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8일
강화를 다녀가는 관광차량 위편으로 김포(통진읍)로 향한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강화읍 입구 한편으로는 줄지어 늘어선 좌판 위에 강화 특산물인 순무, 순무김치 등이 즐비하게 쌓여 있다.
김포까지 25km. 오늘 저녁은 중간의 통진읍에서 하루 묵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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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서 김포시 갔다가 전단지 뭉치를 우체국에서 찾아서 다시 통진읍으로 돌아오는 길]
강화도와 김포를 가르는 강화대교를 건너는데, 김포 해안가에 조선시대 문수산성(좌)망루와 분단이 후에 만들어진 초소(우)가 한 눈에 들어온다.
[과거 400여 년 전 저 산성에서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한 선조가 한순간 이 시대에 방문할 수 있어서, 저 초소의 용도를 안다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 아마 “야이 못난 놈들아! 우리가 목숨 받쳐 적들을 맞아 싸워 온 것이 니들 패 갈라서 싸우는 꼴 보려 했음이냐!”고 호되게 꾸짖지 않을까?]
[다리 건너니 김포시]
[살짝 봄이 지나쳐 가는 듯 한 풍경 / 꽃잎은 떨어지고...]
[한동안 걷다가 소나무 화단 안에 배낭을 깔아 놓고 그 위에 누워 한가한 한때를... / 작년에 떨어진 솔잎이 바삭하게 말라서 푹신푹신한 쿠션을 제공한다. 왼쪽 빨간 테두리내의 시커먼 물건은 배낭에 걸어 말리는 속옷. 둥글이의 배낭은 물건을 담는 가방이자, 간이 침대이며, 빨래 건조대이다.]
[길가 한쪽에 정이 그리운 강아지 한 마리가 낑낑거린다.]
[천의 둑에서 봄나물 캐는 아주머니들]
[통진 까지 가는 길은 차들이 밀려 정체되는 바람에 차들과 나란히 걸어야 했고, 드문드문 차창을 열고 격려의 표시를 해주는 분들을 대할 수 있었다.]
[청룡사? 절인지 부대인지... 아니면 ‘소림사’ 같은 무예 화 된 정예 스님을 양성하는 곳인가? 궁금한 사람은 전화해서 물어보시길~]
[ 통진읍 전경 ]
-께름칙한 야영-
통진읍에 들어가 모 초등학교에 텐트를 쳤다가 좀 께름칙하게 하루를 묵어야 했다.
토요일 저녁이고 해서 주사님에게 안 걸릴 줄 알고 한구석에 텐트를 치고 맘 놓고 있다가, 발각되었다.
버너에 코펠 올려서 밥하는 중에 걸렸기에 ‘걷어가라!’는 말이 나오면 참으로 끔찍한 일을 겪어야 할 상황...
어떻게든 안 쫓겨나려고 주민등록증 들이 대면서 이런 저런 사정설명을 구구 절절히 해대니 다행으로 묵을 것을 허락해 주신다. 그러고는 교무실로 오라고 해서 주민번호 적고, 각서를 쓰게 하시고 다음날 아침 나가기 전에 본인을 만나고 갈 것을 신신당부하신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거지를 하루 묵게 해주시는데 그 정도는 협조해 드려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텐트로 돌아가서 누워 있는데 다시 부르는 것이다. 숙직실로 들어오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서는 ‘식사 했냐’하시며 이리 저리 챙겨주시는 것 같은 말씀을 하시더니, ‘이렇게 돌아다니는 것은 널리 알리고 홍보해야 한다’면서 지구대 쪽으로 전화를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방범지구대인줄 알았는데, 경찰서 지구대였다.
그리고는 전화를 하셔서 나에게 내가 누구인지를 지구대에게 설명해보라고 하신다. 좀 뜬금없었지만 전화기에 대고 하라는 대로 해드렸다. 주사님은 전화를 다시 받아 경찰들에게 와서 확인해 보라고 말씀하신다.
잠시 후 경찰이 들어오더니 신원조회를 한다. 나름대로 경찰에게 쓸데없이 신분증 보여야 한다는 사실이 기분 상해서, ‘주사님 그냥 나갈게요’하고픈 마음이 한쪽으로 들기는 했지만, 그냥 좋게 상황을 넘겨 보냈다.
여차저차 해서 간첩이 아님을 확인하는 모든 절차를 마치고 다시 텐트에 들어가 쉬려고 하는데, 창문 안쪽으로 슬리퍼 달각거리며 주사님 가까워지는 소리가 들린다.
신원조회 하기 위해서 수위실로 데려가기 전에도 오셔서, 텐트 안에 누가 다른 사람이 있는지(여자) 텐트 걷어보라고 검문 하셨기에, 이번에는 또 무슨 주문 하로 오실지 신경이 곤두섰었는데, “저 앞쪽이 따뜻하니 그쪽에 텐트를 치는 것이 어때!”하고 챙겨주시는 듯이 물어 오시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머리에 스쳐지나가는 장면. 숙직실에 들어가서 감시카메라 각도를 확인해 본 바로는, 텐트를 치고 있는 위치가 숙직실 CCTV에는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CCTV로 감시할 수 있는 곳에 텐트를 다시 치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ㅠㅜ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걷고 다시 치려면 30분 넘게 걸리거든요.”하며 호의에 감사하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그 호의는 호의가 아니라, 노고임을 강조시켜 드렸다.
주사님도 애초에 ‘CCTV에 안 잡히니 좀 이쪽으로 가서 칠 수 없을까?’하고 물었던 것이 아니라, 나를 생각해주는 것 같이 말을 꺼낸 상황이기에 내가 ‘괜찮다’고 하는 말에 어찌 반응해야할지를 잠시 고민하는 눈동자였다. 그의 ‘기계적 감시정신’과 ‘인간적 감성’ 사이에 1.5초 동안 치열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나 역시 그가 ‘그래도 그 앞 쪽에 가서 텐트를 쳐’라고 말한다면, ‘해도 해도 너무 하신다’고 응수를 하고 나서는 텐트를 걷어서 뒤도 안돌아보고 학교를 빠져 나올 생각이 머릿속 가득 넘실거리고 있었다. 다행이 “그래 알았어. 그러면 잘 쉬어”라며 돌아가셨다.
사회의 구석구석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하이테크 감시사회의 메인컴퓨터로부터 몸 전체를 해킹당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누웠다.
4월 19일
[김포로 향한 길. 13km의 거리 저 멀리 산 너머 희미하게 보이는 아파트 윤곽이 김포였으면... 아마 그 너머서도 한참을 걸어야 할 것이다.]
[대파 옮겨 심는 할아버지]
[트랙터는 논갈이 중]
[각종 폐수와 녹조현상으로 썩어 있는 농로. 수도권지역을 거닐다보며 보게 되는 강, 하천, 개울, 농로는 어느 한 곳 맑은 물빛을 한 곳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잠시 쉬기 위해 배낭을 뉘였을 때. 개집 위를 넘어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
[개집 옆에 배낭을 깔고 잠시 쉬어가며-
멸치 몇 개 던져주면서 두 마리 개의 대조적인 성격을 대한다. 왼쪽 놈은 성질이 급하고 오른 쪽 놈은 상당히 차분한 녀석이다. 왼쪽 놈은 옆에 사람이 있으니 호들갑을 떨고 ‘낑낑’거리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컹컹’거리고, 오른쪽 놈은 얌전히 있으려다가 옆에 놈이 하도 호들갑 거리니 그에 구색을 맞춰 분산이 움직인다. 멸치를 가져다주니 왼쪽 놈은 그 멸치가 지 주딩이에 닿을 0.1초를 참지 못하고 혓바닥을 날름 거려서 채가려다가 번번이 떨어트리는데, 오른쪽 놈은 혀를 진정시키고 차분히 아가리를 벌려 사정권 안에 멸치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이빨로 차분히 움켜쥔다. 사과를 한입씩 떼어서 던져줬더니, 성질 급한 왼쪽 놈은 급하게 아가리 딸각거리는 중에 그 사이로 사과가 빠져나가 바닥에 떨어져 버리는데, 왼쪽 놈은 차분히 입에 넣고 씹는다. 언뜻 보기에는 비슷하게 생긴 녀석들인데, 전혀 다른 놈들이다.]
[사과 한입 베어 물고 -
노숙에 구걸을 업으로 해서 사는 부랑자로서의 삶을 살다보니, 그에 촌수가 그리 멀지 않은 산적 내지는 날강도 기질이 몸에 배이는 듯하다. 사과 파는 좌판이 눈에 들어오면, 상자 체로 파는 것을 뻔히 알면서 괜히 ‘헉헉’거리며 불쌍한 표정을 하고 다가가서 “하나에 얼마인가요?”하고 묻곤 한다. 상황에 맞게 동정심을 유발시키면 공짜로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 사과는 그러한 강도질(?)에 실패해서 천원주고 구입한 것. 사과장수 아저씨는 내리 누르는 배낭에 의해 ‘축 쳐진 어깨’와, 한순간 가족을 몽땅 잃었을 지라도 이 보다 더 애처로울 수 없는 ‘불쌍한 표정’과 금방이라도 눈물이 폭포수가 되어 떨어질 듯 ‘우수에 젖은 내 눈빛’을 보지도 않고 세상 만사가 귀찮다는 듯이 “천원요”하고 답변할 따름이었다.]
[농수로를 통해서 떨어진 꽃잎이 밀려온 장면]
-김포 오는 중의 만남-
김포에서는 두 번의 만남이 있었다.
우선 길을 걷는데 봉고차 한 대가 서는데, 인천에서 팬시점 하는 분이 호기심 가득 어린 표정으로 묻는 것이다. 본인도 이런 활동 이전에 해봤다면서 뒤에서 차가 밀리려오는 바쁜 와중에도 ‘왜하냐?’ ‘언제부터 했냐?’ ‘대학생이냐?’^^(내가 좀 동안이기는 하지)고 까지 묻는다.
고생한다며 독려하시고는 꼭 연락 한번 해달라고 명함까지 남긴다.
두 번째 분은 강화에서 오는 중에 역시 길 가고 있는데, 갑자기 다가오시더니 ‘무슨 목적으로 이렇게 걷고 있냐?’는 등을 질문해 오시면서 핸드폰으로 사진 한 장 찍겠다고 하신다.
직접 찍어서 카페 자유게시판에까지 올려 주셨다.
[평생을 돌아다녀 봐도 결코 내가 접할 수 없는 장면 - 뒷모습. 허걱 배낭이 저리 삐틀어져 있었다니... ㅠㅜ ]
이야기를 언뜻 들어보니 상담-설득 쪽에 전문적 공부를 하신 분인 듯한데, 이와 관련해서 방송까지 촬영하고 있다고 하신다. 7월 쯤 해서 본인도 길을 떠나려고 한다고 하는데, 그 전에 한번 만나 뵙기로 약속을 했다. 대략 느끼기에도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다.
정착된 삶은 안정적인 생활공간을 마련한다. 그리고 익숙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생활공간을 그 모양 그대로 고착(안정)시켜내는 특징을 갖는다.
이에 반해 길이 좋은 것은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예상치도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 고민할 기회를 얻음으로 나라는 존재의 가능성을 끝없이 확장한다는 것이다.
김포시
우수한 품질의 쌀이 생산되는 경기평야가 위치해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곡창지대이다. 1998년 시로 승격되었는데, 대표적인 곡창지대가 시로서 승격된 이유는 수도권의 인구와 공업생산기능의 분산배치에 따라 인구가 증가하고 있고, 제조업체가 급격히 느는 등으로 산업화 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포시는 인구 21만을 가진 경기도 북서부에 있는 도시이다.
-독특한 이와의 만남-
김포에 도착해서 도서관 앞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30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짐을 들어드릴까요?”하고 묻는 것이다. ^^‘
‘이것 좀 먹고 가실래요.’ ‘물 한잔 드릴까요.’ ‘차 태워드릴까요.’라는 호의는 받아봤어도 짐을 들어드리겠다는 제안은 난생 처음이고, 난데없어서 괜찮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함께 여행 다니자는 것도 아니고, 배낭을 대신 매주겠다니... ^^‘
(나중에 알고 봤더니 시력이 나빠서 내가 물건을 옮기는 것으로 착각해 도와주려 했다는 것이다.)
하여튼 그러며 통성명을 했는데, 환경기사 일을 하다가 적성에 안 맞아서 세무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단다.
그러는 중에 잠깐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어 나왔다가 나를 발견했다는데, 내가 좋은 사람인 것처럼 보인단다.(내가 좀 동안이기는 하지ㅎㅎ)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저녁에 야영할 자리를 찾는 얘기까지 나왔는데, 약수터 주변에 좋은 자리가 있다고 하면서 그곳까지 안내해주겠다면서 텐트를 대신 짊어져 준다고 한다.
[헉~ 내 배낭을 대신 짊어져 주다니... ^^ ]
한편으로는 처음 만날 때부터 배낭 매는 것을 도와준다고 했던 난데없는 호의가 부담스럽게 작용하기도 했기에 혹시나 내 배낭이 유괴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더군다나 언덕을 올라 공동묘지 옆을 지나치며 음산한 분위기가지 들자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점차 그에 대한 신뢰감이 들었다.
[약수터 입구의 할머니의 좌판]
어둑해질 무렵 약수터에 텐트를 치고 나니, 사람들이 얼씬하지 않았다.
[약수터에 텐트를 치고 나서]
[졸졸졸 물내려오는 약수터]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밥 준비를 하고 있으려니 ‘라면 드시겠냐’고 하더니, 집에 가서 냄비와 라면을 들고 온다. 그리고는 라면을 끓여 먹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그는 사람이 유난히 순수하고 맑은 사람인 듯 했다.
특이하게 기가 상당히 쌘 사람인 듯 했는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신기 같은 것도 있는 듯 했다. 그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생각도 읽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사회생활 하면서도 사람의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땅만 보고 다녔단다. 사회생활이 그것 때문에 힘들었는데, 도서관 생활을 하면서 좀 안정을 찾았다고 한다. 세무사 준비하면서 도서관에서 몇 년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공부하면서 잡생각을 없앨 수 있어서 행복하단다.
악한 사람을 접하면 심장이 뛰고, 좋은 사람을 접할 때는 평온하며, 사람들의 과거와 머릿속 생각까지 읽는 이야기 등등의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보통사람과 달리 주체 못할 엄청난 기를 타고난 인물 같았다. 사람이 순수했으니 망정이지, 그 해박한 지식과 말솜씨와 자신감을 교묘히 이용한다면 사이비교주를 해도 대성할 사람으로 보였다.
이런 저런 질문을 통해서 그가 가진 생각과 기질과 능력을 하나하나 살피다보니 참으로 독특한 사람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여태껏 태어나서 말 통하는 사람을 처음 접했다고 한다. 주변의 가족들은 물론이고 친구들, 동료들 등등 자기가 관심 있는 이야기를 꺼내면 알아듣지 못해서 그런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었다고 한다. 제 정신이 아닌 사람들끼리의 의기투합의 장.
인간의 정신의 문제에서부터 영의 문제, 기의 문제, 사회의 문제 등등을 잡다하고 두서없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간은 열한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산에서 내려오는 한기가 서로의 몸을 떨게 만들었기에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4월 20일 월요일
사람들 웅성이는 소리에 잠을 깬다.
그렇다. 약수터이기 때문에 새벽부터 어르신들이 몰려드는 것이다. 오랜만에 사람 방해 안 받고 좀 늦잠 잘까 했더니... ㅠㅜ
6시 부터는 라디오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음악과 함께 할머니들 에어로빅이 시작되었다. 앞서 한 강사의 구호에 맞춰서 할머니들 관절 우둑거리는 소리가 약수터를 울린다.
텐트가 할머니들 체조하는 장소의 정면에 위치해 있는지라, 걷고 나가기가 그래서 안에서 한참을 엎치락뒤치락 거리다가 체조가 끝나고 파장된 후에 부스스한 몰골로 나서서 정리를 한다.
오전부터 비가 쏟아졌다. 다음날까지 최소 50mm가 쏟아진다고 했다.
[김포시내에 비 떨어지는 장면]
-갈 길 잃은 인생-
어디 적당히 머물 곳도 없고, 머리도 아프고, 목욕 못 해서 찝찝한 감촉 때문에 숙면이 취해지지 않는 상황여서 찜질방으로 들어갔다.
찜질방은 그야 말로 텐트를 칠 공간을 확보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최후의 보루이다. 그 어수선한 분위기로 인해서 찜질방에서 숙면을 취해본 기억이 없고, 오죽했으면 다시 짐을 싸가지고 나와서 도로 옆 공터에 텐트를 치고 잘 때도 있을 정도였다.
이날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저녁 7,8시경에 기분 좋게 술에 취한 사복을 입은 아저씨 하나가 찜질방 안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찜질방 사장으로 보이는 분과 형-동생 하는 관계의 분이었는데, 사복을 입는 것은 직원이지만, 일하지 않는 쉬는 날이어서 사복을 입은 것이거나, 아니면 찜질방 직원 중 아는 이가 있어서 놀로 온 경우이다.
12시 경에 tv가 꺼지고 모두가 잠자려고 눈을 감고 있는 상황.
어디서 주저리주저리, 궁시랑 궁시랑 하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어 봤더니, 바로 그 아저씨가 맥주 캔을 몇 개 들고 찜질방 한 중간에서 옆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조용한 찜질방 홀에 파문이 일자 보다 못해 이곳저곳의 남녀 들이 ‘좀 조용히 좀 하라’고 한소리씩을 해댔고, 그 아저씨는 혀 꼬부라지는 소리로 “얌마~ 네가 뭔데...”하며 반문하며 주정하신다.
나도 한마디 하려다가 아군들의 기세가 드높아서, 그냥 상황을 살피고만 있었다. 한참 그러다가 한분이 나가서 사장에게 이야기를 한 듯싶었다.
사장이 오더니 “야~ 너 이리 나와. 손님들 자고 있는데 뭐하고 있어!”하며 꾸짖는 것이다. 그러자 “예 형님... 그게 아니고...”.
이 양반 끌려가고 다시 들어와 자는 사람 방해하다가 욕설 듣기를 두세 차례 반복하고 나서 목욕탕에 끌려가 크게 혼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결국 쫓겨나지는 않은 듯 했다.
그 형님이라고 호칭되는 분이 사람이 좋아서 그렇지, 웬만한 사람이면 그렇게 속을 끓여 놓으면 의절하고 쫓아 낸 후에도 성이 풀리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도 이 양반은 아침부터 술에 취한 모습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태로 여기 저기 전화를 해서 “야 너 나 믿지!”하면서 뭔가를 상대방에게 확인시켜주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었다.
전화를 한참 하고 나서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담배를 빌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사장으로 보이는 분은 탈의실 한쪽에서 턱을 괴고 가면을 취하고 있었는데, 그에게 다가가서도 “형님 담배 한 대만 주십시요”하고 자는 사람을 깨워대는 것이다.
아랑 곳 않고 계속 자는 체를 하고 있자, “형님 이렇게 앉아서 주무시면 안됩니다. 이렇게 다리를 좀 편히 뻗고...”하면서 자려는 사람 몸을 자꾸 움직이게 만들어 오히려 가면까지 방해하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선 “역시 형님에게는 저 밖에 없습니다”면서 안위하는 것이다.
사장으로 보이는 분은 화를 버럭 내면서 “왜 자꾸 건드려 임마. 잠 좀 자게 놔둬”라고 한마디 할 뿐 계속 턱을 괸 모습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안쓰럽기 이를 데 없었다. 아마 돌아갈 집도 없기에 그렇게 찜질방 구석에서 술에 절어 있는 듯 한데, 폐인 되기 직전의 상황으로 보였다. 자존감도 상실하고 주변에 믿어주는 사람도 없어 술이 아니면 버티지 못하는 막다른 상황... 과연 무엇이 그가 인생의 길을 올바로 걸을 수 없게 만들어 냈을까.
[갈 길 잃은 인생...
김포 오는 중에 연석에 달라붙어 죽은 달팽이 한 마리. 새벽녘 습기 가득한 거리로 산책을 나왔다가 땡볕이 내리 쬐기 시작하면서 갈 곳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한 듯하다.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인간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아 자기가 살아야할 바를 제대로 정의하지 못하고 세태에 휩쓸리다가, 어느 순간 낙오되고, 상처를 받고, 가야할 바를 몰라 헤매다가... 결국 자기를 잃고, 자포자기하고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곤 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만의 책임은 아닐 것이다. 저 달팽이가 저렇게 말라죽어 껍질만 남은 것은 스스로 원해서가 아닌 인간이 만들어놓은 구조물에 발을 내디딘 결과에 의한 것처럼...
세상으로부터 낙오되어 가는 이들의 삶도 그것은 그가 원했던 바가 아니라, 규격화된 세상의 습속에 고사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도 영문도 모른 체...
영혼이 빠져나간 ‘껍질만 남은 달팽이’에 대한 책임은 인간의 문명에 있듯이, 그들의 ‘낙오’와 ‘자포자기’도 기실은 현대문명의 경쟁-욕망구조가 필연적으로 생산해 내는 부산물 아닌가.
이렇다면 연석위에 말라죽은 달팽이를 보면서 그 어리석음을 탓할 수 없는 것처럼, 세상으로부터 낙오되는 이들에게는 따가운 눈총과 비난이 아닌, 동정과 사랑이 필요하리라...
그들은 단순한 ‘패배자’들이 아니라, ‘현대문명의 뒷골목’일 뿐이다.]
4월 21일 화요일
-다시 통진으로-
찜질방에서 나와 13여 Km거리의 통진으로 다시 향했다. 그곳 통진의 ‘하늘씨앗살이학교’라고 하는 대안학교가 있었다. 그곳 신부님이 아이들에게 이야기 좀 해달라고 초청했던 터였다.
비가 막 그친 후라 습하고 찬 공기가 대기에 가득했고, 더군다나 강풍을 정면으로 대하고 걸어야 했던 길이라 발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 모자에 마스크에 후두까지 뒤집어쓰는 완전무장 상태로 이동했다.
부지런히 걸어서 통진에 도착한 후에는 단수조치 때문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강화도에서 단수된다고 해서 일부로 일정을 서둘러 김포로 넘어왔는데, ㅠㅜ 김포에서도 단수일 줄이야. 사진은 공공화장실에 걸린 안내문. 공공장소 장실도 사용할 수 없었고, 단수된 터에 민가나 가게에 가서 물 얻기도 그렇고 해서 곤욕이었다.]
[하여간 저녁에는 주차장 한쪽에 텐트를 주차해 놓고 묵었다. 습기가 가득한 찬바람이 불어대는 통에 자는 중에 한기가 들어와 자다 깨다를 반복해야 했다.]
4월 22일 수요일
[통진초등학교 캠페인]
물이 나오지 않아 세수도 하지 못한 꾀죄죄한 얼굴로 통진초등학교에 섰다.
[통진초등학교]
중간에 선생님 한분이 지나가다가 ‘혼자 돌아다니면서 하는지’ ‘걸어서 다니는지’ 등등에 대한 세세한 관심을 보여주셨다. 그 정도 관심이시면 전단지의 내용을 아이들에게 잘 설명해주실 듯하다.
이상스레 자신감이 잠깐 출장을 나간 상황으로 캠페인을 했다. ‘인간사랑 자연사랑’이라는 간지러운 조끼를 입고, 아이들에게 “인간과 자연을 사랑해주세요”하면서 전단지를 건네는데, 아이들이 좀 재미없는 표정으로 무뚝뚝하게 받아서인지 괜스레 내가 멋쩍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놈의 활동은 아무리 해도 적응이 안 되니...
[하늘씨앗살이학교 방문]
서울에서 천주교 수도사로 있는 아는 동생과 함께 김영근 신부님을 뵈었었다.
마침 통진읍(김포시)에 하늘씨앗살이학교라고 하는 대안학교를 운영하시고계셨는데, 지나는 중에 들려서 아이들에게 이야기 좀 해달라고 하셔서 찾아 들어갔다.
[하늘씨앗살이학교 표지]
[하늘씨앗살이학교 전경]
[학교를 지키는 살벌한 수문장]
통진읍 외곽의 아담한 건물에서 13명의 아이들(중학과정)을 다섯 명의 선생님들이 가르치고 있으셨다.
원래 이 학교는 일상적인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힘든 아이들을 위한 그룹 홈이 모태이다.
현재도 주변 20여분 거리에 두 개의 그룹 홈을 운영하고 있고 바로 그 그룹 홈의 아이들이 이 학교 학생들인데, 그룹 홈과 대안학교를 병합해서 운영되고 있는 형태이다.
아직 정식으로 대안학교 인가를 받지는 못한 상태이지만,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대안학교로의 모양새를 갖춰 준비하고 있었다.
이 두 개의 그룹 홈과 대안학교를 총 책임지는 분은 김영근 신부님 이셨다.
[김영근 신부님 / 가족회의 중에]
신부님은 97년에 신부 서품을 받으셨는데, 약물(본드 등)하는 청소년 계도에 큰 관심을 가져오셨다고 한다. 그때부터 계속 그룹 홈을 운영하면서 청소년 선도와 바른 가치 함양을 위한 일을 자신의 소명으로 아시고 매진해 오고 계셨다.
[김영근 신부님의 마음은 하늘씨살이 학교의 설립 취지에도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신부님 분석으로는 2000년도 들어서면서부터 본드 중독이 인터넷 중독으로 전환되었다고 하신다. 문제는 본드 중독은 혐오스럽게 여겨서 최소한 치료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던 것과는 달리, 인터넷 중독은 인텔리 한 느낌 때문에 그리 심각히 여겨지지 않고, 오히려 국가에서는 IT 산업의 진흥 등을 목적으로 간접적으로 장려까지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통탄하신다.
‘학교 운영이 (재정적으로)어렵지 않냐’는 질문에는 상당부분을 후원금에 의존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데, 이명박 정부가 복지비를 대폭 삭감해서 운영에 어려움이 많음을 토로하신다.
자그맣지만 야무진 체구에 차분하고 따스한 표정을 가지고 계신 분인데, 그 남다른 신념과 노고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 이곳에서 아이들 모아 놓고 빔프로젝트 쏘아가며 한 시간 동안 그간의 활약상을 구라 떨고...
- 가족회의 참관
[가족회의 모습]
학교에서는 거의 매일 가족회의를 하는 듯 했다. 교장선생님(신부님)과 교사님들이 학교 운영을 결정 짖는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안건을 내고 토론과 협의를 통해서 학교 운영을 결정지었다.
가령 이날은 최근 몇 주간 ‘마음 훈련’이라는 것을 해왔다고 하는데 그 와중에 ‘휴지 줍기’를 결정한 것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안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또한 전까지는 2달에 한 번씩 영화를 보는 시간이 주워졌는데, 건의와 토론을 통해서 ‘좋은 영화가 들어오면’ 협의에 따라서 볼 것을 결의 하였다.
이런 조그만 과정을 통해서 아이들이 자율적이고 주체적이며 민주적으로 사고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좋은 기회를 얻는 듯 했다.
[회의를 진행하는 선생님과 서기]
[회의 록 등]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자발적 동기를 부여받은 때문인지, 아이들은 쉬는 시간만 되면 컴퓨터 앞에 달라붙어서 ‘채소 가꾸기 발표자료’를 파워포인트로 작성하고 있었다.
(나도 고등학교 때 하기 싫은 주판 튕기는 공부(상고)않고, 이곳에 와서 공부해서 실력을 쌓았으면 지금쯤은 짐꾼 하나 옆에 달고 유랑하고 있을 판인데... 암 그렇고 말고...)
[채소 키우기 발표자료 정리에 열중하는 아이들]
모두들 둘러 앉아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식사를 했는데,
[식사 직전 모습]
식사하기 전에는 대표로 한명이 음식의 귀함을 생각해 보며 글귀를 읽는 시간을 가졌다.
[식사 전 잠시 머물기]
저녁에는 앞마당에서 아이들과 축구를 하며 정신없이 웃어대며 시간을 보냈다.
밀린 빨래 빨아서 건조대에 널어놓고 마르는 것을 지켜보면서, 외풍 없는 따스한 방에서 잠드는 기분은 참으로 푸근했다.
4월 23일 목요일
아침에 일어나 신부님과 함께 식사를 하고 그간 생활해 오셨던 이야기들을 들으며 그분의 믿음과 생활에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잠시 후 아이들이 하나둘 씩 등교하기 시작한다.
“내일 아침에 저 오기 전에는 먼저 떠나지 마세요”라고 신신당부했던 아이와도 작별 인사를 나누고 짐을 꾸려 나선다.
떠돌이 방랑자가 아니면 참으로 머물고 싶은 곳 중의 한 곳을 뒤로 하고 파주로 향한다.
--- 2009년 4월 경기도 김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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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강화도는 새가 많은 곳입니다.오늘은 둥글이님의 강화도 일기인데 재미있는 부분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