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염 노인을 '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시골에서는 보통 친한 마을 사람끼리는 호칭도 없이 '어이' '저기 말이야' '어디 가나?' 하면서 이야기를 하지만 '김씨!' '박씨!' 하고 부를 사이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외지에서 온 입주민에겐 '사장님'이라고 부른다. 내가 번히 아나운서인 줄 알면서도 '사장님!' 하며 부른다.
염 노인을 처음 만났을 때 '염 선생님!' 하고 불렀더니 아주 미안하고 불편해 하면서 '… 내가 무슨 선생이오….'라고 했다. '선생님이시지요…. 훌륭하신 어르신이신데요.' 하는 나의 대답에 염 노인은 먼 산을 보며 혼잣말처럼 이야기했다.
"나는 배운 것도 없고, 남에게 가르칠 것도 없는 모자라는 사람인데요…."
그날 염 노인은 밭머리에 나와 같이 앉아, 힘겹게 살아 온 지난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집 가까이에 있는 넓고 깨끗하게 가꾸어진 당신 밭을 가리키며 그 밭을 장만하던 때를 회상해 주었다.
함경도 고향을 떠나 이밥(쌀밥) 좀 실컷 먹자고 남으로 남으로 내려왔지만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어 품을 파는 노동으로 남의 농사일을 돕다가 결혼을 하게 됐는데, 신혼부부는 가진 것이 없었다. 품삯으로 받는 양식을 모으고 또 모아 두 내외는 쌀 한 가마를 모았다.
"그 당시의 쌀 한 가마면 송아지 한 마리를 살 수 있었지요…."
두 내외는 그 쌀 한 가마를 두고 잠을 못 이루며 좋아했고 한편으로는 고민했다고 한다. 아이들과 함께 먹어야 하는데, 먹어 치우면 언제 밭 한 뙈기라도 장만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랬다고 한다.
염 노인은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밭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눈이 잠시 벌게지며 깊은 회상에 잠긴 모습이었다.
"… 우리 마누라가요…."
염 노인은 혼자 되어 허리 굽은 모습으로 사시는데 그 마나님은 우리 집 옆 밭가에 금잔디를 쓰고 누워 계신다. 염 노인은 밭에 일을 나오면 꼭 당신 밭가에 묻은 아내를 바라보며 회상에 잠기는 모습이었는데 거기엔 이런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 마누라가요… 그 쌀 팔아서 송아지를 사자는 거예요…. 그래서, 그럼 뭘 먹고 사냐니까… 풀 뜯어 먹고 살자고 하잖아요…."
하더니 뒷말을 다 못 하고 눈물을 철철 흘렸다.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그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풀 뜯어 먹기를 각오했던 불쌍하고 장한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뒤엉킨 눈물이었다. 나도 울었다.
염 노인은 금세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미안해요. 괜시리 쓸데없는 얘긴 해갖고…. 밭에만 나오면 옛날 생각이 나서요…."
산골 우리 집 부근 밭들은 예전에 화전이었는데 바위와 돌투성이다. 그런데 유독 염 노인네 밭은 흙살이 좋고 돌이 거의 없다. 그 밭의 돌과 바위를 두 내외가 억척으로 치워 깨끗한 옥토를 만든 것이다.
풀 뜯어 먹으며 샀던 밭인데 몸을 아꼈을 것인가.
"송아지를 사서 열심히 키웠더니 그 녀석이(암송아지지만) 아, 글쎄 쌍둥이 새끼를 낳았잖아요!"
하며 활짝 웃을 땐 나도 함께 박수를 치고 싶었다.
그 염 노인이 이제는 그 밭에서 농사도 못 할 연세가 되어 자주 뵙질 못하는데, 하루는 잘 만든 쓰레받기를 들고 우리 집을 방문하셨다. 손수 만드셨는데 노느니 폐자재 주워다가 하나씩 만들어 온 동네 집집마다 돌렸다고 하셨다.
"몇 개나 만드셨어요?"
"……… 한 …백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