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군수에 취임한 김두관에게 가장 어려웠던 일은 공무원을 장악하는 일이었다.
대다수 간부급 직원들이 고향의 선배였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김두관은 전 직원을 모아놓고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나에게 인사 청탁을 하는 사람은 불이익을 주겠습니다.”
그러나 오래된 관습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 법이다. 김두관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섰다. 1995년이 저물어 가던 어느 날. 고현면 이어리에 있는 김두관의 자택으로 한 손님이 찾아왔다.
“계십니까?”
“누구세요?”
“사모님, 안녕하세요? 저, 김 군수 고등학교 선배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지금 애 아빠는 집에 없는데요.”
“마침 우리 처남이 군청에 있어서……. 이거 애들 주시고 저 왔다
갔다고만 전해주세요.”
귀가한 그에게 아내가 전달한 케이크 상자 속에는 명함과 현금 한 뭉치가 들어 있었다. 김두관은 곧바로 현금을 명함에 적힌 주소로 되돌려 보냈다. 그리고
그 청탁 대상자는 승진을 시키지 않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군수 선거 당시 캠프에 자원해 열심히 봉사했던
김두관의 고향 선배가 있었다. 김두관이 군수에 당선되자 그는 당연히 자신의 말을 들어줄 것이라 확신하고
인사 청탁을 해왔다. 하지만 김두관은 정중하게, 하지만 단호하게
그의 청탁을 거절했다. 이에 앙심을 품은 선배는 김두관이 출향 인사인 유삼남 장군의 해군참모총장 취임식에
다녀오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 군수실에 인분을 뿌렸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그때부터 김두관을 대하는 공무원들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연줄이나 처세가 아니라 주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인사고과의 유일한 기준이 된다는, 너무나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지켜지지 못했던 원칙을 천명하고 실제로 그것을 지키자 공무원 사회에 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군수를 ‘점령군’으로 여기고 있던 공무원들이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어주었다. 김두관에게 그것은 매우 중요한 변화였다. 사실 군수가 혼자서 아무리
기를 쓰고 노력해도 공무원들이 중간에서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지 않은가.
첫댓글 김두관님은 당신을 사랑 하십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