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평강이 지켜주시는 생활을 하라(빌4:4~7)
7절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의 평강이란?
구약 히브리어 ‘샬롬(שָׁלוֹם, shalom)’과 같은 개념으로,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오는 온전함을 뜻합니다. 하나님과의 언약 안에서 누리는 평화로서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민6:26)라고 그 백성을 축복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사32:17)이라는 말씀 통하여 ‘평안’이란 의와 정의의 열매로 주어지는 온전한 삶을 뜻 합니다.
신약에서는 ‘평강’ εἰρήνη (eirēnē) → "평화, 화목, 온전함, 평안"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5:1)는 말씀을 통하여 ‘평강’이란 성령께서 믿는 자 안에 주시는 내적 평강을 뜻합니다,
이처럼 환경이나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내적 안정과 확신을 가지고 ‘평강’의 생활을 하려면 어떻케 해야 하는지를 본문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참 평안을 누리길 바랍니다.
첫째,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4절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항상기뻐하라’(살전5:16)는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포도나무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15:14),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라”(요15:11)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생활은 환경적인 돈, 건강, 성공 같은 조건적 기쁨이 아니라 구원의 은혜와 주님과의 동행에서 오는 영적 기쁨입니다. 이러한 기쁨은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것입니다(롬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 할 수 없도다).
바울과 실라는 옷이 찢기고. 채찍에 맞아 아프고 쓰리며, 옥에 갇혀있으면서 발에 차꼬에 채인 상태에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러한 극한 상황에서 그들이 기뻐하고 찬양할 수 있었던 것은 “주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라는 의미는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는 말씀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하여 신분상의 변화가 생겼으며,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라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지닌 것을 의미합니다.
‘주 안에서’란 위치적 개념이 아닌 은혜에 근거한 영적신분개념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 4:8~9)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인 우리를 천군천사로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의 관용을 이웃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5절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관용’이란? 자기의 권리를 끝까지 주장하여 분위기를 험악하게 하거나 편가르기를 하지 않고, 상대에게 너그럽고 합리적으로 대하는 태도를 뜻합니다. 가정과 교회는 물론 사회에서 타인의 부족함을 용납하며 화목과 화평을 이루기 위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음행 중에 잡아온 사람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치라”(요8:7)고 하시매 모든 고발자들과 구경꾼들이 돌아갔고, 수치심으로 죽고 싶은 심정에 처한 여인에게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관용을 보이셨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허물에 대하여는 관대하고 타인의 허물에 대하여는 냉정하고 가혹합니다. 우리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눅6:41)는 예수님의 책망을 듣는 바리새인들과 같습니다.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이라”(딛3:2) 이는 성령 충만한 성품으로 다툼보다 평화, 법보다 은혜, 권리보다 사랑을 앞세우는 삶의 태도를 보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이 있습니다. 원만한 사회생활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살아야 합니다. 가정은 물론 교회와 사회에서 예수님의 온유한 성품을 본받아서 이해와 관용, 용서와 사랑의 정신으로 생활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관용’은 나의 권리를 내려놓고, 상대를 품어주며, 그리스도의 온유와 자비를 드러내는 삶의 태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셋째,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6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우리는 날마다 근심하고 걱정하며 살아갑니다. 크고 작은 근심과 걱정으로 골수가 마르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식으로는 모든 근심 걱정을 예수님께 맡기고 편안하게 살아야겠다고 하나 돌아보면 여전히 그것들에 사로잡혀있음을 깨달으며, 놀라곤 합니다.
그러나 내가 근심하며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근심 걱정에 사로잡히는 것은 인간의 연약성 때문입니다. 새로운 것을 작정할지라도 3일을 넘기기 쉽지 아니하고, 꾸준하고 일관성있게 유지하는 계획이 많지 않습니다.
쓸데없는 근심 걱정은 정신건강을 해치고, 신앙생활에 지장을 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즉 우리는 쓸데없는 염려에 사로잡히지 말고 나의 삶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만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해악을 이기는 유일한 방안은 그 시간에 나의 마음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기도와 간구’란?
1) 기도(προσευχή, proseuchē)
헬라어 προσευχή는 “하나님께 드리는 경건한 대화, 예배적인 기도”라는 뜻입니다.
주로 하나님께 경배, 찬양, 교제를 포함한 넓은 의미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기본적인 마음의 태도와 삶의 자세를 가리킵니다.
예: 주기도문, 시편의 찬양과 기도들.
즉, “기도”는 하나님과의 전반적인 교제와 예배적 차원의 대화입니다.
2) 간구(δέησις, deēsis)
헬라어 δέησις는 “필요, 결핍, 곤궁을 해결해 달라는 간절한 요청”이라는 뜻입니다.
주로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청원 기도를 의미합니다.
예: 병 고침을 구하는 기도, 문제 해결을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
마음의 절실함이 강조됩니다.
즉, “간구”는 나의 필요와 문제를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올려드리는 강한 호소입니다.
기도가 없는 간구는 자기 욕심만 드러낼 수 있고, 간구가 없는 기도는 추상적 형식에 머물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일에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간구로 구체적으로 요청하며, 감사함으로 믿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1절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후렴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 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2절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 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3절 내 주는 자비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주시네
4절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불변하시니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하시네
하나님의 평강이 지켜주시는 삶을 살기위해서는
첫째,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의 관용을 이웃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셋째,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십니다. 하늘로부터 이슬처럼 내리는 평강의 복이 여러분과 가정에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예수사랑선교회 임 웅 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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