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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9일
여행은 언제나 미지의 동경에 시작되는 것 같다. 한 달도 못 돼서 웅대한 중국의 3대명승지를 실지로 찾아보고 느끼고 싶어서 “계림산수 천하제일”이라는 곳으로...여행길을 찾아 떠난다. 주위에서 자주 말하는 중국의 명승지, 1.계림, 2,장가계 3.구체구 이렇게 3곳이 있는데 꼭 가볼만하다고 한다. 그래서 일차로 계림을 정하고 노랑풍선 여행사로 옵션별도, 일인당 678,000원에 딸과 같이 3명이 5박 6일자인 여행을 결정한다. 계속적으로 ke항공을 이용했으나, 이번 노선은 아세아항공만 있어 부득이 이렇게 결정했다.
오후 출발을 앞두고 또다시 허리 진통의 억제를 하기위해서 병원에서 치료하고 진통제를 5일분 더 받았다. 평소에 주는 약보다 별도로 진통제만 처방을 받고 인천 공항에 딸과 함께 출발 한다. 일행은 17명이던 것이 한 사람이 출발 전에 여권을 집에서 구권과 잘 못 가지고와 출발을 못하고 16명만 일행이 되어 노랑풍선 여행사를 이용하여 아세아나 항공편으로 19시 10분에 출발하여 중국 계림공항에 22시10분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약 20분 지연되어 22시 30분에 한가하게 보이는 소박한 비행장에 도착한다.
*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어 우중충한 기분이 들어 이국땅 첫발거름이 언짢아진다. 일행 중 서류를 잘 챙기지 못하고 또한 짐 하나를 찾지를 못해서 공항에서 약 1시간이나 마중 나 온 가이드와 미팅이 늦어져 호텔에 늦게 도착했다. 호텔은 4성이라지만 좀 허술한 느낌이 드는 태자호텔이다. 습기가 많은 이 중국 남쪽지방은 모든 호텔에서 에어컨을 밤새도록 켜 놓고 지내므로 한편 우리들의 체온은 상대적으로 좀 냉기가 드는 방안의 공기 탓으로 아침잠을 설친 상태, 실은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40분이나 지나 샤워도 못하고 잠자리에 드는 둥 마는 둥하고, 아침 6시에 기상하여, 첫 중국의 아침을 맞으니 머리가 좀 어수선하다.
20일
이곳 광서 성은 한국의 2배가 넘은 넓은 땅에 인구는 약 5천만이 넘고, 거리의 아파트나 단독주택도 내부시설은 입주자가 처리하도록 집을 짓고 우리나라와 달리 미완성 상태로 매매를 한다. 이유는 다민족인 까닭에 입주자들의 취향이 다 다르기 때문이란다. 비가 와서 여정에 차질이 생겨 예정 스케줄에 따르지 못하고 복파 산. 천산공원. 은자암 동굴. 대용수, 월량산. 도원명 공원. 첩채산 등을 구경할 장소를 가이드가 일정 변경할 것을 우리들에게 동의를 구한다. 모처럼 여행길이 이렇게 날씨 탓으로 여정이 변경된 일이 없었던 것에 당혹감을 갖고 안쓰러운 일정에 마음만 찹찹하다.
* 일생에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꼽을 만큼 매혹적인 비경을 품은 곳, 계수나무가 많다 해서 계림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 계수나무 향기가 온 도시를 감싸 흐르는 이곳은 가히 산수의 절경으로 중국 제일의 신혼 여행지로 알려져 있으며 월남과 맞닿은 중국의 남쪽 지방이라 아열대성의 온화한 기후에 농작물이 풍부한 특히 과일의 생산이 잘되는 아름다운 도시다. 이곳은 우리 제주도의 자연환경과 비슷해 자매결연를 맺고 문화교류도 활발한 곳이다.
* 계림(Guilin) 원주민 발음은 꾸우린. 도시는 산과 물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광서장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이며 중국의 10대 명승지의 하나다.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성주민은 약 5천만 정도인데 장족, 한족, 묘족, 모한족 등 다양한 민족으로 형성되어있다. 명, 청 때 광서성으로 불리다가 1958년에 자치구로 되었다. 계림은 중국의 유명한 관광 도시인 동시에 역사 도시이기도 하다. 광서성 (廣西省) 동북부에 위치해 있고, 아열대에 속해서 기온이 온화하며 연평균 기온은 19℃ 정도이고 4계절 내내 따뜻하여 생활하기에 적당하다. 도시인구는 약 50만 명이다. 이곳은 3억 년 전에 원래 바다였다가 지각 운동으로 인해 바다에 쌓여 있던 석회암이 육지위로 솟아올라 이와 같이 봉우리가 형성되어, 이후 풍화와 침식작용을 거친 후 독특한 카르스트로 지금과 같은 지리 형세가 이루어졌다. 강이 발달하여 오래 전부터 하천교통의 요충지였고, 오늘날에는 상계(湘桂)철도가 개통되어 전통적인 상업 외에 면방직을 중심으로 한 화학·농기구·제사·제지공업이 활발히 발달하고 있다.
* 지리적 배경이 이강과 그 주위의 전원 풍경과 잘 어우러져 "桂林山水甲天下 “ 계림의 산수가 천하제일이다."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구시가는 당(唐) 때 구축한 석회암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대안(對岸)에는 시가지가 자리 잡고 있다. 또한 계림 시는 소수 민족이 모여 사는 도시로 그 중에서도 장, 묘, 요족 등 28개의 소수 민족이 전체 인구의 8.5%를 차지한다. 이로 인해 수려한 산수와 농후한 민속 풍경이 서로 결합하여 원래의 자연을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든다.
* 비가 많이 와서 용승 온천욕을 하려던 기획이 산사태로 길이 문어져 온천욕과 용척제전는 포기를 하여 아쉽다. 가이드가 미안하다고 발 맛사지를 무료로 대치하고, 또한 시내 시장거리를 구경시켜주는데 별로 우리에게는 기분이 나지 않는 것이다. 이번 여행은 특별히 인정한 두 곳을 못 체험해 정말 여행의 목적을 미완성한 기분이다. 가이드의 잘못도 안인데 더 말을 할 수도 없고, 여행의 일기 탓으로 치부하고 만다. 자주 올 수 없는 곳이기에 섭섭하다.
21일
우리는 계림의 외곽과 농촌지역의 바깥 구경을 하면서 외국이라는 신비스러움과 특수한 지형에 매료되어 가는 중에 계림이 양삭이요, 양삭이 계림이라던 가이드의 말이 언뜻 생각게 한다. 시내에서 약 1시간 30분 정도 남으로 이동하여, 양삭으로 향했다. 기온은 대략 2~3도 높아진다. 현재복장이 더워진다. 길 양편에는 점점 산이 많아지더니 아예 산으로 꽉 막혀지는 분위기다. 여기에 물이차면 꼭 하롱베이(베트남)가 되며, 물이 빠지면 양삭이다. 하롱도 전형적인 카르스트 지형(석회암이나 백운암이 빗물이나 지하수의 침식을 받아서 형성된 독특한 지형으로 용식동굴지형) 이라 그곳이나 이곳이나 석회암 동굴도 공통사항이다(내 자신의 생각). 어느덧 양삭을 지나서 은자암 동굴 입구 주차장까지 오게 되었다. 주변에서는 우리가 처음 보는 사탕 수수대를 그냥 잘라서 자전거에 싣고 껍질만 베껴서 손님들에게 파는데 이곳에서 군것질로 주민들이 많이들 사먹고 길거리에서도 아이들이 들고 다니면서 먹고 있는 풍경이 이색적이다.
* 은자암 동굴의 위치는 계림 시에서 약 85km, 양삭으로부터 3km 정도 떨어져 있다. 이 은자암(銀子岩) 동굴은 마치 거대한 천연분재 화분과 같고 또한 천애절벽으로 유명하며 암벽등반을 하기에 적격으로 아슬아슬하여 아마추어나 전문가들로부터 계림산수의 걸작이라 불리며 선호하는 장소다. 가히 산수의 고장답게 온통 산이요, 물이라 아름답기 그지없다. 다층식(多層式) 종유석 동굴로 입구 앞에는 넓은 들판이 펼쳐 있다. 그리고 잘 알려진 마령산(马岭山)의 명승풍경 속에 주위에는 또 다른 여러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산에는 복숭아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어 사계절 내내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은자암은 주위의 입구 여러 안내문에는 한문과 간단한 한글로 표시되어 있는데, 한글표기는 틀린 글자가 많이 보였다. 예로서 “화장실”을 “호장실”, 올라가는 “계단”을 “기단”으로, “입구”를 “업구” 등으로 쓰여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한국의 위상이 높아서 그들이 이렇게 이 나라의 한 성에 지나지 않는 작은 나라, 한국의 한글로 안내표시를 한다는 것은 그 만큼 중국으로 우리가 많은 여행경비를 내면서 여행을 왔고, 경제적인 도움이 된 것으로 인식되어 기분이 좋았다. 이 은자암은 이미 관광구역으로 개발된 2km구간을 크게 하동(下洞),대청(大厅),상동(上洞) 3부분으로 나누는데, 각기 다른 지질연대에 발육 생장한 다양한 유형의 종유석이 수십 개의 특색 있는 경치를 볼 수 있다. 파이프 오르간을 연상시키는 종유석과 광한심궁(广寒深宫),설산비폭(雪山飞瀑)이라는 명칭의 종유석은 삼절(三绝)이라 불리며, 수십 개의 불상들을 모아놓은 뜻한 종유석과 가느다란 종유석이 천장을 바치고 있는 모습, 그리고 진주우산이라 불리는 종유석은 삼보(三寶)라고 말하고 있다. 은자암의 경관은 웅장하면서 기이하고, 우아하면서 아름다워 동굴 및 지질 전문가들은 "세계 카르스트 예술의 보고"라 부르고 있다. 종유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풍경은 정말로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흥분시킨다. 그리고 동굴은 살아 있는 듯 은빛으로 빛나면서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다. 동굴 안에는 넓은 곳이 작은 광장처럼 곳곳에 있고 매점도 있어 쉬어갈 수도 있다. 이 동굴 일부만 개발하여 그 훌륭한 자연경관을 보고 감탄하면서 나머지 “미개발된 구역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생각하고, 늦게 개발된 이 은자암을 노적암과 관암동굴에 비교하게 된다. 대자연은 보물을 이슬이 맞지 않도록 깊이 감추고 오직 한 점만 구경거리로 보여줄 뿐이다. 자연은 세상 사람들을 끌어 모아놓고 자신들의 나신을 들어내 사람을 슬프게 하거나 웅장한 자태로 놀라게 하기도 한다. 은자암 동굴은 이러한 실례를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 상비산은 계림의 이강과 도화 강이 합류하는 곳에 있는 바위산이다. 코끼리가 코로 이강의 물을 먹고 있는 뜻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현지 사람들은 말을 한다. 이 상비산은 계림을 상징하는 산으로써 계림을 소개하는 모든 책자에 소개된 유명한 산이고 산 정상에는 명나라 때 세워진 높이 13.5m의 보현 보살탑이 서있다. 계림 산수갑천하(山水甲天下)라는 얘기가 있다. 계림의 경치가 천하제일이라는 말인데, 당나라 때 시인 한유는 계림을 보고 이렇게 시를 읊었다고 한다. <강은 푸른 비단 띠를 두른듯하고 산은 벽옥으로 만든 비녀 같구나>라고 노래하였다고,, 계수나무는 주로 음력 8월15일을 전후하여 꽃을 피운다. 계림 도심의 대부분의 가로수는 계수나무로 가꾸어져 있으며, 꽃피는 시기에는 그 향기가 온 계림을 감싼다.
* 계림여행의 백미는 이강유람이다. 이강의 유람은 대개 여러 곳의 코스가 있으나 일반적인 관광객들은 관암 동굴 근처에서 약 1시간 정도를 이용 하는데 편도 30분정도의 거리이기 때문에 이강 주변의 절경을 다 보지 못하게 된다. 장가계를 일컬어 남자의 산이라 하면 계림은 여자의 산이라고 한다. 장가계의 산이나 바위의 모습은 웅대하고 쭉쭉 직각으로 뻗어내려 남자를 연상시키고 계림은 아담하고 산의 선이 대부분 곡선을 이루어 여자의 부드러움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진다.
* 이강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강이 바로 생명의 강이며, 물이 깨끗하고 수량이 풍부하여 많은 물고기들이 서식하고 있다. 계림에 오면 꼭 찾아보는 곳이 상비산(象鼻山:코끼리산)이라고 한다. 도화강(桃花江)과 이강이 합류하는 곳에 있는 이 거대한 바위산은 강으로 기어드는 돌산에 굴이 뚫려 있어서 옆에서 보면 마치 코끼리가 코를 담그고 강물을 들이키고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늘은 잠시 속세를 벗어나 신선이 된 기분으로 유람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본다. 떠나올 때 아직은 추워서 강바람의 영향으로 어떨지 했는데 이곳 계림의 봄소식은 자연 경관이나 생활하는 원주민들의 모습이 우리네와 너무 닮아 타국에서 느끼는 향수에 빠지기도 전에 붉은 복숭아꽃이 만발한 도원(桃園)임을 알 것 같은 봄을 느낀다. * * 이강을 저녁 식사 후 배를 타고 강 양편의 풍치를 감상하며 뱃 노리를 한다. 계림관광의 절정은 역시 이강 유람이다. 관암~양제까지 산속 깊숙하게 돌아 흐르며 진귀한 모습을 한 봉우리들이 많아 현세속의 선경이라 불리며 살아 움직이는 한 폭의 동양화라 할 수 있다.
* 이곳 강엔 세계의 유명한 다리의 모조품이 여러 개 있다. 프랑스의 미라보 다리, 영국의 런던 부리지, 미국의 금문교. 등이 강을 따라서 조화를 이룬다.
* 상비산 옆에 까만 가마우지 새와 작은 뗏목이 여기저기 있어 이강을 따라 흘러가다 보면 5개의 대나무를 엮은 뗏목을 타고 가마우지(까마귀처럼 생긴 오리 크기의 새) 2-3마리를 싣고 어부가 고기를 잡는 것을 보게 된다. 독특한 이강의 고기잡이 풍경인데, 온 천지가 어둡지만 어부들은 횃불을 밝히고 여행객들에게 보여주려고 잠시나마 손을 놓고 물고기를 사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마우지는 야행성이라 밤 사냥이 능하다는 말이 있다. 어부들은 가마우지를 길들여 그 목에 줄을 매어 고기를 잡더라도 삼킬 수 없도록 하고 배타고 강으로 나아가 풀어놓으면 가마우지는 열심히 고기를 물지만 삼킬 수 없으니 고스란히 어부의 몫이 되는데, 이것을 강제로 아가리에 머금고 있는 물고기를 어부가 목을 잡고 빼어내어 바구니에 담는 모습은 한편으로는 타당하게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잔학상을 엿보게 되어 몬도가네를 연상케 하는 씁쓸한 뒷맛을 안겨준다. 이 지역에서는 가마우지 한 마리가 황소 한 마리 보다 더 비싸며, 혼자서 먹고 살만하고, 두 마리면 가족이 모두 먹고 살며, 세 마리 이상이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한다. 산수화에서 뗏목을 젓는 어부와 물새 그림이 바로 이 풍경 이였구나, 하고 눈앞에서 보는 즐거움은 정말 신기하고 이렇게 실지로 볼 줄 몰랐던 것을 현실로 보니 기분이 좋았다. 기암괴석과 절경을 이루는 산봉우리, 그 사이를 아즈란이 피어오른 물안개, 대나무 뗏목을 타고 고기 잡는 어부, 그림에서만 만났던 산수화 속에 지금 들어와 있으니 이것이 바로 신선이 안이고 무엇이겠는가 하고 잠시 풍요로운 감정에 빠져본다. 이태백이 배를 몰고 나가 음주 중에 강물에 비친 달을 따려고 이 강으로 뛰어들었다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술 취한 그가 달 따려다가 사고로 사망한 곳이 채석강이라는 설이 있는데 그는 산수와 달을 많이 사랑하였고 산수와 달이 머물러 있는 곳에서 살았나보다. 역시 시인다운 훗날 이야기들이 많다.
* 강산은 일만 이천 봉이라고 하지만 계림은 약 육만 봉의 봉우리가 있다고 한다. 이강의 흐름을 타고 달리는 배위에서 바라본 수백 개의 기봉 기암(奇峰奇巖)의 풍경은 절로 신선의 마음을 갖게 한다. 하지만 시내곳곳에서 있는 그 많은 봉우리 밑에 현재는 집들이 바로 산 밑까지 들어 차 있어서 풍경을 많이 망처 놓은 것으로만 보인다. 옛날 또는 1.990년대 까지는 어떠했는지는 상상에 맡기지만..... 그래도 내 나라의 것이 더 좋아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여러 형태의 모양을 형성한 기암인 우리 금강산이 아름다워 보인다. 돌아오면서 잠시 현지의 일상을 볼 수 있는 서가재래시장에 들렸다. 재래시장이라는 선입감과는 달리 말끔히 정비된 전형적인 관광지의 시장이라 별 흥미를 못 느끼고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대신한다. 실은 이곳이 역사적으로 약 500년의 세월이 숨 쉬는 곳이지만.......
22일
* 대용수(大榕樹)공원는 용수는 열대 아시아에서 주로 자라는 큰 나무로, 가지에서 기근이 내려 지주근이 되며 열매는 무화과 비슷하게 생겼다. 이곳의 대용수 나무는 무려 1.420년이 된 기념적인 나무가 이 공원을 대표하고 있어서 많은 시민과 외국인이 이곳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는다. 평화롭고 아기자기한 요족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 요족마을은 어릴 적 즐겨 보던 만화 속 스머프 마을을 연상시키는 평화롭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자그마한 마을로 중국 소수 민족 중 하나인 요족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다. 어딘지 모르게 정겨운 느낌을 주는 요족 마을 사람들, 순박하고 티 없는 그들의 생활모습을 살펴볼 수 있도록 관광지로 개발되어 있는데 돌담과 나무로 만들어진 귀틀집, 그리고 그 골목 사이사이의 돌계단들이 마음을 포근하고 따뜻하게 해 준다. 요족의 전통차인 "유차"를 마시면서 민속가무를 감상하게 되었는데 이날은 중국의 지진 난민들의 재앙을 당하여 국민들이 엄숙히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공연이 취소되어 섭섭하였다.
* 疊綵山(첩채산)은 돌무늬가 첩첩이 쌓여있는 모습이라 해서 첩채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시내에 있는 이산은 가히 서예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온산 여기저기에 명필들의 수준 있는 작품들이 빼곡히 들어차 문화적 가치가 매우 뛰어난 산이다. 첩채산도 이곳 계림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오를 수 있는 봉우리 세 개 중의 하나다. 之字(갈지자) 모양의 돌계단과 각종 나비가 유리관에 전시되어 있는 전시관을 통해 20여 미터를 올라가면 작은 동굴이 나오는데. 이곳 동굴을 통해서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동굴 정면 윗부분에는 1963년 낙관이 찍힌 어느 유명인사의 바위에 음각된 疊綵山이 라는 커다란 붉은 글씨가 눈에 들어오고, 바로 우측에는 1964년 낙관이 찍힌 어느 문인의 "願作桂林人 不願作神仙"(계림에 사는 사람이 될망정 신선이 되고 싶지 않다)라는 역시 붉은색의 바위에 세로로 음각된 글귀가 보인다.
* 요산은 계림 동쪽교외에 위치하고, 시구역과 약 10Km 떨어져 있다. 해발 909.3M 높이로 계림의 최고봉으로 주, 당조 시대에 요임금 묘(堯帝廟)를 건설했다 해서 얻어진 이름으로서 계림시민들이 즐겨 찾는 유람지의 하나이자, 또 풍수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 묘를 살려면 중국인들이 엄청난 돈을 지불하여야 할 입장이란다. 조상을 억세게 잘 모시려는 그들 자손들의 열망 때문에 보통 집 한 체 값 보다 더 비싸고, 산 위일수록 값은 더하며 산 아래쪽은 싼 값(그래도 작은 시내 집값)으로 매매된다고 한다. 입구에 왕릉(주원장)이 하나있고 들어가는 길을 따라 많은 돌무덤이 있다. 계림에서 동쪽으로 7km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요산.
* 요산은 자연풍경과 고대 릉 묘군이 함께 어우러진 풍경명승구이다. 계림의 대부분 산들이 석산(石山)인 것과는 달리 요산(堯山)만 오직 흙산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 계림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그 높은 산을 올라가는데 사용하는 기구를 이곳에서는 케이불카라고 하지만 우리들의 기억으로는 주로 스키장에서 사용하는 2인용 맆트(lift)로 비나 눈이 오면 못 탈것 같은 것이다. 약 10분가량 하늘로 올라가는 순간은 좀 섬찍한 느낌과 싸늘한 산 공기에 온몸이 떨리는 듯도 하다. 하지만 아래로 내려다보인 시내 풍경은 멋있는 한 폭의 그림이다. 맆트는 2인용이라서 다른 부인과 함께 타고 올라가 본다. 그 부인도 약간 현기증이 나는지 아래를 내려 보지를 못하고 겁먹은 표정이다. 산 중간에는 봅스레이 놀이기구가 잘 설치되어서 일반인도 특히나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장소로 마련되어 있다. 봄에는 꽃들이 만발하여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케이불 도착역위에는 잡화상이 늘어서서 여러 가지 물건들을 팔고 있어 여행객들이 기념품으로 많은 것을 사고 있다. 계림의 명성에 가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양삭(陽朔)은 계림 못지않은 천하의 절경으로 꼭 가봐야 하는 곳 중의 하나다.
* 월량산=양삭의 볼거리들은 대부분 석회암의 산들인데, 월량산(月亮山, 위에량샨) 역시 그들 중 하나로, 산봉우리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특색이다. 구멍의 모습이 마치 달과 같아서 월량산이라는 이름이 되었는데, 보는 각도에 따라 구멍모습이 달라져 초승달에서 반달까지 다양하게 변한다. 봉우리 정상까지는 15분 정도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며, 정상에 오르면 구멍 너머로 주변의 여러 봉우리가 병풍처럼 겹쳐져 있는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또 월량산 주변에는 호랑이가 누워있는 모양의 와호산(臥虎山), 구우령(九牛嶺)등의 경관과 삼고농업(三高農業) 시범구가 있고, 산 동쪽에는 높이 2m에 달하는 2,000m 길이의 동굴이 있는데, 각양각색의 기이한 종유석과 결정석이 아름다운 모양으로 펼쳐져 있다.
* 도원명 공원(세외도원)=1997년 대만 자본이 투자(30년간 사용)되어 만든 소수민족 촌이다. 산수가 아름답고 사시사철 복숭아꽃이 핀다고 해서 도원명의 도화원기에서 따온 세외도원이라 부른다. 일부에서는 중국의 시성 도원명이 극찬한 세외도원이라 하지만 실은 1.700년 전의 도원명이 1999년에 완공된 이 마을을 어찌 생각할지요. 아름다운 산새와 마을을 가로지르는 연못이 조화를 이루어 마을 전체가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유람선을 타고 나오면 각종 소수민족이 직접 만든 공예품을 진열하여 놓은 상점들이 있어 우리는 세련되게 조각한 황색으로 된 팔찌를 40위안을 주고 2개를 사서 차보니 더운 날씨에 잠시나마 시원한 돌의 느낌을 맛보며 쇼핑을 즐겼다. 유람선 중간 중간에 소수 민족들이 율동하는 순간적 춤과 노래를 들을 수 있으며 색다른 몸 짓 행동을 구경할 수 있다. 마을 어구에 우뚝 솟은 기이한 봉우리와 산 밑의 복숭아 꽃나무와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호수에 작은 수로는 소수 민족들이 타민족의 습격을 막기 위해서 소머리뼈와 각종 뼈들로 벽이나 나뭇가지에 걸어두어 방어하던 모습을 연출하여 이곳을 지날 때, 관광객들을 놀라게 하기 위해 원시인이 갑자기 나타나서 활을 겨양하거나 창을 던지는 모습들을 구경한다. 평화스럽게 노니는 마을의 아름다운 경치와 풍경이 잘 어우러지진 이 연못은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며, 1.700년 전 도원명의 책에 나오는 상상의 마을을 관광 상품화한 중국인들의 마인드가 우리 보다 더 자본적인 생각이 들어 웃음이 절로 나며 경제적인 면이 최우선이란 점을 그들도 잘 느끼고 있다는 점이 눈에 뜨인다. 중국계림의 풍광은 당나라 시인 한유의 말처럼. 어디에서 보아도. "강은 푸른 비단 띠를 두른 듯하고, 산은 벽옥으로 만든 비녀 같구나."라는 말 그대로 상상이 간다.
* 복파산(마원 장군 동상)은 이강의 서쪽연안 있는 산으로 복파장군이 칼로 돌기둥을 쳤다는 우람한 돌기둥 아래쪽이 가늘게 잘려 있는 모습이 신기하다. 이 바위 끝을 만지면 자손이 머리가 영리해 진다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만지느라 온통 북새통을 이루며, 돌 자체는 너무나 만져서 반질반질하게 빛을 발한다. 반대편에서 본 낙타 봉이 있는데, 구지 낙타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런 산의 모습을 안내인은 낙타라고 말 한다. 남쪽에는 환주동이 있고 거기에는 당나라 때에 세워진 230여개의 불상이 있는 천불동이가 볼만하다. 4월인데도 비가 와서인지 온화함과 싱그러움이 가득한 공원이다. 붉은 복숭아꽃이 만발, 도원(桃園)임을 알 것 같다. 그들은 또 그렇게 거기서 살고 봄버들 나루터에 빨래하던 그 모습도 우리와 너무나 익숙한 우리의 과거모습이다.
* 가이드가 여행자는 그곳 현지어를 몇 마디씩 배워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일러준다. 쉐~쉐(고맙습니다). 짜이쩬(안녕히 가십시오), 신콜라(수고 하십니다). 따~꺼(형). 이곳도 만날 때 다정한 인사는 식사했어요(츠~팔로마)를 가르쳐 주는데 잘 발음이 안 된다.
* 가이드의 할아버지는 원래고향이 전라도인데 할빈에 일제 때 이주하여 이제 자신은 중국국적을 갖고 있으며, 대학을 나와서 결혼(현재 35세. 5세의아들 1명)5년차며, 대부분의 현재 중국의 청소년들 결혼 사고방식은 과거가 문제되지 않으며, 50. 60년대의 보수적 사고방식이 사라지고, 처녀성을 중시하지 않으며, 오히려 서로 간에 과거사가 없었다면 별로 인기가 없었던 인물로 치부할 정도로 어디까지 과거는 단지 과거로 치부할 뿐 현재를 중시하는 결혼관이 대부분 인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와 많은 차이점을 보이는 정신세계관이다. 너무나 빨리 생활 습관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 동거를 하고 즉 연습으로 생활을 하고 나서 서로 합당하면 결혼 허가를 정부에서 받은 다고 한다. 유럽의 젊은 세대와 같은 빠른 서구화에 노인들은 당황해 한다고 말을 전 한다. 중국의 인구(한족만 해당되는 사항이라고 한다)조절 관계로 한 가족 자식 1명을 낳고 하나를 더 낳으려면 정부에 과태료로 5천 위안(한화로 약 85만원)을 주어야만 호적에 오를 수 있다고 한다.
* 천산(穿山) 공원=세외도원을 뒤로 하고 계림으로 달려가는 길섶에는 붉은 색 유도화가 곳곳에 피어있었다. 보기에는 무척 예뻤지만 꽃잎에 맹독이 들어있어. 유도화 꽃이 사약(死藥)원료로 사용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예쁘다는 생각이 싹~가셔 버렸다.
* 우리나라 제주시와 자매결련을 맺었다는 계림 시로 다시 돌아와 어느 한국식당에서 고향친구 만큼이나 반가운 구수한 된장찌개와 김치, 상추를 주어서 맛있게 먹었다. 점심을 마치고 해발 224m 높이의 穿산공원에 오르는 길은 가파른 돌계단으로 허리가 아픈 나로서는 숨이 차는 길이였다. 그래도 남들과 호흡을 같이 하여 방해가 없도록 열심히 올라갔다. 건너편 탑산(塔山)꼭대기에 서있는 아름다운 7층 수불탑(壽佛塔)을 바라보며 올라선 천산(穿山) 중턱에는 복파장군이 쏜 화살이 뚫고 지나갔다는 거대한 동굴이 뻥~ 뚫려있었고. 이 화살이 월남 땅까지 가서 그 위용을 자랑했다는 전설이 있다. 그림과도 같은 계림 시내 풍경을 멀리 내려다보며 동굴 모서리 오른쪽 돌계단으로 올라 미로처럼 뚫려있는 바위굴을 지나니 작은 광장이 하나 나타났고. 이곳에서 안내인의 설명을 들으면서 잠시 숨을 고루고 이번에는 과거와 현대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우산공원으로 향했다.
* 태평성대를 이룬 요순임금 시절 순황제가 중국 남방을 순방할 때 다녀갔다는 우산공원에는 옛날 물(水)을 다스리는 벼슬인 "우제"의 사당을 모시고 있는 곳이 있으며, 공원입구에는 기하학적 모양의 현대식 정원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분수에서 솟구쳐 오른 물이 계단식 물길을 따라 여울처럼 흘러내리고 있다. 아열대 지방답게 야자수 나무 등 열대 식물들이 빽빽한 밀림 같은 정원을 지나니, 하늘을 찌를 듯이 우뚝 솟아있는 목조 오복탑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사당으로 연결된 길섶 화강석 벽에는 여러 글자체로 목숨 수(壽)자와 복복(福)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것도 우리들의 풍속처럼, 강령(康寧). 덕을 베풀 유호덕(攸好德). 부자로(부(富). 오래 살 수(壽)로 점철되어 있다. 깨끗한 죽음을 맞이하는(고종명:考終命) 이것을 소망하는 우리들의 오복(五福)처럼 중국 사람들의 소망도 같다. 명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죽을 것을 염원하는 중국인들의 소망이 담겨 있어 보인다.
하늘의 가장 높은 곳, 구만리장천(九萬里長天)을 나타낸다는 구중천 끝에는 만지면 복이 온다는 용머리 조각 하나가 입을 벌리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해태 상을 닮은 이 용머리는 용의 아홉 번째 아들로 먹는 입만 있고 내보내는 구멍이 없어 재물이 고이는 것을 상징하는 조형물이라고 한다.
* 구중천을 지나서 만난 우제의 사당 입구에는 세 개의 돌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사당으로 이어진 돌다리에 용의 아홉 번째 아들이라는 돌짐승이 다리 양쪽을 지키고 있고, 세 개의 돌다리 중, 왼쪽 다리를 건너면 재물이 많이 생긴다는 재운교, 가운데는 출세 길이 보장된다는 관운교, 그리고 오른쪽은 건강과 평안함을 가져다준다는 평안교 다리다. 정교하게 조각을 했다. 우산공원의 마지막 코스로 들어선 동굴 안에는. 용과 두꺼비 등, 수많은 돌조각과 수석들이 동굴 가득 전시되어 있다.
* 용척제전(계단식 논)을 날씨 때문에 못 본 것을 호텔 로비에 걸려있는 대형 그림으로 감상을 대신한다. 그 유명한 장예모 영화감독의 웅장한 강가에서 300명이 출연하여 펼쳐지는 인상유삼제를 못 본 것이 이번에 너무나 한스럽다. 정말로 기대를 무척했는데, 그런데도 또한 인,웅호 산장에서 본 서커스 같은 동물들의 구경을 보여주어 너무나 실망을 주었다.(30불). 한국에서도 이런 것은 돈을 받아도 안볼 것이다.
23일
우산공원, 칠성공원 낙타산. 역사광장(역사적으로 그림조각을 연대별로 잘 정리한 반 타원형으로 이루어진 장소)로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남산공원에도 만들어 주었으면, 다음세대를 살아가는 후손들에게 역사적인 공부를 자연적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강왕성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벽돌 불탑으로, 높이는 40m이며 모두 15층이다. 산위높이에 어떻게 그 옛날에 건축을 했을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의 건축물을 광관 후 중국에서 마지막 저녁을 먹은 후 시내를 돌아 이곳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백화점에 들러 현지 물건들을 구경하고 오후 11시 10분에 인천공항을 향해 출발한다.
이번 여행자들은 옵션도 잘 따라서 하고 각종 상점에 가서 가이드가 안내하는 물품마다 잘 사는 바람에 가이드가 우리에게 자랑 안인 자랑을, 즉 물건을 많이 팔아주어서 업주가 자신에게 컴미숀을 주어 기분이 좋아서 이곳에서 나는 사탕수수나무로 짠 음로를 별도로 대접하고 다음날도 이곳에서는 비싼 스타벅스 커피(중국에서는 차가 대중적이지 커피는 좀 사치스러운 것으로 인정함)도 사주는 일이 벌어졌다.
대체로 이번 여행 맴버들의 면면은 이렇다. 한 쌍의 부부는 퇴직 교사로 연금을 받아 별탈이 없는 생활로 만족감을 같고 살아가는 부부 같은데, 여자쪽이 좀 억 박자를 놓고 있는 뜻한 부부관계를 노출하고 있고, 한 부부는 대단히 자신들의 생활과 자식자랑을 잘하고 있다. 40대의 여성 4명은 자신들의 생활과 현재의 부부관계가 좀 불만족스러운 말들을 자주 노출시키는 장면으로 보아 일시적으로 친구들과 바람 쏘이려 나온듯하다. 대기업에서 퇴직한 부부 한 쌍은 남편 몸이 불편한 입장에 여행을 온 분이다. 60대여성 3명들은 말없이 조용히 지나며, 40대 한 부부는 부부관계를 더 돈독하게 하기 위해서 여행을 왔다고 하는 그런 일행들이여서 그런지 별 탈 없이 즐거운 여행을 하였다고 느껴진다.
여행은 언제나 마음 설렘으로 출발한다. 그리고 돌아와선 또 다음 여행지를 기대하며 준비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즐거운 삶 자체가 안인가 생각해 본다.
24일
새벽 4시 10분에 서울 인천공항 도착. 이 여행지에는 오로지 아세아항공에서 만 다니기 때문에, 서울 인천공항에 도착 시간이 너무 일러 전철을 타기에 이른 시간으로, 마지막 돌아오는 여행길이 불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