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도처럼 밀려가는 지하철 환승 통로
아련한 선율로 코 끝 간질이는 천연향
오석에 물이 스미듯 촉촉하게 젖어든다
깊게 옹이진 가슴 실뿌리 촘촘히 뻗어
손 발 다 닳도록 안으로 쟁여온 세월
주름살 월계관인가 설움인양 둘려 있다
맨손으로 일궈 온 아버님의 칠십 생애
뭉툭한 손 마디 마디 가난 마저 물러서던
때늦은 저녁 밥상에 더덕향이 넘쳐 난다
시조 심사평
전북지역에서 오직 하나 신춘문예 시조장르를 유지할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현대시조의 태두이신 가람 이병기 선생님의 전통적인 시조의 틀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제재를 찾아내어 시어를 아껴 함축과 정제가 잘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았다.
124편의 응모작품을 일독하면서 9명을 선별하고, 이들의 작품을 정독하면서 13편을 뽑은 후 최종적으로 3편의 작품을 견주어보며 고심하다가 박신양님의 ‘더덕’을 당선작으로 밀게 되었다. 참신함이 돋보이는 실험적 작품이 없어 아쉬웠으나 응모작품의 수준은 희망적이었다.
박신산님의 ‘지리산 벽소령’은 6.25동란을 겪으면서 이념 때문에 동포끼리 총을 겨눠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긴 곳으로 “죽어서 북으로 간 바람 버섯구름 피우지 마라”며 오늘의 남과 북 얘기를 담고 있다.
김형태님의 ‘담쟁이덩굴의 사랑’은 장애인 부부가 서로 돕고 사는 애틋한 사랑을 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덩굴로 상징화하여 꾸밈없는 시어로 쓴 순애보로서 감동을 준다.
박신양님의 ‘더덕’은 가시적인 평범한 이미지 속에 힘겹게 살아온 아버지에 대한 애정과 아련한 모습이 숨겨져 있다. “손발 다 닳도록 안으로 쟁여온 세월/ 주름살 월계관인가 설움인양 둘려있다”. 말도 안 되는 조어로 글자 맞춘 게 아니라 일상 언어에 남다른 상상력과 직관에 의해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내었고, 내재된 리듬과 율격이 자연스러웠다.
끝으로 고등학생 신분으로 응모한 서상희양은 시조라는 그릇에 아름답고 맛깔스러운 음식을 담을 수 있는 조리사로서의 재능이 엿보였다. 좀 더 수련하여 이름을 떨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순량 시조시인·우석대 명예교수>
<시조 당선소감>
백의환향(白衣還鄕). 때늦은 나이에 초라한 작품을 들고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감회와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문학에의 꿈을 품은 지 50년. 그러나 생활이 문학으로 가는 길을 가로 막아 방황하던 세월을 보내고 늦게나마 시조에 매달릴 수 있었던 지난 6년의 세월은 참으로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우선 부족한 작품을 영광의 자리에 올려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전북의 시조문학을 이끌고 갈 젊은 세대들의 자리를 차지한 것 같아 한편으로는 무척 미안한 마음이 앞섭니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시조에 더욱 정진하라는 채찍으로 알고 더욱 압축된 삶으로 하루를 열흘, 일 년으로 알고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해 우리 민족시인 시조, 특히 전라시조의 발전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칠 것을 다짐 드립니다.
2006년 ‘창작수필’ 여름호에 수필 ‘더덕’이 당선되고 같은 제목의 시조 작품으로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저로서는 특별한 기쁨과 감회에 젖습니다. 작고하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쓴 저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담긴 글이기 때문입니다.
평생 동안 문학이라는 열망 때문에 공간적으로는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마음은 천마 하늘을 날듯 어느 때 이룬다는 보장도 없는 문학에의 꿈을 좇아 들뜬 삶을 살아온 생활 무능력자인 나를 옆에서 묵묵히 지켜주며, 버팀목이 되어준 내 인생의 반려자인 아내에게 이 자리를 빌어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아들들 내외들과 가족 친지들과도 이 기쁨을 함께 하고자 합니다.
특별히 오늘이 있기까지 내 문학에의 길을 열어주고 함께 동반자가 되어 걸어온 ‘시로 여는 e좋은 세상’ 부설 문예창작대학 문우들과 권갑하 시인님께 깊은 감사와 함께 당선의 기쁨을 나누고자 합니다. <박신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