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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김남시) 미학과 문화 번역 위상학. 문화학과 미디어학에서의 공간묘사. (2편)
김남시 추천 0 조회 816 09.04.15 16:50 댓글 13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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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4.15 21:47

    첫댓글 제 컴에서만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글이 덧쓰여져 각주 달린 부분은 읽기가 어렵습니다. 컴퓨터 화면이라는 것이 각기 다른 컴 상황에서의 읽혀짐인지라, 김남시님에게는 온전히 보이시겠지요? 카페 다른 분 눈에도 그럴지 모르고요. 암튼 지난번 글에서도, 좀 이상한 부분이 보였는데, 이번에도 그렇습니다. 각주 달린 것 때문에 그런지 모르지만. 읽어보려고 했는데, 읽을 수 없어, 아쉬운 마음에 말을 전합니다.

  • 09.04.15 21:46

    제 예상처럼 김남시님이 글을 보시는 데 아무런 이상없으시면, 고쳐진 글을 읽을 방법은 없겠지요?...

  • 작성자 09.04.16 01:45

    폭기님! 제 컴에서는 글이 덧쓰여지지는 않는데, 그래도 각주부분이 텍스트에서 '튀어' 도망가서 보기가 편하지 않았습니다. 한번 고쳐보았는데 이제는 어떻게 보일실런지..

  • 09.04.16 12:02

    아주, 잘 보입니다. 글씨기 길게 넓어진 것은 인쇄해서 읽으니 별 문제 없고요. 읽을 수 있게 된 것에 감사드립니다. 시공간(時空間)의 변화로 가능한 인식변화, 그 문제가 제겐 아주 커 보여요. 무슨 문제가 있을 때, 그렇게 접근해보고요. 그래서 시간이나 공간(공간, 지형학,위상학)에 관심이 있(많)습니다. 덕분에 제가 궁금한 것들에 대해서 연구하시는 분이 있고, 아, 그렇게 연결되는구나, 그걸 언젠가는 읽게 될 날도 있겠구나 싶어서 기분좋네요. 인간 거주 조건인 공간도 공간이거니와, 전쟁이 바로 연상되는 지형학도 그렇지만, 위상학문제는 특히나 관심이 증폭되는 것 같습니다. 번역, 감사합니다.

  • 작성자 09.04.16 17:36

    폭기님이 관심이 있으신 내용이라니, 기쁩니다. 소위 인문학의 '공간적 전회'에 대해선 많은 이야기들이 이루어졌고, 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그에대해 짤막한 글도 써보고 싶습니다.

  • 09.04.16 01:55

    이제는 글이 덧씌어져 보이지는 않는데 비교적 촘촘한 편이며, 저 같은 경우에는 가로 스크롤바도 움직여서 봐야 해서 조금 불편합니다. 설정정보에서 설정변경하실 때 아바타를 넣어주시면 폭이 보기에 알맞게 되는 것 같아서 저는 일부러 아바타를 넣는 설정으로 변경한답니다.

  • 작성자 09.04.16 04:53

    어쩌다가 글이 이렇게 옆으로 길어져 버렸을까요? "도와줘 쨩가!"를 부르듯 아바타를 불러보았는데도 효과가 없네요....

  • 09.04.16 09:46

    “도와줘 짱가!”에서 잠깐 물러가는 듯싶더니 또 찾아든 감기 때문에 맹맹한 코로 ‘스스스’ 하고 웃습니다. 경순 씨 기억 속에는 ‘우리들의 짱가’가 훈이를 고이 내려놓고 블루스타로부터 지구를 구하기 위해 적과 함께 장렬히 자폭하는 장면을 본 이후로 밥도 안 먹고 울어대던 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경순 씨는 전원주 씨가 지붕 위를 뛰어다니며 짱가를 외쳐대자 흠칫 놀라, 누군가가 어쩌고 있나 흘깃 쳐다보기도 했지요. 김남시님, 조금 불편해서 그렇지 읽는 데는 지장 없습니다. 촘촘한 것도 다시 수정하셨는지 이제 훨씬 보기 편합니다. ^^

  • 09.04.16 09:53

    루이차오님 글에 꼬리말을 달다 꺼내든 하인리이 뵐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 원제가 ‘Und sagte kein einziges Wort’라는 것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제목과 같은지 갑자기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전혜린도 이 제목을 소중히 여겼기에, 슈방빙의 추억이 담긴 책의 제목으로 달았겠지요.

  • 작성자 09.04.16 17:27

    뵐의 책 제목 "Und sagte kein einziges Wort"에는 주어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실제 주어가 없다면 가짜 주어라도 만들어서 문장을 만드는 독일어의 문법적 특징에 비추어보면 분법적으로는 불완전한, 소설이나 시에서나 사용될 수 있을 문장이지요. 아시겠지만 한국어는 문장 내에 반드시 주어의 자리를 마련하려 애쓰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 작성자 09.04.16 17:34

    주어가 없는 문장들이, 서구 언어의 문법적 기준으로 볼 때 혼동스럽고 틀린 문장들이, 버젓하게 자기 소임을 다하고 있지요. 뵐의 이 독일어 제목을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라고 옮긴 걸 처음 보았을 때 저는 이 번역문 속에서 독일어와 한국어가 갖는 차이가 경이로운 방식으로 결합되어있다고 느꼈습니다. 그건 뵐의 독일어 문장을 거의 '문자 그대로' 번역한 '번역문장'이면서도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한국문장'이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이 문장이, 전혜린을 통해서, 한국인들의 기억에 깊이 남게된 것도 이 덕분일 겁니다.

  • 09.04.17 01:05

    그렇군요. ‘문자 그대로’ 번역한 것이군요. 오늘 만난 분 중에 마침 독어전공자가 있어서 안 그래도 하인리이 뵐의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분도 김남시님과 같은 말씀을 하시더군요. 말씀하셨듯이 이 문장은 전혜린을 통해서 한국인들의 기억에 더 깊이 각인된 것 같습니다. 뮌헨의 슈바빙도 그러하지요. 취재차 독일에 두 번이나 다녀온 분이라서 슈바빙에 대해 여쭈었더니 마치 하나의 감탄사처럼 “전혜린!” 하시더군요. 제에로오제 음식점도 찾아가려했는데 일정상 맞지 않아서 아쉬웠다는 말씀을 두 번이나 되뇌셨지요. 남자분이었고 옆 좌석에 아내도 함께 앉아있었던 터라 뭔지 모를 묘한 기류가 흐르기도 했답니다. ^^

  • 09.04.17 08:47

    위상학은 앞으로 비판학문이 지향해야 할 패러다임의 영역이 아닌가 합니다. 제 학위논문의 주요한 장이 이 문제였었고 고진 이전에 시차적 관점의 중요성을 제시했던 제 스승 라이너 슈어만의 핵심적인 주제이기도 하였지요. 사실 하이데거 후기의 사상을 바로 토포스의 문제로 포착할 수 있지요. 가다머 역시 우리의 이해의 문제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대목이 바로 토포스가 없는 "atopon"(the placeless)라고 신랄하게 지적한 바 있습니다. 영어권에서는 이 문제를 John Sallis라는 철학자가 깊이 연구하고 있지요. 비현상학자들을 통해서 이 문제가 어찌 얘기 되는지 시간이 되면 다시 들러 꼼꼼히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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