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심 하천을 복원할 때 제1과제는 치수(治水)입니다. 특히 청계천처럼 경사가 급하고 유속(流速)이 빠른 하천은 무엇보다 비가 와도 무너져내리지 않도록 하는 게 최우선이었습니다.”
신종호(45) 건국대 교수(토목공학과)는 청계천 복원의 산모(産母) 역할을 한 사람이다. 청계천복원추진본부의 초기 멤버로, 사업담당관직을 맡아 청계천 복원의 기본ㆍ실시 설계를 이끌어냈다. 그가 사업 초기 3개월간 야근을 하면서 작성한 청계천 기술안내지침서에는 청계천 설계 방향의 세세한 부분까지 담겨 있다. 서울시에서 17년간 근무하다 올 9월 교수직으로 자리를 옮긴 그의 연구실 한편에는 공무원으로서 마지막 임무였던 청계천 복원 설계도가 소중히 보관돼 있다.
그가 청계천을 설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원칙은 지속가능성과 친환경성 두 가지였다. 지속가능성이란 준천(濬川)작업을 계속해야 생명을 유지했던 과거의 청계천과 달리 하천 복원 후 유지·보수에 비용과 노력이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고, 친환경성이란 하천 복원으로 자연을 되살리자는 의미다.
“복원된 청계천에 돈을 들여가며 물을 흘려보낼 것이냐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물고기가 돌아오고 초목이 자라는 등 정서순화적인 이득을 생각할 때 한강물을 끌어오는 데 드는 연간 수억원의 전기 비용은 생산적인 소비라 판단했습니다. 안전하면서 생태학적인 가치가 가미되고 자연이 살아숨쉬는 하천이 청계천의 컨셉트입니다.”
신 교수는 청계천이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데는 첫 해가 관건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설계를 하면서 홍수피해를 가장 신경썼는데 첫 해만 별다른 피해 없이 넘기면 청계천은 안정될 수 있다”며 “양안에 심은 나무와 풀들이 뿌리를 내리면 200년 빈도의 최고 강우에 대비해 설계한 청계천은 홍수가 와도 별다른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에 따르면, 청계천 설계에는 곳곳에 비용 절감과 친환경을 위한 장치들이 숨어있다. 예컨대 청계천에 흘려보내는 물은 한강물과 지하수 외에 중랑천 하수처리장을 거친 물도 유입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하수처리장을 거친 물을 흘려보내는 데는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아 앞으로 운영하기에 따라서는 물값을 줄일 수 있다.
또 비가 올 때 시간당 2㎜까지 내리는 초기 강우는 청계천에 유입되지 않고 모두 하수로 빠지도록 돼 있다. 흙과 오물이 씻겨 내려오는 초기 강우가 바로 청계천으로 유입될 경우 토사가 쌓이고 물고기를 죽일 수 있기 때문에 세심한 안전장치를 했다.
청계천 양쪽 도로변에 나무가 6m 간격으로 심어져 있는 폭 1.5m의 가로수길도 신경을 쓴 부분이다. 당초 청계천 상인들은 자신들이 활용할 인도(人道)나 차도가 줄어들기 때문에 가로수길 조성도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청계천을 위험한 낭떠러지로 만들 수는 없다”며 가로수길을 지켜냈다.
신 교수는 “청계천의 가로수길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무들이 엉겨붙으며 도심의 녹지축이 될 것”이라며 “청계천은 아직 100% 완성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형태를 갖춰갈 것”이라고 말했다.
시청 공무원으로서 그가 청계천 복원 프로젝트가 실제로 추진되는 것을 알았을 때 처음 떠올린 것은 1980년대 말의 쓰레기 소각장 파동이었다. 당시 서울시 청소사업본부에 근무하면서 상계동, 목동 쓰레기 소각장 건설 임무를 맡았던 그는 주민의 극렬한 반대로 사업이 표류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 원형탈모증까지 생겼었다. 당시의 악몽을 떠올린 것은 이번에도 상인들의 반대로 삽질 한번 못하고 사업이 표류할까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기우(杞憂)로 끝나고 말았다.
고려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에서 ‘도시 지반·지하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신 교수는 “도심을 가로지르는 6㎞의 하천을 광범위하게 복원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차도 확보 등의 기능을 우선시하느라 청계천 교량의 기하학적 아름다움과 구조미를 좀더 살리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