 하는 것이다.
불과 얼음을 건너 우리 곁에 온 또 한 사람의 시인에겐 축하의 박수를, 혼신의 작품으로 신춘 무대를 빛낸 여러 잠재시인에겐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_ 박기섭 시인, 이근배 시인
[당선소감] 오랜 습작 시간 함께 한 마음 속 흰새 날려보낸다
저물녘이면 어김없이 개울을 찾던 흰 새가 있다. 이따금 가까이 혹은 멀리 날아갔다가도, 바다를 건너며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도, 어김없이 같은 장소를 찾아들었다. 간절한 무엇으로 그곳을 떠날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때마다 능선 너머에서는 아버지의 슬픈 시조 가락이 들려왔다. 그렇게 마음속 해도를 그려주며 열 번의 계절들을 맞고 보냈다. 흰 새와 함께한 시간은 내 오랜 습작의 시간이었다.
당선 소식을 듣던 오전 꿈일까 생시일까 한동안 멍했다. 이제 한자리에서만 서성이던 마음속 흰 새를 하늘 높이 날려 보낸다. 그런 이 순간, 너무 많은 얼굴이 떠오른다. 학문 연구와 시 창작을 함께 지도해주신 경기대 이지엽 지도교수님과 김제현, 윤금초, 박영우, 남진우, 박덕규, 서형범, 이찬, 하린, 열린시조학회, 경기대 교육원 시창작반 선생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또한, 항상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사랑하는 내 가족 박흥배 박사님과 아들 현우, 딸 현아. 일찍 가신 존경하는 아버지, 마음 한쪽을 아프게 하는 가족들에게도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 끝으로 부족하기만 한 작품에 눈길을 주시고 뽑아주신 이근배, 박기섭 두 심사위원님과 서울신문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약력>
1967년 전북 고창 출생 ▲경기대 국문과 졸업 및 동대학원 박사 과정 수료. 단국대·명지대 대학원 문창과 석사 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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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애영 시인, 2016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 2016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양을 찾아서
구녹원
마침내 양은 사라졌다
한 의식을 잃고서 나는 은주발에 담긴 눈*이 되고 싶었다
갈피가 다 바랜 경전 속에 없던 신이
밑창 닳아 낮아진 가죽신 아래에서 흘렀다
눈 내리는 게르 뒤란에서 그 의식은 치루어졌지
양 한 마리는 선택되었고
모든 자연의 의식 속에서 가장 무죄한 저 걸음걸이
죽음으로 걸어갈 때 누구라도 하늘을 보고 땅을 볼 것이다
단도가 양의 숨길을 통과하는 직전 그 눈은 검은 천으로 가리워지고
목자牧者 는 숨 털 한 올을 뽑아 속주머니에 소중히 간직한다
산자에게 건너간 울음소리, 가슴에서 질척이고
가장 조용히 자기를 버려 안식을 얻는 양의 침묵을 본다
양떼구름이 언덕으로 무리 지어 지나갈 때
두루마리 편지처럼 자꾸 도사리는 중얼거림들
대신 초원을 한 뼘 더 자라게 하는 울음소리가 하늘을 펼친다
만나고 싶은 얼굴이 생각날 때마다
나는 침상 캐시미어에 머리를 파묻고 싶었다
천년을 흐르는 구름도 있었다
양은 어디에 있을까
*벽암록 제 13 칙 파릉(巴陵) 은완리성설(銀椀裏盛雪) 차용.
<심사평>
신선한 상상력·큰 스케일이 마음 사로잡아
본심에 30여명의 작품이 올라왔다. 응모 편수는 많았으나 산뜻하면서도 자기만의 개성적 철학이나, 시적 사유의 폭이 약하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최종적으로 논의가 거듭된 작품은 송현숙의 `배고픈 이름'과 구녹원의 `양을 찾아서'였다. `배고픈 이름'은 잊혀져 가는 `도장'을 시적 대상으로 하여 독특한 시각과 발상으로 `불운한 가족사'를 잘 그려냈다. 그러나 후반부에서 상투적인 표현으로 시적 긴장감이 떨어졌다. 제목 또한 상징성이 약한 것이 흠이었다. 당선작 구녹원의 `양을 찾아서'는 오랜 숙련의 흔적과 상상력이 돋보였다. `사라진' 양의 죽음을 통해 삶을 영속하게 하는 존재의 비의에 천착한다. `가장 조용히 자기를 버려 안식을 얻는 양의 침묵을 본다'는 시구의 깊이, `초원을 한 뼘 더 자라게 하는 울음소리가 하늘을 펼친다'는 신선한 상상력과 큰 스케일이 심사위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영춘·고진하 시인
< 당선소감>
나만의 나무를 찾는 사유의 길
당선 소식을 접하는 순간 왜 그날이 떠오를까? 달걀 3개로 석유 한 홉을 바꾸고 환한 심지를 바라보며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읽고 훌쩍거렸던…. 사유하는 내 의식, 내 표현은 늘 허기졌다. `시는 인간의 가장 완벽한 발언이다'라고 매슈 아널드 영국의 시인, 문학비평가는 말했다. 나만의 나무를 찾고 싶었다. 어쩌면 저 광활한 초원 위에서 나의 구름을 찾는 한 마리의 양이었을까?
먼저 하나님께 감사기도 드립니다. 느린 저를 사유의 길로 이끌어 주신 경기대 이지엽 교수님께 가슴 깊이 감사드립니다. 명지전문대 이경교 교수님, 열린시학아카데미 하린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시와 길, `아카데미' 시우님들 친구분들 모두 힘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또 저희 사랑하는 가족들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납니다. 다섯 번의 장례의식을 치렀지만. 떠난 그 오솔길에서 저는 아무것도 해 드릴 것이 없었습니다. 오늘은 하늘에서 미소를 지으실 것 같습니다. 더 겸허히 공부하여 좋은 작품 쓰겠습니다.
- 구녹원(본명:구애영·69)
△전남 목포 生
△경기대 예술대학원 독서지도과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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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 시인, 2016년 영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당선작>
맹목
김종화
너의 서식지는 날짜 변경선이 지나는 곳, 어제와 오늘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가방 속에 접어 넣은 지도의 모서리가 닳아서 어떤 도시는 갑자기 사라지고 만다 오늘의 해가 다시 오늘의 해로 떠오를 적도 부근에 숙소를 정한다 날개를 수선할 때는 길고양이의 방문을 정중히 거절해야 한다 난 철새도 아니고 지금은 사냥철도 아니니까 너에게 이미 할퀸 부분을 다시 또 할퀴는 일 따윈 없어야 하니까
기착지를 뒤적이다 마지막 편지를 쓴다 마지막이 마지막으로 남을 때까지 쓴다 나를 전혀 마지막이라 생각하지 않는 너에게
삼일 전에 보낸 안부가 어제 도착한다 너는 나를 뜯지 않는다 흔한 통보도 없이 너는 멀어졌고 난 네가 떠난 지점으로부터 무작정 흘러왔다 너의 안부는 고체처럼 딱딱하고 나의 안부는 젤리처럼 물컹하다 몸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하는 기미조차 미약하여 난 비행(非行)이 너무나 쉽다
싸구려 여관방에서 보이는 야경이 주르륵 주르륵 흘러내린다 오늘도 나의 다짐은 추락하지 않고, 가벼워질 대로 가벼워진 나의 착란은 뼈마저 버린다 너는 결코 이방(異邦)이 아니다 태초부터 회귀점이다
[당선소감]
▲ 김종화 씨(시 부문 당선자)
시는 어쩌면 시인이 벼랑 끝에서 호명한 존재들의 처절한 몸짓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오늘 호명되었다. 누가 나를 이토록 간절하게 호명한 것인가? 나의 오랜 고독이, 운명처럼 달라붙은 시마가 나를 삼킨 것인가?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그것이 나의 마음 속 고향인 제주일지는 몰랐다. 여행 할 때마다 나를 기꺼이 다독여주었던 제주. 제주의 길을 걸으면 왜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는지를 이제 알겠다.
저수지의 둑길로 은륜의 바퀴가 굴러간다. 커다란 자전거에 타고 있는 사람은, 키가 아주 작은 소녀였다. 저수지에서 피어오르는 새벽 물안개는 소나무의 푸른빛을 머금어 몽환적이다. 소녀는 그 풍경을 보기 위해 십 리 거리 마다않고 달려온 것이다. 둑 위에 앉아서 해가 떠오르는 순간,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것을 본다. 소녀는 일기를 쓴다. ‘마흔 쯤 되면 시인이 될 거야. 시인이 될 거야.’ 오늘 그 소녀는 ‘시인’이 되었다. 조금 늦어졌지만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냈다.
나의 시에 진정성과 젊은 피를 수혈해 주신 하린 선생님, 항상 뒤에서 어깨를 다독여 주시는 박선우 선생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열린시학아카데미>의 詩友님들, 일일이 말씀은 못 드리지만 저를 아껴 주신 모든 분들과 이 기쁨을 함께 하겠습니다. 영주일보와 심사위원님, ‘呼名’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밥 대신 시를 짓는 나를,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남편과 아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시를 향한 나의 태도는 끝끝내 ‘맹목’이겠습니다.
*약력
「열린시학」회 회원
부평구정신문 「부평사람들」 취재 기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콘텐츠학과 재학중
[심사평]
참신한 비유와 이미지 돋보여
전국 각지는 물론 해외에서 보내온 많은 응모작들을 두고 심사위원들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지난해에 비해 응모 작품의 양도 양이려니와 눈에 들어오는 작품들이 많은 것은 심사를 하는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였다. 예심을 통해 고른 10여 명의 작품들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면서 오랜 시간 반복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양세정의 「수면은 모든 것을 구부린다」, 임지나의 「나비의 자석」, 김탄의 「맹목」을 최종 후보작으로 선정하고 장고에 들어갔다.
모두 나름대로 혼신을 다하고 있었다. 양세정의 시는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수면’에 반영하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어떻게 하면 시의 삼투압에 흡수되는지 그 방법에 아쉬움이 있었다. 임지나의 시는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바탕은 착실히 다져져 있으나, 중복되는 이미지를 걸러내지 않아 산만한 느낌을 주어, 초점화에 실패한 점이 아쉬웠다.
이에 반해 김탄의 시는 주제가 상투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앞의 내용을 극복하면서도 참신한 은유와 환유적인 이미지를 적절히 구사하면서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모두 소화해낼 줄 아는 능력이 돋보였다. 「맹목」을 당선작으로 뽑는다.
당선자가 걷는 문학의 길에 영광이 함께하기를 기원하며, 낙선한 분들에게도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 김영남(대표집필), 변종태>
첫댓글 세 분 선생님께 진심으로 축하의 마음을 보냅니다!
귀한 열매 맺게 하신 이지엽 교수님, 하 린 부주간님께도 존경의 마음을 보냅니다!
세 분 모두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 두 분 선생님 ..
소식을 올려주신 하린 부주간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우와~~세 분 선생님! 정말 멋집니다.
열린시학회의 무궁한 발전이 환히 보이는군요.
진심의 꽃다발을 올리겠습니다.
세 분 시인님들~ 정말 멋지십니다.
축하드리며 힘찬 박수와 꽃다발도 함께 보냅니다.
세 분 멋지십니다. 박수!
대단하시다 큰 박수를 보냅니다
더욱 분발하여 노벨문학상 공동수상을 하십시오
세계 최초, 대한민국 건국이래 최초 최고가 될것입니다
아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