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청에서는 매월 셋째 주에 지체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미사가 있다. 평소에 궁금하던 질문을 선천적 시각장애인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도 꿈을 꾸세요?” “에이 그럼, 나도 꿈을 꾸지.” “그러면, 할머니는 빨간색, 파란색을 어떻게 알아요?” 이 당돌한 질문에 여든이 다 된 할머니는 침묵하고 계셨다. 그분이 꿈을 꾼다는 것은 무엇일까? 물체의 색깔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꿈은 어떤 모습일까? 끊임없는 질문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미사를 봉헌한다.
어느 날 시각장애인 자매님이 누군가 써 준 서툰 글씨로 서명을 받으러 찾아 오셨다. “신부님, 도와주세요. 안마시술소는 우리 같은 시각장애인이 해야 하는데 정부에서는 ‘스포츠 지압’ 같은 곳에 우리와 동일한 자격을 준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먹고 살라는 것입니까?” 우리나라에는 18만 명의 시각장애인이 있다. 이중 안마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빼고는 대부분이 기초생활 수급권자이다. 이분들은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안마를 하는 분들의 손은 마디마디가 툭툭 튀어 나왔다. 그것은 이들이 살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노동의 결실이자 고통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제 안마시술소의 자격조건이 모든 스포츠 지압원으로 대폭 확대되어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혹시나 주인이 자기를 쫓아내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삶의 현장을 지키기 위해 한강에서, 지하철에서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던져가며 투쟁을 한 것이다.
이런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오늘도 나름대로 세상을 이겨내는 장애인들이 있다. 지난 4월 30일에는 영국의 시각장애인 조종사 마일스 힐튼 바버가 자선기금 마련을 위해 지구 반 바퀴비행에 도전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를 위해 음성장치가 달린 고도계, 풍속계, 나침반이 특수하게 제작되었다고 한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시각장애인 2명이 사법고시에 1차 합격을 하였다. 이들은 “장애인들에게 힘이 되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이처럼 끝없는 도전을 하는 장애인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그들의 벗이 되어야 한다.
예리코의 앞 못 보는 이가 오늘도 예수님을 향해 외치고 있다.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교구청을 찾아오는 장애인들은 나를 오늘날의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으로 의지하고 있다. 언젠가 “신부님, 아무도 저희를 양노원에서 받아 주지 않습니다. 저희를 위한 시설 하나 만들어 주세요?”라는 그분들의 간곡한 부탁에, “순서가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요.”라고 말했다. 내가 평생 이곳에서 사목할 것처럼 이들에게 대답을 했으니 앞날이 깜깜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