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것이 이번 여행의 마지막 소식이 될 듯 합니다.
귀국 준비를 슬슬 해봐야 하겠기에 말입니다.
5월 15일 중앙난방이 끊겨서 잠자리가 추웠던 것이 흠이었지만
이번 여행도 나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여행이 편하면 그 만큼 경험도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울란바타르-다르항-에르데네뜨를 몽골의 1, 2, 3의 도시라고 합니다.
유비를 중심으로 다르항은 북쪽에 있는 도시다.
유비에서 224km, 거기서 다시 80여km를 가면 수흐바타르시가 나오며
이어 러시아 국경으로 이어진다.
이 중심도로에서 212km 지점에서 서쪽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이 나오는데
여기부터 168km 지점의 도시가 에르데네뜨다.
다르항은 1920년대 만들어진 공업도시라 하고
에르데네뜨는 30년이 조금 넘은 구리광산의 도시입니다.
다르항에는 몽골 제1의 시멘트 공장이 있고
건축 철재를 생산하는 공장이 중심을 이룬다는군요.
에르데네뜨는 현재 한국의 포항이나 울산으로 비유되는 곳으로
구리는 몽골의 기축 산업이며 국영산업체의 기반이므로
국정운영의 중심이기도 하답니다.
국제 원자재 가격의 등락에 따라 경제가 좌우될 정도랍니다.
그렇기에 에르데네뜨시의 경제적 삶도 다른 곳보다는 형편이 좋은 편이랍니다.
도시도 깨끗한 편이고 비교적 여유롭습니다.
울란바타르에서 버스로 에르데네뜨에 도착한 것은 저녁 8시쯤이었습니다.
해의 기운이 아직 남아 있긴 했지만
울란바타르처럼 서둘러 집에 가야한다는 쫓김은 생기지 않습니다.
편의상 울란바타르는 유비로 하겠습니다.
유비의 서쪽에 위치한 ‘드라곤 센터’에서 모든 시외버스는 출도착합니다.
제가 이곳에서 개인적으로 시외버스를 탄 건 두 번째.
한 번은 지난 겨울, 이번은 봄이었습니다.
외국인은 여권을 제시해야 합니다.
표에는 이름도 찍히고 좌석도 지정이 되지요.
날씨가 풀리면 10시부터 2시간 간격으로 하루 네 번 운행되는데
에르데네뜨까지는 요금이 11000투그릭입니다.
2시에 출발한 차가 중간에 한 번 20여분을 쉰 것 말고는 없었다.
‘에르데네’는 보물, 보석이라는 뜻을 가지며
여기에 붙은 ‘뜨'는 '가진' 또는 '지명'의 의미를 갖는다.
이 지역의 주산물인 구리와 몰리브덴 등이 이들의 보석인 셈이다.
그런가 하면 셀렝게를 포함한 인근 지역이
밀과 감자가 많이 생산되고 있고 나무와 수량이 풍부한 지역이니
몽골에서는 보물이라 칭해도 족한 곳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긴 상황 설명에 이어 재미없는 여정을 그려본다.
당초 다르항을 먼저 들리려 했지만
극구 만류한 사람은 몽골인 동생이었다.
다르항은 거친 사람들이 많아서 외국인들이 혼자 가기에는
어려움이 많을거라 하였다.
심지어 동조적인 러시안도 가끔씩은 봉변을 당한다고 하였다.
차라리 에르데네뜨로 가서 거기서 몽골인 지인과 동행할 것을 권했다.
이렇게 하여 행선지가 바뀌었다.
작년 겨울에는 난방이 안되는 차안에서 발이 시렸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 여름도 아닌데 많이 더웠다.
몽골어로는 '마쉬 이흐 할롱'이라 할라나?
하지만 그들은 굳이 덥다고 하지도 않을 듯 했다.
상의를 벗어도 될텐데 땀을 흘려가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갔다.
모든 창문을 다 열어도 좋으련만
간혹 여는 이 외에는 아무런 표정도 불만도 없이 그리 갔다.
몽골의 시외버스에는 조수가 함께 한다.
전라도 쪽인가에서 80년대에 남자 조수를 본 적이 있지만
이곳의 조수도 남자다.
차량의 상태나 길의 상태를 감안한 예비조라고 인식되었다.
이 조수는 틈틈이 차량의 천장 문을 여닫았다.
오늘은 바람이 심한 날이다.
멀리서 황사가 일면 일어나 오가며 창문을 닫고 그리 하라 이른다.
그러지 않아도 더운 날씨에 오늘은 황사까지 한 몫 하는 셈이다.
에어콘은 작동이 되지 않았다.
애초 작동을 멈췄거나 기름값을 아끼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분기점에 못미쳐 "채담"이라 씌인 허름하고 조금만 도로변 가옥에 차가 멈췄다.
그리고 보니 지난 겨울에도 이곳에서 쉬었다 갔었다.
휴게소였다.
'차를 대접한다'는 '채다흐'에서 유래한 말인지 모른다 생각했지만
그들이 어디쯤 왔는지를 통화하는 몽골인들이 반복하여 '채담, 채담'하는걸 보면
그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은 아닌 듯 했다.
아무래도 소변을 봐야 할 거 같다.
깊긴 깊다!
옥외 설치된 나무 화장실이었는데
출신이 촌놈이면서도 서있는 잠시동안 긴장이 된다.
바람이 문을 자동으로 여닫는다.
저 문짝에 볼기라도 걷어 차인다면... 끔찍한 일이다. ^^
기별도 없이 가는 길이라
이쯤에서 소식을 남겨야겠기에
전화를 열었지만 먹통이었다.
내가 쓰는 전화는 스카이텔 서비스를 받는다.
이 서비스 회사는 한국회사가 출자하여 운영하는 회사다.
투자 대비 효율에 지나친 신경을 쓴 탓이 아닌가 싶어 아쉽다.
이곳에서는 앞자리 번호를 보면
한국에서 한 때 그랬던 것처럼 어느 회사 서비스를 받는지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아는 지인들의 번호가 다른 회사로 바뀌는 일이 잦은걸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특별히 이 회사와 관계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왕이면 다른 국적의 경쟁회사 보다 모든게 낫더라면 하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차가 출발했다.
차창 밖으로 다시 '채담'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음식점의 이름이 아닌 이 지역의 이름인가 보다.
옆에 앉으신 60대 정도의 아저씨가 드시는 계란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그리고 보니 오늘 아침만 먹고 아직 요기를 한 게 없었다.
찬거리가 마뜩찮기에
몽골산 감자 채를 기름에 볶다가 몽골산 양파와
전분 냄새가 전혀 없는 몽골의 100% 순고기 소세지를 썰어 함께 섞어
조금 더 볶았다.
그리고 물을 붓고 고추장을 듬뿍 넣어 끓인 한 가지 반찬만을 만들었다.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그걸로 밥을 비벼 먹고 온게 전부였다.
이 아저씨에게 없는 것은 '사이다' 뿐이었다.
사이다 대신 콜라 큰 병이 들려 있었다.
버스의 주인은 운전자였다.
입맛도 그의 선택이었다.
어느 때는 들을만한 음악이 나오다가
어느 순간에는 굉음의 음악이 흘렀다.
어디서 담배 냄새가 났다.
하지만 뒷자리의 그는 금방 조수에 의해 제제를 당했다.
유난히 담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지만
버스 안에서 만큼은 금연을 강조했었다.
나로서는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술을 좋아하는 대신 담배를 피지 않기 때문이다.
밀파종이 한창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면 마치 바둑판을 연상시키는 그 땅에 바로
한없이 이어지는 밀밭이 갈리고 씨가 뿌려진다.
냉해를 입는 해는 농사를 망친다고 했다.
대략 30%의 확률을 갖는 이 생업으로는
그 30%의 확률이 이루어지는 때에라야
그 때서야 은행 빚을 갚을 수 있다 했다.
여유가 있어도 자기 자본을 농사에 투자 하지 않고 은행 빚을 쓴다 했다.
그래야 자연재해에 대해 자기 손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 했다.
천수답을 짓는 조상들 역시 하늘을 바라봐야 했지만
이들로서도 역시 감당키 힘든 부담일게다.
갈린 땅에서 한무리 흙먼지가 인다.
일찍 파종이 끝난 곳은 벌써 파릇한 싹이 돋는다.
하지만 버릇없는 여남은 놈의 말들이 그 위를 여유롭게 거닐며 싹을 뜯는다.
방사를 하는 축산이 주된 이들에게는 이런 고얀 놈들의 소행도 어느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는 모양이나
요즘에 와서는 법으로 손해배상 조항을 만들었다는데
마른 논에 물을 먼저 대기 위해 물꼬전쟁을 벌였던
선조들의 각박함이 이곳에서는 심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들의 재해는 여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목적지가 가까워지면서
산에는 제법 나무들이 보였다.
그런데 화재가 있었던 모양이다.
싹이 돋는 초원은 연녹색이 아니라 검초록색이 짙다.
산도 그렇다.
불에 타 죽은 나무들도 군락을 이룬다.
차는 한참을 달렸지만
산과 초원은 여전히 검초록의 색을 띄었다.
큰 불이었던 모양이다.
이곳에 불이 난다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바람까지 심한 이곳에서 불길은 하염없이 번져만 갈 것이다.
외려 불이 난 곳의 풀은 이듬해 더 일찍 싹을 틔우고 성한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초원의 불이야 그려러니 해도
어렵게 뿌리 내린 나무의 소실은 큰 손실이 분명했다.
이제 거의 다 왔다.
버스 운전자는 구릉지에 세워진 어워를 지날때면 어김없이 경적을 가볍게 서너번씩 울려댄다.
이는 내려서 무사안일을 염원하는 의식을 치를 수 없음을 대신한 산신에게
무사운행을 기원하는 마음을 보내는 일인 것이다.
운전자는 마지막 어워에 감사의 경적을 울려댔다.
오늘의 버스 여행은 이리 끝이 나는가 했다.
고향에 온 것 같은 편안함마저 느껴진다.
이곳을 방문한 지는 오래고 여러 번이기에 그런가 보다.
하지만 운전자는 내게 한 번의 더 새로운 경험을 보여줬다.
통행료를 두고 도로관리소 직원과 실랑이를 이십여 분 간이나 해댄다.
무슨 말인지, 무슨 뜻인지 모르나
통행료는 1500투그릭 남짓이다.
원칙을 따지자면
나 또한 때로는 10원을 가지고 내 고집을 꺽지 않는 편인데
이 운전자도 나를 닮은 것인가?
이 긴 시간을 나는 한마디도 옆자리 아저씨와 나누질 않았다. ^^
첫댓글 아주 좋은 여행을 하셨네요.. 저도 언젠가는 가봐야 할 길인데.. 많은 도움이 되겠네요.. 다르항 얘기도 적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루한 글이었을텐데 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쩌면 지루하고 어쩌면 여유로운 몽골여행을 글로 남기셨네요. 저는 잠이 참 잘오더라고요. 단잠이었습니다. 글구 마지막에 실랑이를 한 1500투그륵은 안전밸트를 매지 않아낸 벌금 아닐까요. 통행료라는 말이 맞을 수도 있겠지요.
혹시 대화를 신청했었나요? 켜두고 다른 일을 보다 오니 잔뜩 신청이 되어 있었는데 늦게 봤나이다. 다른 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죄송합니다.
아유... 재미었겠네요... 차 안에서는 좀 지루했으셨을라나... ^^ 버스로 가면 몇시간이나 가는지요???
그렇군요. 중요한 여행정보가 빠졌네요. 6시간 걸렸습니다. 별 재미는 없었습니다.^^ 잘 계시지요?
재밌게 잘 보았습니다. 저도 버스로는 아직 못 가보았는데... 항상 차를 빌려서 다니다보니 저도 한번 다녀오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연락을 드려본다면서도 바쁘신 분들에게 누가될까 싶어 자제하였습니다. '젊지 않은' 사람이 되어 가는 증상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