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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속한 전쟁
역대하 20:14-19
20:14 여호와의 신이 회중 가운데서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셨으니 저는 아삽 자손 맛다냐의 현손이요 여이엘의 증손이요 브나야의 손자요 스가랴의 아들이더라
20:15 야하시엘이 가로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과 여호사밧왕이여 들을찌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20:16 내일 너희는 마주 내려 가라 저희가 시스 고개로 말미암아 올라오리니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만나려니와
20:17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며 놀라지 말고 내일 저희를 마주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20:18 여호사밧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도 여호와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20:19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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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기, 열왕기서에는
전쟁 이야기가 늘 주류를 이루면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생활을 살면서
될 수 있는 대로
전쟁을 거부하고 피해가며 살려는
습성이 있지요.
남들과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입니까.
우리가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상태에 있다는 것이
우리 신상에 편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의 편리를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전쟁을 연발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왜 구약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이 전쟁터에다가 몰아넣는가,
그걸 우선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수시로 전쟁이 일어났으니까
참 안됐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구약의 이 전쟁이
오늘을 살고 있는 성도에게도
날마다 이 전쟁을 하고 있는 중이며,
또 하고 있기를
하나님께서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날 우리에게는
전쟁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까요?
자, 우리가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치러야 할 그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상대자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상대할 적이 누군지
모르고 있는 거예요.
만약에 구약성경에 나와있는
그 적, 우리의 원수가 누구인줄 안다면,
오늘날 우리는 늘 부딪치고 마주치는 대상자가
바로 우리가 싸워야 될 적인 것을
여러분은 파악하게 될 것입니다.
구약에서 전쟁을 할 때,
여러분들이 제일 오해해서 안될 것이,
하나님이 우리 이스라엘 편이라는 생각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일방적으로 자기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도를 해도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어 줄 것이라는
그런 큰 착각에 빠지게됩니다.
전쟁을 누가 일으켰습니까?
하나님이 일으켰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나름대로 뜻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전쟁이 일어나서
좀 불편하다는 이유 때문에
의도적으로 전쟁을 일으킨
하나님의 심오한 뜻은 헤아릴 줄 모르고
그저 자기 편한 것만 우선 고려합니다.
그러니깐 오늘날 적이 있어도
우리는 전쟁을 해서 승리할 생각을 안 하고
마냥 편하기만 추구하기에
백전백패의 패전만 하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작 더 기가 찬 것은
이러한 자기 편리 위주로 생활하면서
자기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우기는데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생각이
도리어 하나님의 일을 막아서는
적 그리스도적인 행동입니다.
그 이유는 나의 하는 행위가
곧 하나님의 원수가 하는 행위와
똑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적이 누군가를 분명히 모를 때
이런 일이 허다합니다.
본문에서나 다른 대목에서
적들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전쟁을 벌릴 때,
그들은 무엇을 파악하려고,
무엇을 알고 싶어서 전쟁을 할까요?
이게 제일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날 현대 교인들에게
왜 전쟁이 없고 평화로우냐 하면
이미 악마 쪽에서 시비를 걸어 왔는데
우리 쪽에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현실에 타협을 해버리니까
전쟁을 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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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9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희한한 능을 행하여
마귀를 쫓아내니까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이
사도 바울을 흉내내어
예수를 빙자하여 마귀를 쫓아내려 했습니다.
그러니까 마귀가 얕잡아 보고는
"야,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아는데
너는 누구냐"고 했습니다.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안다"는 말은
마귀나라에서도
사람 볼 줄 안다는 겁니다.
사람에게 존경받고 추앙 받는
훌륭한 목사라고 칭찬 받아도
마귀가 볼 때는
자기의 하수인으로 밖에
보지 않는 거예요.
정작, 남들 보기에 가진 것 없고,
힘없고,
자기편도 없는 예수님과 사도 바울은
마귀나라에서 주요 인물로
그 가치를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앞에서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는데,
그들이 왜 하필이면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겠습니까.
왜 시비 거는 거예요?
그건 이스라엘의 여호사밧 왕이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다른 내세울 게 없다는 점에서
이스라엘을 우습게 본 것입니다.
군사력이 강하다든지,
병기가 발달되었다든지,
군사들의 훈련이 강화되었다든지
하는 형태로
이스라엘이 무장되어 있는 민족이 아니라
자기들 기준에서 봐서
전혀 상대방을 위협할 만한 것이 없는 거예요.
단지 그들에게는
여호와만 붙들고 있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주변에 있는 적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할 때
얕잡아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그들이 믿는 여호와라는 신이
우리를 이길 수 있을까,
그 신이 과연 우리를 이겨낼 만한
효력을 지니고 있을까
시험해 보고 싶은 겁니다.
왜 현대인들이
영적인 전쟁을 하지 않느냐 하면
그저 교회에 와서 "주여! 주여!" 부르짖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어느 세상일에 하나라도
여호와를 진짜 의지하기에
세상이 겁나지 않았던 적이 있던가요.
내가 믿는 예수님을
이 지구상의 온 우주보다
더 큰 능력이라는 것을
한번이라도 인정하고
살아 본적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저 세상이 겁이 나서
고개 숙일 뿐이지요.
그러니까 전쟁이 성립되지 않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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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호사밧은 진짜 믿음이 있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적들이 왔을 때,
여호사밧은 자기가 믿는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을
앞에서 보았습니다.
20장 6-9절까지 보면
여호사밧이 주의 앞에 서서
환난 가운데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습니다.
그것을 본 이스라엘을 쳐들어온 적들은
얼마나 우습게 보겠습니까.
그들은 지금 칼을 갈고 있고
활을 갈고 있는데
군사와 맞서 같이 대항해서
싸울 생각은 않고
성전에서 주를 향하여 부르짖는다고 했으니까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전쟁은
이런 힘과 힘의 충돌이 아니라,
영적인 전쟁입니다. 거룩의 전쟁입니다.
다시 말해서 네가 믿고 있는 여호와가
과연 효과를 나타낼 정도로
거룩에 주력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구원의 효력이 있다고
말은 그렇게 하는데
실제로 효력이 있느냐 말입니다.
용서해 줬다는데
과연 용서받은 혜택을 보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과연 여호와가 실제로 살아 계신거냐,
이것을 검증하고 확인하기 위해서
주변에서 전쟁을 자꾸 일으키는 거예요.
물론 하나님의 의도에 따라서
그들도 움직입니다.
상대편 적들은
"너희들이 믿는 여호와 백날 믿어라
우리한테는 여호와가 무용지물이다"라고 하면서 쳐들어오는 거예요.
자, 오늘날도 봅시다.
안 믿는 사람들은
"당신들 주일날 교회에 나가는 것까지는 인정해 줄게,
그건 어차피 취미도되고 습관도 되는 거니까,
사람이 시간이 남아서
장래 죽음을 대비해서 좋은 데 갈려고 하는 것,
그것 말리지 않는다
그러나 돈이나 권력에 관해서는
나한테 복종해라"
이렇게 다가옵니다.
군대가면 군 생활에서,
직장에 나오면 직장생활에서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기의 현실에서는 그들과 타협하게 됩니다.
큰 시험, 작은 시험 관계없이
예수님은 누구와 싸웠던가가
가장 중요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누구와 싸웠습니까?
사도 바울은 무엇과 싸웠습니까?
예수님과 사도 바울은 무엇과 싸웠기에
마귀나라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까.
마귀는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아는데
너는 누구냐"고 했습니다.
마귀나라에서 유명한 사람은
벌써 싸우는 대상도
뚜렷하게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싸웠는지
요한복음 18장 35절을 보겠습니다.
거기에 빌라도가 나오는데
빌라도는 그 당시에 재판장이었습니다.
재판장의 말 한마디가
피고의 장래 운명을 결정해 버립니다.
그런데 빌라도가
"야, 예수 내가 너를 사면시킬 권한도 있고
너를 죽일 권한도 있다"고 겁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가
예수님 본인한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7장 14절에는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결국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적들을 치게 하는 것은
정작 하나님의 적은
너희들 밖에 있는 이방민족이 아니라,
하나님, 하나님하면서 쫓아다니며
"주여! 주여!" 라고 부르짖는 네 자신이
이 하나님의 원수이며
적수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입니다.
교회 나와서 기도하고
주님의 구원을 사랑한다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 보시기에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하나님의 적의 노릇을 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인 자가 누구입니까.
단군의 후손들이 예수님을 죽였습니까?
여호와를 믿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였잖아요.
오늘날 누가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죽입니까?
예수를 나의 구주로 신봉하고 영접하는
우리가 예수님이 나를 귀찮게 하고
힘들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다른 예수로 교체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신이 임합니다.
16절에 보면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이렇게 되어있고
15절에는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흔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거든요.
그러면 저는 세상에
어떤 일을 당해도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여기 15절 끝에 보면
두려워하고 놀라지 말라,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자,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이 전쟁은 누구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까?
이스라엘 백성에게 속한 것이 아니지요.
그러면 저와 여러분들의 장래 일은
우리 자신의 일입니까, 하나님의 일입니까?
여러분은 어느 것을 믿습니까?
내 자신의 일로 믿는다면
여러분들은 두려워하고 떨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10년 후에,
내일 일이, 모레 일이,
나로부터 연장된 나의 일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에게 덧붙여주고 또 덧붙여주는
하나님의 일이라면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우리가 내어 맡길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오죽 했으면 예수님께서는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고 했겠습니까?
사람의 심리가
자기 일은 자기 힘으로 하려고 하니까
아무리 봐도 마귀에게 이길 자신은 없고
그러니까 염려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신이 임한 사람이 말하기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란
어떤 의미에서 참 쉽습니다.
믿는 사람에게 영적 전쟁은 너무 쉽습니다.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면 됩니다.
모든 교육의 원칙은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처리해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내 장래 일을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마세요.
성경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네 인생은 하나님이 책임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느냐가 관권입니다.
심판은 하나님께 맡겨라,
네가 알아서 하지 마라,
이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걸 믿는데 박사학위, 석사학위가 필요합니까?
목사, 장로, 집사의 직분이 필요해요?
아무 필요 없습니다.
우리를 책임지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놓으신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나의 인생은 주님이 책임진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죽기까지 사랑했는데
또 무엇을 원하고 있습니까.
이런 믿음이 없다는 것을
남 핑계 대지말고
믿음 없는 내 자신이
바로 십자가의 원수로 지금까지 살아 왔구나,
"하나님! 제가 하나님 원수였고
제가 못난 놈이었고
제가 세상일에 겁을 지레 집어먹고
주님이 하시는 일을 앞장서서 방해해 왔습니다"
라고 고백해야 됩니다.
예수님과 사도 바울이
세상사람과 어떻게 다른가?
사도 바울은 아무 것도 없는 자로서
모든 것을 가진 자요,
죽은 자 같지만 사실은 산 자라고 했습니다.
성경말씀에서 우리가 아무 것도 없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요,
실상은 우리가 죽어가고 있으나
살아 있는 자라는 성경말씀에 의거해서
믿을 수 있는
그런 영적 군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