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 대한 추억
장 영희
1994년 7월 17일, 속초로 휴가를 떠나셨던 아버지는 수영을 하시다가 심장마비로 사고를 당하셨다.
레비 혜성이 목성과 충돌, 목성 아래쪽에 큰 구멍이 뚫려 20세기 최대의 우주적 사건이 일어난 그날, 나의 우주에도 영원히 메울 수 없는 구멍이 뚫렸다.
다음날 일간지에는 한국 영문학의 역사, 번역문학의 태두 장왕록(張旺祿) 박사가 타계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한 사람의 인생을 요약하기에 꽤 화려한 타이틀이지만, 내 마음 속에 남아있는 ‘아버지’라는 단어 석자만큼 위대한 타이틀은 없을 것이다.
여섯 남매 중에 세 번째인 내가 첫돌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밤, 고열에 시달리는 나를 달래는 어머니 옆에서 아버지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드셨는지 벌떡 일어나시며 “아, 소아마비!”라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셨다고 한다. 그 순간부터 나와 아버지는 그 어느 부녀보다도 더욱 더 끈질긴 운명의 동아줄로 꽁꽁 묶여져 버렸다.
아버지는 내가 이 땅에서 발붙이고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남과 같은 교육을 받는 길뿐이라고 판단, 나를 장애인 재활 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보내는 일에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셨다.
그러나 초등학교 이후 상급 학교들은 나의 신체적 장애를 이유로 입학시험 치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일일이 학교들을 찾아다니시면서 사정하셨지만 번번이 ‘예의바르게’ 거절당했다.
아버지가 오실 때쯤 되어 문간에서 초조하게 기다리시던 어머니, 거절당하고 어깨가 축 늘어져 들어오셔서 내 눈을 피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나는 아직도 너무나 가슴 아프게 기억한다.
어렵사리 중학교에 입학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갔지만 그야말로 산 넘어 산, 내가 대학에 갈 수 있는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대학들은 어차피 합격해도 장애인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내가 입학시험 치르는 것을 거절했다.
마침내 아버지는 당시 서강대학교 영문과 과장님이셨던 브루닉 신부님을 찾아갔고, 미국인 신부님은 너무나 의아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시고 “무슨 그런 질문이 있는가. 시험을 머리로 보지 다리로 보는가. 장애인이라고 해서 시험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라고 반문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두고두고 그때 일을 말씀하셨다. “마치 내가 말도 안 되는 것을 물어본 바보처럼 말이야. 그렇지만 그렇게 행복한 바보가 어디 있겠냐”고….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장난기마저 감도는 웃음을 띠시던 아버지, 그것은 마음 저 깊숙이 자리잡은 슬픔을 감추는 아버지의 멋진 위장술이었는지도 모른다.
해방 전 단신 월남, 이곳에서 자수성가하실 때까지 아버지의 삶은 끝없이 외로운 고투였지만, 지금도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면 늘 그 선량하고 평화로운 눈매로 웃으시는 모습이다.
매일매일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힘든 일을 즐거운 일로 바꾸는 재주를 지닌 맑고 밝은 품성의 영원한 소년의 모습이시다.
아버지의 재능, 부지런함, 명민함을 제대로 물려받지 못한 나지만, 신탁처럼 운명처럼 아버지가 가셨던 길을 그대로 가고 있다. 그래서 아버지가 남겨 주신 이 세상에서 아버지의 빈자리를 메워 나가며 아버지의 영원한 공역자, 공저자로 남을 것이다. 영혼도 큰 소리로 말하면 듣는다고 한다.
늘 내 곁을 지켜주실 줄 알고 아버지 살아 생전에 한 번도 못한 말을 나는 이제야 크게 외쳐 본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장 영희교수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2004.4.28)
장영희 대학 교수
- 생몰 1952년 9월 14일 ~ 2009년 5월 9일
- 학력 서강대학교 대학원 영문학석사
- 뉴욕주립대학교올바니교대학원 영문학 박사
- 경력 서강대학교 문학부 영미어문영미문화과 교수
서강대학교 교양과정부 교수
첫댓글 나의 우주에도 영원히 메울수없는 구멍이 뚫렀다. 표현이 마음에 듭니다. 정직한 기억을 적어야 겠습니다. 좋은 공부 감사합니다.
'마음속에 아버지라는 단어 석자만큼 큰 타이틀은 없다'라는 말에서 우리네 아버지의 위상이 돋보입니다. 나의 우주,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남달랐던 작가라고 생각됩니다.
꾸미지 않은 글에서 받는 감동이 큽니다. 장애를 지니고도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반드시 그 곁에 의지 할만한 좋은 기둥이 있는 것을 봅니다. 강영우 박사에겐 좋은 아내가, 장영희님께는 좋은 부모가. 헬렌 켈러에겐 설리반 선생님이...
글은 있는 그대로가 제일 아름답게 보입니다. 화장하지 않은 그대로의 여인의 얼굴처럼요. '아버지의 재능, 부지런함, 명민함을 제대로 물려받지 못한 나지만, 신탁처럼 운명처럼 아버지가 가셨던 길을 그대로 가고 있다.' 아버지의 길을 따라 일생을 보낸 딸이 크게 보입니다. 좋은 어머니와 아버지, 선생님이 자식을 만든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쓰시던 때엔 5년 후에 아버님 곁으로 가시리라고는 생각도 못하셨을 텐데...아버지의 사랑에 감동과 감사를 느끼는 딸이야 말로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참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감동적인 글이군요.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