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시골 집 뒤 담장에 걸려 있는 능소화.
맞나?
아니면 창피한데
비가 온뒤라서 능소화 줄기 줄기마다 빗방울이 맺혀 잇다.
길고 긴 가뭄끝에 온비라서 능소화 뿐아니라 논에 있는 벼들 그리고 밭작물, 고추, 참깨. 고구마.각종 콩, 등등...
꿀맛같은 단비가 농사를 짓는 농부들 마음에도 흠뻑내렸다.
비가 온뒤 앞산에도 구름들이 산에 걸려 있다.
논에 잇는 벼들이 무척이나 짙은 녹색이다.
아침마다 5시30분이면 일어나서 저 논둑길을 걸어다닌다 옆에 만보기 차고,,,, 시골에 있다보니까,,, 또 저녁먹고 한시간 정도..
몇칠을 그리하다보니 대충 하루에 13,000 정도 만보기에 찍힌다.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때에는 우리마을에는 텔레비젼은 고사하고 아예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 동네 양쪽으로 있는 동네는 큰동네라서 육이오 훨씬이전에 전기가 들어 왔지만 우리 동네만큼은 샌드위치라서,,,,, 내가 고등학교 마칠때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엎드려 호롱불 밑에서 혹은 호야불 밑에서 공부를 했으니,,,,
엄청 촌놈(?) 이다,,,,,
대신에 자연을 벗을 삼고 감수성도 에민해지고 또 좋은 추억들이 잇어서 결코 손해나는 장사는 아니었다.
저녁만 먹으면 뒷산에 친구들 끼리 모여서 술래잡기 놀이도 하고 하늘에 날라가는 혜성을 보고 어느집 혼불나간다고도 했고..
하지만 실제로 혼불이 있는지는 알길이 없다. 그 혼불이 나가는 것을 보고 몇칠잇으면 어느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다니 어쩐다니..
우연의 일치 인지는 모르나 그런경우도 종종 잇었다,
사진에서 보는 벌판에는 엄청 많은 도깨비 불들이 있었는데 그 도깨비들 다 어디로 갔는지...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은 이 야기를 하면 씰데 없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도깨비 불도 많았었고 귀신도 많았었는데..
언제 기회가 되면 실제로 귀신을 접한 경험을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데 요즘 사람들은 택도 없는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장마찰이라서 비가 한줄기 더 할모양이다.
논둑길옆에 있는 고추나무도 파란 고추들이 주렁주렁 달려잇다.
별다른 반찬이 필요없다. 텃밭에 나가 고추, 오이를 따다가 된장에 혹은 고추장에 꾹 꾹 찍어먹으니 고기 반찬보다 훨씬 낫다.
지난번 내장산 갔을때 전북 고창에 있는 선운사에 간다고 다짐을 했는데 오늘은 구름이 잔뜩 끼어서 덥지도 않을것 같고 아침일찍 선운산으로 출발한다.
또 "선운사 에 가본적이 잇나요?" 라는 노래도 생각나고....
잠깐 선운사에 대해서 좀 조사를 해보고.....
도솔산 북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선운사는 김제의 금산사(金山寺)와 함께 전라북도의 2대 본사로서 오랜 역사와 빼어난 자연경관, 소중한 불교문화재들을 지니고 있어 사시사철 참배와 관광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특히 눈 내리는 한겨울에 붉은 꽃송이를 피워내는 선운사 동백꽃의 고아한 자태는 시인ㆍ묵객들의 예찬과 함께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단다.
선운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고승 검단(檢旦, 黔丹)선사가 창건했다는 2가지 가지 설이 전하고 있으며, 첫 번째 설은 신라의 진흥왕(재위기간 540∼576)이 만년에 왕위를 내주고 도솔산의 어느 굴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이때 미륵 삼존불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꿈을 꾸고 크게 감응하여 중애사(重愛寺)를 창건함으로써 이 절의 시초를 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곳은 신라와 세력다툼이 치열했던 백제의 영토였기 때문에 신라의 왕이 이곳에 사찰을 창건하였을 가능성은 희박하단다. 따라서 시대적ㆍ지리적 상황으로 볼 때 검단선사의 창건설이 정설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켜놓고 선운사 올라가는길이다.
그런데 이름모를 야생꼿이 있길래 한컷.
색갈이 참 이쁘다.
주차할시 주차비는 도립공원에서 징수를 하고 선운사 사찰 입장할시는 입장료를 또 내는데 입장료는 사찰 관할이라고 한다.
선운사 도착하기전. 도솔천.
도솔천을 끼고 양쪽으로 늘어져 잇는 나무들이 비를 맞아서 싱싱하다,
선운사에서는 오늘 불교 행사가 잇어서 전국적으로 많은 불교 신도들이 절마당에 앉아서 .....
그분들한테 방해가 도지 않을까 염려스러워서 대충 둘러보고 도솔천쪽으로 올라간다.
여기 도솔천에 흐르는 물색갈이 약간 검은색을 띄고 있다
한국의 장가계. 원가계? 좀 억지스럽지만 그렇게 부르며 중얼중얼하며 올라간다,
가을에 단풍이 들었을때 물위에 비친 풍경을 상상해보니 행복해진다.
비가 부슬 부슬 내린다. 우산을 준비했지만 좀 걱정이 된다.
도솔암 가까이 오니 귀티 나는 소나무가 나를 반긴다,
도솔암을 우측으로 하고 등산길에 들어섰다
산은 그리 험하지는 않았으며 이런저런 트레킹을 한다고 생각하면 무리가 없을것 같다.
올라가면서 자세히 맞은편을 보니 정중앙에 사찰이 보인다. 절벽과 바위 틈사이에 ,,,,,
저런곳에서 세상만사 다 제쳐두고 이른 새벽 풍경소리 들으면서 참선을 하고 싶다.
대학교 불교 학생회때 해인사에서 새벽 3시에 일어나서 108배를 하는데 얼마나 힘이 들던지...,,
부처님 생각은 아나고 어서 끝났으면 하는 생각만 가득하다,
그다음날 스님들 몰래 계곡에서 꽁치 통조림 가지고 찌개를 끊여서 맛잇게 먹은 기억이 새롭다.
하지만 비도 오고 그래서 지나쳐 버렸는데 .....아쉽다.
몇십만년전 혹은 몇백만년전에 바닷속이 융기를 했는지 절벽에 있는 바위들을 자세히 보니 조개 껍데기 같은 것도 보이고 바닷물이 지나간 흔적도 보이고 ...
수많은 세월을 저렇게 버티고 있구나....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세월을 저렇게 있을지?????
능선을 따라서 걸으면서 내려다본 도솔암.
낙조대..
등산길이 안내판 혹은 이정표가 부족해서 애를 먹었다.
사람들이 그리 많이 오지는 않는가 보다.
가끔 여기저기서 한두어군데 사람소리만 날뿐, 도통 방향을 어디로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지난번 내장산 산행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저런 바위들이 있으면 올라가는 길이 대부분 없어서 둘러만보고 올라갈 생각을 말아야 한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다. 아직 그대로 아무의 족적도 허락하지 않고 그모습 그대로 있으니....
낙조대는 눈으로만 감상하고 그옆에서 점심을 먹는다.
주위에는 간간히 뻐꾸기 소리만,,,, 이름모를 산새소리만 들릴뿐... 고즈녁하다,
이슬비가 추적추적내리고 있다,,,
이슬비 맞으면서 바위를 올라타고 홀로 여기저기 휘 둘러보면서 민생고를 해결하는 방법도 괜찮네...,,
친한 친구가 초등학교때 5학년때 부반장 하던 여학생이 나를 보고 싶어 한다고 한다... 나는 반장을 했으니 아무래도 친한 친구였는데 그때 이후로 한번도 보지 못하고 그럭저럭 몇십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막걸리 한통 한김에 처음으로 전화를 했는데 전화가 되지 않는다.
"해리 공용터미널"
점심을 마치고 이제 하산을 해야 한다.
우산을 쓸정도는 아닌데 아직도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일주를 할려고 작정을 햇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늦어질것 같아서 하산을 해야 할것 같다.
그런데 안내판이 없어서 그냥 방향감각으로 코스를 잡고 내려 왔는데 내가 산행을 시작한곳이 아니고 엉뚱한 곳으로 내려 왔다.
참으로 난감한일.
명색이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을 이곳 저곳을 잘도 찾아다니던 나였는데 방향을 잃고 엉뚱한 곳으로 내려 오다니...
하늘에 태양만 있으면 시간을 게산해서 방향을 제대로잡아서 내려 왔을것인데...
내려와서 둘러보니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조금 걸으니 저수지가 있는데 그 지역 사람들 3분이서 낚시를 하고 있다.
"주둥이가 제일 좋은 지도다" 라는 중국 속담이 잇다. 모르면 물어보아야지..
한참을 걸어내려가서 그분들한테 "선운사 주자창 까지 갈려면 어떻게 가야 돼요?"
그랬더니 그중의 한분이 전라도 사투리로 " 여기서 그렇게 물으면 깝깝한디요"
"걸어서는 해저물녁에도 도착 못한당깨요" 한다..
이런 낭패가...
그럼 어떻게 해야 되나요?
여기서 쪼끔 내려가면 "해리"라고 있는디요. 거기서 버스타고 고창선운사 까지 버스를 타야 된당께...
왜 마을이름까지 "해리'야?
우리 시골말로는 "해리"가 조금 부족하다는 뜻이다. 2% 부족이라는 뜻.
유리 구슬 치기 할때 서로 맞추어서 따먹는 놀이가 있는데 구슬을 던져서 상대편 구슬에 조금 못미치면 "해리"라고 했는데....
오늘은 영 2% 부족이고 시골말로는 "해리" 다.
*** 곰소만 갯벌?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그근방인것 같다. 세계 5대 갯벌중의 하나라고 한다.***
약 20분 동안 걸어내려오니 공용 터미널에 도착한다.
선운사 까지 가는 버스가 대충 1시간 30분 정도 간격을 두고 운행을 한다. 고창 선운사에 오니 여기저기 풍천 장어집 식당들이 즐비하게 있고 또 복분자 술이 이지방 특산물이다.
그리고 위" 해리" 라는 곳에서는 고추 축제도 있고 그리 바쁘지 않고 한적하지만 아담하고 정이 들어가는 풍경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버스를 타고 20킬로 이상을 가니 선운사에 주자창에 도착한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살아생전 와보지도 못했던 풍경들을 듬뿍 감상했으니 오히려 득이 됐다... 세상만사 새옹지마라더니..
꼭 똑똑한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구만...
가끔은 "해리" 하자
*** 프라하의 연인들 촬영장소***
선운사에서 차를몰고 집으로 간다.
김제에서 선운사로 올때는 원평으로 신태인으로 정읍으로 왓지만 갈때는 다른 방향으로 가야 되겠다.
이놈의 호기심은?
그래서 정읍으로 해서 줄포, 곰소 부안쪽으로 해서 김제로 다시 돌아 왔다. 오는길에 이정표를 보니 "프라하의 연인들" 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비가 오는 그런곳은 운치가 있을것 같아서 한번 둘러보고 가야 겠다.
젊은 친구들은 좋아하는 사람하고 둘이서 이곳도 둘러보고 갯벌만 해안가를 석양질때 손잡고 걸으면서 인생을 이야기 해도 좋을듯한 주위 풍경.
나도 그런 기분이 너무나 UP 이 됏는지 빗길이라서 천천히 운전한다고 했는데 몇칠후에 과속했다고 사진이 찍혀서 범칙금내세요 하는 딱지가 날라 왔다.
***부안 도착하기전 구름을 이고 있는 산 풍경 ***
비가 왔지만 선운사 나들이는 아기자기했다.
가능하면 요런나들이를 자주 해보고 싶다.
"류시화"씨가 옮긴 로나 번 이 쓴 "수호천사" 라는 책에 이런 글귀가 있다,
"나는 천국의 문에서 천사들에게 인도되어 나에게 날라온 그 깃털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내가 더 나아지게 해주고. 안전하다고 느끼게 해주고, 살아야 할 이유가 잇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이 잇다는것을 일깨워 준 선물이었다, 그것은 또한 우리 모두가 영혼을 가지고 잇으며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든 그영혼은 완전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우리의 육체는 죽을지라도 우리의 영혼은 죽지 않으며 우리 모두는 날개를 가지고 있다는것을...
비록 우리 자신에게서나 남에게서나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할지라도,,,
사실 우리 모두는 천사다"
작가는 말한다. 우리 모두는 우리 모두를 지켜주는 각각의 수호천사가 잇다고.....
수호천사는 항상 우리곁을 떠나지 않고 우리 앞에 어떤 때는 거지로 혹은 날라가는 새 한마리로, 혹은 떨어지는 깃털하나로,혹은 서있는 나무로,,, 혹은 소리없이 지나가는 바람결로.....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뿐이다. 라고 말한다.
|
첫댓글 한국가서 시간되면 원장님과 같이 동행하고 싶습니다..장가계 보다도 더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그러게... 시간이 될려나 몰라. 항주에서 같이 등산했전 기억들이...