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1891~1965)은 일제시대 독립운동가 이며 해방 후 대표적인 정치가다.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다 진흥의숙, YMCA 중학부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에서 공부하였다.
귀국 후 1914년부터 중앙고등보통학교 학감 중앙기독교청년회 교육부간사로 활동하였으며, 1923년부터는 시대일보를 거쳐 조선일보에서 주필, 부사장, 사장을 역임하며 언론활동과 사회활동을 전개하였고 1927년에는 신간회 간사가 되었다. 그러다가 신간회가 해체된 뒤로는 낙향하여 고전번역, 한국사연구등 조선학운동에 몰두하였다.
일제패망이 가까워오면서 여운형과 1945년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여 부위원장 되었다.
해방 후에는 국민당 당수, 좌우합작위원회 우측 대표, 미군정 초대 민정장관 등을 역임하며 좌우통합과 민족국가건설에 헌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선거에서 평택을 지역구로 당선되었지만 한국전쟁 때 납북되어 1965년 사망하였다.


서천사 석조여래좌상



서천사는 1352년 나옹화상이 창건하여 1623년 인조반정서 모두 불에 탄 후에 1870년 동파비구가 미륵불을 발견하여 사찰을 다시 지었다.
1929년 중창불사가 있었다가 1953년 화재로 소실되어 1954년 법당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렀다. 일제강점기에는 평택항을 통해 재산을 모은 일본인들의 포교당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에 석불이 제작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석조여래좌상은 머리에는 나말이 있고, 이마위에 타원형의 중앙계주가 그려져 있다. 법의는 왼쪽 어깨에서 팔꿈치까지 완만하게 대의 자락이 늘어져 있고, 하반신을 덮어 앞치마를 입은 듯이 반원형을 그리고 있으며, 양 발바닥이 모두 드러나 있다. 전신에 회칠이 되어있기는 하지만 세부조각과 의습 표현 등을 정확하게 알 수 있어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농업기술센터 내 농업박물관과 식물원
농업기술센터 내 농업 박물관은 규모는 아담하지만 평택지방의 농업 발달을 한 눈에 있는 곳이며 , 함께 있는 식물원은 아이들의 생태체험 학습장으로 아주 좋다.
특히 봄에는 환상적인 유채꽃밭과 다양한 꽃밭이 무료로 공개되며, 센터 내에는 전통 생활도구가 전시되어 재미를 더한다.






용산 미군 기지 이전으로 고덕 국제도시 건설 및 삼성전자 공장부지용으로 마을,논 밭,산,길이 사라저 가고있다.새로운 희망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
농업기술센터 내 농업박물관은 규모는 아담하지만 평택지방의 농업 발달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며, 함께 있는 식물원은 아이들의 생태체험 학습장으로 아주 좋다.
특히 봄에는 환상적인 유채꽃밭과 다양한 꽃밭이 무료로 공개되며,센터 내에는 전통 생활도구가 전시되어 재미를 더한다.
문화유적
-안재홍 선생 생가
-서천사 석조여래좌상
-농업기술센터 내 농업 박물관,식물원
거리:18.3km
도보여행난이도:(○○●○○)
소요시간:5시간 (쉬는 시간 포함)
경로
두릉리입구↔안재홍선생생가↔고덕면사무소↔고궁교회↔이스트힐↔방충리골프연습장↔사천사↔효덕지↔궁안교↔농협장례문화원↔함포들↔농업기술센터↔오성파출소앞
(차후 경로 변경)
주요버스노선
갈때:평택역↔서정리역(전철)
서정리역 버스(환승)↔두릉리 35,36,66,302
올때:오성면 명성빌라 앞↔평택행 80,98,810.
평택 도보 여행 제7구간 지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