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미도를 돌아보며>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월미도 주차장에 도착(15:20)했다. 주차장에서 유람선을 타는 곳으로 갔지만, 배는 보이지 않았다. 아직 30분 이상 남았으므로, 아마 지금쯤 관광객을 태우고 신나게 항해하고 있으리라. 운전기사에게 “나는 유람선을 타지 않을 것이므로 몇 시까지 이곳에 돌아오면 되겠냐.”고 물었더니, “5시30분까지 저기 앞에 보이는 <해 뜨는 횟집>으로 오면 된다.”고 했다.
월미도는 면적 약 0.7제곱km의 작은 섬으로, 월미산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긴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병자호란의 치욕을 겪은 후에는 왕이 강화도로 피난 가는 새로운 길인 월미도에 “월미행궁”을 세우기도 했다. 개항기에는 외국 선박들이 조선으로 들어오기 위해 머무는 주요한 정착지로 로즈 섬(Roze Island)으로 알려졌는데, 지정학적 이유로 여러 차례 수난을 겪기도 했다.
월미도가 육지와 최초로 연결된 것은 1906년 일본군이 가설한 철교였다. 1918년에는 월미도까지 오는 왕복 2차선 제방둑길이 축조되고, 각종 관광시설이 들어서면서 경인지역의 최대 관광지로 되었다. 해방 후에는 미군의 “해안경비대”기지가 되어 민간의 출입이 통제되기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첫 상륙지점이 된 까닭에 포격에 의해 아름다운 풍광이 초토화되기도 했다. 전쟁 후에는 한국군부대가 주둔해 약 50년 동안 군사기지로 사용되다가, 2001년 민간의 품으로 돌아온 섬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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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 선착장에 있는 월미도 중심부 지도>
나는 일행과 헤어져 홀로 월미산을 돌아볼 생각이었다. 이 산은 작년에도 다른 일행과 왔을 때, 유람선을 타지 않고 올랐던 곳이었다. 2시간의 시간적 여유가 있으므로 천천히 주위 풍경을 감상하며 등산을 시작했다. 작년에 걸었던 길이라, 초행이 아니므로 길이 눈에 익었다. 차량이 통행하는 능선에서 우측으로 오르는 길을 택하면 월미산으로 오르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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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 선착장에서 바라본 월미산 풍경>
이 산은 바다에 붙어 있었고, 별로 높지 않은 산이었으나 산 중턱으로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순환산책로가 있었다. 또한 순환산책로에서 두 군데에 계단을 만들어 정상에 오르는 길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지금은 시간대가 어중중한 것인지 산책이나 등산을 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였지만, 많지는 않았다.
순환산책로를 따라 왼쪽으로 얼마쯤 갔을까. 초가 정자가 나타났다. 그러나 그곳에서 쉬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길 양쪽으로는 이곳에서 자라는 야생화의 이름을 적은 표지판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걸어가자 오른쪽으로 정상으로 오르는 나무계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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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산을 오르면서 본 정자가 있는 풍경>
나무계단에는 20칸을 오를 때마다 몇 번째 계단을 올라왔는데 수명이 몇 분 적립되고, 몇 키로 칼로리가 소모되었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순환산책로에서 356번째인 마지막 계단에는 수명이 23분44초 적립되었고, 53.4Kcal가 소모되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것이 과학적인 실험을 거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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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산책로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나무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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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계단을 20칸 오를 때마다 써 붙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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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나무계단에 써 붙인 글>
여기는 정상이 아니고, 꽤 큰 광장이었는데 이정표가 있었다. 이곳은 정상으로 오르는 길과 서남쪽으로 순환산책로와 맞닿는 길이 갈라지는 곳이었다. 나는 정상으로 발길을 옮겼다. 정상이 가까워진 곳에 왼쪽으로 허름한 안내판이 눈길을 끌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이곳이 아타고 신사(愛宕神社, 애탕신사)가 있었다는 설명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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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산 8부능선 광장에 있는 이정표>
일본은 월미도에도 아타고 신사를 세우고(1908), 1929년에 한 차례 개축했다. 화재를 예방한다는 아타고 신을 모시는 아타고 신사는 교토(京都)의 아타고산에 있는 아타고 신사가 총본산이다. 월미도의 아타고 신사는 해방 후에 파괴되었으나, 안내판은 아직까지 세워져 있었다. “역사의 현장을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과 “일본의 강압적인 문화는 깡그리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우리에게 있으나,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앞으로 역사가 말해 줄 것인가.
답답한 마음을 가슴에 품고 정상에 올랐다. 중앙에는 “월미산 정상 해발108m”라는 표지판이 박혀 있었다. 이곳에는 먼저 올라온 등산객이 한 명 있었고, 뒤이어 4명의 젊은 여인들이 올라왔다. 산 정상은 경관이 아주 좋은 곳이었다. “오늘은 미세먼지로 시야가 좋지 않다.”고 말했더니, 뒤따라 올라온 여인 중 한 명이 “오늘은 보통으로 시야가 그리 나쁘지 않다.”고 했다. 그녀들과 대화를 해보니 인천에 사는 사람들로서 이곳에 자주 올라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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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산 정상 바닥에 박힌 표지판>
나는 정상에 세워진 각종 안내판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영종대교와 인천대교의 모습이 어렴풋이 나온 사진이 있었다. 또한 한국전쟁 시,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의 내용과 지명이 지도와 함께 나와 있었다. 나는 인천상륙작전을 맥아더 장군이 했다는 것은 알았어도, 월미도와 인천으로 나눠서 2단계로 추진한 것은 몰랐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인천상륙작전은 한국전쟁 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이 직접 지휘한 작전으로, 인천해역은 조수간만 차가 심해 썰물 때는 군함기동에 어려움이 있는 곳이다. 따라서 상륙작전은 밀물시간에 맞추어 2단계로 이루어졌다.
1단계로 월미도 녹색해안 상륙은 1950년 9월 15일 05시 45분에 항공모함 함재기의 폭격과 함포사격을 실시하면서 이루어졌다. 이 때 미 해병이 승선한 17척의 상륙정과 9대의 탱크를 탑재한 3척의 대형 상륙주정으로 동일 08시에 월미도를 확보했다.
2단계는 동일 17시 30분 저녁 밀물시간을 이용해 인천 만석동 적색해안에 한. 미 해병대가 합동으로 200여척의 상륙주정을 이용해 상륙했고, 용현동 청색해변에는 180여척의 상륙장갑차를 이용해 9월 16일 01시에 목표지역을 확보했다.>는 줄거리였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인천항과 바다, 그리고 시내풍경도 너무 좋았으나 내가 보기에는 여기도 시야가 좋지 않았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라도 열심히 카메라에 담고, 천천히 주위 풍경을 감상하면서 광장으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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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산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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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산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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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산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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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산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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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산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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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산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 6>
광장 앞쪽에는 똑바로 내려가는 길과 왼쪽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나는 시간이 넉넉하다는 생각으로 이번에 이곳을 꼼꼼히 살펴보기로 하고, 왼쪽 길을 택했다. 50m쯤 가자, 담으로 둘러싸인 곳에 대포가 한 문 버티고 있었다. 앞은 가파른 낭떠러지기이고, 그 밑은 바다였다. 아마 이곳에서 바다로 침범하는 외적을 물리치던 대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아무런 안내문이 없어 나의 추측이 맞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여기에도 관광객 몇 사람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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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가 있는 풍경(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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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가 있는 풍경(근경)>
되돌아 나와 아래로 내려왔다. 조그마한 언덕을 넘어오자 “월미달빛마루전망대”가 눈을 가로 막았다. 산 정상에서 인천에 산다는 여인들이 밑에 있는 전망대에 가면 인천항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나는 무턱대고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승강기가 있었으나, 장애인이나 노약자 전용이라 걸어서 위로 올라갔다. 건물은 1층은 좁고 2. 3층은 넓으며 4층은 밖이 트인 구조였다. 따라서 3층에서 음료수를 팔고 있었으며, 4층은 전망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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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산책로 위에 있는 "월미달빛마루 전망대">
4층 전망대로 올라가자 인천항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인천항은 부산항, 원산항에 이어 1883년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개항했다. 1818년 일본이 중국대륙을 침범하기 위한 거점기지로 선택하고, 지금의 제1부두에 4,500톤급 3척, 2,000톤급 4척을 동시 접안할 수 있게 했다.
그 후 물동량이 급증해 몇 차례의 증설작업으로, 현재는 5만 톤급의 선박이 드나들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졌다. 맑고 청명한 날씨였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가졌음에도, 지금 상태의 인천항을 카메라에 담고 전망대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다시 순환산책로를 따라 한 바퀴 돌아 부두에 왔음에도 아직 30분 이상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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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바라본 인천항 풍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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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바라본 인천항 풍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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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바라본 인천항 풍경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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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바라본 인천항 풍경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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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바라본 인천항 풍경 5>
부두에서 바다를 따라 남쪽으로 발길을 옮기자, 국민관광지답게 넓은 매립지에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여기에는 중국관광객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부부나 가족이 같이 온 팀이 대부분이었고, 친구들끼리 온 팀도 보였다. 이곳에서 월미도의 일몰과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저녁을 먹을 횟집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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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 선착장 남쪽 횟집거리 풍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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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 선착장 남쪽 횟집거리 풍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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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 앞 바다의 일몰풍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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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 앞 바다의 일몰풍경 2>
음식점 앞에는 운전기사 두 사람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자 커피를 한 잔 타주었다. 그것을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유람선관광을 끝낸 일행이 들어왔다.
일행은 70명이 넘는지라 방에 빼곡히 앉았음에도 밖에 세 테이블이 더 필요했다. 모두 자리를 잡자 오늘 저녁의 주 메뉴인 회가 들어왔다. 모처럼 좋은 안주인 회가 있는데, 술이 없어서야 말이 되겠는가. 기본 반찬도 계속 들어왔다. 일행은 너나없이 양껏 먹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늘 저녁은 월미도에서 숙박한다고 했다. 횟집에서 숙소로 가는 길에 버스를 세운 주차장이 있었다. 버스에서 배낭을 챙겨들고 숙소로 들어갔다. 숙소의 종업원은 필요한 방 열쇠를 모두 주었다고 하는데, 내가 잘 방을 알지 못했다. 할 수없이 숙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열쇠를 가진 사람이 와서 무조건 한 방에 네 명씩 팀을 이뤄 들어갔다.
저녁을 먹으면서 약주를 마신 탓인지, 우리 방에 자는 사람들도 하나 둘 방을 나가고 혼자 남았다. 나는 자리를 깔고 가지고 온 책을 읽었다. 한 시간쯤 시간이 지났을 때, 방문이 열리며 모처럼 월미도에 왔으니 한 잔 더하자고 했다.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가자고 하는데, 싫다고 할 수 없었다.
여기는 숙박업소가 밀집한 곳이기 때문인지, 음식점을 찾기 쉽지 않았다. 5분쯤 걸어서 부두방향으로 갔을 때 길 옆에 있는 음식점을 찾았다. 들어가 소주와 막걸리를 마실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21시까지는 괜찮다고 했다. 지금이 20시이므로 한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우리 5명은 저녁을 얼마 전에 먹었으므로, 한 상에 2만 원짜리 밴댕이무침을 시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8명 중 6명은 소주를 마시고 나를 포함한 2명만 막걸리를 마셨다. 밴댕이무침은 새콤달콤한 것이 맛있었으나, 배가 불러 많이 먹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소주 4병 마시는 사이 막걸리는 3병을 바닥냈다. 벌써 21시 20분이 되었다. 주인은 가게를 닫고 집으로 가고 싶었으나, 우리 때문에 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자리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세면을 마치고 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