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엊그제 저녁에 부산아동문학인협회의 여자 부회장이며 동시인인 구옥순 선생을 만났습니다. 지난 해 학원을 개원하는 날 참석하지 못하여 내내 마음에 걸렸던지 불쑥 찾아왔기에 한편으로는 놀라웠지만 내심 무척 반가웠습니다.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80년대 초의 <산호초> 동시 동인 시절을 회상하면서 젊은 날의 질풍노도 같은 아동문학에의 열정을 그리워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산호초> 동인을 부활해 보면 어떻겠느냐는 여러 가지 의견이 오갔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당시 <산호초> 동인들의 숫자를 손으로 꼽으며 아름다운 얼굴들을 떠 올렸습니다. 동시인인 이국재, 김재원, 조명제, 김문홍, 정진용(현재 부산에 거주하지 않음), 정한나(본명 정옥남), 구옥순, 김수미(동화작가로 현재 부산에 거주하지 않음) 등이 그 당시의 동인들이었습니다.
2.
1980년대 초에 위에서 소개한 일곱 사람이 모여 <산호초> 동인이 결성되었습니다. 동인들 중에 김재원 선생은 지금은 동화를 전업으로 하고 있지만 당시엔 동시로 데뷔하여 동시집까지 낸 바가 있었고, 김수미 역시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동화 당선과 계몽아동문학상을 수상했지만 그 당시에는 시를 많이 썼으며, 정한나는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으로 데뷔했지만 <산호초> 동인 활동이 뜸하면서부터 문단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으며, 김문홍은 지금은 동화가 전업이지만 월간문학신인상 동시 부문에 당선된 경력이 있으며 시집 한 권 분향의 동시를 동인 활동을 통해 발표한 바가 있습니다. 이국재, 조명제, 구옥순은 시종일관 동시 한 길을 지금까지 걸어오고 있습니다. 지금 부산아동문단에서는 부산교육대학교 출신의 동화작가와 동시인들이 모여 <맥파> 동인 활동을 하면서 해마다 동인지를 발행해 오고 있으며, 동시인 강현호, 선용, 최향숙, 박지현, 강구중 등 60대를 중심으로 동시 동인 활동을 하면서 해마다 5월이면 시화전을 곁들이고 있습니다. 그 외 부산 아동문단에서는 이렇다 할만한 동인 동인 활동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즈음 동인 활동이 뜸하다는 것은 그만큼 아동문학에의 열정이 식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나 혼자만 좋은 작품 써서 발표했으면 됐지 무슨 동인 활동으로 번거롭게 시간 빼앗기고 돈 빼앗길 필요가 있느냐는 이기적인 생각도 조금은 작용한 탓이기도 합니다.
3.
1980년대 초의 동시동인 <산호초 > 활동은 지금 생각해도 질풍노도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동인들의 댁을 순회 방문하거나 찻집 같은 곳에 모여서 동시 창작과 비평에 대해 동인 모두가 열변을 토하곤 했습니다. 모일 때마다 동인들이 제출한 대여섯 편의 동시를 타이프라이터로 정성들여 쳐서 인쇄한 회보를 배부한 다음, 서로의 작품에 대한 잘잘못을 냉철한 시각으로 비판하고, 또한 그러한 질책을 겸허하게 수용하며 보다 더 좋은 동시 창작의 시금석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동인들의 호주머니 돈을 털어 비록 작은 규모이지만 <산호초> 동인지를 4호 가량 낸 바가 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전국의 동인들 중 최초로 우리 <산호초> 동인이 주최가 되어 <꼬마문학상>을 제정하여 시상했다는 것입니다. 이 상은 우리 동인들이 전국의 이곳 저곳에서 발행되고 발표되는 신문과 잡지의 동시들을 뒤적여 인쇄한 다음, 동인들이 재직하고 있는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의 아이들에게 읽혀 그들에게 가장 좋고 마음에 드는 동시를 투표하게 한 다음, 그 통계 자료를 모아 분석하여 가장 높은 점수의 동시를 쓴 동시인을 선정하여 시상하는 문학상 제도였습니다. 상금은 십 원 한 푼 없고 오로지 상패 하나와, 아아이들이 뽑은 가장 우수한 동시라는 영예만을 시상하는 특이한 문학상이었습니다. 제1회 수상자는 강원도의 동시인 조규영 선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문학상은 1회를 끝으로 다시는 시상되지 않았습니다.
4.
문학은 개인이 하는 예술 활동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행위는 잘못하면 숲 속에서 나무만 보되 숲은 보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 식의 편협성에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 부산아동문학인협회의 회원 수가 100여 명이 넘는 지금은 전체 회원이 한 자리에 모여 동화나 동시 등의 작품을 토론할 수 없는 여건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 협회도 동화 분과와 동시 분과로 잠정적으로 구분하여 활동할 필요가 있으며, 몇 몇 문학적 이념이 같거나 같은 연배의 사람들끼리 모여 동인 활동을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입니다. 동인 활동을 함으로 해서 문학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교환하고, 또한 서로의 작품에 대한 잘잘못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수용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창작의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필자가 이 코너를 통하여 <아동문학 통신>을 띄우는 것도 후배나 동료들에게 자극을 주어 보다 좋은 작품을 쓰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동인 활동을 하려면 저 7, 80년대의 시절처럼 문학에 대한 질풍노도의 열정으로 서로의 작품을 신랄하게 비판해야 하는 선명성이 뚜렷해야지, 그저 물리적으로 일 년에 한 번씩 동인들의 작품 몇 편을 모아 동인지로 엮어낸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5.
아동문학 동인 활동은 그 목적이 선명하고 전망이 뚜렷해야 합니다. 한 달에 한 번이면 한 번 두 번이면 두번 정도 회동하여 서로의 작품에 대해 신랄하게 비평하고, 동인지를 발간할 때에도 작품의 심사 창구를 두어 작품의 예술적 성취도가 부족한 동인의 작품은 몇 차례의 수정 보완의 기회를 주어 완벽한 작품만을 수록하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동인 상호간의 작품에 대한 비평은 서로의 믿음과 애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작품의 잘잘못을 지적받은 동인은 모든 동인들의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여 그것을 자신의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번의 동인지를 발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일 때마다 회보를 만들어, 회보에 수록된 작품을 대상으로 기탄없는 토론을 벌이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동인의 숫자는 너무 많으면 좋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7, 8명 정도의 동인이 가장 적절하다고 봅니다. 동인의 재정이 넉넉해진다면 조그만한 규모의 상을 만들어 시상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아이건 어른이건 상은 좋은 것이고, 상은 받으면 받을수록 흐뭇하고 즐거울 뿐만 아니라 또다른 창작의 지평을 마련하는 것이니까요.
6.
조만간 <산호초> 동시 동인을 부활하자고 잠정적으로 약속한 뒤 구옥순 선생과 헤어졌습니다. 나는 그 날 밤, 80년 대 초의 저 질풍노도와 같은 동인 활동을 떠올리며 내내 행복한 꿈에 취해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좀체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나이를 먹어 가니까 자꾸 옛날의 일이 그리워지나 봅니다. 동인 활동이 번거롭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문학적 열정이 점점 식어가고 있지는 않나 하고 의심해도 좋을 일입니다. 동인 활동이건 아니면 개인 회보를 만들어 자신의 문학적 이념과 열정을 펴 나가는 일이건, 요즈음의 나태한 우리 아동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일은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내가 선택한 이 길!
이왕 할려거든 열정적으로 확실하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 한해는 아동문학에 대한 질풍노도의 동인 활동이 보다 다양해지기를 기원합니다.
첫댓글 꼬마 문학상! 참 아름다운 상이름입니다. 시상 내용도 아름답구요. 창작활동의 질풍노도를 위해 애쓰시는 김문홍 선생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아울러 좋은 결실들로 나타나리라 기대해봅니다.
동인지를 내는 것보다는 매달 모여서 작품 비평회를 여는 게 더 바람직합니다. 지금 부산에는 <동화지기>와 <우물>이라는 동화 연구 모임이 있는데, 출신을 떠나서 더 많은 동시, 동화 합평 모임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우리 회원들이 김문홍 박사나 저에게 연락을 주시면 7-8명씩 묶어서 동화, 동시 연구 모임을 주선해 보겠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충분히 새겨 들을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