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민주화 열기가 온 세상을 설레게 하고 있다. “아무도 우리를 멈추게 할 수는 없다!”는 단호한 청년들의 성난 목소리가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손에 달렸다!”라는 환희에 찬 목소리로 바뀌면서 18일 만에 국민들의 단합으로 민주혁명을 이뤄냈다. 목마 태운 아들을 힘껏 치켜세우는 아버지의 모습은 우리에게 얼마나 익숙한지! 국민에 의한 민주화를 멋지게 성취한 경험이 있는 우리이기에 그들의 모습이 더욱 가까이 와 닿는다. 그러면서 한편 염려스럽기도 하다.
그들이 세울 ‘국민의 정부’는 개혁을 서두를 것이고, ‘트위터 혁명’으로 시작한 시민들은 ‘문화적 민주화’를 향한 다양한 활동을 활발하게 벌여나갈 것이다. 국민들은 흥분의 분위기에서 좋은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온갖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할 것이다. 30년 독재의 시절에 금기시되었던 갖가지 행태와 불합리한 제도에 대해 “왜 안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동시에 삶의 온전한 주인으로서 자아실현을 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그럴 즈음 경제 위기가 닥쳐올지도 모른다. 그 소식은 세계 금융관련 기구인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곳에서 내보내는 경고와 함께 들이닥칠 가능성이 높다. 삶의 주인으로 신이 나 있던 시민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파악하려 들겠지만 미처 파악이 안되는 상태에서 자기도 모른 채 어딘가로 끌려 들어가게 될 수도 있다. 여전히 지식인들은 이런 저런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겠지만 글로벌 자본은 이미 사회 곳곳에서 그 자태를 드러낼 것이고 그간 자기 목소리를 만들어내는데 몰두했던 시민들은 이미 개별화된 상태에서 쉽게 모여지지 않을 것이다.
경제적 공포 속에 있는 이들은 느린 변화를 견디지 못해 강력한 힘을 원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회가 어디로 향해 가야 하는지를 묻기 전에 개별 가족단위로 뭉쳐 만인을 향한 투쟁의 판을 자체 안에 만들어내게 될지도 모른다. 상부상조할 친구와 상호호혜적 관계의 친지들, 그리고 오래된 단골 관계는 끊기고 바빠진 일상 속에서, 자신의 삶만 챙기면서 외톨이가 되어 살벌한 승자독식 사회를 만들어내게 될지도 모른다. 미래가 불안한 부모들은 자녀를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는 인재로 만들겠다고 철저한 관리기획을 시작하고, 많이 배우고 가진 이들일수록 자녀를 조기 유학을 보내고 아이비 리그 대학을 졸업시켜 ‘글로벌 엘리트’로 만들어보려고 안간힘을 쓸 것이다.
대학가에 영어와 교환학생 붐이 일며 경영학과가 최고 인기학과로 부상할 즈음이면 글로벌 회사의 채용설명회가 줄줄이 대학가에서 열리게 되고, 똑똑한 학생들은 직장 사냥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지기 시작한다. ‘시장이 원하는 몸’을 만드느라 골몰하던 청년들은 무리를 해서 ‘실신’하거나 과로사를 하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대학 당국 또한 글로벌 경쟁에서 낙오되면 대학의 존립이 위험해진다는 위기감에 국제 순위를 매기는 평가 기관의 스펙에 맞추느라 상황을 바로잡지 못하고 만다.
‘공유지의 비극’이 아니라 ‘사유지의 비극’이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세상이 생각보다 빨리 올 수 있다. 정치적 해방에 이은 문화적 해방의 몸짓은 자칫 잘못하면 당장 시장의 해방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그러면 ‘사회’는 사라지고 사람이 설 땅도 사라진다. 민주화의 승리로 기쁨에 찬 이집트 시민들에게 그 흥분이 좀 가라앉을 때쯤 나는 이 말을 꼭 건네주고 싶다. “승자독식 사회를 조심하라고, 그것은 막장사회라고.”
조한혜정 /연세대교수(문화인류학) 경향신문 16일자 오피니언
참고 : 물, 공기와 같이 모두가 같이 사용하는 공공재의 경우 아무도 그자원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음으로 생기는 문제
예: 공유지의 비극(사유지와 달리 공유지에 양을 방목할 경우 각 개인은 이윤 극대화를 위해 공유지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마구 양의 수를 늘려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려함. 결과적으로 공유지는 황폐화되고 다같이 곤경에
처하게 된다는 것. (공유지의 점유에 대해 상위의 규제와 구성원 간에 약속이 있어야 한다는...)
사유지의 비극 : 땅을 사유재산으로 해야 부족한 땅을 절약해서 사용하고 더 가치가 있는 땅이 된다. 공유지의 비극을
사유지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호도하면 어떻게 될까? 무한경쟁의 시장주의로 빠지게 된다는.....
첫댓글 광주항쟁과 6월항쟁으로 표출된 민주화, 자유화, 혁신의 염원을 자유경쟁, 시장혁신으로 대답한 자본침탈의 만행을 경험한 우리의 예를 비추어 지금 아프리카, 아라비아에 부는
시민혁명의 바람도 같은 전철을 밟게 될거라는 염려가 더 큽니다. 지금 미국이 시민혁명을 지원하겠다고 나서는 걸 보면 자명한 결과로 가지 않을까요
깊이 공감되는 글입니다. 우리가 절절하게 경험한 것이기도 하지요. 아마도 자본시장은 진작에 이미 그러한 함정을 파놓고 작업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더 깊은 토론이 있어야 하겠지만 세계화란 그물을 쳐놓은지 제법되었지 않습니까?
세계화나 중앙 중심주의나 같은 논리이지요. 지역과 지방에 대한 가치가 무너지고 다양성과 개인, 그리고 천천히 라고 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움에 대한 무감각은 현대가 만들어가는 비극입니다. 산너머님의 깊은 영성에 감사...
승자독식사회가 우리아이들을 참 고달프게 만드네요 이집트 이제부터가 중요한 시작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