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이슈반슈타인성 내부관광 설명문(사진, 비디오 촬영 금지)
1. 루드비히 2세 왕(King Ludwig II)
바이에른(1845~1886)의 왕 루드비히 2세. 막시밀리안 2세의 아들. 1864년 당시 18세의 나이에 왕위를 계승하였다. 특이한 인생과 열정적으로 성 건축을 추친했던 멋지고 고독했던 왕에 대해, 역사는 "동화의 왕"이라 일컫는다.
왕위 계승 왕자일 때부터 그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에 매료되어 있었다. 1861년 "로엔그린"이 궁중극장에서 공연되었을 때부터 루드비히 2세는 바그너의 광적인 팬이 되었으며, 그의 일생동안 이 작곡가의 예술후원자로 남게 되었다.
절대적인 왕권에 대한 이상에 사로잡혀, 국가의 경제에 실망한 루드비히 2세는 자신을 탐탁히 여기지 않았던 뮌헨으로부터 탈출하여, 점점 더 세속적인 생활을 피해, 그 자신이 표현했듯 "산의 고독에 빠진 신의 안락함"을 찾게 되었다. 여기에서 그는 자신의 파라다이스를 건설했고, 이상으로 채워진 예술의 낙원을 찾았다. 그는 꿈의 성 노이슈반슈타인, 린더호프, 헤렌킴제 성의 건축주이자 창조주가 되었으며, 루드비히 2세는 지치지 않고, 새로운 활동무대를 발견한다. 1886년 6월 13일 슈타른베르그 호수에서 사망할 때까지 그는 완벽한 허구를 찾았다. 왕의 성 건축, 과거를 연출한 대작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감동을 준다.
2. 대기실
왕이 거주하는 방의 입구가 되는 곳이다. 세공을 장식한 아치형의 천정이 아름다우며, 벽에는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의 소재가 된 '지그프리트의 전설-레긴이 지크프리트에게 그람의 칼을 갈아주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3. 옥좌의 방(대관홀,Throne Room)
'에두아드 일레'와 '율리우스 호프만'이 현재 이스탄불에 있는 성 소피아 성당의 영감을 받아 화려한 비잔틴 양식으로 홀의 내부를 장식했다. 인조수정과 단단한 라피스라줄리(청금석)으로 설계된 2층 구조의 홀은 루드비히 2세가 세상을 떠난 1886년에 완공되었다.
반원형의 찬란한 푸른색의 반구형 하늘 아래에 있는 그림은 마리아와 요한에게 둘러싸여 관을 쓰는 예수의 모습이며, 그 밑은 6대 성왕이라 불리우는 카시미르, 슈테판, 하인리히, 페르디난트, 에두아르드 그리고 성 루드비히이다.
이 아름다운 그림들 밑으로, 흰색의 카라라 대리석으로 된 9개의 계단이 있으며, 이를 오르면 금과 아이보리로 된 대관좌까지 이어지도록 설계가 되었으나 완공되기 전에 루드비히 2세가 사망하는 바람에 미완성된 부분은 더 이상 공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화려한 촛대 앞쪽에 매달려 있는 왕관모양의 샹들리에는 놋쇠를 도금한 것이며 96개의 초로 장식이 되어 있는데 무게는 약 900kg에 달한다. 비엔나의 데르모타라는 사람이 구상한 모자이크 바닥은 동식물을 도형화하여 묘사한 것이다.
4. 테라스
옥좌의 방의 서쪽 베란다에 서면, 호엔슈방가우 성 주변에 숲이 울창한 산과 슈방가우 영주가 자주 찾던 짙푸른 물색의 알프호수, 그 뒤로 퓌센과 탄하임의 산맥 등 바이에른 주의 산과 호수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루드비히 2세는 1865년 바그너가 호엔슈방가우에 초대받았을 때, 화려한 폭죽 아래 슈방가우 기사들의 귀환을 축하하는 오페라 '로엔그린'을 연출하도록 하였다.
5. 식당(Dining Room)
페르디난트 폰 필로티와 요셉 아이그너가 완성한 이 식당은 도토리나무로 장식되었으며, 율리우스 호프만이 실내장식을 설계했다.
중세 악사들을 소재로 한 그림에서는 1207년에 있었던 전설적인 악사대회의 장면을 바트부르크성(독일 튀링겐주의 아이제나흐 근처에 있는 산성으로 루터가 신약성서의 독일어 번역을 완성한 곳)에 있는 것처럼 재현 하고 있다.
문 위의 아치형 부분에 그려진 그림(빨간색 망토)은 '파르치팔'과 '로엔 그린'의 작가인 시인 볼프람 폰 에쉔바흐이며, 하인의 출입문 위의 인물(왼쪽의 파란 망토)은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작가인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이다.
탁자는 도금된 동으로 만들어졌으며, 탁자 위의 장식은 '용과 싸우는 지그프리트'를 표현하고 있는데 뮌헨의 예술가가 루드비히 2세에게 선물한 것이다.
6. 침실(Bedroom)
성의 내부가 전체적으로 로만틱 양식으로 이루어진 것과 달리, 침실은 전체가 신고딕 양식이다. 수많은 나무부조로 장식이 되어있으며, 14개의 나무조각품은 4년 6개월에 걸쳐 완공이 되었다. 왕의 침대는 값비싼 필리그란(가느다란 철사를 구부려서 만든 공예품)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침실의 회화는 주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스토리를 배경으로 한 바그너의 오페라에, 당시 20세의 루드비히 2세는 깊은 감동을 받았으며, 1865년 루드비히 2세가 참석한 가운데 뮌헨에서 공연이 되었다.
루드비히 2세는 키가 190cm에 이를 정도로 굉장히 컸기 때문에 침대 또한 2m가 넘게 만들어졌으며, 문에 달린 손잡이는 대부분 당시 일반인들의 가슴에 닿을 정도로 높이 달려있다. 침대 위의 오른쪽 그림은 '이졸데와 작별하는 트리스탄'의 장면을 그린 것이다. 이곳에는 또한 성모마리아의 그림과 조각이 있는 아름다운 예배당이 있어, 그가 생전에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음을 보여주는데 지금도 꽃다발이 끊어지는 날이 없다. 왕을 위해 마련한 세면대는 백조의 입에서 물이 나오는데 성너머 샘물을 연결해 물이 흐르게 했다. 침실 베란다 창문 너머로는 45미터 높이의 폭포가 떨어지는 아름다운 경치가 보인다.
7. 기도실(Oratory)
이 고딕양식의 기도실은 침실과 연결되었으며 또한 의상실에 근접해 있으며 루드비히 2세의 개인적인 기도실로 사용되어졌다.
왕조의 이름을 딴 성 루드비히, 프랑스의 루드비히 9세(1226~1270)가 성사를 하였다. 회화로 장식된 뾰족한 천정에는 부조장식이 많은 날개구조의 성화가 그려져 있다. 성화의 중간 부분에 있는 것은 베하우 쉘트의 작품인 루드비히 성인이다.
양쪽 옆 벽면의 유리벽화는 마이어의 궁정예술처에서 제작한 것으로 '성 루드비히가 마지막 위로를 받는 장면'이다.
8. 의상실(Dressing Room)
의상실의 그림은 Walther von der Vogelweide(오스트리아의 신분이 낮은 기사계급 출신으로 괴테 이전의 최대 시인으로 알려짐)와 Hans Sachs(독일의 시인 겸 극작가이며 그의 명성은 바그너의 오페라로 만들어졌으며 "Die Meistersinger von Nurnberg" 불후의 명작으로 남아있다.)와 뉘렌 베르크의 구두수선공을 나타내고 있다.
의상실에서는 천정이 가장 특색있게 되어있는데 나무 대신에 망상에 빠지는 듯한 그림으로 대신했는데 마치 실제로 하늘과 새들을 보고있는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탁자 위에는 왕의 보석함이 놓여져 있다. 보석함 위의 그림은 '보리수 나무 아래서'라는 발터의 유명한 시를 표현하고 있다.
빌러로이 운트 보흐(유럽 최대의 독일 도자기 브랜드)의 세면대가 놓인 탁자 위의 그림은 '벨프백작의 궁에서 노래하는 발터'이며 이것들은 모두 모리츠 폰 슈빈츠의 제자인 에두아르 일레의 작품이다.
9. 응접실(Salon)
백조의 코너라고도 불리우며 네 개의 기둥으로 지지하고 있으며 루드비히 2세는 방의 옆 창가에서 책을 읽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코너장이 설치된 웅장한 거실에는, '그랄의 기적'(하우쉘트 작)과 '백조와 함께 안트베르펜에 도착한 로엔그린'(폰 헤켈 작)이 그림에 담겨 있다.
이외에도 벽부조와, 금실로 놓아진 비단 덮개 그리고 커튼에서도 백조를 소재로 한 무늬가 나타난다. 루드비히 2세는 바그너를 통해 로엔그린의 오페라 상연을 직접 경험하고, 백조의 기사처럼 자신을 느끼며, 그에 맞추어 분장하는 것을 즐겼다. 로엔그린의 비극은 그를 고독하게 만들었으며, 그 자신의 운명이기도 했다.
10. 서재(집무실,Study)
로만틱 양식으로 꾸며진 왕의 서재는 역사와 신화가 많은 바트부르크성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도토리 나무로 섬세하게 짜여진 틀에 요셉 아이그너가 벽장식용 카페트천 위에 그린 그림들은 Tannhauser와 바트 부르크성의 악사대회를 소재로 하고 있다.
출입문 근처의 아치형 부분에 나타난 그림은 탄호이저가 교황 우어반 4세 앞에서 회개를 하는 모습이다.
탑 모양으로 된 벽장(벽장 안에는 성의 도면이 보관되어 있음)위에 표현된 것은 회어젤베르크에서 탄호이저가 비너스의 팔에 안겨있는 모습이다. 회어젤베르크의 상상속 장면은 석굴(Grotto)로 이어지는데, 인공적으로 꾸며진 이 종유석 동굴은 인공조경가 August Dirigl의 작품이며 색등으로 조명이 되어있고 작은 폭포가 있다. 동굴에서 유리로 덮인 겨울정원으로 연결되는 통로에서는 평원의 멋진 경치를 조망할 수 있다.
11. 가창홀(악사홀, Singers' Hall)
율리우스 호프만은 바트부르크성의 가수홀과 연회장을, 이 곳 백조의 성에 하나의 홀로 훌륭하게 만들어놓았다. 바그너를 좋아한 왕은, 어떻게 해서든지 가창홀을 만들고 싶어서 넓은 공간을 중심으로 백조의 성을 지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성에는 왕의 초상이 어디에도 없는데, 이유는 왕이 자신의 초상이 남는 것을 매우 싫어했기 때문이다. 이 콘서트 홀에만 그나마 초상대신 왕가의 문장만 남아있는 정도이다.
왕은 생전에 바그너의 오페라를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성안의 거의 모든 벽화는 바그너의 오페라의 등장인물과 배경으로 장식되었는데 마치 바그너를 위한, 아니, 바그너만을 위하여 지어진 성이라는 느낌이 오히려 강하게 들 정도이다.
계단 최고층의 중앙 대리석 원주는 야자수를 모방했으며 푸른 돔형 천정에는 무수한 별들이 그려져 있다.
홀과 무대쪽의 벽화는 슈피스와 필로티의 작품이 대부분이다. 벽화들은 중세의 '파르치팔'의 내용을 표현하고 있으며, 동명의 바그너의 오페라에서 율동으로 표현된 것이다. 루드비히 2세가 '그랄의 성', '로엔 그린의 백조의 성'으로 설계한 이 노이슈반슈타인성은 이 홀에서 그 세 번째 상상의 소재가 된 탄호이저로 마무리된다.
12. 가창홀에서 가이드 투어가 끝이납니다. 원형 계단을 따라 쭉 내려가시면 기념품 가게가 나옵니다. 나오시면서 주방을 보시게 됩니다.
13. 주방(Kitchen)
완벽히 보존된 성의 주방은, 당시로서는 놀랄만큼 기술적인 설계와 장치, 기능들이 뛰어난데, 냉/온수가 항상 흐르고, 전자동으로 그릴구이 꼬치가 돌아가도록 되어있다.
14. 주방을 지나시고 나면 바로 화장실을 보시게 되는데 무료 화장실이므로 꼭 이용하시구요. 외길을 따라 나오시면 나무로 된 출구가 보이는데, 그 출구 밖에서 모여서 같이 이동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