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을 믿음으로(요 14:1~4)
우리 인생에 근심은 늘 따라다닙니다. 마치 그림자처럼 말입니다. 근심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근심이 되어집니다. 데카르트라는 철학자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 말을 현실적으로 바꾸면 “나는 근심한다. 그것이 나이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병원 의사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암 환자의 경우에 어른보다 어린아이가 치료력이 높다고 합니다.
왜 그렇냐고 물었더니?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 마음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암에 걸렸다면 낙심과 절망해서 질병에 묶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암에 걸렸는데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심각한 병인지 말입니다. 그래서 항암치료 할 때도 오히려 아이들이 더 잘 견디고 이겨낸다고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아는 것 때문에 더 근심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근심으로부터 나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마음 한 가득 지고 있는 근심의 덩어리를 벗고 믿음으로 자유함을 얻는 시간되기를 원합니다.
1. 복음의 능력
요한복음 14장에서 16장까지의 말씀을 다락방 강화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시고, 그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별을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3:36절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모든 인간의 죄와 운명과 저주에서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알지 못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가시는 십자가의 길이 고난의 길, 죽음의 길, 패배의 길로만 보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에는 부끄러운 것입니다. 수치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부끄러운 십자가, 수치스러운 십자가 속에 하나님의 능력을 숨겨 놓으셨습니다. 모든 인간의 죄와 운명과 저주를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지시고 죽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믿습니다. 이 복음을 믿는 자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자에게 부어지는 것입니다.
고후 1: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가격표가 있다면 얼마일까요? 냉정하게 계산해 보세요? 어떻게 계산이 되십니까?
여러분!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기 전에 내 인생은 싸구려 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 예수님이 들어오신 후로는 내 인생은 더 이상 싸구려가 아닙니다.
재래시장 골목에서 골라 골라 1000원에 두 장 하고 파는 싸구려 물건이 아닙니다. 여러분 인생의 가격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새롭게 매겨진 것입니다.
여러분이 실패자처럼 느껴지고 수치감이 여러분을 삼키려고 할 때,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도 여러분을 업신 여길 수 없습니다. 아무도 여러분을 싸구려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여러분을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 예수님께서 잃은 양의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12~14절에 보면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고 하십니다.
교인이 500명만 넘어가면 성도 한 두명 교회 안 나오는 것 신경 안 쓴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닙니다. 모두가 다 교회 나오는데 당신이 안 나온다면 안 나오는 당신을 찾아 가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옆 사람과 인사합니다. 당신은 최고입니다.
2. 근심을 벗고
아직 제자들은 십자가의 길이 승리의 길인 것을 알지 못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인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부인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예수님을 보고, 도망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의 마음을 보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아주 무거운 근심으로 가득하였습니다.
하용조 목사는 <예수님은 기쁨입니다>라는 책에서 근심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근심하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만약 지하실에 갇혀 있다면 태양이 하늘에 떠 있어도 볼 수 없듯이, 근심에 사로잡히면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 근심하는 마음은 최악의 상태를 상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생각지 않고 부정적이고 절망적이며 파괴적인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나는 안돼. 할 수 없어. 못해. 망할 거야”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스스로 쓰는 것입니다.
셋째, 근심하는 마음은 미래의 문을 닫게 한다는 것입니다. 삶을 포기하는 것은 환경보다 우리 안에 근심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주어진 환경으로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근심하는 마음 때문에 쓰러지는 것입니다.
근심 가운데 있는 우리의 인생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십니다. 근심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힘을 내라, 노력해라, 애써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즉 근심의 문제는 우리의 힘으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으라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근심을 이기려고 또 근심합니다. 근심을 해결하려고 또 근심합니다. 여러분 내 안에 있는 근심을 믿음으로 바꾸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습니다. 이 시간 근심거리가 믿음으로 바뀌어진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이 근심거리를 어떻게 하실까? 오히려 하나님이 하실 일에 대해서 기대하길 원합니다.
여러분 근심은 근심일 뿐 사실이 아닙니다. 근심은 내가 만들어 놓은 하나의 허상입니다. 내가 만든 근심을 믿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번은 제가 근심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첫 아들 현빈이가 유치원에 가는데,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저 녀석 유치원을 보내고 나면, 초등학교 보내야 하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어떻게 보낼까? 그렇게 저 애 키우다가 나는 늙는구나! 라는 생각이 되어집니다.
그 순간 아이가 사랑스럽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근심덩어리로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근심은 끝이 없습니다.
이 시간 스스로 결단하길 원합니다. 나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겠다. 하나님을 믿겠다. 나는 더 이상 근심하지 않겠다. 예수님을 믿겠다.
옆 사람과 인사합니다. 이제 근심 끝 행복 시작입니다.
3. 믿음으로 축복을
이삭은 자신이 의지했던 아버지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죽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아버지 그늘 밑에 있던 이삭은 이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습니다. 자신의 아내 리브가와 쌍둥이 두 아들인 에서와 야곱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데, 엄청난 흉년이 찾아왔습니다. 얼마나 큰 흉년이었는지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살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애굽으로 내려 갑니다.
애굽에 내려가면 소망이 있고, 살 길이 있어 보입니다. 그곳으로 내려 가는데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찾아오십니다. “이삭아~ 애굽으로 내려 가지 말고 이 땅에 거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줄 것이다”는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삭의 눈에 하나님의 약속이 보였을까요? 하나님이 복 주신다는 말씀이 귀에 들어왔겠습니까?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그랄 땅에 멈춥니다. 불신앙의 자리로 내려가지 않고 그랄 땅에 멈춘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불신앙의 자리에 내려가지 않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흉년을 통해서 이삭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이삭의 믿음에 복을 부으십니다.
창 26:12~13절에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 주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랄의 왕 아비멜렉이 이삭을 찾아와 고백합니다. 창 26:28절에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 29절에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다”고 합니다.
여러분!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이삭의 믿음을 달라고 말입니다. 불신앙의 자리, 근심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불신앙의 자리, 근심의 자리에서 일어나 믿음의 자리에 있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